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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작은 빛〉: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by indiespace_한솔 2020. 2. 12.





 〈작은 빛  한줄평


정성혜 | 당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한다는 것

오윤주 | 사적인 기록에서 영화의 의미를 탐구하다 

송은지 | 카메라는 대상과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흔들리면서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현재에 가져다 놓는다

김혜림 |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작은 빛  리뷰: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왜 드는가? 누군가는 현재를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해 들 것이다.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담는다. 당시의 사람, 감정, 분위기, 향기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에 포함되어 있고, 카메라는 당연히 그 시간을 살고 있다. 여기 곧 기억을 잃을 남자가 있다.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는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 혹은 미래에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자신을 위해 카메라를 든다. 작은 빛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가 그렇다.



 


진무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을 소란스럽게 맞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혹은 예상해왔던 일이라는 듯, 영화는 꾸준히 조용하고 희미한 분위기를 지속한다. 진무의 병을 둘러싼 가족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의도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진무의 병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병원에 함께 있거나 진무의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멋쩍게 응할 뿐이다. 가족에게 오히려 큰 사건은 부재한 아버지의 산소에 나무뿌리가 타고 들어와 박힌 것이다. 영화의 종반부, 가족들은 아버지가 모셔진 묫자리로 찾아가 미라처럼 굳건히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기억의 사라짐과 부재한 아버지의 굳건함, 이 사이에서 조민재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가족들과 진무의 사소한 움직임이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듯 카메라를 피해다니는 어머니 신숙녀의 모습이나, ‘사는 게 즐겁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현의 복잡한 모습이나, 활기를 띄지 않았던 진무가 조카인 호선을 만날 때에 옅은 미소를 띄는 것, 혹은 정도가 집 앞에서 눈치를 보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 등이다. 가족들은 익숙하고 따듯한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다. 이 영화의 힘은 오히려 사소한 움직임과 미묘한 표정에 있다. 기억 상실과 아버지는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작은 빛은 이 두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닌 사건 주위의 인물과 빛을 바라보면서 작고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요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종반부, 아버지의 미라가 화면 전체를 메우는 것은 낯선 감각을 불러온다.



 


계속해서 숙녀의 입이나 가족 모두가 잡히는 씬에서 은유적으로만 이야기되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해당 씬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씬이 낯선 이유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굳어버린 아버지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가족들을 에워싸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민재 감독과 곽진무 배우는 작은 빛이 무엇보다 호주제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고 그 아이를 사회활동의 범주에 넣기 위해 숙녀는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부터 비롯된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픔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듯 오목조목 조합되어 있다. 이 아픔의 굴레에서 진무의 가족들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기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또 이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조금씩 그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진무는 카메라를 왜 들었는가? 진무의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았다. 어머니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나 형의 춤 솜씨, 누나의 삶의 흔적 등. 진무가 기억을 잃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저장된 영상 파일을 스크린 전체로 확대하면서 튀어나온 픽셀 조각 하나하나는 마치 진무의 기억과 같은 틈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가족을 형상화하는 듯 보인다. 그 속에는 미라가 되어버린 아버지도, 굳세게 살아가는 가족들도, 자신을 미소짓게 하는 무뚝뚝한 조카도 있다. 진무는 기억을 담지만 동시에 현재를 직시하게 되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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