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년 3월 21일(일) 오후 3시 30분 참석 박근영 감독 | 배우 이상희, 강길우, 홍경, 기도영, 김시하 진행 장우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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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기자단 [인디즈] 은다강 님의 글입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타인의 마음이 불투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지척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사이를 벌려 저 먼 곳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할까. 영화는 할머니 명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보면서 천천히 기다리는 거 중요해’라고 말하지만, 각기 다른 혼란스러움이 떠오른 인물들의 얼굴 위에 우리의 표정을 겹쳐본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멀어지고 무엇을 가깝게 여길까. 이번 인디토크에는 〈정말 먼 곳〉에 제작진으로 함께한 장우진 감독의 편안한 진행이 더해져 스크린을 벗어난 낯선 얼굴들을 한층 친근하게 느낀 시간이었다.
장우진 감독(이하 장우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정말 먼 곳〉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장우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말 먼 곳〉 출연진과 감독님 모실게요.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 오게 됐네요. 극장이 꽉 찬 걸 본 게 오랜만인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말 듣고 시작할게요.
이상희 배우(이하 이상희): 안녕하세요. 〈정말 먼 곳〉에서 은영 역할 맡았습니다. 이상희입니다.
강길우 배우(이하 강길우): 진우 역을 연기한 강길우입니다. 반갑습니다.
홍경 배우(이하 홍경): 저는 현민 역을 연기한 홍경이고요. 예전에 이곳에서 영화를 본 것 같은데 이렇게 GV를 하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기도영 배우(이하 기도영): 문경 역할을 맡은 기도영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시하 배우(이하 김시하): 안녕하세요. 설이 역을 맡은 김시하입니다.
박근영 감독(이하 박근영):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 먼 곳〉 연출한 박근영이고요. 저도 되게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상영하고 관객 분들 뵙는 거라서 무척 반갑습니다.
장우진: 사실 제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출연도 했어요. 포커스 아웃이 돼서 안쓰럽긴 한데...(웃음)
이상희: 저는 감독님이 연기 욕심 좀 안 냈으면 좋겠어요.(웃음)
장우진: 욕심을 내진 않았고 감독님이 부탁해서 한 거라...
이상희: 포커스 아웃인데 눈빛이 화면을 뚫고 나와.(웃음)
장우진: 제가 먼저 질문을 몇 가지 드리고 관객분들이 보내주신 질문 읽어드리겠습니다. 저와 상희 배우님, 저와 박근영 감독님은 각각 따로 인연이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셋이 함께 하게 되었어요. 상희 배우님, 강원도 화천에서 촬영하며 작품에 참여한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상희: 어떻게 보면 장우진 감독님이 박근영 감독님과의 교두보 역할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좋은 영화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이렇게 관객 분들과 만나면서 저도 영화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기분이에요. 내가 만든 인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 시간들이 참 감사하고요. 강길우 배우는 박근영 감독님의 첫 번째 작품인 〈한강에게〉를 보고 반했던 배우였기 때문에 같이 작품을 한다는 기대에 너무 즐거웠어요. 이 영화를 하면서 만나게 된 홍경 배우, 기도영 배우, 우리 시하, 그리고 최금순 할머니까지. 다 너무 좋았어요. 한 자리에 피어난 다른 색의 꽃처럼 현장에서 모두가 그 인물로 존재해줘서 좋았고, 고마웠고, 아름다웠던 기억입니다.
장우진: 상희 배우님이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역할을 꼭 같이 하고 싶다고 협박 같은 걸 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저도 〈한강에게〉를 통해서 강길우 배우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한강에게〉와 조금 달랐어요. 배우로서 어땠는지 듣고 싶어요.
강길우: 〈한강에게〉는 오늘 어떤 장면을 찍는지 모르고 현장에 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물론 큰 틀 내에 계획은 다 있었지만. 미리 계획을 가지고 갈 때보다 현장에 집중할 때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오랜 시간 준비를 했어요. 또 〈한강에게〉와는 달리 텍스트로 대사가 다 정해져 있었고 많은 스태프들이 있었죠. 〈한강에게〉는 현장에 감독님 혼자 계셨거든요.
