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신체와 주체적인 삶에 대하여 〈아워 바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한가람 감독|배우 최희서, 안지혜
진행 이화정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선선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시월의 첫째 날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아워 바디〉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아워 바디〉의 자영은 달리기를 통해 감각을 일깨우고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오롯이 느끼고 탐구한다. 어떠한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표현하고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여성 캐릭터를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진 영화를 관람한 뒤에 주체성을 회복한 자영의 선택과 결정들에 대해서 감독과 배우,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가람 감독과 배우 최희서, 안지혜가 참석하였고 이화정 기자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이화정 기자(이하 이화정):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이화정입니다. 지금 밖에 비가 와요. 영화 분위기와 오늘의 날씨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실천으로 옮겨지지가 않아요.(웃음) 〈아워 바디〉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영화들이 성장영화라는 이름을 달거나, 사건을 통해 변하는 인물을 보여주는데요. 이렇게 욕망의 지점을 하나하나, 몸의 어딘가를 누르는 듯이 짚어주는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새로움을 만들어 가신 세 분께서 이 자리에 오셨어요. 영화 연출하신 한가람 감독님과 배우 최희서님, 안지혜님 모시고 토크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오시면 큰 박수 부탁드려요.
한가람 감독(이하 한가람): 안녕하세요, 저는 〈아워 바디〉를 연출한 한가람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워 바디〉를 보시고 머릿속이 복잡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같이 풀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최희서(이하 최희서): 주중 저녁에 저희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영화는 GV를 통해 이야기해보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웃음) 영화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안고 나가실 수 있도록 열심히 GV에 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안지혜(이하 안지혜): 안녕하세요, 〈아워 바디〉에서 현주 역할을 맡은 안지혜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화정: 제가 먼저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런 영화들을 만들 때는 보통 감독이 그 소재에 굉장히 친밀하거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를 보고 난 뒤 제일 먼저 감독님이 달리기를 잘 하시거나 달리기를 통해 몸이 변화한 경험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본격적인 ‘달리기 액션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감독님을 처음 만나서 달리기를 하시는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달리기를 잘 안 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왜 달리기 영화를 만드신 건가요?
한가람: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저는 목격자였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목격자, 그러니까 화영의 입장 정도에서 그들을 따라서 뛰어봤어요. 그들이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관찰을 열심히 했어요. 저도 조금 달려보긴 했지만 촬영 때는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항상 모니터 앞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제외한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이 살이 쭉쭉 빠졌는데 저만 살이 불어나있더라고요.(웃음)
최희서: 조감독님이 살이 진짜 많이 빠졌어요.(웃음)
이화정: 제가 〈아워 바디〉 촬영할 즈음에 최희서 배우님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물론 이차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일단은 몸을 만들지 않고서, 연마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연기잖아요?
최희서: 네, 실제로 저희 영화에 클로즈업이 많고 자영이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니까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거죠.(웃음) 그런데 좋았어요. 일 분 뛰고 일 분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삼십 분 내리 뛸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겪고 촬영을 시작하니 좋았고요. 그 외에는 식단을 관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영화에서 달리는 장면이 잠수교 장면 빼고는 다 밤이거든요. 사람이 있으면 촬영하기 어려우니까 밤 11시부터 해 뜨기 전까지 찍었어요. 밤샘 촬영도 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저는 달리지 않지만 주변에 러닝 동호회 분이 있어요. 그분들께 최희서 배우는 얼마나 잘 달리는 건지 물어봤는데, 정말 수준급이라고 하시면서 몇 개월 동안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놀라시더라고요. 그 전에는 안 달리신 거죠?
최희서: 오래 달리기를 별로 안 좋아했고요, 100m 달리기를 선호해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요.(웃음) 고등학생 때 육상부였는데 100m를 뛰었고, 가장 길게 달린 게 200m였거든요. 이건 성질이 너무나 다른 달리기다 보니까 아예 초보자로 시작했어요.
이화정: 반면에 현주라는 역할은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프로페셔널이어야 했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운명적으로 굉장히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기계체조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운동으로 단련된 몸인 거죠?
