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그물에 모두 엮인 우리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6월 1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고현석 감독
진행 김화범 인디스토리 제작이사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영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작가 박성원의 단편소설 「하루」를 영화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고현석 감독은 서로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온 세상으로 퍼진다는 불교 용어 ‘인다라망’을 토대로 원작을 영화화할 때 인물 간의 균형에 초점을 뒀다고 한다. 이는 관객이 단순히 누군가의 비극을 단순히 따라다니기보다 비극적 사건에 본인도 모르게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다양한 인물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하는 감독의 의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날 인디토크에서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연출한 고현석 감독에게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화범 인디스토리 제작이사(이하 김화범): 방금 전에 보신 영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연출한 감독님을 모시고 인디토크를 진행하겠습니다. 감독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고현석 감독(이하 고현석): 안녕하세요, 저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연출한 고현석입니다.
김화범: 오늘 KTX 타고 대구에서 올라오셨나요?
고현석: 네, 방금 올라왔습니다.
김화범: 저는 이 영화를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해서 이미 세 번 정도 봤어요. 오늘 이 자리를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작년 4월에 인디스페이스 'POST BIFF' 기획전에서 상영했더라고요. 1년 만에 이 자리에서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재상영한 건데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고현석: 그때는 부산국제영화제 순회상영전으로 왔는데, 오늘도 정말 떨리네요.
김화범: 엔딩크레딧에서도 나와 있는데 박성원 작가의 단편소설 「하루」가 원작이더라고요. 원작의 어떤 부분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하셨는지 그리고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어떤 부분을 주안점으로 삼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고현석: 이 소설을 2011년도에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평소에 듣지 않는 라디오 채널에서 「하루」라는 단편소설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저는 국문과를 전공했고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제가 2009년부터 영화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사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을 잘 몰랐을 때 영화라는 매체가 소설처럼 다양한 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영화를 제작할 때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하루」라는 단편소설을 라디오 채널을 통해 듣게 되었고 이 소설이라면 일반적인 것과 다른 구조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곧바로 소설을 각색해서 빨리 시나리오를 완성했어요. 그리고 원작자가 때마침 대구에 내려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게 뭔가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김화범: 말씀은 쉽게 하셨지만, 단편 작업을 하시다가 중편 작업도 하시고 그리고 결국 오늘 상영한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라는 결과물이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이번 인디토크를 위해 원작 소설을 읽었어요. 소설 중에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구조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고현석: 원작에서는 산후우울증을 앓는 엄마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그 엄마의 관점에서 전달돼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산후우울증을 앓는 엄마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엮이고 소설과 달리 다른 인물의 비중을 엄마와 비슷하게 분배하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등장하는 인물의 하루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줄 수 있었고, 그래서 시간을 역전시키는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김화범: 이런 구성은 상업영화에서 많이 쓰이지는 않죠. 시간을 역전될 때마다 관객 스스로가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며 맞춰가야 하죠. 그래서 이런 구성은 관객의 수동적 관람보다 능동적 관람을 유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혹시 제작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있었나요?
고현석: 처음 이 소설을 각색하고 다섯 편의 단편영화로 제작해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 생각도 있었어요. 중편 버전도 생각했었죠. 2016년에 처음으로 장편 지원 제도가 생겼는데, 저만 지원을 했어요. 근데 지원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심시자분들께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제작 지원이지만 장편을 찍기에는 적은 금액이라는 점이 마음이 걸리셨나 봐요. 근데 영화를 촬영할 때 별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는 중첩된 장소가 많았고 대구를 바탕으로 하는 관공서에서 많이 협조를 해줬어요. 무료로 지원을 받았어요. 심지어 대구의료원에서 무료로 장소를 제공해줬어요. 물론 더 욕심을 낼 수 있었지만, 제 입장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어요. 촬영 때보다 제작 전 미팅할 때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제작 전 미팅의 경우에는 배우를 포함한 제작자가 사는 곳이 달라 한 장소에서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게 힘들었어요.
