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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욕창〉: 부채질로는 덜 수 없는

by indiespace_한솔 2020. 7. 21.









 〈욕창〉  리뷰: 부채질로는 덜 수 없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도전적인 제목이다. 이 적나라한 두 음절에서 많은 이들은 즉각적으로 욕창의 형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심혜정 감독의 <욕창>은 길순(전국향)의 등에 난 욕창을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이 욕창의 차도에 집중하기보다 이 사건이 촉발한 창식(김종구)네 식구들의 감정을 하나씩 통과해나갈 따름이다. 오랫동안 자세를 바꾸지 못해 피부가 곪아버리는 것처럼 창식네 가족은 여러 세월 은연중에 갉히고 있던 그들 사이의 환부를 결국 들키고야 만다.

 

처음에 창식은 길순의 욕창을 보고는 아내를 안쓰러워하며 걱정한다. 동시에 그는 살가운 간병인 수옥(강애심)에게 모종의 연민과 흠모를 함께 느낀다. 수옥은 부지런하며 다정한 심성을 지녔지만 그에 비해 직업의식은 부족하고 일처리 또한 서툰 편이다. 창식이 불법체류자 신분인 수옥과 위장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내내 이성적으로 보이던 딸 지수(김도영)마저 수옥을 겨냥한 불만을 한껏 드러낸다. 더욱이 아버지를 향한 적대심을 켜켜이 묵혀온 큰 아들 문수(김재록)는 자신의 서운함을 미숙하게 토로하며 기어이 이 국면을 끝장낼 참이다.




 

여기서 혈연으로나 법적으로나 이 가족의 명백한 구성원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식구라는 의미에 들어맞는 수옥의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수옥이 지은 밥으로 세 인물이 함께 식사를 하며 시작하지 않았던가. 수옥은 그 노동의 무게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임금을 받지만, 그럼에도 큰 불평 없이 살뜰하게 돌봄노동에 가사까지 도맡는다. 간병인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그녀의 일은 간병 그 이상이다.

 

언뜻 단란하고 화목한 장면들을 지나면 이 영화의 유쾌한 낙천성에 제동을 거는 대목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부턴가 단장을 하고 휴가를 내는 수옥의 행로가 궁금해진 창식은 그녀의 뒤를 좇는다. 수옥이 향한 곳은 ‘7080 라이브 카페’. 거기서 다른 남자와 블루스를 추는 수옥을 보게 된 창식은 이후 그녀에게 냉랭하게 군다. 식사자리에서 국을 뜨던 수옥이 전화를 받으러 갈 때, 카메라는 그 시간동안 식고 있는 국을 잠시 비춘다. 수옥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오자 창식은 괘씸하다는 듯 그녀를 꾸짖는다. 여기서 창식은 말 그대로 그녀를 꾸짖는다’.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핀잔이자 훈계이며 무엇보다 폭력이다. 수옥을 못마땅해하는 창식의 언행은 분명 이전 장면에서 다른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온 그녀에 대한 어떤 배신감 또는 섭섭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니까, 창식에게 수옥의 외출은 거의 외도와 다를 바 없다.

 




여러 층위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수옥의 말마따나 창식은 왜 직접 국을 들고 가지 않았는가하는 답답함이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길순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차치하더라도 창식은 매일 스탭퍼와 조깅으로 성실하게 체력을 단련해온 정정한 어른이지 않은가. 그는 국이 식을 동안 화를 곱씹을지언정 손수 가져다 먹을 생각은 않는다. 그는 드라마를 보겠다고 조르는 수옥에게 리모콘을 양보하는 넉넉한 품을 가진 할아버지지만, 동시에 그녀가 국을 제 코앞까지 가져다주는 걸 봐야만 하며 그것 또한 자신이 받아야 하는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경직된 고용인(이자 노년 남성)이다.

 

이러한 위선은 나름대로 교양 있고 체면을 아는 지수에게서도 드러난다. 창식과 수옥의 위장결혼 이야기를 들은 지수는 창식과 대거리를 하다 냉큼 수옥에게로 과녁을 바꾼다. “아줌마, 나와보세요!”라며 수옥을 부른 지수는 수옥이 길순을 간호해온 세월에 그게 아주머니 일이잖아요. 그거 하시라고 돈 드리는 거잖아요!”라며 이성적인 말로 모욕한다. 수옥은 일순간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이럴 줄 알았다고 오열한다. 돈을 받고 있으니 아무런 불평은 말라는 식의 입막음은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날아오는 화살이며 언제든 직감할 수 있는 종류의 능멸이다.

 




<욕창>은 길순의 욕창에서 시작해 수옥을 경유하며 창식(과 그의 가족)을 바라보는 영화다. 관객은 언제부턴가 길순의 등에 난 욕창의 경과를 지켜보는 대신, 이 골치 아픈 가족의 이해(利害)를 진단하게 된다. 과연 이들을 둘러싼, 관계의 욕창은 사그라들 수 있을까. <욕창>은 기대보다 유머러스하며 종종 번뜩이는 재치로 소재의 무거움을 덜고는 있지만, 끝내 부채질로는 지울 수 없는 그을음을 커다랗게 안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그야말로 문제적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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