안지혜: 그렇죠.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기계체조를 했고요. 그 이후에도 몸이 굳지 않게 만들려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어요. 그리고 마라톤도 기회가 되면 참가해보고 싶어서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는데요. 감독님께서 그때 찍힌 사진을 보시고 캐스팅을 하셨어요.
최희서: 하프 마라톤이라고 하면 21km예요. 21km를 지혜가 뛰었다는 이야기죠.
이화정: 차로 달려도 엄청난 거리네요. 감독님께서 캐스팅을 하실 때 두 가지 조건의 배우를 만나야 하는 거였잖아요? 자영은 못 달리다가 달리는 사람, 그리고 현주는 굉장히 잘 달리는 사람. 캐스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이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감독님이 최희서 배우가 〈박열〉(2017)에서 어마어마한 연기를 한 배우였다는 걸 아예 모르셨다면서요.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요.(웃음)
한가람: 몰랐어요. 자영이는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일상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희서 배우님 프로필이 저희 학교에 있었는데 한 사진 속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자영이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님께서 출연하신 작품을 전혀 못 봤는데 연기를 잘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화정: 제가 알기로는 보통은 감독이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제안할 때 최대한 조사를 많이 해서 애정을 드러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었군요. 달리기도 안 하고 작품도 보지 않으셨지만 최고의 캐스팅과 엄청난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웃음)
한가람: 나중에 작품을 봤어요.(웃음) 안지혜 배우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사진을 보고 연락을 드렸고요. 사진 한 장 밖에 단서가 없어서 조금 힘들었어요. 연출부에서 조사를 해서 이 분이 배우라는 걸 알아냈고, 소속사 정보를 알아내서 어렵게 프로필을 받았는데요. 프로필 맨 앞에 체대를 졸업했다고 써있는 거예요. 이 작품에 정말 적절한 분이실 것 같아서 만나 뵙게 되었죠.
이화정: 자영이 만약 행정고시에 합격했다면 그 이후에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하고 있겠죠. 달리기를 평생 안 했을 것 같은 자영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그 여자를 방 안에서 끄집어내서 달리게 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한가람: 우선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가 관찰자 같이 바라봤던 운동중독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럼 그 사람이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지를 고민했는데요. 그냥 제 또래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백수일 때 달리기를 조금 해봤는데 그 때의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달리기라는 운동이 좋았던 이유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또 혼자 조용히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고요. 혼자 무엇인가를 해냈던 그 시간이 저에겐 기억에 깊이 남아있어요. 백수였던 시절에 이상한 사람처럼 동네를 많이 뛰어다녔거든요. 그러면 저처럼 백수 같아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이 같이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웃음) 그 때의 경험에서 자영이가 출발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저는 안 달려봤다고 했는데, 좀 망설여지는 것이 다들 운동복을 잘 갖춰 입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만 약간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는데요. 자영이 용기를 가지고 뛰쳐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친구한테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듣고 난 뒤 사회적으로 쌓은 게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달리기를 만난 거잖아요? 그래서 자영이라는 캐릭터의 절박함을 보며 최희서 씨라는 비슷한 동년배의 여성이 느끼는 지점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최희서: 남자친구가 자영에게 ‘사람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고 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자영이 훅 들어온 순간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나눈 대화였어요. 엄마가 자영이 먹던 밥공기를 싱크대에 집어던질 때, 고시를 패스하지 못하면 딸로서 취급을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보다 연기를 할 때 마음이 더 아팠어요. 남자친구, 엄마, 그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한참 어린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자영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 같아요. 다들 처음에는 응원을 하다가 나중에는 궁금해하며 지켜봤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영이 어느 순간부터는 절박함도 느끼기 힘든 무감각한 상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자영이가 뛰게 된 건 굉장히 본능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현주라는 사람이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나갔을 때 아주 오랜만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을 거고요. 그 본능으로 인해서 헌 운동화를 꺼내서 나갔다고 생각해요. 초반에 그런 자영의 복잡한 캐릭터 설정이 있었어요.
