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아무도 없는 곳〉 인디토크 기록: 타인의 그림자에서 발견한 위로

by indiespace_한솔 2021. 4. 9.

 

타인의 그림자에서 발견한 위로
 〈아무도 없는 곳〉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 4 6(화) 오후 7

참석 김종관 감독 | 배우 연우진, 이주영, 윤혜리

진행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유소은 님의 글입니다. 

 

 

어둠을 가만히 계속해서 바라보면 그저 까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형체가 점점 드러난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그런 시선을 담고 있다. 죽음, 나이듦, 상실, 결핍 등 누구나 겪는 보편적 경험임에도 두려움에 외면하는 현실을 뚜렷이 직면한다. 사람과 세상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오롯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진행된다. 모호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 속에서 인물들은 오히려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내면의 상처를 꺼내 보인다. 쉬이 공유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무거운 말들이 오가지만, 담담한 말소리 탓인지, 사실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인지 그 말들은 역설적이게도 온기를 머금고 우리를 위무한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제목과 상반되게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유쾌한 에너지와 웃음이 함께한 인디토크를 전한다.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이화정):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이화정입니다. 영화 잘 보셨어요? 길을 걸으면서, 사색하면서, 대화하면서, 또 들으면서, 걸어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인데요. 그 안에 많이 곱씹게 되는 이야기들, 창작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어요.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도 그런 자리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종관 감독님과 이주영 배우님, 연우진 배우님, 윤혜리 배우님 모두 모시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오시면 큰 박수 부탁드릴게요.

 

김종관 감독(이하 김종관):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도 없는 곳을 연출한 김종관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우진 배우(이하 연우진):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도 없는 곳창석 역할을 맡은 연우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주영 배우(이하 이주영): 안녕하세요. 저는 주은을 연기한 이주영입니다.

 

윤혜리 배우(이하 윤혜리): 유진 역을 맡은 윤혜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화정: 이 공간이 감독님께는 굉장히 익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어떻게 보면 창석이 걸었던 길들에 이곳 인디스페이스가 포함돼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예전에 감독님 밤을 걷다라는 영화는 바로 길 건너편에서 촬영하셨잖아요, 새벽에. 여기는 김종관 감독님의 발걸음이 닿는 곳, 업계 용어로 나와바리인데요.(웃음) 감독님, 오늘 이렇게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분들과 만났는데 어떠신가요?

 

김종관: 원래는 집에서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인데, 오늘은 늦어서 차를 타고 왔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요 앞에서 밤을 걷다라는 영화도 찍었고, 창석도 근처에서 밥을 먹었을 것 같은, 저한테도 개인적인 추억이 굉장히 많은, 독특한 곳인 것 같습니다.

 

이화정: 아무도 없는 곳2만 관객 초읽기에 들어왔는데, 지금 거리두기 좌석을 빼고는 거의 다 자리가 차있어요.

 

김종관: 이렇게 관객을 만나는 자리가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을 요새 되게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 비어있는 자리도 빈자리로 보이지 않고, 꽉 차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배우들도 다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이번 영화에서 각자의 담당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우진 배우님은 리스닝 담당, 잘 들어주시는 역할을 하신 것 같아요. 창석의 마음으로 오늘 토크의 문을 한 번 열어주세요.

 

연우진: 일단 저도 인디스페이스에 정말 오랜만에 온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롭고요. 오늘 오다 보니 앞에 포장마차들이 있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GV 끝나고 영화에 관한 얘기도 하면서 소주 한 잔씩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도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가득 찬 것 같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꽉 찬 마음이 느껴져요. 이렇게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화정이주영 배우님, 멋짐을 담당하고 계신 것 같아요. 가장 멋진 캐릭터가 주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주은의 마음으로 관객분들과 인사를 나누시죠.

 

이주영: 저도 항상 김종관 감독님 팬이었는데, 감독님 작품에서 너무 매력적이고 멋진 캐릭터를...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가.(웃음) 감독님께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함께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오늘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정알겠습니다. 윤혜리 배우님은 정말 할 말 다 하는 캐릭터 같아요. 저는 윤혜리 배우의 등장이 김종관 감독에게 또 하나의 입을 열어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종관 감독이 쓰는 대사를 정말 찰떡같이 언어화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인사를 부탁드리죠.

