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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비행〉: 비행에는 동력이 필요하다

by indiespace_한솔 2020. 4. 14.









 〈비행〉  리뷰: 비행에는 동력이 필요하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탈북민 근수’(홍근택)와 한국을 뜨고 싶은 삼류 양아치 지혁’(차지현)은 어쩌다 얽혀서 범죄를 함께하게 된다. 좋은 일로 얽힌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풀린 사람처럼, 어릴 적 들은 동화 속 빨간 구두처럼 두 사람은 계속해서 달려나간다. 구두와는 상관없지만 마침 근수의 덥수룩한 머리는 붉은 머리로, 지혁의 파란 점퍼는 붉은색 패딩으로 바뀌어 어느새 둘은 같은 색을 입고 있다.

 




솔직히 〈비행의 시놉시스를 처음 보았을 때는 주춤했다. 거친 분류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야망을 품은 남자들이 의기투합해서 마약 거래를 하고 욕설을 뱉고 폭력을 행하는 영화들을 기억 저편에서 죄다 끌어올려보아도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행도 젠더 감수성 측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319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 조성빈 감독은 여성 인물을 대상화했다는 지적 등을 감안해 차기작으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유쾌한 영화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행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미화의 길을 걷지 않는다. 이들은 의리나 명분 같은 건 말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두 사람을, 두 사람의 관계를 미화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돈 때문에 뭉쳤고, 돈을 좇아 행동한다. 한국에서 마약 운반책이 된 탈북민, 최소한의 정직함과 성실함마저 없는 삼류 양아치.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은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은 현재를 활주로처럼 내달린다. 돈을 잔뜩 벌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것뿐인데, 그 모습이 어쩐지 처절하다. 두 사람은 행복 같은 건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상향을 규정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을 품은 게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수렁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제목처럼 비행(飛行)을 꿈꾸며 비행(非行)을 계속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마약을 무사히 팔고, 원하는 만큼 돈을 벌고, 정말로 지금보다 나은 삶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아닐걸, 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도 모르게 나는 이미 그들이 원하는 미래에 당도할 수 없으리라는 결론을 마음에 땅땅 박아놓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 하나 없어도, 그런 조건에 있는 두 사람이 마약을 다 팔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식의 결말을 맞지 못할 거란 건 자명했다. 그랬다면 장르가 동화였을 테니까.


비행에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동력이 없다. 낙인 찍힌 과거, 과거를 후회하거나 다시 시작할 틈이라곤 없는 현재. 그 위에서 뛰고 또 뛰지만 그들의 활주로는 너무 길고 지난하다. 게다가 그들처럼 극단의 상황에 처하지 않았고, 그들보다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이 사회의 규칙 안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또한 어떤 활주로를 헐떡이며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돈이면 다 될 거 같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드물 테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긋난 행동들도 동력이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렸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질문은 의미를 잃는다. 마약이라는 비일상적 소재와 결코 감싸고 싶지 않은 캐릭터들을 사용했음에도, 이 영화는 결국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공기를 담아냈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구시대의 그것처럼 되어 버린, 꿈을 따르기보다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대.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콩테로 그린 크로키이지 않을까. 이 영화도 그렇다. 빠르고 거친 필치로, 부재로써 존재를 역설적으로 그려내어 거울처럼 눈앞에 갖다 댄다. 이들의 선택은 그렇게 우리의 질문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비행〉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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