이화정: 어떤 대상에 매혹이 되는 순간이잖아요? 제가 영화를 여러 차례 보면서 신기했던 건, 보통은 그런 순간엔 가슴부터 시작해서 잘록한 허리와 길게 뻗은 몸을 잡으려고 할 텐데 이 영화에선 사람들이 잘 안 쓰는 근육을 잡더라고요. 자영이 현주한테 육체적으로 매료되는 지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장면을 어떻게 찍고자 하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한가람: 제가 이렇게 찍고 싶다고 이야기하니까 촬영감독님은 중요한 순간인데 강조를 너무 안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나타내고 싶었던 건, 자영은 화석처럼 굳어 있던 사람인데 그와 달리 현주는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생동감이 나타나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몸의 아름다움 보다는 그 순간에 현주가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 숨소리를 잡아내려고 했습니다.
이화정: 그래서 오히려 빠져드는 순간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저는 영화에서 달리기가 심경의 변화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 선이 두 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영이 달려가는 길은 서서히 변화해가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데, 현주가 가는 길은 오히려 자영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멈칫하면서 후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출발이 달랐을 수는 있지만 현주도 자영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공허함을 안고 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미스터리한 현주의 상태를 연기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안지혜: 현주를 처음 봤을 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 불안한 청춘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고,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자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면서도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있었고, 자신의 목표도 점점 흐려진다는 상실감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을 거예요. 그래서 자영이 와도,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잡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힘든 마음을 털어 내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지만, 달리기도 얇은 끈 정도의 느낌이고요. 무언가 해소해보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실의에 빠지면 ‘운동을 하면 좋아진대’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그 시점에서는 운동만이 해결책은 아니고, 그 이상의 고민이 있고 그걸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저 건전한 성장영화가 아니라 급격한 미스터리물로 빠지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아요.
한가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에 다루고 싶었던 소재가 운동 중독이었는데요. 운동이 강박이 되는 순간에 관심이 갔어요. 운동을 적당히 하면 당연히 좋은데, 왜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는지 궁금했고요. 너무 집착하게 되면 운동이 해방감을 주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구속이 되고, 또 다른 집착을 낳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도 있거든요. 내가 무언가를 이뤄내고 가시화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심리가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현주가 처음에는 되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잖아요?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사실 사람의 속마음은 복잡한 거고 단순히 운동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 현주라고 생각을 했어요. 현주는 그 한계점을 자영이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자영이는 그걸 몰랐고 자기가 매료되었던 건강한 현주의 모습에만 집중했던 거고요. 관객들도 현주를 자영이의 입장에서 보기를 원했어요. 그러다보니 현주의 죽음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다음 자영이가 겪는 일들을 통해서 현주의 삶도 관객분들이 짐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영이는 현주와 다른 사람이고, 결과적으론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화정: 굉장히 리얼한 소재, 그리고 굉장히 리얼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아온 또래의 여성, 혹은 이상하게 여겼던 주변사람들의 모습 등 여러 가지 지점들이 자영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바탕이기는 하지만 자영의 안에 너무 많은 결들이 있잖아요?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러 가지 복잡한 순간을 거치면서 자영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셨는데요. 그 부분의 톤을 어떻게 잡으셨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최희서: 이 영화가 어느 평범한 여성이 단 한 번도 본인의 삶에 주체성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비로소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게 되는,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주를 만나기 전 자영은 완전히 전자인 거죠. 저는 자영이 고시 공부를 시작했던 것도 분명히 본인 의견보다는 어머님과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현주가 자영에게 ‘너는 해보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어서’라고 대답하잖아요? 자영이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였는데, 주변에서 고시 공부, 공무원, 정규직, 입사 원서, 아르바이트와 같이 수많은 세상의 잣대들로 윤자영이라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거죠. 