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면서 일기이고, 부치지 못한 러브레터이고, 투병 일지이고, 전쟁의 기록인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리틀보이 12725〉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6월 1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김지곤 감독
진행 이용철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영화이면서 일기였고, 부치지 못한 러브레터였고, 투병 일지였고, 전쟁의 기록이었다. 〈리틀보이 12725〉는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이후, 합천에서 살아가는 원자폭탄 피해자 2세 김형률의 12725일간의 일기와 기록들로 그의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다. “나에게 있어 일상은 전쟁이다”, “아프더라도 마음 편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면”이라 말하는 김형률에겐 일기 첫 문장으로 흔히 등장하는 날씨 이야기가 그날 외출을 가능하게 하고,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영화는 전쟁 피해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고 김형률이라는 개인의 시간을 담담히 밟는다. 그로써 전쟁의 가해국/피해국 구도를 넘어 원자폭탄 피해자라는 개인의 정체성으로 연대하고, 계속해서 일본을 찾고, 일본어를 배우고, 남은 원폭 피해자 1세, 2세, 3세의 생존권을 위해 살아있는 동안 온힘을 다하는 김형률의 동력, 그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카메라는 개인이 남긴 전쟁의 흔적을 담는 동시에 후쿠시마와 티니언섬으로 시선을 돌려 남겨진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기록을 통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섬세함과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용철 평론가(이하 이용철): 영화 잘 보셨지요? 방금 보신 작품의 김지곤 감독님이 부산에서 오셨습니다. 인사말씀을 듣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지곤 감독(이하 김지곤): 〈리틀보이 12725〉를 만든 김지곤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용철: 제가 감독님을 알게된 것이 10년 됐더라구요. 지금은 없어진 영화제인데, 서울시네마디지털영화제에서 10년 전에 심사를 맡았을 때 감독님의 작품 두 편 중 한 편이 경쟁부문에 올라 상영이 되었죠.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은 부산에 있는 곧 문을 닫는 극장에 대한 다큐였어요. 그리고 다른 한 편이 일본에서 찍은 〈길 위에서 묻다〉(2009)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이면 그간 제가 수천 편의 영화를 심사를 했을 것이고, 단편은 거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영화는 이상하게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를 많이 떠올렸어요. 그 당시에 부산의 낯선, 데뷔도 안 한 감독이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찍는 것이 신기했었고, 이미지로 멈춰있는 영화가 아니라 길의 풍경을 담은 단편이라서 신기했는데요. 일본이라는 배경이 겹쳐서 그랬는지 〈리틀보이 12725〉를 보면서 그 작품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혹시 두 영화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2009년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부산의 20대 감독과 삿포로의 20대 프로듀서가 함께 삿포로에서 영화를 찍도록 하는 지원사업이 있었습니다. 그때 작업한 것이 〈길 위에서 묻다〉이고, 전차를 빌려 타고 다니며 도시의 풍경을 찍었습니다. 제가 당시 느낀 삿포로 사람들의 인상은 굉장히 차갑다는 것이었고, 〈리틀보이 12725〉의 촬영지인 히로시마에도 전쟁 이후 겉은 따뜻해 보이지만 속은 차가운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이용철: 저는 사실 리틀보이나 원자폭탄에 대한 것은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시사용어에도 등록이 되어있더라구요. 김형률씨를 비롯해서 이러한 소재를 어떻게 영화화하게 되었는지,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김지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삿포로 때의 사업처럼 부산에 있는 작가가 히로시마에 2주 정도 머물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고 해서 지원을 했고,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로시마에서 2주 만에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힘들기 때문에 히로시마를 가기 전 부산에서부터 뭔가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찾게 된 곳이 부산의 민주공원이었습니다. 민주공원 전시장에서 세월호 전시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민주공원 소식지를 챙겨 집에 가는데, 뒷장에 김형률 10주기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집에 오는 버스에서 검색해보고, 이런 이야기를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앞서 책도 사서 읽고, 민주공원에 연락해서 김형률 선생님 아버님 연락처를 알게 되었어요. 아버님이 주소를 알려주셔서 가서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였고, 〈할매〉(2011)의 배경이 된 산복도로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게, 김형률씨의 큰형님 성함이 김진곤이고, 둘째형님이 김병곤으로 두 분은 ‘곤’자 돌림을 쓰시더라구요. 그래서 처음 제가 “김지곤이라고 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리니 아버님께서 “어디 김씨냐.”부터 시작해서 계속 저를 ‘지곤’인지, ‘진곤’인지 헷갈려하셔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처음엔 설치작품과 영상, 사진을 통한 전시 작업으로 진행을 했고, 전시가 끝난 이후 긴 호흡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용철: 관객분들이 김지곤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해야 할까요? 보통 데뷔 시절 작품을 보면 ‘이런 작품을 만들 것 같다’, ‘이런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하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데, 그후의 작품들이 내놓을 때마다 너무나 다른 공간, 다른 인물로 점프를 해요. 아까 말씀하신 〈할매〉라는 작품은 부산의 철거 직전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다룬 작품이고, 개봉도 했던 〈악사들〉(2014)은 70년대에 활동했던 악사들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관심사가 넒으신건가요? 아니면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가요?
