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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눈 둘 데가 없네〉: 바람의 목소리

by indiespace_가람 2026. 11. 2.

〈눈 둘 데가 없네〉리뷰: 바람의 목소리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 스틸컷


섬으로 되돌아가다

 몇 년 전 홍상수 감독이 제주도에서 연작을 찍으려 한다는 루머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가 무색하게 다음 작품부터 그는 육지로 복귀했고, 3년 사이에 다섯 편의 작품을 내놓았다. 별다른 정보 없이 상영관에 들어갔을 때, 그의 신작이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섬에서 찍은 마지막 작품에서 바다로 향한 그가 제주도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는 십여 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러 동생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온 영화감독 ‘상희’를 화자로 삼는다. 상희 남매와 어머니,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새아버지는 2박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청자를 알 수 없는 상희의 내레이션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상희는 바다를 응시하며 자그마한 카메라를 들어보기도, 의붓동생의 작업실에 있는 해먹에 몸을 맡겨보기도 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영화 〈눈 둘 데가 없네〉 스틸컷


바람이 불어오면

 제주는 바람이 많은 섬이라고 했던가. 영화에서 유독 바람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진다. 전경에 인물이 위치할 때 후경에서는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고, 외부에서 나누는 대화는 바람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뭇잎이 인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그 빈도가 잦다고 느꼈다. 가끔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불어주는 바람이 신기하기도 했다. 전작의 표현을 빌리면, ‘그 자연이 뭐라고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한편 ‘다큐멘터리는 픽션보다 더 사기’라며 열변을 토하는 상희는 실험 영화, 에세이 영화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든다. 의붓동생 ‘주원’이 상희에게 방법론을 묻자, 그녀는 항상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담고 싶은 것들을 찍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적어둔 내레이션을 입힌다고 답한다. 그러니까 상희의 작업은 현실을 자기가 본 그대로 전달하는 일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공개되는 상희의 작품에서, 그녀는 민들레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며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옮긴다. 그러니 〈눈 둘 데가 없네〉는 말을 걸어온 바람의 목소리를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것도 잡음으로 가득한 언어로 말이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 스틸컷


날아가 버린 언어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불 때 상희와 주원은 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영원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강산도 십 년이면 변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절대 나올 것 같지 않았던 AI라는 단어의 등장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어떤 말이라도 저 멀리 날려버릴 것만 같은 거센 바람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연락드리겠다”, “찾아가겠다”와 같은 상투적인 작별 인사가 더욱 힘없이 느껴지는 건 그 불안정함 때문일 테다.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일지도 모르는 이 대화는 별다른 연출도 없고, 바람 소리가 가득하다. 언제든 기억 너머로 사라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조건이다.

 영화를 관람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그 대화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주원이 영원이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 묻고, 상희가 그 사실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관객이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영화는 괘념치 않을 테다. 직전 내레이션은 바람이 많이 불지만 새아버지가 식사를 밖에서 하자며 고집을 피웠다고 증언하고, 다음으로 실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상희가 등장한다. 관객은 당연히 식사 장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곧 주원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와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가 종료되고, 다음 장면은 뜻밖에도 실내에서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결국 바람이 많이 불어 식사는 집 안에서 하기로 했다는 내레이션도 함께다. 이 뻔뻔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고민도, 관계도, 약속도 모두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날아간 언어는 어딘가로 향해 또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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