 

윤혜리: 제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장단으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화정: 박수를 한 번 드리죠. 오늘은 오픈채팅으로 질문을 받고 있으니 많은 얘기해주시면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풍성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실 겁니다. 제가 김종관 유니버스라는 말을 썼는데, 진짜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어떤 커다란 사건이 없이, 누군가가 길을 걷고 공간을 점유하고 사색해요. 굉장히 리얼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생각해보면 그리 리얼하지 않은 느낌의 영화들이에요. 거짓말의 매혹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들을 한 번 더 곱씹어보면 진짜인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사람을 현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얼함과 판타지의 절묘한 조합의 작품들을 계속 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거의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세계를 완전히 확립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세계의 대표자로서 한 말씀을 해주시죠.

 

김종관: 저한테 유니버스라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말 같고요. 어쨌든 전 운이 좋게 계속 작품을 해왔어요. 작은 규모의 창작이지만 작품을 통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연이어 다른 작업으로 풀어내는 식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성이 생기고요. 제가 영화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들, 탐구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까 조금씩 확장되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한 많은 것들을 이번 작품인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본 것 같아요. 대화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 경계에 관한 이야기, 삶과 죽음이나 창작에 관한 이야기, 이런 주제로 조금씩 변형해가며 영화를 만들었는데, 촬영할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시스템에서 이 배우들과 함께 이런 식으로 탐구하는 영화를 하는 건 앞으로 어렵지 않을까?’ 이 작업 자체가 저한테는 되게 내밀한 작업이었거든요. 사실 영화라는 걸 만들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영화가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이런 마음이 들긴 하죠.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창작을 하고,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어서 소수의 관객일지라도 서로 밀접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근데 이런 영화를 지속해서 하는 건 사실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이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기회였어요. 더 치열하게 임했고. 기억에 많이 남는 작업일 것 같아요.

 

이화정: 소수의 관객이라도 소통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생각과 달리 굉장히 많은 관객이 소통을 원한다는 게 스코어로 입증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분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감독님 스타일에 대해서 익숙해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많은 관객들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는 창석이라는 캐릭터가 감독님이 하는 고민, 지금의 나이가 된 김종관이라는 사람의 고민을 녹여낸 캐릭터가 아닐까 싶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쉽지 않은 역할이라는 건데요. 연우진 배우님은 제안받으셨을 때 어땠고, 창석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사실 창석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거든요. 비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어떤 사람인지.

 

연우진: 감독님과 작품으로 연이 계속 닿고 있는데요. 저도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스트레스, 어떤 고민이 있었을 터인데, 감독님과 만나는 순간엔 생각의 전환이 된달까요? 저한테 굉장히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잠시나마 머리에 환기도 시키고, 깊숙이 뭔가를 한 번 느껴보고. 항상 고민의 찰나에 감독님께서 제안을 주셔서 저에겐 참 고마운 시간이에요. 최근에 감독님 작업실을 놀러 간 적이 있는데요. 감독님이 또 다른 걸 준비하고 계시더라고요. 작업 방식과 일련의 고민들이 굉장히 새로웠어요. 아마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홍보는 아닌데요.(웃음) 어쨌든 저도 배우로서 창작자로서 일하고 있지만, 감독님의 창작의 방식은 더 새롭고 더 깊게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감독님의 길을 응원합니다. 끝맺음 인사 같네요.(웃음)

창석이라는 인물... 사실 촬영을 할 때는 감독님의 어떤 요구를 듣고 뭘 한다기보다는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 계신 다른 네 분의 훌륭한 연기를 듣는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창석은 창작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창작이라는 어떤 고통과 고민 속에서 변화하는 지점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영화 속 네 분을 만나면서 일어나고, 그래서 오히려 제가 어떤 심리 상태로 연기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삶의 또 다른 양식을 채운다는 느낌으로 임했어요. 많이 비우려고 노력했고, 순수하게 들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창석은 사실 영화의 다른 캐릭터들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오히려 창석은 입을 거의 닫아버리잖아요. 내레이션을 제외하고는. 그게 정말 획기적인 선택이자 감독님만의 창작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이 만났을 때는 누가 말을 더 많이 하는지도 좀 궁금해요. 주로 감독님이 얘기하시고 연우진 배우님이 듣는 편이세요?

