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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춘몽〉: 무채의 것에서 기어이 봄을 보는 시선

by indiespace_한솔 2020. 4. 20.








 〈춘몽〉  리뷰: 무채의 것에서 기어이 봄을 보는 시선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 님의 글입니다. 




극장의 A5번 좌석에 관한 단상을 떠올린다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맨 앞줄, 고개 들어 스크린을 올려다봐야 하는 자리, 심지어 중앙도 아닌 위치, 그래서 여유 자리가 있을 때는 눈길도 가지 않는 구석 자리. 그런데, 인디스페이스의 A5번 좌석엔 한 번쯤 앉아보고 싶다. 무슨 악취미인가 싶겠지만, 그 좌석 등받이엔 정말 좋아하는 배우, 이주영의 이름이 있다. 인디스페이스 나눔자리에 관한 이야기다.


인디스페이스 상영관 좌석마다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명패는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를 후원한 나눔자리 후원자의 이름이다. 최근에는 배우 팬덤이 배우의 이름으로 나눔자리를 후원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앞서 말한 이주영 자리가 바로 그런 예이다. 이주영은 최근 화제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마현이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다. 그런데 이옥섭 감독의 〈메기〉에서 이미 이주영과 사랑에 빠진 이들이라면, 혹은 그가 출연한 다수의 독립영화를 눈여겨 본 이들이라면 나눔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더욱 재밌고 기쁠 것이다. 지금은 상업작품과 독립영화 현장을 종횡무진하는 씩씩한 그가 스크린에 낯설게 등장하던 시기의 작품을 돌아보고 싶다. 장률 감독의 〈춘몽〉이다.





〈춘몽〉의 중심에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예리가 있다. 예리는 작은 술집을 운영하면서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돌본다. 그 주변엔 예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세 남자가 있다. 시시껄렁한 건달 익준, 공장에서 쫓겨난 탈북자 정범,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낡은 건물의 주인인 종빈이다. 그리고 예리를 좋아하는 또 한 명, 주영이 있다. 이 작품의 전체를 잘 말할 수 있는 세부는 이런 장면이다.

익준, 정범, 종빈이 골목길을 따라 예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그때, 익준이 허름한 집의 담벼락에 있던 화분에서 꽃을 꺾는다. 주인이 씨앗을 심고, 물을 잘 주어서 피어난 꽃이 아닌 어쩌다 자라난 들풀 같은 꽃이다. 그 꽃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익준이 말한다. “꽃이 피었다. 봄이야”. 〈춘몽〉은 잘 가꿔진 화단이나 강을 따라 핀 꽃나무가 아니라, 길에서 마구잡이로 자라난 이 꽃에서 기어이 봄을 발견하는 영화이다.


세 남자가 향하던 곳은 예리의 주막인데, 비닐하우스에 가까운 낡은 주막이다. 불완전해 보이는 이 공간처럼 이들은 저마다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결함을 너무나 잘 아는 나머지, 세 사람은 서로 함께할 때 그제야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예리를 좋아하는 것도 그러하다. 표면으로는 셋 중에 누굴 더 좋아하냐의 물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한 명이 아닌 셋 모두가 예리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 남자가 합세해서 예리를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에겐 미흡하고 시시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그들이 그냥 딱 그대로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한 편에는 이런 물음이 든다. 그렇다면 주영은 누구인가. 축구공을 차고 다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그도 예리를 좋아한다. 주영은 예리의 결린 어깨를 풀어주다가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다. “언제 한 번 시 써줄까 언니?”라는 은유를 던진다. “시는 나랑 안 어울려.”라고 말하는 예리에게 시예요. 언니가.” 하는 고백은 주영이 축구공을 찰 때 나는 낮고 둔탁한 소리 만큼이나 묵직하다. 그러나 주영은 세 남자와 구별된다. 익준, 정범, 종빈과는 달리 오롯이 한 사람의 몫을 할 줄 안다. 세 남자가 함께 지하철역 앞으로 예리를 마중 나갈 때, 주영은 혼자 오토바이 뒤에 예리를 태우고 달린다. 주영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매우 짧지만, 일 인분의 몫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존재감은 그가 화면에서 퇴장하고 난 이후에도 그 세계에 남아 부유한다. 이 존재감이 그를 단순히 예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교집합으로 묶어내지 않고, 세 남자와 대척점에 위치시킨다. 예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균형은 〈춘몽〉이라는 제목처럼 이 세계가 가끔 모호한 꿈처럼 보일 때마다, 그 꿈에 푹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동아줄이 된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견고해지는 건, 이 세계가 놀랍도록 현실이라는 것이다. 





신인 이주영은 낯선 얼굴로 무리 없이 그런 일들을 해냈다. 그건 아마 영화 속 주영과 마찬가지로 이주영이 항상 제 몫을 온전히 해내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춘몽〉을 본 이들이라면주영이라는 인물에 빠져들어 영화를 보는 것도 〈춘몽〉을 즐기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현실에 가까운 봄의 정서를 가득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대로 잘 피어났던 작은 꽃처럼 말이다. 봄이라는 계절 특유의 나른함이 이 영화의 온기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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