김화범: 혹시 질문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손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산후우울증을 앓는 엄마 역할을 연기한 이상희 배우가 돋보였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희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하셨나요? 그리고 이상희 배우가 ‘은혜’ 역을 연기할 때 어떤 디렉션을 감독님께서 주셨는지 굼금합니다.
고현석: 이상희 배우는 이전 단편 작업 때부터 생각했고, 특히 이상희 배우가 출연한 단편영화 〈충심, 소소〉를 좋아해서 시작부터 이상희 배우를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염두에 뒀어요. 대구단편영화제에 이상희 배우가 오셨다고 하길래 초고를 보여드렸더니 못하시겠다고 거절하셨어요. 초고라서 이상희 배우의 입장에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창환 감독님이 제주도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갈 때 저는 촬영부로 참여했는데, 그때 박근록 배우와 이상희 배우가 계셨어요. 그래서 지난 번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발전된 시나리오를 이상희 배우에게 전달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시나리오가 이상희 배우에게 확신을 안겨다 주지 못했어요. 제가 또 다시 시나리오를 고쳐서 드렸을 때 그때서야 이상희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상희 배우께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확신이 서기 전까지 시나리오를 거절하셨던 것 같아요. 디렉션의 경우 어떤 지시적인 디렉션보다 촬영 전에 일반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배우에게 제가 생각하는 인물의 모습을 요구하기보다 이상희 배우가 촬영 전에 분석한 인물에 관해 현장에서 많이 논의하고 상황을 보며 유동적으로 촬영했던 갓 같아요.
김화범: 현장에서 상황에 맞춰 촬영했다는 말씀인가요?
고현석: 이상희 배우와 오동민 배우는 인물에 깊게 감정이입을 해 연기하시더라고요. 두 분은 쉬는 시간에도 캐릭터에 빙의된 채로 계셨어요.
김화범: 감독님은 촬영도 하시잖아요? 연출과 촬영을 겸하고 계시는데 둘 중에 무엇이 더 재미있으신가요?
고현석: 저는 두말할 필요 없이 촬영입니다. 연출도 좋아하지만 촬영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워요.
김화범: 박성원 작가의 ‘하루‘라는 제목 대신 영화 제목으로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라고 선택하신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고현석: 원작 「하루」의 내용은 대단히 하드보일드하고, 서늘하고, 객관적인 느낌이 들어서 저도 오랫동안 영화 제목으로 「하루」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영화의 콘셉트가 ‘인다라망’이라는 거대한 그물에 우리 모두가 엮어있다는 불교 용어죠. 그 용어에서 그물에 포착된 사람들의 미지를 그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물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제목을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라고 영화 제목을 지었어요.
김화범: 영화에서 두 사람의 죽음이 그려집니다. 한 가정의 가장과 한 가정의 아기가 죽음으로 이르기 전까지 과정이 얽히고설키는데, 엔딩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고현석: 특별한 사고로 인한 비극이 아니라 사소한 무관심으로 인해 비극들이 벌어질 수 있는 게 더 무섭고 서늘하게 느껴졌어요. 실제로도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삶의 서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의 경우 원래 병원 안 여러 사람이 얽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두 가족의 하루만 보여줬지만 이들을 통해 누군가의 하루와 사연을 이해한다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카메라도 원래 정지되어 있다가 엔딩 장면에서 순간 움직이기 시작하며 여러 사람을 보여주는 것도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관련 있어요.
김화범: 영화 구성이 선행적이지 않아서 편집할 때 고심하셨을 것 같아요.
고현석: 편집은 어렵지 않았지만 촬영할 때 배우들이 감정 과잉이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감정이 올라올 때 어디까지 보여줄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대략 10개 씬 정도 생략했어요. 생략된 장면 중에서 오열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만약 이 장면을 그대로 포함했다면, 비극을 관객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게 옳은지 아닌지, 그리고 제가 너무 타인의 비극을 전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끊임없이 한 끝에 생략했죠.