 

김종관글쎄요. 그냥 말이 별로 없어요, 둘 다. 말이 별로 없고 그냥 공간 쳐다보고.

 

연우진: 중간에 술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김종관, 맞아요. 좋은 말씀이네요. 술이 얘기하고 있고.

 

연우진: 홀짝홀짝.

 

이화정: 저는 두 분을 예전부터 봤잖아요. 두 분을 봤을 땐 사실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 영화를 보면서 창석에게서 김종관이라는 사람이 보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연우진 배우님이 감독님한테서 많은 힌트를 얻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제스처든, 말 하는 방법이든.

 

연우진: 감독님이 조곤조곤 말씀하는 스타일이신데, 그 말속에 느껴지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조곤조곤 얘기하고, 분위기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글쎄요. 저도 이렇게 흰머리가 늘어나면 어쩌죠?(웃음)

 

이화정: 그거는 차마 닮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감독님의 얘기는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웃음)

 

김종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웃음)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흔히들 페르소나라는 얘기를 하는데, 감독님이 페르소나에 적합한 배우를 잘 선점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주영 배우님, 주은은 창석이 말을 하게 만드는 것같이 하다가 자기 얘기를 다 해요. 이런 바가 실제로 있다면 정말 주은이란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의 판타지가 가장 잘 드러난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남의 기억을 수집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매혹적이었어요. 제안받으셨을 때 되게 욕심나는 캐릭터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이주영: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주은이의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근데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게 아니고 창석과의 대화로 영화가 흘러가니까 어떻게 대화만으로 이 캐릭터를 표현하고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부분들을 더 살릴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화정: 그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에 젖어 들던데, 이런 공간이 익숙하거나 편안한 느낌인가요?

 

이주영: 제가 사실 술을 안 마셔서 바에 많이 다니지 않았는데, 감독님이랑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보게 됐어요. 투어하면서 각각 성격이 다른 곳들을 많이 가봤고요. 바텐더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기술들을 배우기도 하고, 그분들이 거기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호흡으로 계신지를 봤던 것 같아요.

 

이화정: 주은은 가장 쿨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보다 슬픔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만큼 정서적으로 슬픈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큰 사고를 당했고, 후유증 속에서 창작을 하고 싶은 마음, 열망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예요. 어떤 부분은 창작자로서, 배우로서 주영 배우님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랑 맞닿는 지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 캐릭터를 어떻게 바라보게 됐는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주영: 일단 주은이는 기억을 잃은 거잖아요. 기억을 잃는다는 게 모든 걸 잃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절망스럽고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고. 보통 다른 영화를 보면 기억을 잃은 캐릭터들을 그런 식으로 많이 표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은이는 두려움 보다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어요. 나에게 없는 기억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수집한다,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도 너무 멋졌고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아픔이나 상처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어떻게 보면 무례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용기 있게 다가가는 사람이라고 느꼈고요. 그런 부분이 좋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주은이가 시를 쓰잖아요. 저도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문예창작과 복수전공을 했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써보고, 시 수업도 들었고. 그래서 이 사람이 하는 마음에 있는 걸 풀어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이 저는 뭔지 알죠.(웃음)

 

이화정: 감독님, 이렇게 자기 말을 많이 하면서도 멋짐을 잃지 않는, 비주얼적으로도 멋있음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를 찾아야 했잖아요. 이주영 배우님을 어떻게 찾으셨어요?

 

김종관: 처음부터 캐스팅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주은과 유진 캐릭터는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바뀌니까요. 시나리오 상태에서 어떤 성격이 부여되어 있기는 했지만, 더 풍성하게 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이 두 역할은 배우가 왔을 때 성격이 완전히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김상호 배우가 한 성하나 이지은 배우가 한 미영 같은 경우에는 처음 시나리오 썼을 때부터 즉각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로 캐스팅했던 거고, 두 배우의 역할은 굉장히 많은 배우를 대입하면서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바텐더가 가지고 있는 그 캐릭터는 자칫하면 좀 애매할 수 있잖아요. 계속 말 많이 하고, 시 쓴다 그러고. 이게 좀.

