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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파이터〉: 진아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by indiespace_한솔 2021. 4. 6.

 

 〈파이터〉 리뷰:  진아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은다강 님의 글입니다.

 

 

극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미디어 속에서 누군가가 환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서사는 얼마나 흔한가. 우리는 그렇게 모든 걸 극복해야만 하나. 뭔가를 극복하고 회복한다고 할 때, 우리가 획득하려는 상태는 무엇일까. 그러던 와중에 진아를 만났다. ‘영화 파이터를 봤다는 말은 한참 모자라고 파이터의 진아가 눈에 들어왔다로는 충분치 않다. 나는 진아를 만났다.

 

 

리진아는 탈북민이다. 사람들은 진아의 말투에서 그의 출신을 파악한다. 진아에게 셋방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은 그의 말투에서 결핍을 읽어내는 무례를 범한다. 50만 원짜리 월세에 살지만 30만 원은 국가가 부담해줘야 그곳에 사는 게 가능하다는 경제적 결핍. 혼자 남쪽으로 내려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관계의 결핍. 심지어 그 결핍을 약점으로 오독하기까지 한다. 때론 위협처럼 느껴지는 타인의 오지랖과 오독을, 진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수한다. 그 방식은 잽(jab)보다는 훅(hook)과 닮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훅의 대가는 인간적으로 너무 비쌌다.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별이 오빠소개로 진아는 식당을 나간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중국에 있는 아빠를 데려오기에 충분한 돈을 마련할 수 없다. 수입을 늘이기 위해 진아는 집 근처 체육관에서 청소와 정리 일을 시작한다. 비어있는 체육관에서 혼자 잽을 날리던 그는 복싱을 해보라는 코치 태수의 말에 자기가 왜 쌈박질을 하느냐며 역정을 낸다. 진아는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고 그 싸움엔 자신의 생존과 아버지의 안전이 달려있지만, 링 위의 쌈박질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복싱 선수가 되면 받을 수 있는 후원, 그리고 자꾸 눈에 밟히는 여자 복서들이 결국 진아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실 복싱은 그가 평생 해왔을 싸움에 비교하면 안전한 놀이기구처럼 보인다. 싸움의 영역이 명확하고, 보호구를 착용하며, 상대의 공격을 받아쳐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링 위엔 심판이 있다.

 

진아는 복싱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으로 지키는 것이 아닌 이기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심지어 선수 보호를 위해 착용하는 마우스피스는 사람들이 온갖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던 진아의 말투마저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는 드디어 그 무엇도 아닌 자신으로서 주먹을 뻗는다. 이기기 위한 진아의 싸움은 역설적이지만, 져도 괜찮다. 패배는 패배일 뿐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링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은 패배에 굴복하지 않는 개인적 경험이지 환경이나 상황을 극복하는 탈북민의 서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진아가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고 복싱 선수로 승승장구하길 바랐던 내 기대는 얼마나 우스운지.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다. 혼자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찾아지는 것이다.

-토머스 머튼-

 

파이터도입부에 삽입된 문구가 진아에게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줄곧 혼자 싸우고 있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진아가 편견을 딛고 일어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이길 바라는 나의 또 다른 편견을 마주하고서야 나 역시 링 밖의 그에게 응원이라는 형태로 색을 덧입히던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깨달음은 요즘의 봄 같아서 왔는가 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나는 또 다른 진아를 만나 말투나 행동에서 그를 읽어내려 애쓰고, 앎의 공백을 동정과 조롱으로 채울지 모른다. 경험하지 못한 삶을 편견으로 채우는 일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에게 극복을 권하는 것만큼이나 쉽고 익숙하다. 그러니 남은 계절엔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진아의 싸움이 끝나지 않듯이, 봄이 진 뒤에도 우리에게 삶의 의미는 여전할 필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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