장우진: 인원이 거의 열 배가 넘어요.(웃음)
강길우: 한 이십 배 가까이 되겠네요.(웃음) 그 차이가 컸을 거예요. 저야 다른 현장들을 매번 다니지만, 감독님 본인에게 가장 큰 차이였을 것 같고. 그럼에도 제가 느끼기에는 두 작품 모두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이 바뀌지 않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부분이 있었기에 배우로서 고맙고 친구로서도 좋았어요. 제 입장에서도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같이 호흡을 나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기주봉 선배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시기에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것도 영광이었고, 상희 누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작품들을 보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함께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좋은 기회로 만나게 됐습니다. 경이나 도영이는, 제가 감독님과 함께 첫 미팅을 나갔어요.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인물들을 한명씩 채워나가는 느낌이라 반가웠고, 촬영 현장에서도 인물들에게 의지하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장우진: 다음은 홍경 배우님. 제 기억으로는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그 전까지는 영화 작업을 하진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홍경: 네, 저는 영화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영화제를 못 온 거죠.(웃음) 영화 〈결백〉이 전작이었고, 그 작품을 촬영할 때 감독님이 연락을 주셔서 함께 하게 됐어요.
장우진: 인터뷰에서 독립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고 〈정말 먼 곳〉이라는 작품과 만나게 됐는데, 그 과정과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홍경: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절대 아니고요. 굳이 영화의 경계를 나누고 싶진 않지만 저는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런데 제가 바란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를 캐스팅 해주셔야 하는 건데, 다시 한 번 감사해요, 감독님.(웃음) 여러 감독님들 덕에 서울독립영화제의 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참여했지만 입상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어요. 새로운 배우들을 독립영화계에 소개하려는 취지의 행사로 알고 있거든요. 그 취지에 맞게 제가 영화를 할 수 있게 돼서 권해효 선배님께도 감사하고, 그 영상을 보고 저를 캐스팅해주신 박근영 감독님께도 정말 감사하죠. 더불어 첫 독립 장편영화인데, 좋은 분들과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고요. 여러 영화제를 거쳐서 이렇게 개봉까지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참 감사하죠. 여러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웃음)
장우진: 기도영 배우님, 이 질문 정말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극중에서 아빠 역할로 나온 기주봉 선배님과 실제로 부녀관계이신데요. 촬영을 같이 하신 건 처음이죠?
기도영: 네, 같이 촬영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장우진: 두 분이 나오는 장면이 되게 좋고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촬영한 소감은 어떠셨나요.
기도영: 아빠랑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저 역시 이렇게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고요. 앞에서 다른 분들이 얘기해주셨듯이 저에게는 대단한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을 하게 돼서 정말 기뻤어요. 또 화천이라는 공간에서 촬영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장우진: 시하 배우는 최근에 MBC 드라마 '밥이 되어라'에 출연하고 있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이 되었다고 하는데 축하드려요. 〈정말 먼 곳〉 촬영하면서 제가 제작진으로서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감독님도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시하 배우가 양이랑 함께 촬영하고 야외에서 주로 촬영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요. 시하 배우가 너무나 잘 수행해줬고 양들과 노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촬영할 때 어땠어요?
김시하: 안 힘들었어요. 그냥 양이랑 놀고, 대사도 별로 없고. 박근영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양들이랑 이렇게 놀면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라’하면서 알려 주셨어요.
장우진: 그래서 굉장히 하기 편했다. 이 말이죠?
김시하: 네, 그냥 제 스타일대로 하래요.
장우진: 정말 시하 배우님 스타일대로 해서 더 잘 나온 것 같아요.(웃음) 대사가 적었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좀 표현한 건가요?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김시하: 적었다는 건 아니고요, 감독님이 쉽게 알려주셔서 더 잘 할 수 있었어요.
장우진: 역시 넘어가지 않네요.(웃음)
김시하: 지지 않아요!(웃음)
장우진: 마지막으로 박근영 감독님께 질문을 해볼까요? 이렇게 많은 배우들과 작업한 건 처음이죠. 아까 길우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시스템으로 작업하신 게 처음인데 개인적으로 어땠는지, 또 화천이라는 곳은 어떻게 찾아왔고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준 것 같은지.
