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국가로부터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 <파도치는 땅>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9. 4. 23.




국가로부터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  <파도치는 땅>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11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태규 감독배우 박정학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개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과 세월호 참사. 구체적인 이름은 다르지만 국가로부터 희생된 무수한 개인들을 낳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희생자들은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뉴스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그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를 해체한다. 하지만 파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친다. 이 땅 위에서. 되물림되는 상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파도의 소리에, 이제 귀를 기울여 보자.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입니다.

 

임태규 감독(이하 임태규): 안녕하세요, <파도치는 땅>을 연출한 감독 임태규입니다.

 

박정학 배우(이하 박정학): 안녕하세요, 문성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학입니다.

 


이은선: 박정학 배우님 마이크 잡으시자마자 굉장히 환해지는 한 줄이 있었거든요. 흐뭇한 얼굴로 다들 보고 계신데요. 바쁘신 와중에도 촬영팀과 동료들과 함께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영화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파도치는 땅>이라는 제목을 언제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궁금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임태규 감독님의 전작이 <폭력의 씨앗>이거든요. 다른 제목을 고민하다 도저히 안 돼서 그 제목을 쓴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제목은 조금 직설적인 느낌이 있는데, <파도치는 땅>은 시적인 느낌이 있는 제목인 것 같아요.

 

임태규: 있어보이잖아요.

 

이은선: , 확실히 있어보여요. 단번에 떠올린 제목인가요?

 

임태규전작의 제목이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이긴 했어요. 좀 직접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고심을 했어요. 그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정해둔 가제를 바꾼 건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제목을 미리 정해 놨어요. 제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심상이 이 제목과 잘 맞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시나리오를 쓰며 혼자 군산에 장소들을 보러 다녔어요. 군산 새만금 방조제에 갔는데,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이상한 콘크리트가 바다를 양분하고 있더라고요. 그 장소는 과거에 어업에 종사하신 분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장소가 변해왔을 텐데 지금은 황폐한 느낌의 이상한 구조물로 되어 있잖아요. 시간들이 느껴지더라고요. 거기 한참 앉아있었는데, 겨울이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때 제가 들었던 파도 소리가 언젠지는 모를 다른 시간에 다른 이들이 들었던 파도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장소는 변했지만 파도는 계속 쳤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 제목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이번에는 뚜렷한 공간성이 있어서 그런지, 이미지들로 많이 접근이 된 것 같아요. 포스터에 보시면 헤드라인이 있어요. ‘일렁이는 상처의 소리.’ 이것도 감독님이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임태규: 제가 보낸 카피를 홍보사에서 괜찮다고 해주셔서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하고 소리로부터 시작한 영화이기 때문에 저는 좋았죠. 상처를 보는 것보다는 듣는 느낌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보통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잘 묻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간결하게 쓰여 있을 터인데 전체적인 영화의 이미지나 심상을 떠올리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배우님께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박정학: 처음에 시나리오는 안 들어오고 감독님이 쓰신 편지를 먼저 읽었어요. A4용지에 편지를 길게 써서 보냈더라고요. 진정성을 느껴서 시나리오를 보게 됐는데 시나리오는 별로 와닿진 않았고요.(웃음) 사실은 저희 영화가 좀 무겁죠. 이게 대본을 가지고 찍은 영화가 아니에요. 첫 씬부터 배우와 감독이 상황을 만들어가고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할까, 이런 부분들이요. 가장 좋았던 건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에요.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기본적인 토대는 있지만 시나리오 없이 작업하면서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죠. 테이크 열 번을 가도 대사가 다 달랐어요. 첫날 촬영하는데 감독님이 선배님, 연기하지 마십시오.” 이러더라고요. 2~3일 지나면서 적응이 됐어요.

 

이은선: 배우분께서 무대에서의 경험도 많고 현장에서 바로 호흡하는 식의 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믿고 가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박정학 배우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였을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주인공의 모습이에요. 평범한 아파트 같은데, 카메라가 돌면 서울의 랜드마크인 잠실 롯데타워가 보여요. 이 영화는 군산이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한 영화인데, 잠실이라는 또 다른 공간성을 주면서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잠실이라는 공간에서 평소에 어떤 인상을 받으세요?