 

이화정: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 바에 발길을 끊게 되죠.(웃음)

 

김종관: 그게 되게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그 포인트를 어느 배우가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주영 배우와 함께 하게 되었죠. 그리고 주은과 이주영이 닮아 보이는 때가 있더라고요. 엊그제 무대인사 할 때, 시키지 않았는데 무대인사 하다가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주은 같았어요.(웃음)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저는 주은이 밤의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창석이 만나는 다양한 시간대가 있잖아요. 주은이 밤이라는 특정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면, 윤혜리 배우님은 되게 오묘한 시간대를 장악했어요. 그리고 김종관 감독님이 그런 시간대를 정말 잘 잡아내요. 최악의 하루때도 그렇고, 밤을 걷다는 완전히 밤 시간대인데도 어둠 속에서 하나씩 다 보더라고요. 눈이 진짜 좋은 것 같다는 생각, 감독만의 이상한 시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서히 어두워지는 시간대에 이 캐릭터가 들어감으로 인해 그 시간대가 마치 활동하고 살아있는 것 같아요. 유진은 가장 동작이 많은 캐릭터이기도 해요. 다른 배우들은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면, 유진은 창석과 같이 걸어가잖아요. 일대를 걸어가면서 계속 대화를 하는데, 이런 연기를 하는 게 새롭기도 하고 도전일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캐릭터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다 쏟아내고, 관객이 추후 알게 될 창석의 속마음, 상실 같은 것을 유진이 미리 쏟아내는 느낌이 들어서 책임감이 막중한 캐릭터 같아요.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윤혜리: 솔직히 시나리오 받았을 때는 채우기 급급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말하고 어떤 아픔이 있을까 헤아리려고 하기보다는. 조금 창피하지만, 기술적으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요즘 GV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요즘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아니면 배우로서 대사할 때도 빈 물병에 물이 점점 차서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을 때 대사를 하자, 그 때 타인에게 말을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똑 떨어지기 직전에 말을 해야 가장 자연스럽다는 혼자만의 법칙을 만들었거든요. 유진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다시 바라보게 됐어요.

 

이화정: 그럼 유진이 말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윤혜리: 그렇죠.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캐릭터를 볼 때 창석은 대학교 선배잖아요. 그러면 겹치는 지인도 여럿 있었을 테고, 자세히는 몰라도 요즘에 한국에 오셨대, 이렇더래 저렇더래, 소식을 어딘가에서 흘려듣지 않았을까.

 

이화정: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얘기할 수 있는.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본인의 얘기를 꺼냄으로 인해서 창석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실은 숨어있었겠네요.

 

윤혜리: .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 힘드니까 내 이야기 들어볼래?’ 이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생기지 않아요?’ 이런 마음으로요.

 

이화정: 문어체의 대사를 한 톤으로 일관되게 연기한 것이 참 놀라웠는데, 이후에 윤혜리 배우님과 길게 얘기 나누어보니 윤혜리 배우가 기존의 시나리오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종관 감독님의 세계에 새롭게 등장한 언어의 화술사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감독님은 어떤 매력을 보셨는지, 같이 작업하시면서.

 

김종관: 저는 작업할 때도 매력을 많이 느꼈지만, 요새 GV 하면서도 매력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윤혜리 배우랑 꼭 코미디를 같이 해보고 싶어요. 최악의 하루의 이희준 배우가 맡았던 역할 같은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되게 서슬 퍼렇고 으스스한 역할도 멋있게 잘할 것 같고. 말의 템포 같은 부분들이 매력 있어요. 저는 말에 개성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본연의 말의 방식이 있는 사람들이 좋고, 그게 연기를 했을 때 그대로 묻어나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 면에서 윤혜리 배우는 말의 느낌이 좋고, 그게 유진의 대사랑 붙었을 때 힘이 있겠다 싶었어요. 당당하고 시니컬하지만 자기의 결핍도 씩씩하게 잘 드러내는 모습을 어떤 톤으로 해야 매력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윤혜리 배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어서 맡기게 됐죠.

 

이화정: 진짜 때려주고 싶었던 이희준 배우의 캐릭터, 괄목할 만한 캐릭터였죠.

 

김종관: 근데 윤혜리 배우가 하면 되게 사랑스럽게 할 것 같아요. 도저히 미워할 수 없게.

 

이화정: 동의하시는 거죠?

 

윤혜리: 너무 좋아요.