박근영: 화천은 6~7년쯤 전부터 지인이 살고 있어서 많이 드나들었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을 만나고, 애정하게 됐고. 이 공간들을 배경으로 언젠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강길우 배우랑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를 구체화시킬 수 있었고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되어 영화를 준비하게 됐어요. 화천이 춘천 바로 위에 있어서 생각보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 이렇게 아름답고 서울과 다른 풍경이 가까이에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물리적인 거리감과 심리적인 거리감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와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게 된 거고요.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분들과 협업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최대한의 협업을 해보자는 생각도 갖게 된 것 같고요. 많은 분들 도움받으면서 좋은 사람 많이 만나서 수월하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우진: 감독님과 김시하 배우님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아마도 은영이 걸었을 것 같은 전화를 설이가 받은 뒤 진우가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설이가 모른다고 대답했는데요. 설이는 정말 몰랐을까요?
박근영: 김시하 배우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설이가 전화받는 장면 기억나요? 진짜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는데 몰랐다고 했을까.
김시하: 설이 생각 말고 시하의 생각이요?
박근영: 둘 다.(웃음)
김시하: 진짜 몰랐을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했는데 모른다고 하죠.(웃음)
장우진: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박근영: 저도 설이는 몰랐을 거라 생각을 해요. 워낙 어릴 때 헤어졌기 때문에.
장우진: 기도영 배우님 질문이 있어요. 문경이 양파껍질을 까는 장면은 할머니가 식혜를 끓이는 장면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어요. 양파 깔 때 눈은 맵지 않으셨나요. 양파를 까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기도영: 솔직히 말하면 제가 양파를 까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시면 양파를 정말 못 까요. 껍질에 속살이 다 붙어있고. ‘잘 까야하는데...’ 생각하면서 깠습니다.(웃음) 오히려 감독님께선 ‘이게 더 문경 같다, 문경에겐 이게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대충 까는 게 오히려 문경 같다’고 해주셔서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우진: 홍경 배우님, 지난 GV 때 현민이 떠난 건 헤어지겠다는 마음이 아닌 잠시 거리를 둬야겠다는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진우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언제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홍경: 너무 좋은 질문이네요. 장례식 이후에 계속 날이 선 진우의 예민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아무래도 그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밥을 먹고 현민의 뒷모습이 보이잖아요. 거기서 현민 캐릭터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미리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싸우고 감정이 극에 달한 그 순간 굳게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떠나겠다는 생각을 미리 하진 않잖아요. 감정이 격양된 그 순간 트럭에서 깨달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현민은 그 전부터 진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도 진우의 날 선 면들을 느꼈어요.
장우진: 다음엔 강길우 배우님께. 저도 궁금한 질문이네요. 현민이 떠나고 길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강길우: 관객으로서 하는 생각인데, 저는 진우가 현민을 다시 만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민이 어디로 가는지 말하진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서로 얘기를 하지 않아도 어떤 날에 만날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만났을 것 같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장우진: 저도 만났을 것 같아요. 근데 만나서 어디로 갔을까, 서울에 있을까 그런 건 궁금하더라고요.
강길우: 저도 궁금하네요. 저는 서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이 인물이 내적인 성장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서울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곳에서 잘 살면 그게 또 성장이 아닐까.
장우진: 은영이가 설이에게 본인이 미운지 묻는 장면에서 설이의 대답에 미묘한 표정을 지으셨는데, 제겐 마치 정말 먼 곳에 있던 둘이 두 발자국 정도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이상희 배우님께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는지 질문 드립니다.
이상희: 은영은 설이가 자길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되게 두려운 질문을 한 순간이었고, 밉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먹고 있었을 때에 예상치 못한 답을 들어서 잠깐의 머뭇거림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두 발자국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 발자국 생각했어요.(웃음) 조금씩 서로를 향해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일 것 같아요.
장우진: 감독님께 온 질문이에요. 감독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을 받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데, 엔딩 시퀀스를 지나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는 앞으로의 시간을 잘 흘려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가득 찹니다. 평소 감독님과 배우 분들의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최근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도 닿을 수 있는데, 코로나19의 상황도 있고 하니 어떤 우울감 같은 게 찾아오더라고요. 절망적인 상황이 왔을 때 ‘이 절망 안에서 무엇이 계속 우리를 살게 할까’하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외의 것에서 위로를 받고 생뚱맞은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상치 못한 사소한 것으로부터 제 마음속 어떤 부분이 채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도영: 저는 대단한 건 아니고, 강아지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저희 집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이나 감정들이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아요. 누군가의 강아지나 고양이, 소, 양.(웃음)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습니다.