거기에 옥죄이다가 처음으로 마음을 먹고 선택한 것이 달리기였고요. 현주를 따라서 뛰다가 울음이 터져버리고 그 후 자영의 복잡한 선택들이 이어지는데요. 어떤 분들은 의문을 가지고, 어떤 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기하면서 느끼기에, 현주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큰 상태에서 현주가 갑작스럽게 죽어버렸을 때, 이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더 알고 싶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거예요. 왜 죽음을 택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현주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도기를 겪고요. 그런 과도기에 상사와의 잠자리나 동호회 남자와 하룻밤 등을 겪으면서 본인의 삶과 몸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도 있고요. 마지막에는 호텔에 가서 본인의 몸을 오롯이 탐구하는 자영의 모습이 있거든요. 스스로의 욕망에 대해서 충실하게 이행하게 된 다음부터는 자영이 꽤나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강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연기하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이화정: 여성의 욕망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영화에 다양한 성적인 행위들, 아니면 성적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구가 등장해요. 그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람: 제목이 〈아워 바디〉고 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잖아요? 섹스도 몸으로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하나이고 일상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자영의 욕망을 솔직하게 들여다본다고 생각했어요. 자영이는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평범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용감하고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엄마한테 시험 안 보러 갔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웃음) 밥상머리에서 면전에서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화가 나실 것 같기도 했어요. 저라면 시험을 보러 갔을 것 같은데,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자영이가 현주에게 솔직하게 다가가잖아요? 현주에게 꽂힌 다음에는 앞뒤 안 가리고 현주에게 가는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 끈기 있게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것이 자영이가 현주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베드신도 자영이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다른 멜로영화처럼 서로 사랑해서 감정을 교류하면서 섹스하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서는 자기를 확인하는 행위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고 싶었을 수도 있고,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서 자영이의 감각이 깨어나는 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해서요. 베드신도 그런 맥락에서 달리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화정: 문제적 장면일 수도 있고 굉장히 매혹적인 장면일 수도 있는데요. 자영이 자신의 몸을 보면서 현주의 몸과 비교하는 판타지 같은 장면을 두 분이 촬영하실 때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현주가 꿈결 같이 찾아오는 장면 같은 경우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장면에서 두 분의 촬영 비하인드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배우들은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을 지요.
최희서: 자영이가 현주에게 갖고 있는 동경의 마음을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요. 사랑으로 볼 수도 있고, 선망이나 우상의 대상으로도 볼 수 있고요. 혹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다음에는 내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질투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던 자영과 현주의 우정은 대단히 특별했어요. 이 영화가 퀴어 요소가 있는지 여쭤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희가 퀴어를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요. 하지만 분명히 자영이는 현주를 어떤 의미에서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 나타나는 장면이 현주의 몸을 사랑하는 자영이의 마음이 꿈으로 나타났을 때예요. 현주가 죽는다는 건 실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육체에 대한 동경이 더 짙어진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그런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어떻게 찍힐지 굉장히 궁금했던 장면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름답게, 특히 지혜가 아름답게 찍힌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안지혜: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스태프 분들께서 배려를 많이 해 주셨던 게 기억이 나는데요. 자영이 현주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부러워했기 때문에 현주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자영에게 다가가서 눈을 아름답게 떴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름다운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주도 자영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챙겨주는 그런 느낌도 있었고요. 혼자 달리면 힘들잖아요? 둘이 달리면 훨씬 수월하니까 잘 챙겨 주기도 했고. 세상에 나아가기 전에 한 템포 쉴 수 있게 여유를 주는 그런 느낌으로 현주가 자영에게 다가갔어요. 그런 마음에서 자영의 꿈에 나타난다고 생각을 했죠.
