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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쇼미더고스트〉: 서울에는 귀신보다 무서운 것들이 많다면서요

by indiespace_한솔 2021. 9. 27.

 

 〈쇼미더고스트〉  리뷰 : 서울에는 귀신보다 무서운 것들이 많다면서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편의점 진열대를 정리하는 알바생.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한 남성이 수상한 행적으로 앉아있다. 알바생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곤 발을 내디딘다. 자신을 돌아보는 눈과 마주하려던 찰나, 편의점 문이 벌컥 열린다. 비에 젖은 긴 머리칼을 풀어헤친 여자가 구두를 손에 들고 서 있다. 뒤이어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나 또 떨어졌어.” 겉모습은 누구보다 더 완벽히 귀신인 여자가 뱉은 첫마디였다.

 

 

으스스한 분위기도 잠시, 긴 머리의 여자예지’(한승연)의 사연을 듣자 코끝이 절로 찡해온다. 지방대를 나왔지만, 누구보다 스펙을 열심히 쌓았던 예지는 좁아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예지가 찾아간 곳은 20년 지기 소꿉친구호두’(김현목)의 편의점이었다. 정확히는 전에 빌려주었던 1500만 원을 되찾으러. 호두는 대신 그 돈으로 마련한 집을 보여준다. 다른 집들과 달리 서울 한복판이지만 무척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드림 하우스. 뭔가 이상하다는 예지의 직감은 곧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와 집값에 귀신이 들린 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핸드폰을 켜 검색창에 누르는 단어들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실소를 유발한다. 셀프 퇴마/저렴 퇴마사/저렴하게 퇴마 하는 법. 편의점 폐기 식품들로 만든 요리를 매일같이 먹는 이들에겐 몇백만 원짜리 퇴마는 귀신과의 동거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귀신 자문을 하러 찾아간 이웃집 또래가 건넨 피로회복제 '박카스'도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평화롭던 일상에 귀신이 등장하고 멋있는 퇴마사가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호러 영화. <쇼미더고스트>는 이 모든 과정을 뒤엎는내 집 사수 셀프 퇴마 코미디 영화. 호러와 코미디의 양립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지만, 영화는 그 지점을 청년들의 서울살이라는 키워드로 녹여낸다. 영화는 호러의 순간을 잠깐 보여주고 이내 곧바로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호두와 예지의 성장 서사라고도 볼 수 있는 이유는 점차 진취적으로 변해가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안 될 거라며 중얼거리던 예지는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두 남성에게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를 제시하기까지 나아간다. 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들이 선택한 젊은 퇴마사 또한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점지해준 꿈을 정답이라 믿고 나아가다 방황하는 퇴마사도, 꿈 없이 지내던 호두도 귀신 퇴마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어낸다.

 

 

수많은 이력서를 든 채 떠도는 서울 거리의 청춘들은 귀신과 다를 바가 없다. 청춘들의 좌절감은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며 젊은 여성 귀신에게는 눈물로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은 영화에 초현실적인 귀신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악의를 가진 사람이며, 교묘하게 인형 안에 숨겨진 초소형 카메라이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전부다. 귀신보다 더 중요한 건, 귀신이 들린 집에서 뛰쳐나와 갈 곳이 편의점뿐이라는 사실이다. 갈 곳이 없는 청춘들의 내몰린 현실이 살갗에 귀신보다 더 오싹하게 와닿는다. 예지, 호두, 퇴마사 그리고 젊은 여자 귀신이 끝내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함에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이 귀신보다 무섭게 느껴진다면, 이제 서로의 손을 잡고 귀를 열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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