장우진: 영화의 첫 장면부터 정리되지 않은 양털이 나오고, 설이가 할머니를 쫓아가는데 양과 함께 잠들어있어요. 마지막엔 양이 새끼를 낳는데, 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기본적으로 저는 이 영화가 슬픈 우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거든요. 양이라는 존재가 이 영화에서 의미하는 바가 컸어요. 하지만 한 가지로 단정짓기보단 양이 존재함으로써 던져주는 여러 의미들을 보려고 한 것 같아요. 우화적인 느낌과 양이라는 존재가 갖는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들. 목장이 영화에 등장하며 갖는 의미들. 그런 것들이 섞이고 충돌하면서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양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 같고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적 의미도 쌓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고정관념이나 존엄을 건드리는 영화인데, 그런 면에서도 양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우진: 각기 다른 의미로 진우와 은영을 몰아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진우나 은영을 이해할 만한 과거를 영화에 넣을 생각은 없으셨나요?
박근영: 전사를 보여주지 않아도 느껴질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거든요. 많은 말은 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정보를 통해 연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은영도 만만치 않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라고 연상되게끔. 또 우리가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게 공감의 시작이잖아요. 그런 지점에서는 오히려 설명을 안 하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희: 현실적인 이유인데, 영화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진행되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모든 인물의 과거를 상세히 들여다보기는 힘들 거예요. 제가 감독님께 ‘진우와 현민이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어때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긴 했어요. 근데 감독님이 모두의 삶을 축적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답을 주셨고, 영화를 보니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얘긴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그랬어요.
강길우: 저도 영화에 나오는 정보 이외에 자세한 전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진우가 은영을 대할 때 드는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연기를 위해 세세한 과거가 필요하진 않았어요.
장우진: 제가 시나리오 읽자마자 감독님께 처음 했던 질문인데, 설이가 진우를 엄마라고 부르게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박근영: 처음에 진우가 그 얘기를 하잖아요. 자기가 어릴 때 아버지를 엄마로 불렀다고. 작품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생각이 났어요. 이 영화를 통해 고정관념과 존엄에 대해 건드리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엄마’라는 호칭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랐죠.
장우진: 현민이 진우를 호칭할 때 둘만 있을 때와 달리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형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관계를 숨기기 위해서인가요?
박근영: 호칭에 대한 고민이 크긴 했어요. 설이도 진우는 엄마라고 하고, 현민에겐 삼촌이라고 하는 부분들처럼. 기본적으로 둘이 있을 때 약간의 불안과 함께 하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데요. 형이라는 호칭은 서울에서 지낼 때부터 익숙한 호칭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한 것 같습니다.
홍경: 저도 감독님 말씀하신 대로 이해를 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다 다르듯이 커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점들을 발견하고 이해해서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장우진: 은영이 문경에게 옷을 받고 경계하는 느낌, 혹은 질투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배우님 의견이 궁금합니다.
이상희: 네, 맞습니다. 경계하고 질투했습니다.(웃음) 제가 설이의 생물학적 엄마이긴 한데 문경이 제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밥도 먹여주고 목욕도 같이 하고. 설이가 엄마가 필요한 순간에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이 문경이고, 이 사람은 호의로 저와 설이의 공간에 와서 옷을 건네주는데 그 공간을 열어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한테 ‘문을 잠가버리고 싶다’고 얘기했어요.(웃음) 은영의 방식으로 그 관계를 지켜가고 키워가고 싶은 바람인 것 같아요.
장우진: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문경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중간에 사무실에서 아버지의 걱정에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문경이 대답하는데, 마치 문경의 바람이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 중에서 문경은 이타적인 성격으로 나오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요. 도영 배우님은 어떻게 문경에게 접근하셨는지?