이화정: 정말 미스터리의 극점에 도달한 문제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이 여성의 욕망을 계속 이야기를 하셨는데 영화에 몸을 향한 클로즈업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요. 자영이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자영의 동생 화영도 흘긋흘긋 낯선 여자처럼 쳐다보잖아요? 그런 시선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시선들이 가지는 중요함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한가람: 초반에는 자영이가 누군가를 보는 게 더 많거든요. 자영이가 화영이를 보고, 현주도 보고, 민지도 보고, 계속 다른 사람들을 봐요. 그 시선이 나중에는 자영이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한 자영이를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시선들이 있기에 우리가 무엇인가에 계속 매달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마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 친구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요. 운동을 하고 몸이 좋아져서 모임에 나갔을 때 친구들이 알아봐주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고 내 삶이 좋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생각났던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이 세세하게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영화 정말 파격적이고 신선했어요.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신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영이의 존재가 눈에 많이 들어왔거든요. 자영이가 현주를 동경하는데 나중에는 화영이가 언니를 따라 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영이가 현주에게 가졌던 감정을 화영이가 언니에게 갖는 건지, 화영이의 심리를 어떤 마음으로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사실 화영이의 존재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아까 기자님의 첫 질문에도 저는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는데요. 제가 목격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화영이에게 저의 생각을 많이 넣었어요. 변화하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낯설다고 느꼈던 제 감정을요. 그런데 운동을 강박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저렇게 달려보고 몸이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단지 나의 몸이 따라주지 않고 의지가 없을 뿐이지 대단해보이고요. 자영이가 처음에 현주를 쫓아갔던 것처럼 화영이가 자영이를 보고 나도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그런데 언니가 너무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하잖아요? 밤에 갑자기 나가서 자기를 놔두고 뛰어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나중에 자영이도 그 눈길을 느껴서 ‘내가 이상해?’라고 질문을 하게 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영이는 ‘나도 오늘 밤에 뛰어보려고’라고 대답을 해요. 이 영화에서 명쾌한 게 사실 하나도 없는데,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 속 시선을 보면 자영이가 쫓아가는 것들은 모두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섹스를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되어요. 그리고 자영이 사회적으로 현주가 원했던 어떤 것을 따라가고 싶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우선은 앞선 욕망은 현주와 연결 지어서 설명 드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자영이가 현주를 보고 부러워 한 부분이 확실히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욕망의 상대가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단순하게 설명을 드리면 자영이는 현주가 성적으로 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요. 생명력과 건강한 육체,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을 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감정은 단순하게 우정이나 사랑으로 선 그을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더 이상해지는 게 많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이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현주가 꿈속에 나왔던 것도, 만약에 자영이가 죽은 현주가 그저 안타깝거나 그리운 마음이었으면 그렇게 현주가 옷을 벗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자영이가 현주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현주의 무엇이 좋았는지 당연히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자신을 확인하는 길이 왜 남자와의 베드신이었냐고 하신다면, 자영이에게는 여태까지 자기와 같이 섹스를 했던 상대방이 남자였고 이 이야기가 자영이의 성정체성이 바뀌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관객: 예고편을 보고 고시 공부를 하던 제 얘기 같아서 봤는데요. 영화 중반까지도 달리기를 통해서 주인공이 성장하고 극복하는 영화여서 힘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간부터 갑자기 틀어지는 거예요. 주인공이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자꾸만 꼬여가는데, 달리기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감독님께서 표현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또 자영이가 현주를 돌아보면서 ‘달릴 때 무슨 생각해?’라고 말하는데 현주도 자영이를 보며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닐까 궁금해요. 첫 번째 질문에서 달리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두 번째 질문으로 답한 것이 아닐지 추측하면서 질문을 드립니다.