김화범: 10개 씬이면 적은 수가 아닐텐데 말이죠. 이전 인터뷰 내용을 보니 소설가를 꿈꾼 국문과 출신이신데 영화감독이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현석: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라는 영역을 잘 몰랐을 때 영화가 소설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소설보다 영화를 할 때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최대한 많이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화범: 혹시 좋아하는 장르가 있나요?
고현석: 저는 주로 여러 인물이 얽히게 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를 좋아해요 감독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많이 좋아해요.
김화범: 혹시 요즘 각색하고 싶은 소설이 있으신가요?
고현석: 초고 버전으로는 이전부터 계속 쓰고 있어요. 근데 막상 찍으려고 하면 겁이 나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손홍규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고 싶어요.
김화범: 보통 영화감독은 창작 시나리오를 작업하는데 감독님은 원작 소설을 갖고 와서 시나리오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자주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현석: 글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소설 각색을 잘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관객: 영화 보면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가 많이 생각났어요. 시작부터 특정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하고, 만약 물리적 제약이 덜했다면 시도해보고 싶었던 게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고현석: 저는 이냐리투 감독의 초기작 〈21 그램〉이나 〈바벨〉을 좋아해요. 여러 인물이 교차하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리고 〈매그놀리아〉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컷〉도 좋아하고요. 근데, 제가 언급한 영화와 다른 점은 시간이 역전한다는 점이에요. 누군가의 관점에서 보여주다가 다른 인물의 관점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 중에 시간이 역전되잖아요.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영화 스태프의 반응도 반반으로 나뉘었어요. 이렇게 해도 되냐는 입장이 반, 제 입장을 지지해주는 편이 반이었어요. 만약 시간 역전 구조로 찍지 않았다면 아무런 텐션이 없이 흘러가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여건이 좋았으면 어떤 시도를 해보고 싶었냐는 질문은... 독립영화에서는 실행하기 어렵겠지만, 원작에서는 ‘현태’를 포함한 인물들이 이틀 날 눈으로 덮여 있는데 그 장면을 영화로 연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김화범: 원작의 엔딩을 보면서 저도 감독님께서 고심하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작 여건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그런데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지 궁금합니다.
고현석: 여건이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활동가들도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미디어 활동가들도 정책 제안을 하면서 여건이 많이 개선됐어요. 저는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촬영 장비의 수가 늘어났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대구에서 영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대구에서 영화를 찍으셨는데 영화의 배경이 대명동으로 고정된 것 같아요. 동성로나 수성구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배경을 한정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현석: 대구라는 지역으로 한정했는데, 대구의 어떤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구 3호선의 경우 지상으로만 움직이는데 3호선을 중심으로 두 가족의 직업과 직장이 어느 위치에 있겠다는 것만 생각했어요.
김화범: 이제 오늘 이 자리를 슬슬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감독님 혹시 향후 계획이 있으신가요?
고현석: 아직 구체적으로는 없지만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해서 7월 17일까지 영진위의 제작지원에 공모하려고 합니다.
김화범: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영화이면서 일기이고, 부치지 못한 러브레터이고, 투병 일지이고, 전쟁의 기록인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리틀보이 12725〉 인디토크 기록 (0) | 2019.06.15 |
---|---|
[인디즈 Review] 〈시민 노무현〉: 시민 모두가 연대하여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며 (0) | 2019.06.14 |
[인디즈] 모든 사랑의 단상을 대입해볼 수 있는 수식의 영화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검은 여름〉 인디토크 기록 (0) | 2019.06.11 |
[인디즈 Review] 〈보희와 녹양〉: 누구의 아들도 아닌, 보희 (0) | 2019.06.10 |
[인디즈 소소대담] 2019.04 독립영화의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 때 (0) | 2019.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