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장〉 한줄 관람평
김윤정 | 숨 쉴 틈 없이 내려치는 총알 없는 전쟁터
최승현 | 뒤틀린 민족주의의 누추한 민낯
승문보 | 감정을 내세우는 것보다 더 날카로웠던 탄탄한 '논점 제시-반론-재반론'의 구조
송은지 |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이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이성현 | '위안부'에 대한 가장 분명한 저널리즘
오윤주 |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주전장〉 리뷰: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지난 10월, 한국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에 대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조치를 명령했다. 2019년 8월, 그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일본은 수출 규제 강화에 이어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양국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지금, 영화 〈주전장〉이 한국에서 개봉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주전장〉은 분명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일본 극우 세력이 왜 이러한 문제를 감추고자 그토록 애쓰는지 파헤치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제를 완전한 ‘악’으로 이미 상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개인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여타 영화들과의 다른 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주전장〉은 좀 더 객관적인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의견들을 수집한 뒤 그 사이에서 진위를 밝히려 노력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러한 특징은 영화의 한계이자 의의다. 왜냐하면 어떤 이야기는 신파여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주전장〉은 부정의를 향한 순수한 분노나 고통, 슬픔보다는 객관적 지식 싸움에서 승리한 듯한 기분을 남긴다. ‘객관적’이라는 수사에는 사실 허점이 많다. 반박 당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감독의 목소리를 전면적으로 강력하게 반영함으로써 이러한 허점을 극복하고 있다. 감독이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정체성 또한 대변한다. 감독은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모든 진영(여성, 한국, 일본, 미국)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쉬웠으리라.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권력 계층으로서의 반성보다는 탐구심이 이 영화의 동력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워낙 빠르게 양 진영을 오가는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면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일본 극우세력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야 해당 발언이 틀린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인터뷰 배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관객의 경우 매우 쉽게 오해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일본 극우 세력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것을 보면, 적어도 그들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 등장한 극우 세력들의 인터뷰 중에는 너무 수준이 낮아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발언들도 많다. 예를 들면, 일본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국인 유튜버 토니 머라노의 경우 미국 글렌데일 시에 설치된 소녀상의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운 뒤 조롱하는 영상을 찍었다. 흔하디흔한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그의 발언에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발언으로 인해 그의 모든 주장에는 신뢰성이 사라졌다. 가세 히데야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은 일본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모조리 삭제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과서에는 즐겁고 좋은 내용만 담고 싶잖아요?” 그와 대립하는 역사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하며, “나는 타인의 책은 읽지 않습니다. 내 책만 읽어요.”라는 소름끼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라는,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할 법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히 깨닫게 된다. 감독은 이런 멍청한 이야기에 하나하나 반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주장을 펴는 켄트 길버트의 발언에는 꽤 긴 시간을 들여 반박한다. 우민화된 지 오래인 일본 사회를 ‘계몽’시키려는 영화 같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리고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본 국민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한국의 입장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는 부분이나 한국인 전문가의 입장은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히려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미국이 끼어야만 할까? 언뜻 보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일본과 한국이 지금까지도 일제강점기 치하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등의 문제에 대해 일본은 늘 ‘이미 해결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사실 그것은 냉전시대 미국의 압력 하에서 정권 대 정권끼리 체결한 협약일 뿐, 피해자 개인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또한 돈으로 배상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끝은 아니다. 독일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지 않은가.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것은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가 아니다.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고, 버젓이 전범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일본군 ‘위안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일본 국민을 둔 현 정부가 ‘사과는 끝났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코미디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박근혜 정권 당시 일본과 위안부 협정을 체결한 한국 외교부장관에게 “피해자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너네끼리 도장 찍고 지금 다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냐”며 울부짖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그 모든 문제들은 단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영화 말미에서 감독은 일본 극우 세력이 노리는 것이 메이지 헌법 복원이자 재무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한국을 동등한 국가로 바라보지 않는 우월 의식이나 자기방어 만으로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일본의 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고 복합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영화 장르나 러닝타임의 한계로 인해 그 과정이 몇 사람의 인터뷰로 축소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제가 주도한 성노예 문제라거나 전쟁 중 일어난 한 국가의 여성 폭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온 피해자들이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피해 사실을 은폐해야 했던 역사를 떠올렸을 때, 그것은 가부장제의 폭력이자 여성혐오의 역사이며 단지 일본과 한국의 문제만도 아니다. 영화는 그러한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타자의 입장을 자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주전장〉 역시 한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국에 꼭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전쟁은 끝난 적이 없으며 우리가 무엇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모든 문제를 단순히 일본의 것으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싸움인가?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인가?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관객은 각자의 싸움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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