한가람: 우선 이 영화는 예고편과 포스터를 보시면 달리기 영화라고 생각을 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달리기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는 달리기 영화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자영이의 고민과 욕망,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만약 이 영화를 자영이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제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자영이처럼 취업준비생 시절을 오래 겪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 때는 그게 인생의 전부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삶을 완전히 무너지게 하는 게 아닌데, 안 되면 내가 크게 실패한 것 같고 좌절감이 엄청났어요. 그런 엄청난 좌절감은 당장 오늘밤에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순간만은 해방되는 느낌이 들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이 깨어나요. 내가 노력해서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거지만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서 근본 없는, 나도 잘 알 수 없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제가 했던 고민들과 질문들이었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갑자기 우리가 운동에 매달리게 되는지, 우리에게 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말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고, 그게 타인의 시선과 관계되어 있다고 느껴져서 거기서 벗어나는 인물이 자영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자영이가 하는 선택들이 계속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이 자영이의 노력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보는 노력이요. 그래서 이 영화가 달리기의 한계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달리기는 달리기대로 긍정적인 면이 있고, 다만 삶은 단순히 이걸 하면 좋고 저걸 하면 나쁜 게 아니라고 이해하면서 이야기를 썼어요. 그래서 되게 애매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저는 민지 입장에서도 굉장히 공감하면서 썼거든요. 정규직이 되어서 적당한 직장에 다니는 게 괜찮은 건지 민지도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사는 것도 전혀 나쁜 게 아니니까요. 모든 인물들이 다 자신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고, 저는 그들의 고민이 각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뭐가 더 좋고 나쁜 지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화정: 자영이에게 현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시점에서 민지를 되게 부러워했을 것 같아요. 서른한 살에 대리 직함도 있고, 자상한 남편이 있고 서로 사이도 좋아 보이니까요. 영화에 다양한 모습의 여성이 나오고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자영이 고시를 포기한 게 아니고 하지 않는다고 선택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릴 때 무슨 생각하는지 현주와 자영이 물어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정말 중요했는데요. 서로의 눈빛에서 주고받는 무언의 대사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배우 분들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최희서: ‘달릴 때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 자체를 던지기까지의 과정이 이 영화의 70% 정도인 것 같은데요. 그런 질문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자영이가 달려갔다는 뜻이고, 감독님께서도 이야기하셨지만 달리기란 양가적인 측면이 있어서 어느 정도 뛰다보면 어마어마한 고비가 오고, 죽을 것만 같은 상태를 넘어서면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갑자기 골반 아래가 가벼워지면서 뛰고 있는 건지 날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기분 좋은 지점이 오더라고요. 고비 끝에 희열을 느끼게 된 자영이가 ‘달리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다다랐을 때, 그 질문이 ‘사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자영은 현주한테 확답을 바랐던 건 아닌 것 같고요. 나와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사람이니까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주를 봤을 때 내가 보이고 현주도 자영이를 봤을 때 자신이 보이니까요. 비슷한 궤도 안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일어나서 뛰었던 삼십 대 초반의 여성들이 서로에게 ‘달릴 때 무슨 생각해? 살면서 무슨 생각해? 사는 게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어요.
안지혜: 현주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달리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집착에 가까운 정도로요. 힘든 상태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데, 달리기를 통해서 그게 다 괜찮아진 것도 아니고요. 달리기를 하면서 오로지 그 순간의 나 자신, 내 호흡에 집중하는데 달리고 나면 공허함이 두 배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달리기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내 자신의 나약함이 더 느껴졌던 거죠. 현주는 자영을 보면서 분명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자영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았을 것 같아요.
이화정: 자영이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8년간 고시 공부를 하는데, 현주 또한 8년 정도 운동한 걸로 나오더라고요. 같은 시간동안 러너스 하이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히 운동을 했고 좌절도 겪어요. 결론적으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고 생각을 하고요. 영화에서 비틀린 장면도 있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소감과 인사 말씀 들으면서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지혜: 늦은 시간까지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일교차가 심해졌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만약에 달리기를 계획하고 계신다면 꼭 겉옷을 잘 챙겨 입고 달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희서: 저희 영화가 명쾌한 해답을 주거나 위로를 주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질문과 대답을 찾아갈 수 있는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영화관을 나서서 집으로 가실 때까지 저희 영화가 드릴 수 있는 질문이 있었다면 조금 더 곱씹어 보시면서, 날이 선선하니 살짝 뛰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가람: 우선은 이 영화를 보시고 위로를 얻으려고 오셨던 분들께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웃음) 저도 그런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고요. 그렇지만 자영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잠수교를 뛰어가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은 진심이거든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초보자 달리기법이 나와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쓰여있을 텐데요.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며칠 지나 한 번 달려 보시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이화정: 저도 자영이 달리면서 웃는 장면 너무 좋았어요. 얼굴 근육이 굳어 있으면 그런 표정이 안 나오거든요. 몸이 열리니까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고, 입소문도 많이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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