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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극장의 시간들〉: 스크린 밖으로 뻗어나가는 극장의 시간

by indiespace_가람 2026. 3. 30.

〈극장의 시간들〉리뷰: 스크린 밖으로 뻗어나가는 극장의 시간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영화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현실을 잠시 잊은 채 스크린에 몰입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극장의 시간들에 수록된 세 작품은 그 기대를 거스른다. 관객을 끌어들이기보다 문 앞에 멈춰 세운다.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듯, 우리를 영화 밖으로 퉁- - 튕겨낸다. 그리고 보여준다. 극장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이들을.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이 영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라면 한 번쯤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침팬지고도라는 영화감독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기억을 따라간다. 시작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읽게 된 침팬지에 관한 짧은 글이다. 어쩌면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를 그 한 페이지는, 침팬지와의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고, 영화로 만들어진다.

겉보기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 앞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AI의 목소리로 쏟아지는 혹평은, 이 작품이 끝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영화가 붙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극장 안에는 현재의 고도와 과거의 기억이 겹쳐 앉아 있고, 스크린은 다시 한번 그날의 침팬지를 불러낸다. 이 영화는 관객을 설득하기보다, 한 개인이 끝내 놓지 못한 시간의 흔적을 따라간다. 여전히 진행 중인 기억. 누군가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지지만, 그 시간을 따라간다면 작은 온기에 닿게 된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가. 자연스럽게는 그 질문을, 한 촬영 현장을 통해 보여준다. 아역배우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 감독,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아이들이 모인 자리는 시끌벅적하고,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뜻밖의 깊이와 단단한 중심이 드러난다.

영화는 이 현장의 결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카메라, 외부에서 섞여 들어오는 소리, 애써 디렉션을 줘도 어딘가 어색하게 담기는 순간들까지. 모든 것이 매끈하게 정리되기보다, 어긋난 채 남는다. 그래서 평소와 촬영할 때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삶과 영화의 경계를 묻는 말처럼 들린다. 끊임없이 카메라 밖을 향하는 시선은, 프레임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인물들이 극장에 앉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지켜본 모든 과정 역시 하나의 영화였다는 것을. 영화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순간들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앞선 작품들이 영화의 탄생을 뒤쫓았다면, 영화의 시간은 그 종착지인 극장을 지키는 이들을 조명한다. 극장을 청소하는 우연과 매표 직원, 영사 기사까지. 극장에 늘 존재하지만 쉽게 지나쳐졌던 이들이 화면에 담긴다. 그리고 그 공간에 삶에 지친 영화가 발을 들인다.

우연의 권유로 상영관에 앉은 영화는 상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진다. 고단한 그녀의 눈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때, 작품은 기묘한 연출을 선보인다. 극장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잠에 들고, 그 적막한 틈새를 감독이 비집고 나온다. 스크린 앞에 선 그는 나직이 말한다. “영화를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영화가 우리를 밀어내는 순간이 있다. 여기서 영화는 스크린 속 작품인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이며, 우리가 살아내는 삶 그 자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순간이 있다는 진솔한 고백. ‘영화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밀려 스크린 속의 이야기는 놓치고 만다.

하지만 잠에서 깬 얼굴은 오히려 후련하다. 비록 영화의 내용은 알지 못할지라도, 자신을 깨워준 우연과 함께 햇살이 비치는 극장 밖으로 나선다. 우리가 영화에 얼마나 몰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극장은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설령 제대로 보지 못했더라도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다정한 회복의 공간이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상영이 끝나도, 극장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서로를 비추듯 맞물리며, 영사 기사의 일과를 통해 한 편의 영화가 비로소 시작되고 끝나는 감각을 남긴다. 연륜이 깃든 손길은 주저 없이 이어지고, 그 움직임이 조용히 축적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영화는, 그렇게 겹겹이 쌓인 흔적과 우연이 스크린에 잠시 머무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극장의 시간들은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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