기도영: 시나리오를 보면서 문경이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이 사람만의 고집과 책임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와 비슷한 부분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문경을 연기할 때 더 편하지 않았나 싶고요. 문경의 책임감은 어쩌면 고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만에게 했던 말 ‘괜찮아, 난 잘 살아.’ 이것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말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진짜 괜찮다고 믿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장우진: 그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문경과 중만, 후반부에는 중만과 진우가 나오는 장면이 굉장히 힘이 있고 영화의 중심을 잡는 느낌이라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께 질문이 또 있어요. 설이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고 다가가는 장면은 어떤 의미인가요?
박근영: 설이와 할머니의 관계 역시 이 영화의 존재하는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 중에 하나인데,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지만 가장 각별할 거예요. 그런데 막상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설이는 잘 모르고 있는 상태죠. 설이에겐 할머니와의 이별이지만 다른 인물들에게는 설이의 실종이 큰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부분을 중첩적으로 생각하면서 만든 것 같아요.
장우진: 시하 배우는 지금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장면, 할머니 보고 따라가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 찍을 때 어떤 생각으로 할머니에게 다가간 걸까요?
김시하: 그때는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다가간 것 같아요.(웃음) 설이가 할머니랑 절친보다 더 친한 사이니까. 엄청, 엄청, 엄청 친한 사이니까. 설이 눈에만 보이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진짜 할머니를 본 건지 안 본 건지 잘 모르잖아요. 좋은 마음도 있으면서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박근영: 그 장면을 찍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처음에 설이가 할머니 손짓을 보고 올라가는 부분만 찍으려고 했어요. 끌어안는다는 건 디렉션에 없었어요. ‘할머니 손짓에 올라간다’만 지문으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둘이 딱 만날 때 끌어안으시는 거예요. 그걸 모니터로 보는 데 느낌이 훅 오더라고요. 저만 느낀 게 아닌지 그 순간 촬영 감독을 돌아봤는데 촬영 감독도 저를 보고 있어서 눈이 마주쳤어요. 둘이 끌어안는 순간의 임팩트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장우진: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만약 봉준호 감독님과 박근영 감독님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된다면 누구랑 더 하고 싶은지?’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재치 있는 답변을 바랍니다.’ 솔직한 답변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웃음)
홍경: 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웃음)
김시하: 전 박근영 감독님!
장우진: 시하 배우님은 아무 고민 없이 말씀하셨는데, 강길우 배우님은 아까부터 계속 고민을 하고 계세요.
강길우: 전 박근영 감독님!(웃음)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박근영 감독도 봉준호 감독님의 현장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은데, 휴차를 내고 같이 봉준호 감독님의 현장을 구경하면...(웃음)
박근영: 강길우 배우가 이렇게 말이 빨라지는 건 처음 보네요..
이상희: 저는 대본 보고 결정할래요.(웃음)
홍경: 저는 역할 보고 결정할래요.(웃음)
기도영: 저는 그냥 감독님만 보고 결정하겠습니다.(웃음) 박근영 감독님.
장우진: 저는 봉준호 감독님 작품 해보고 싶어요. 박근영 감독님이랑은 해봤으니까.(웃음)
박근영: 저도 배우들이 봉준호 감독님 영화 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훨훨 날아가게.
장우진: 감독 입장에선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대신 전화번호는 안 바꾸길 바랄 뿐.(웃음)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많이 와서 자리 빛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오랜만에 관객 분들과 함께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짧게 인사하고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상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덕분에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 와서 얘기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확실히 인디스페이스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짧게 인사하라고 했는데 얘기를 너무 하고 싶네요.(웃음) 다음에 할게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길우: 같이 영화 나눠주셔서 감사하고요. 저희 영화에 참 여백이 많아요. 보시면서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참 많은데, 한 번 더 보실 기회가 있다면 여러 인물들의 마음을 돌아가며 상상하시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감사하고 조심히 돌아가세요.
홍경: 이렇게 귀한 일요일을 내주셔서 감사하고, 저녁 잘 챙겨 드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영: 정말 감사드리고, 또 뵐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김시하: 와주셔서 엄청, 엄청, 정말 감사드립니다. 돌아가실 때 조심히 들어가시고, 〈정말 먼 곳〉 슬픈 영화지만 속이 뻥 뚫린다고 친구들이나 가족이나 모두에게 전해주세요.(웃음)
박근영: 진짜 인디스페이스에 오니까 확실히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극장이 위기인데 이렇게 독립영화 극장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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