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목소리〉리뷰: 되살아나는 당신의 목소리, 움직이는 나의 눈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한들 님의 글입니다.
‘내가 왜 당신의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가.’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그 물음과 해답이 씨줄과 날줄로 질기게 엮인 그물처럼 느껴진다. 박수남 감독의 멈추지 않는 눈과 손에서 10만 피트에 이르는 기록이 건져졌고 그러는 동안 그는 구순에 가까워졌다.
이 웅대한 기록물의 초입에는 소년 한 명이 서 있다. 고마쓰가와 사건의 중심인물. 두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 일본 사회의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을 헤매던 재일조선인. 그는 ‘가네코 시즈오’가 아닌 ‘이진우’로서 박수남의 눈에 띄었다. 박수남이 사형수 이진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의 문제는 나의 문제야.’
이 문장이 영화의 첫 번째 결정적 의미로 다가온다. 박수남 감독과 그가 다루는 인물들이 크거나 작게 닮았다고 느껴진다. 수남은 진우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없이 일본인으로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의 절망’을 응시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인 스스로를 통과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수남은 진우에게 정녕 필요한 것을 주었다. 조선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였음을,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만들어왔음을 가르쳐준 것이다. 진우는 수남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었고, 짤막한 삶을 바쳐 조선어를 공부했다. 자신의 영혼을 움켜쥐듯, 다시는 쓸 일 없을 모국의 언어를 익히는 그를 상상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무엇이 죄인지 깨달은, 죽음 앞의 소년을.
박수남 감독의 응시는 계절처럼, 시대처럼, 삶처럼, 박수남 그 자신처럼 계속되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조선인, 위안부 생존자,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방화 사건의 생존자, 호슈 탄광·군함도 강제 징용 피해자…. 죽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과 말 아닌 것을 카메라에 옮겨왔다. 이제 박수남 감독은 대부분의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끄떡없이 고통의 기록을 바라보고 있고 그의 필름은 굳세게 복원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그가 바로 카메라 자체이다. 어떻게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 그는 그 대답조차 이미 마쳤다, 이 영화로써. ‘피해자 기억이 없어지지 않는 한 가해자의 가해 책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당신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후손들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박수남 감독의 목소리가 엔딩 크레딧이 다 오르고도 스크린에 남아 흐르는 듯하다.
이번에는 문두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본다.
‘우리는 왜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같은 기록물을 경험하는가?’
이 질문은 고통을 목격한 데 따른 도덕적 좌절감의 표현일지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 고통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주먹 쥘 기운을 도통 내지 못한다. 이 주먹 같은 건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몰랐다면 우리와 무관하다고 착각했을 것들, 하지만 알아버린 무지막지한 것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저널리스트 김인정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피부에 감싸여 있기에, 나의 피부 바깥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우리는 “나일 수 있었다”나 “나의 가족이나 친구일 수 있었다”는 비유를 써야 겨우 아픔을 내 것처럼 만들어 상상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니까. 이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생각해 본다면 타자에 대해 생각하려는 시도는 대상화의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해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 이동할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 영화가 우리 앞에 우뚝 솟았다. 꼿꼿하게 물었다. 되살아난 목소리에 응답하겠느냐고. 우리는 들었고 보았고 이제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단평] 〈아침바다 갈매기는〉: 그럼에도 존속하는 것들 (2) | 2024.12.10 |
---|---|
[인디즈 Review] 〈아침바다 갈매기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3) | 2024.12.09 |
[인디즈 소소대담] 2024. 11 첫눈과 함께 (3) | 2024.12.06 |
[인디즈 Review] 〈한 채〉: 보다 세심한 연대가 필요하다 (3) | 2024.12.02 |
[인디즈 Review] 〈씨앗의 시간〉: 반복과 중첩 (0) | 2024.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