 

 

이화정: , 그럼 기대를 해보면서. 벌써 질문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거든요. 일단 첫 번째 질문을 읽어볼게요. 주은이 마음속에 담긴 건 풀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고 자기는 손님 얘기로 시를 쓴다고 했어요. 주은은 마음에 무언가가 쌓여서 풀려고 시를 쓰는 걸까요? 아니면 역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쓰는 걸까요?(웃음) 주은은 어떤 이유로 창작하는 건지 여쭤봐 주셨네요. 첫 질문이에요.

 

이주영: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겠죠? 일적인 스트레스나 따분함이 쌓일 수도 있을 거고. 기억은 잃었지만 여러 관계는 있을 테니까 가족이나 친구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일 수도 있을 것 같고. 근데 주은이의 과거를 상상했을 때, 뭔가 순탄하게 살았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과거는 이제 지나갔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거야하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 마음에 쌓이는 감정들은 알면서 쌓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도 많이 쌓이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가 모르는 무의식 중에 쌓인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화정: 또 다른 질문. 역시나 영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많이 질문을 주시고 있어요. 창석은 영화 속에서 조금씩 메모를 합니다. 실제로는 무엇을 쓰고 계셨는지, 혹은 무엇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우진 배우님께 들어보죠.

 

연우진: 바에서는 이주영 배우 얼굴을 그리고 있었고요. 파격적인 눈 분장이 잘 어울려서 눈을 그리고 있었어요. 메모하고 있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창석은 자신의 소설과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었겠죠. 메모하고 있다, 소설을 쓰고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큰 범위에서 보면 창작, 예술을 하고 있다는 건데, 그 의미가 이 영화에선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서로 소통하고 이해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거든요. 가까운 사람한테도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고. 감독님께서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들과 가장 최소한의 방식인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셨는데, 저는 그게 결국 예술과 창작인 것 같아요. 우리의 관점에 따라서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도 하고요. 느껴지는 건 다 다를 수 있지만, 소설로 느껴지는 순간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거든요. 창석이 네 명의 이야기를 다 듣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결국에는 자신의 소설을 써가고. 그 안의 내용보다는 창작해나가고 있다는 행위가 여러분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고요. 잘 만들어낸 이야기는 결국은 믿게 돼 있다는 말처럼 예술을 통해서 이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각자 가진 결핍과 상실을 조금이나마 생각하면서 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창석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쓴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상실과 결핍을 극복하길 바라면서 계속 무언가를 썼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메시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이화정: 이 질문이 굉장히 많아서 소개해드릴게요. 영화에서 농인 유튜버 하개월 님이 친구와 수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있는데, 이 대화에서도 의도하신 게 있는지, 또 어떤 내용이었는지 질문 주셨어요.

 

김종관: 그냥 편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만 주문을 했어요. 영화 안에 일상들이 담겨 있지만,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여주는 일상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뭔가 빗겨나가 한쪽만 보여줄 때도 있고요. 저는 다른 면에 있는 것들도 보이고 그 속에 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우리가 걷는 거리엔 젊은 사람만 있지 않잖아요. 노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걷고 있는 세상이니까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가 스쳐 가는 것들을 특별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연우진 배우님이 그리신 그림 공개해주세요. 라고 하셨는데, 이거는 3만명 되면 한번 해주시나요?

 

연우진: 그거 제가 찢어서 가져갔어요.(웃음)

 

김종관: 노트에 보면 그림은 없고 글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글씨도 굉장히 잘 쓰더라고요.

 

이화정: 그림이 아니더라도 남은 유산들을 좀 풀어주시면 저희가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캐릭터들의 전과 후를 묻는 질문이 정말 많아요. 일단 담배 장면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소개해드릴게요. 인도네시아 담배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감독님이 꼽는 베스트 담배 신은 어디인지 질문 주셨어요. 제가 보기엔 영화사에서 인상적인 담배 장면을 꼽으면 이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연기하신 윤혜리 배우님과 연우진 배우님께도 추가 설명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감독님 먼저 말씀해주세요.

 

김종관: 저희 영화에는 담배도 중요한 요소인데요. 어쨌든 영화를 제일 쉽게 읽는 방법은 창석의 금연 실패기잖아요.(웃음)

 

이화정: 이렇게 정리하시는 거예요?(웃음)

 

김종관: 엄마가 담배 피우면 네 아버지처럼 빨리 죽는다고 했는데, 계속 담배를 피울 일이 생기잖아요. 담배를 두 분이 권하죠. 유진이 권하고, 주은이 권하고. 저는 주은이랑 담배 피우는 장면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둘이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이화정: 맞아요. 멋있었어요.