김지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 맞습니다.
이용철: 감독님 작품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맨처음 작품도 더 이상 존재의 가치를 잃은 극장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할매〉 같은 경우도 인생의 마지막에 서있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고, 〈악사들〉도 더 이상 중심이 아닌 변방에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김형률씨도 사라져있는 인물이잖아요. 혹시 이런 대상에 대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곤: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작업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김형률 선생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이미 두 세편 나와 있고 책도 나와 있어서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고민을 했어요. 그때 저희 프로듀서가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다른 식으로 접근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에서 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대 시절 청년 김형률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가 야학을 알게 되고, 당시의 시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정리된 것 같아요. 김형률 선생님의 방도 아버지와 어머니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을 팔고 떠나셨기 때문에 사라졌거든요. 저희는 매년 5월에 선생님 기일마다 그곳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더 이상 찾지 못했습니다. 다큐에만 선생님의 방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용철: 관객에게는 아주 낯선 공간이지만, 김형률이라는 인물이 마지막까지 시간을 보낸 공간이 방이잖아요. 그래서 별스러울 것이 없는 공간이죠. 느낌상 2층에 있는 방인데, 이 방을 계속 보여주잖아요. 롱테이크로 잡을 때도 있고, 롱테이크로 잡지 않을 때에도 벽을 카메라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때가 많죠. 저도 그 분을 잘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방을 계속 바라보다보면 왠지 그 분이 삶을 살았던 모습들, 그 사람의 정체성같이 소박하고 정리가 안 된 듯한 풍경을 보는 것 같아서 그 분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 방을 계속 보여주는 것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김지곤: 저와 제작진의 시선이 조카인 건태 군의 시선과 비슷하다 생각이 듭니다. 건태 군은 어릴 때 김형률 선생님을 삼촌으로만 알고 있었지, 삼촌의 병도 잘 몰랐고, 그러다 나이가 들어 선생님을 꿈꾸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삼촌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인데요. 그 이후 삼촌이 떠난 방에서 창밖을 보며 삼촌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희도 생전 김형률씨를 몰랐고,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그 방을 선생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촬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혼자 방에 남아있었을 때 선생님이 어떤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봤을지 더욱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자필로 쓴 일기는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안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일기는 안보시냐고 물어보시기에 “보여주셔야 제가 보죠.” 했는데, 1년쯤 지나고 나서 자필일기를 보게 되었어요. 방에만 있으면 시계 초침소리, 창밖의 사람들의 소음만 들린다는 글귀를 보면서 공간에 쌓여있는 시간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용철: 이 영화에서 확실히 보여주진 않습니다만, 이 영화의 한쪽 축에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부분이 있죠. 현재 시점에서 1945년으로 가고, 그중에서도 8월 6일이라는 중요한 날이 존재하고, 그 뒤에 거꾸로 시간을 돌려 7월 핵실험을 하는 시간으로 가는데요. 또 한편으로는 공간적으로 티니언섬의 낯선 숲을 통과하면서 원자폭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한 축이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만약 폭탄이 남아 있다면’이라는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하죠. 영화가 애도를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이 영화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이 ‘흡사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김형률이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목소리로 들려요. 그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김지곤: 네. 그 의도로 세 번 반복을 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핵을 통해 종전과 해방을 이루었다는 상징이 존재하는데, 이미 패전선언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이었고,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미국의 과학자들이 실험을 했던 상황이죠. 저희 사운드트랙의 가사도 그 때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개발품을 눈앞에서 본 순간 했던 말을 사용했거든요. 디테일하게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필리핀 티니언섬에 계신 가이드분을 인터뷰하는데 그분께서 핵이 여기 남았더라면 희생자들도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김형률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해봤습니다. 그리고 김형률이라는 사람은 히로시마가 아닌 부산에 있었지만, 부산에도 여전히 핵발전소가 가동중인 현실을 떠올리면서 반복을 사용했습니다.
