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함께 춤추고 돌보는 사랑
〈두 사람〉 그리고 〈홈그라운드〉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노년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보려고 해도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이들과 어떻게 살고 있을까? 두루뭉술하지만 어떤 방식으로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랑은 뭔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미래를 떠올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지며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만 늘어간다. 〈두 사람〉과 〈홈그라운드〉는 이런 물음표에 실마리를 건네는, 긴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답을 만나고 나누는 성소수자 여성들의 모습이 담겼다.
〈두 사람〉은 나고 자랐던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독일 땅에서 서로를 처음 만나 연인으로 50여 년의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인선 님과 수현 님의 일상을 함께 한다. 각종 나물과 고추장으로 함께 밥을 차려 먹고, 크고 작은 집안 살림을 살핀다. 이따금 농담처럼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깍듯한 존댓말을 쓴다.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 사이사이에 독일어가 섞인다. 서로가 곁에 존재함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두 사람의 일상을 통해 그동안 흘러간 시간을 전부 볼 수 없어도 짐작할 수 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지 고민하면서도 한국과 독일의 공동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두 사람의 일상적인 사랑은 일상적이기에 서로를 돌보는 힘을 보여준다. 인선 님과 수현 님이 혼자서 보내는 시간, 함께 보내는 시간 모두 깊은 단단함이 깃들어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무얼 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이민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묻는 인선 님은 나를 돌봐야지 남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음을 힘주어 말한다. 나를 돌보는 일이 곧 타인을 돌보는 일로 이어지고, 타인을 돌보는 일은 공동체를 돌보는 일로 이어진다. 그렇게 가꿔진 공동체는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50여 년을 함께 한 연인과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명쾌하고 막힘없는 목소리로 수현 님이 말한다. 인생의 노년기에는 서로 로션을 발라주고 아픈 곳을 도닥여주는 게 섹스라고. 시원하게 느낌표로 답을 내리는 수현 님의 목소리에 50여 년의 시간이 녹아 있다.
다큐멘터리 〈홈그라운드〉는 서울의 이태원과 신촌, 명동을 주 무대로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의 역사를 다룬다. 성소수자 공동체가 모일 수 있는 물리적인 장소인 여성 전용 펍 레스보스의 사장님 명우형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노년의 성소수자들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며 레스보스를 방문하는 젊은 성소수자들과의 연결점을 만난다.
세대를 불문하고 〈홈그라운드〉의 인터뷰이들은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라며 자신이 처음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를 만났을 때 기억을 웃으며 떠올린다. 서로 이해받고 이해했던 과거 공동체의 모습은 당시의 신문 기사, 사진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속에 재현된다.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장소들이 춤추며 웃는 모습과 더불어 추억 속에 남으며 달콤 쌉쌀해지려는 순간, 여전히 같은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이들을 반기는 레스보스의 존재는 함께 얘기 나누고 돌보는 사랑의 힘을 느끼게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찾아갈 장소가 되어주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이태원의 레스보스는 명절에도 문을 연다. 명절에 맛볼 수 있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두고 환영하는 명우형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존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며 방문하는 이들의 세상을 넓힌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담기는 인생의 황혼기, 계속 공부하며 스스로에게 거짓 없이 살아온 명우형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맘에 든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은 누군가의 용기와 가능성이 된다. 자신과 닮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먼저 걸어간 타인의 삶은 있을 자리와 가고 싶은 자리를 찾아 나서는 북극성처럼 빛난다.
* 영화 보러 가기: 〈홈그라운드〉(권아람 감독)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단평] 〈정돌이〉: 시대를 통과한 얼굴들 (0) | 2025.02.24 |
---|---|
[인디즈 Review] 〈정돌이〉: ‘세상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 (0) | 2025.02.24 |
[인디즈 Review] 〈두 사람〉: 나를 건너 너에게로 (0) | 2025.02.24 |
[인디즈 Review] 〈은빛살구〉: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0) | 2025.02.17 |
[인디즈] 〈두 사람〉 인디토크 기록: 사랑과 돌봄 (0) | 2025.0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