 

김종관: 사실 실내흡연은 불법이잖아요. 불법을 자행하는 장면인데.(웃음) 서로 말없이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에서 제가 원하는 감정이 느껴졌고, 되게 편하게 와닿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인도네시아 담배가 특별하게 쓰였는데, 이 영화는 창석이란 사람이 처음에는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통해 남의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변해서 새로운 창작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개인적인 경험이 어떻게 변형돼서 창작이 되는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이 영화 안에도 저의 기억들이 들어가 있어요. 저도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겨울에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집에서 몇 달 산 적이 있었어요. 실제로 너무 추워해서 제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그때 제가 이문동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추운데도 베란다에 나가서 항상 담배를 피웠거든요. 근데 그 친구 담배 특유의 냄새와 소리가 있었어요. 그게 항상 좋은 기억으로 있었고요.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러 인도네시아에 갔는데 그 담배 냄새가 지천에 나는 거예요. 제 느낌에는 일반적인 담배 냄새보다 달달하면서 낙엽 타는 냄새 같은 게 나는데. 그게 친구에 대한 향수를 불러와서 담배를 사왔어요. 그 담배를 영화 안에 다른 방식으로 녹여 넣은 거죠. 그런 식으로 저한테 즐거운 기억이 영화 안에서 가장 슬픈 경험으로 바뀌기도 하고 저한테 사실은 마음이 아픈 경험도 영화 안에선 농담처럼 쓰일 수 있는 거죠. 창작의 재밌는 지점인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알고 있는 내 기억을 유진이라는 캐릭터에게 주신 거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정말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배우님이 촬영하시면서 어떤 감흥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윤혜리: 감독님께서 사전에 담배를 보여주셨는데, 실제로 피우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촬영 전에 한 번 피워봤어요. 유진이라는 인물이 이 담배를 가방 속에 왜 가지고 다녔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담배는 사물들에 막 치이면 찌그러지잖아요. 그 소중한 담배를 꺼내기 전까지 비둘기의 죽음도 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아주머니도 봤고, 나와 비슷한 아픔이 있을 수도 있는 창석도 만나고. 그 모든 것들이 유진에게 뭔가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화정: 해가 지는 순간을 촬영하는 데에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이런 신을 찍는 팁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질문해주신 분이 연출이나 촬영을 하시는 분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종관: 약간 다른 방식이지만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 배우가 혼자 독백하는 장면도 시간대를 이용한 시도였는데요. 사실은 담배 장면 같은 경우는 보통 영화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장면이죠.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이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아마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숙면에 드시는 분들도, 이 영화와 멀어지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근데 저에게는 영화라는 언어로 해볼 수 있는, 다시는 못할 것 같고 지금 해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였어요. 점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드물고 힘든 일이 될 텐데, 저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이 영화가 체험되는 느낌이길 바랐어요. 빛이 소멸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점점 형체가 사라지는 어둠의 편안함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촬영의 팁이라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배우들이 잘해야 하고.(웃음) 배우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신이기도 하죠.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찍으니까 정확한 일몰의 시각을 잘 계산함과 동시에 큰 운이 따라야죠.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가본 거예요. 근데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손안에 넣었을 때 굉장히 큰 희열이 있었습니다.

 

이화정: 연우진 배우님, 이 장면 찍으실 때, 이런 거대한 영화사의 한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셨나요?

 

연우진: 저도 평상시에는 쉽게 할 수 없는 영화적 접근법이어서 흥미로웠고요. 사실 소품이 유한적이어서 쓸 수 있는 담배가 몇 개 없었어요. 몇 개 피워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이 장면은 추억을 태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유진이 추억을 얘기하잖아요. 그 추억을 태우는 의미에서 담배라는 소품이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는데, 사실 걱정도 많이 했죠. 영화가 혹시 TV로도 방영이 되면 정말 새까만 화면에 모자이크만 왔다 갔다 하겠다.(웃음)

 

이화정: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우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면이어서 모두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 스틸

 