관객: 핵폭발이라는 사건과 김형률이라는 인물을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여 연결하는 것 같아서 저에겐 어렵기도 했습니다. 연결이 어려웠던 부분이 있어서 이 사람의 생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연결하신 것인지, 어떤 의도로 그렇게 연출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앞서 설명드렸지만, 반핵운동가로서의 선생님을 다루는 다큐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저는 좀 더 이미지적인 것들, 또는 소리와 이미지의 충돌을 살려보고자 한 지점이 있습니다. 또 부산의 산복도로 골방에 있는 청년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데 자기의 몸에 있는 병이 무엇인지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핵으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이미지들을 사용했습니다.
이용철: 관객분은 조금 더 친절하게 이분의 일상이나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은데,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김지곤 감독님의 특색이에요. 대표적인 이 영화 속 장면을 말씀드리자면, 히로시마에서 배를 타고 강을 지날 때 가이드가 말을 하잖아요. 가이드는 분명 경치를 보고 말을 하는데, 감독은 가이드가 설명하는 경치를 보여주지 않고 강의 물결만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화면과 사운드가 전혀 다른 것을 보고있고,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서 정작 뭘 보고 말했는지 알 수 없을 때, 설명이 전부 끝나고 나서야 히로시마의 돔건물을 보여주죠. 그런 것들이 이 분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런 스타일이 본인 영화의 인장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 보게 되면 지루하고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또 익숙해지다 보면, 평범한 게 재미가 없어져요. 충분히 궁금하신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계속 진행을 이어가겠습니다. 다들 일기 써보셨잖아요? 저도 일기 참 못써서 선생님께 많이 혼났는데, 일기를 못쓰는 저 같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것이 날씨 얘기예요. 제가 일기를 쓸 때 날씨는 정말 쓸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었는데, 김형률 씨의 일기에서 날씨 이야기는 참 사무치는데요. 제가 김형률씨의 병세를 자세히 모르지만 이 분은 날씨에 따라 외출을 하고 안 하고 정해질 정도로 날씨가 굉장히 치명적인 것이었던 거죠. 일기에 일상이 전쟁이라고 써놓으셨던데, 그런 글들은 남이 보라고 쓴 것도 아니잖아요. 감독님은 이 분이 돌아가시고 10년이 더 지나서 이 분을 알게 되신 건데,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셨지만 감독님 개인적으로도 이 분의 시나 일기를 통해 느낀 것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지곤: 사실 일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해서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일기는 원래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 쓰는 것이고, 아버지께서도 선생님 돌아가시고 나서 짐정리를 하며 일기를 발견하시곤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개인의 자료에서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이니 제작진들과 함께 나눠서 읽고 취합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곳에 더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세 권의 일기가 계속 이어지진 않는데요. 그 중 하나가 선생님이 누군가를 사랑을 하지만, 자신의 몸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일기입니다. 저희 형이 카투사 출신인데, 부산의 하야리아 부대가 일 년에 한번씩 축제를 하거든요. 형이 부대원일 때가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가면 기차도 태워주고, 미국 초콜렛도 줬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선생님 일기 속 하야리아 부대 이야기랑 시기가 비슷한 것 같은 거예요. 옛날 사진은 날짜가 찍혀있으니까 확인해보니, 저랑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계셨어요. 그치만 선생님은 저랑 전혀 다른 생각을 하셨겠죠. 미군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한 고민. 저는 어리니까 형이 태워주는 기차 타고 초콜렛 먹으면서 다녔는데요. 말로 표현은 안되지만, 계속 생각을 해봤어요. 그 일기와 사진을 보면서요. 사실 일기, 개인의 메모들을 가지고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컴퓨터를 접하시면서 폭발적으로 글을 쓰시는데, 컴퓨터에는 아직까지 잠겨있어서 풀 수 없는 글들이 굉장히 많아요. 아버지께서 풀 수 있냐고 저희에게 물어보셨는데, 저희는 풀 수도 없지만 저희가 시도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용철: 사실 요즘엔 일기를 잘 안쓰기도 하고 간단하게 웹상에 쓰기도 하는데,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본인의 개인적인 기록이자 사명으로 더욱 기록에 충실하셨던 것 같아요. 감독님 같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들은 사실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기록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작가로서 자기 삶을 평생 기록하셨던 분을 만나셔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많이 부끄러웠죠, 사실. 제가 기록하는 것에 비해서 선생님이 하시는 것은 더욱 절실한 기록들이고, 저는 어쨌든 이 기록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꿈꾸면서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차곡차곡 하루하루 자기가 필요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꾸준하게 기록하시고, 그것들을 컴퓨터를 만나면서 정리하신 건데요. 