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만한 지나침〉 리뷰: 움직이는 시간 속에, 기억해야 할 순간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며 지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운지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겨 흘러가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멈춰 서곤 한다. 그리고 기억해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지나쳐온 ‘기억할 만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기억할 만한 순간을 두드리며 가는 것, 그 지독한 인간의 고독함에 대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김은 시인이다. 그에게 처한 삶은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곁을 떠난 애인,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작품, 가족의 죽음. 가족과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김은 그의 가족과 철저히 분리되어 이미지화된다. 그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 자기 자신. 166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주인공 김의 서사를 따라가며 긴 시간 동안 긴 호흡의 이미지와 마주한다. 영화의 긴 시간과 호흡은 어쩌면 주인공 김의 고독의 시간들을 따라가기 위한 지당한 애도의 시간이자 우리의 안에 고독을 살펴볼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일 것이다. 감독이 제공한 이 시간들에 대해 관객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독의 서사를 입혀가는 과정이야말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완성되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의 고독과 소외감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주인공 김에게 반복되는 누군가의 죽음과 부재는 점점 그를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다. 괴로운 그에게 한줄기 위로처럼 찾아오는 것은 그의 이미지와 교차되어 반복되는 자연이다. 흘러가는 물줄기, 하늘에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 고독의 시간들을, 고독한 존재들을 위로하듯 자연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존재한다. 자연의 소리와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서 얻는 위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곁을 내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이다. 우리의 인생이 늘 그렇듯 말이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느끼며 사는 것, 움직이는 시간들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리뷰를 마치며 기형도 시인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의 고독을, 어둠을,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시의 전문을 옮겨 적는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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