이화정: 질문을 좀 더 이어나갈게요. 주은이는 왜 바를 그만두게 되었나요? 이주영 배우님께는 계속 어려운 질문을.(웃음)

 

이주영: 주은이는 기억을 잃었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한곳에 연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종관: 그리고 어쨌든 주은은 떠나잖아요. 떠날 사람이니까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찰나의 소통이 가능했을 것 같아요. 스쳐 지나가지만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화정: 사실 이 질문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것 같지만, 더 직접적인 질문이 있어서 연결해서 드릴게요. 주은과 창석은 서로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나요? 배우분들은 어떻게 설정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이 설정하신 온도는 딱 이 정도의 온도인 것 같은데, 이주영 배우님은 어떤 느낌으로 접근하셨는지.

 

이주영: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인간적인 호감은 당연히 있었고, 그래서 본인의 이야기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해요.

 

연우진: 저 또한 이성적인 호감이라기보다는 창작자로서 느껴지는 묘한 동질감과 정서적인 유대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주은을 보고 그 어느 순간보다도 미소를 띠게 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도 주은을 만나고 나서잖아요. 주은과 그런 묘한 정서적 유대감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저는 마찬가지로 유진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근데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순간에 공유한 것들은 이후에 발전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이 순간에 집중해서 이 관계들을 상상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봅니다. 제목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제목인지, 그리고 배우분들께도 그 제목에 대해서 각자의 해석을 덧붙여주시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주셨는데, 감독님 얘기 먼저 들어볼까요?

 

김종관: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이 이야기를 계속 그려보고 계속 떠올려보면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확장해서 생각하게 되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제목과 연결 지어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목이 어떤 정답을 말하기 보다는요. 영화에 사람이 없는 공간이 많이 나오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만들 때 자취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공간에서는 사람을 느낄 수 있지만, 꽉 차 있다가 텅 빈 공간에서는 그 사람들을 그려볼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여기 누가 있었지? 누가 살고 있었지? 어떤 사연들이 있었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제목입니다.

 

연우진: 저도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 중 하나인데요. 감독님이 늘 경계에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저 또한 아무도 없지만,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곳, 이런 의미에서 제목이 가져다주는 상상력이 영화의 재미를 더해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창석을 연기했기 때문에 창석이 쓰는 소설 제목이 아무도 없는 곳이지 않을까 했어요.

 

이주영: 감독님께서 저희 영화는 빛과 그림자가 있으면 그림자에 해당하는 영화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림자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림자가 상실이나 죽음, 나이듦을 상징할 수도 있고. 그림자는 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거잖아요. 누군가 있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의미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윤혜리: 저는 그냥 윤혜리로서 말씀을 드려보면요. 저는 아무도 없는 곳이 항상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대자로 누워 있고 싶고, 게걸스럽게 밥 먹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고, 춤도 추고 싶고요. 근데 나의 집이라 해도 식구들이 있고, 가구들로 차있잖아요. 아무도 없는 곳, 그런 네버랜드 같은 곳을 가고 싶지만, 사실은 갈 수 없다는 점이 저에겐 아이러니하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이화정: 알겠습니다. 질문을 하나 더 드릴게요. 최악의 하루에서의 소설가와 이 작품의 소설가 창석이 다르면서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감독님 생각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김종관: 그렇죠. 저는 창석이 최악의 하루의 은희와 료헤이가 혼합된 인물인 것 같은 느낌도 있어요. 소설가이면서 본인의 고민이 있는 부분은 료헤이와 닮아있지만, 최악의 하루는 은희라는 사람이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니까요. 이 영화는 창석이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진행되고요. 그 안에서 은희라는 캐릭터는 사람에 맞추어 자기를 카멜레온처럼 바꾸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면, 창석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통에 교감하면서 내면이 변화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최악의 하루라는 영화도 저는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일상적 요소 안에서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최악의 하루도 분명히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아마 감독님 전작을 보신 분들은 아무도 없는 곳의 인물들을 그 전 작품들이랑 연결해서 해석하실 것 같아요. 이 작품을 계기로 전작들을 보기 시작해도 좋을 것 같고요. 저는 이 작품은 여러 번 보아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번 보시면서 다양한 해석이 많이 나오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오늘 오픈채팅방에 깨알 같은 질문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다 답변을 못 드렸어요. 다음 토크 때 다시 오셔서 이 질문들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관객분들의 에너지가 느껴져요. 이 영화를 만드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의 기운도 있지만, 여러분들의 에너지가 덧붙여져서 독립영화는 완성된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거든요. 이 영화는 특히 관객을 만나면서 영화가 점점 완성되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빼놓을 수 없는 게 공약이잖아요. 2만 관객 공약을 들으면서 끝낼까요?

