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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정돌이〉: ‘세상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

by indiespace_가람 2025. 2. 24.

〈정돌이〉리뷰: ‘세상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벨트슈메르츠(der Weltschmerz). Welt(세계, 세상) Schmerz(고통)을 합친 독일어 단어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세상의 고통정도가 된다. 현실의 폭력, 부조리, 불합리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우울. 다시 말해 세계의 폭력에 무력하게휘둘릴 때 느끼는 좌절감을 뜻한다. 이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횡포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오래전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났다. 1987년 고려대 캠퍼스에 흘러 들어온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돌이〉다.

 

영화 〈정돌이〉 스틸컷

 

든든하게 품어주기

 

〈정돌이〉는 전혀 다른 범주의 인물들이 서로의 삶에 끼어드는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주취 폭력을 피해 가출했던 소년이 우연히 고대로 흘러들어온다. 소년은 정경대 학생회실에 눌러앉게 되고 정돌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정돌이로 불렸던 송귀철 씨는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이제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한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대학교에서는 ‘4.13 호헌조치로 인해 학생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 구호가 울려 퍼지고 전경들이 드나드는 대학교는 통상적으로 어린아이에게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송귀철 씨는 대학에 눌러앉은 데에는 형, 누나들과의 관계에서 느낀 안정감이 컸다고 답한다. 대학생 형, 누나들이 어린 정돌이에게 안식처가 되어준 것이다. 훗날 장구 명인으로 성장한 정돌이는 운동권 활동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고대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며 인연을 이어간다. 결과적으로 , 누나들과 정돌이가 서로를 받아 품어준 셈이다.

 

영화 〈정돌이〉 스틸컷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정돌이〉는 타인과 나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던 소년이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하게 됐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장구 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화에서 송귀철 씨는 사회운동과 장구 연주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과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연주에서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은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에게 쉽게 경계를 긋고는 한다. 그러나 사람이 세운 경계는 너무도 허술하다. 애초에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고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매순간 변화한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르고 현재의 나 역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다. 이렇듯 사람은 동적인 존재이기에 삶의 궤적이 겹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대학교를 떠난 정돌이와 운동권 , 누나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시 모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나와 타인이 공존하며 우리는 서로를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

 

무력하게 흔들리는 삶이지만, 나를 든든하게 품어주는 이가 있고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어도 휩쓸리지는 않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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