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채〉리뷰: 보다 세심한 연대가 필요하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어떤 연대는 의지를 통해 만들어지기보다는 같은 공간을 공유해서 형성되기도 한다.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에서 난민들의 불가피한 유입으로 인해 TJ와 야라의 연대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살을 맞대고 부딪히는 집이라는 공간은 가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런 유대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세심한 존중, 애정, 배려. 그런 것들이 가족의 뼈대를 형성할 것이다.
문호와 고은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부녀다. 고은이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문호는 집을 얻고자 위장 혼인신고 작전에 고은을 투입하고 도경 역시 어린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작전을 받아들인다. 청약에 당첨되었을 때의 조사를 대비해 도경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하면서 세 사람의 어설픈 동거가 시작된다. 세 사람은 식구로서 서로 일을 돕고 등을 밀어주며 가족의 꼴을 갖춰 간다. 때로 삐걱거릴 때가 있더라도 아침에 밥은 꼭 같이 먹는 사이.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고은이 가족 구성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도경이 한 걸음씩 다가가고, 고은이 문호를 대신해 아침밥을 차리는 장면 등 이들이 천천히 작은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은 소박한 기쁨을 준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도경과 고은 사이에 어떤 성애적 표현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경이 고은의 등을 밀어줄 때의 분위기는 문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둘은 서류상 일지라도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갈수록 두 사람만 집에 남아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의 ‘저도 남자인데’라는 발언은 문호에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수정 배우의 섬세한 연기에 반해 이 존재가 영화 전반에서 수동적인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이 이 새로운 가족 형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 또는 도경이 청약을 포기하고 문호가 이에 맞서는 일련의 서사에서 고은은 방 안에 들어가 있거나 도경의 딸과 구석에서 놀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고은이 도경의 딸과 대칭되기 위해 필요한 장치일 뿐인지 의문이 든다.
공간의 공유는 연대에 선행되는 조건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각 구성원을 독립적인 주체로 존중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 그런 힘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물리적 공간이 아니더라도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으려는 두 부녀의 여정이 보다 섬세하게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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