 

김종관: 2만 공약은...계속 논의를 하고 있고, 이 반지도 2만 관객 응원하면서 윤혜리 배우의 친구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건데요. 최초로 PPL을 한 번 해보려고 이렇게 착용했습니다.

 

이주영: 2, 약속해줘~

 

이화정: 노래까지 불러주셨네요. 그러면 초읽기에 들어간 2만 관객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인사말 할까요?

 

윤혜리: 이렇게 영화 보러 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심히 가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이주영: 저도 영화를 보고 GV를 다니면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고, 처음엔 지나친 것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그런 게 저희 영화의 힘인 것 같더라고요.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요즘은 상실감을 많이 경험하는데, 저희 영화는 그런 상실을 꺼내 드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상처를 덮지 않고, 서로 이야기하고, 그래서 서로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은이를 생각하면서 어떤 노래를 할까 고민했는데 주은이한테 어울리는 노래를 해보겠습니다.

 

이화정: 역시 제가 시키지 않아도 배우님께서 해주시는 이런 센스.

 

이주영: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감사합니다.

 

연우진: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요.(웃음)

 

이화정: 노래로 화답하시면 됩니다.(웃음)

 

연우진: 성대결절이 있어서.(웃음) 문득 드는 생각인데, 관객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제 마음 자체도 영화의 일부인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분께 얘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도 없는 곳이 될 때까지 GV를 할 수 있는 영화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관: 이전 GV에서 윤혜리 배우가 되게 매력적인 말을 했어요. 영화에서 쓰는 어투에 관해서 물었을 때, 세상에는 저마다 다른 말투가 있고 그게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매체에 올라와 있는 말만 쓰면 얼마나 재미없겠냐.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대답하셨거든요. 저도 영화를 만들 때, 이야기를 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아는 범위 외에 다양한 사람도 있고요. 창석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훅 침범해오는 순간 경계심도 갖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과 어떤 단계를 넘었을 때 소통이 되거든요. 이들의 사연이 드라마틱하다고도 느낄 수도 있는데, 저는 인간 본연의 감정들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창작자로서 귀를 열면 그런 것들이 들릴 때가 있어요. 저는 창작하면서 즐거울 때보단 힘들 때가 더 많아요. 관객을 만나면서 좋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힘든 부분도 저마다 있을 거예요. 근데 너무 의미 있었던 게, 옛날에 제가 최악의 하루더 테이블시나리오를 쓸 때 매일 동네 스타벅스에 갔어요. 아침 8시에 문을 열 때부터 가서 그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을 몇 년 동안 봐왔어요. 그러다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인사 한번 안 하고 먼 타인 같은 사람도 있어요. 어떤 남자분은 몇 년 동안 봤는데 굉장히 무뚝뚝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더 테이블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할 때, 객석에 그 분이 있는 거예요. 인파 속에서 저한테 다가와서 저 오늘 스타벅스 그만뒀어요.” 하면서. 제가 맨날 커피랑 아몬드가 든 크루아상을 주문했거든요. 그 아몬드 크루아상을 저에게 건네더라고요. 먼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런 느낌들이 이 영화를 만든 동력인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은 결코 드라마틱한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대해 더 잘 들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알게 되는 순간들이지 않나, 그게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화정: 굉장히 중요한 얘기네요. 주은이 왜 바를 그만두었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아마 그 스타벅스 직원에게서도 어떤 부분을 따오시지 않으셨을까.

 

김종관: 그렇죠. 찰나의 인연에서 어떤 교감이나 사람에 대한 따뜻함, 희망을 느낀 거니까.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이야기 안에 적용되는 거죠.

 

이화정: 우리가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내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따뜻한 느낌을 받아가시면 좋을 것 같고요. 감독님 영화에 나온 공간들은 다 걸어다니기 좋은 공간이에요. 영화 보시고 거리를 다녀보시면서 연장선상에서 계속 사랑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 구독하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