부끄러움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관객: 이 분이 시를 많이 쓰신 것인지, 그 시를 어떻게 가져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저희가 야학이 지금까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제 조카가 집에서 군대 가기 전에 빈둥거리고 아무것도 안 한다길래 막내 스탭으로 데려와서 일기장 스캔도 시키고 사진 스캔도 시켰는데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기 친구가 야학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고 야학이 아직 있다고 하기에 검색해봤더니 새마을야학이 아직 있는 거예요. 교장선생님 전화번호로 연락을 드렸더니, 자기는 김형률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와서 이야기하자고 하시기에 찾아갔습니다. 야학이 이사를 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버렸지만, 선생님 시를 발견했어요. 이 시가 선생님의 생각을 압축해서 정리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길 바랐고 작년 선생님 추모제 때에도 나눠드렸고, 상영 있을 때 관객분들 만나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일부러 책자 사이즈도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로 만들었어요. 가져가셔서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읽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용철: 영화 중반까지 나오는 음악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위반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모던락, 포크가 나올 때는 어떤 의도인지 궁금했는데요. 그러다가 원폭 부분으로 가면 굉장히 실험적인 음악이 나오고, 그 다음엔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나오는 구성이에요. 음악도 아까 관객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의 다큐와는 다른 시도를 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 그런 구성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말씀하신 모던락 사운드트랙인 ‘리틀보이’라는 곡은 음원도 있는 곡이었고, 리듬이 굉장히 경쾌해서 가사의 의미가 이런 반핵적인 내용일 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음악감독님께 여쭤보니 일부러 그렇게 경쾌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지금 일본의 모습들. 히로시마의 풍경들이 그렇거든요. 허물어져야 하지만 허물어지면 관광상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허물어지면 안 되는 그런 모습들 때문에 저도 이 곡에 공감을 했습니다. 야마토 뮤지엄과 잠수함이 크게 있는 그런 모습들이 무엇인가 싶어서 배치를 했구요,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랑 실험적인 음악을 넣은 것은 음악감독님과 상의할 때 원폭실험할 때의 굉음이 섞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사이판과 합천의 이미지를 섞어서 배치했습니다.
이용철: 음악도 아까 말씀드린 이미지의 어긋남의 연장선으로 시도하셨군요. 이제 정리하는 차원에서 말하자면, 김형률 씨가 치료비 얘기하는 부분이 마음이 아팠어요. 현실적인 정의라든지, 평화라든지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마음 편히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는 상황을 본인도 말씀을 하시고. 이 안에서의 피해보상이나 전개되는 운동이 진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시지만, 원폭피해자특별법이 발의가 되는데, 개정안을 추가하여 발의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상이 이뤄지거나 그런 상황은 아닌데, 두 달 전에 처음으로 정부차원에서 원폭 1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2283분의 원폭 1세가 전국에 계시고, 경남에 제일 많이 계시고, 그 다음이 부산이에요. 시 조례로 경남 같은 경우는 명시가 되어있는 상황이고요. 부산도 올해 4월에 처음으로 시 조례가 통과되었고요, 그렇지만 보상은 정부에서 해줄 수 있고, 다만 시 조례가 있으면 원폭 1, 2, 3세대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고 행사가 있으면 그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세 분들이 계속해서 싸워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용철: 아까 말씀하신 오민욱 감독과 같이 작업하며 친밀한 관계이신데요, 다음 작품에 대한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지곤: 제 작품의 프로듀서를 해준 오민욱 감독의 작품에 저도 프로듀서를 맡습니다. ‘탁주조합’이라는 영화사가 저랑 오민욱 감독이 함께 하는 영화산데요, 총 세명이 조감독, 감독, 프로듀서 다 나눠서 촬영, 편집 다 합니다. 오민욱 감독은 동아시아 전쟁 이후의 기괴한 평화적 풍경에 관심이 있어서, 다음 작품은 일본과 대한민국, 중국과 대만의 네 도시를 잇는 작업인데요, 감독 자체가 워낙 꼼꼼한 사람이라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어서 올해 말에는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해협〉이라는 작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용철: 아마도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이 될 것 같은데요, 그 때 또 감독님이나 오민욱 감독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부분들이 오늘 대화를 통해 채워졌길 바랍니다. 멀리서 와주신 감독님께 박수와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지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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