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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레이의 겨울방학〉: 우리 홀로 집에 - 심심한 시간을 견디는 법

by indiespace_가람 2026. 3. 9.

〈레이의 겨울방학〉리뷰: 우리 홀로 집에 - 심심한 시간을 견디는 법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겨울방학.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때이자 학교를 바삐 다니며 미뤄두었던 1년 치의 성장에 대한 조급함이 드는 시간이다. 바쁜 아버지와 독립한 오빠, 할머니를 간병 중인 어머니 사이에 홀로 집에 남겨진 레이의 아주 조용한 방학이 시작되었다. 심심한 얼굴로 레이는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성큼성큼 앞서가 레이가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레이의 길을 가만 비춘다. 레이를 기다리는 카메라는 마치 레이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늦은 걸음을 보채기도 하는 동반자가 나타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 레이처럼 심심한 겨울방학을 보내게 된 규리가 있다. 조용했던 레이와는 달리 카메라를 들고 쉬지 않고 말을 건네는 이 소녀는, 핸드폰이 꺼지자 마치 함께 방전된 듯 사그라든다. 방금 전과는 달리 심심한 표정으로 숙소에 돌아와 과자를 먹으며 하루를 마친다.

 

영화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컷

 

다음 날 다시 운동장에 홀로 나온 레이는 여기저기를 떠돌던 규리를 만난다. 자신만큼이나 심심했는지 운동장을 굴러다니는 자신의 공을 주워 갖고 노는 규리에게 레이는 함께 놀자며 말을 건넨다. 서로에게 익숙지 않은 언어인 영어로 서툴게 두 사람은 뛰어 놀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심심한 소녀들에게 언어라는 장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 먹으며,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무엇인지. 둘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의 취향을 나누기 바쁘다. 한 번에 대화가 이어지는 일은 없고, 때로는 전혀 뜻을 알지 못할 정도로 대화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는 정확해서 그들의 대화는 순항한다.

 

영화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컷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서툰 언어 탓에 마가 뜨고 때로는 불시착하는 대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성에 대한 이야기, 너무 바빠 서운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에 누워 말없이 핸드폰을 하고 낮잠을 자는 행위들은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도무지 중요하지 않다. 재밌는 것,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은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그래서 레이와 규리가 만난 방학에는 어떤 뚜렷한 성장을 발견할 수 없다. 보통의 청춘 영화들이었다면, 아마 레이와 규리가 바다를 향했을 때 그들의 빛나는 눈과 꿈을 비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의 겨울방학〉은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한 그들의 얼굴과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멋쩍은 표정을 비춘다. 이번 방학은 얼마나 자랐고,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혼자 있어도 꽉 채워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단단함이 소녀들에게 생겼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규리는 울음을 참으며 아빠에게 괜히 화를 냈던 일들에 대해 사과한다. 레이는 방에 누워 지난 규리와의 시간이 재밌었고 그래서 다행이라며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그런 소녀들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니, 울음을 참는 얼굴과 웃음을 참는 얼굴은 입술을 삐죽이는 것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시간을 홀로 견디는 방법들을 함께 배웠기에 닮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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