 

임태규: 아까 말씀드렸던 새만금 방조제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한 욕망이라든가, 저게 꼭 있어야만 할까이러한 생각들? 그런데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과장하자면 삶의 이유일 수도 있거든요. 그것이 보잘것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사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잠실의 롯데타워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후반부에 나오는 불꽃놀이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즐기고 있다고 하는데, 그 순간에는 행복하겠지만 늘 그렇게 행복하진 않을 거잖아요. 그것도 가짜 같다는 생각? 그런 속성들을 영화에 사용하면 의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영화에는 현 시대가 담길 수밖에 없잖아요. 이 영화를 몇 년 전에만 찍었어도 롯데타워는 담길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 롯데타워를 찍었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상징이 있는 것이고, 그걸 활용하는 감독이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풍경들이 영화에서 남달리 보이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우리가 문성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는 점이 사실 많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국가폭력 피해자의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고, 어떤 이유로 학원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잘 안 되는 것 같고, 잠실 부근에 살고 있든지 그곳에 자주 가는 사람인 것 같고, 아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고. 이 정도로 이 인물을 짐작할 수 있는데, 조금 더 많은 전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왜 하필 학원을 운영하는지, 아내와의 관계는 어떤지, 이런 것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이 배우에게 어떤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을지, 혹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박정학: 사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국가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런 경험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문성도 그런 역할이었죠. 아버지와 나와 아들, 그 삼대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들이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고 치유해가느냐에 대한 영화인 것 같아요. 가정이 편안해지면 사회도 좋아지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봤고요.(웃음)

 

임태규: 캠페인 같은데요.

 

이은선: 문성이라는 인물에게 숨겨진 전사는요?

 

임태규: 글에는 어느 정도 있었어요. 저에게도 여러 가지의 버전이 있었죠. 이를테면 문성은 고등학교 때쯤 아버지와 절연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꾸 안기부에서 찾아오고, 연좌제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 인생에서 걸림돌이 되니까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겠죠. 아마 군산을 떠나 서울, 혹은 수도권 어딘가에 삶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을 것이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분들은 과거 연좌제 때문에 선생님은 물론이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잖아요. 그게 결핍으로 작용하면서 대신해서 하고 싶었던 게 학원 사업이 아니었을까 싶었고요. 경제적인 큰 이득이 자신에게 보상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모두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은 것은 약간 사족 같은 느낌도 있고, 또 하나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열어두는 것이 제가 영화를 만나는 방식이고, 더 윤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부재하잖아요. 저는 GV마다 그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 질문이 한 번도 없었어요. 문성이란 사람은 보수적인 의미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일 테고, 그게 그 사람의 결핍 중 하나가 되었겠죠. 그 결핍이 작용해서 가족 체제에 더 목을 매는 인물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가정생활이 더 안 좋아지게 되잖아요. 아마 미국에 보내놓고 이혼했을 수도 있고, 별거 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은선: 저는 문성과 아들 도진의 관계가 흥미롭더라고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의 상황들을 반대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느낌은 없잖아요. 폭력적인 묘사긴 하지만 때려서라도 말린다거나, 그 여자와 애를 못 만나게 한다거나, 이런 행동을 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박정학 배우님이 아들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데면데면하고 어려워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느낌이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박정학 제 생각에 문성은 살면서 아버지에게 느낀 섭섭함과 원망 등이 있었을 테고 내 아들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을 것 같아요. 내 아들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고. 모든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렇듯이 말은 잘 못하고 데면데면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들이 자신과 너무 닮아 있잖아요. 아버지를 대하는 방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래서 더욱 본인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은선관객 분들은 영화를 보셨을 때 카메라의 위치가 궁금하지 않았나요? 카메라가 늘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처박혀있는 등 프레임을 가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어떤 인물의 얼굴은 과감하게 잘려서 볼 수 없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아예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고정된 상태로 굉장히 불안정한 화면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카메라가 갑자기 패닝을 하는 장면이 세 번 정도 있었는데, 그게 전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가 처음 움직이는 순간은 병실에 누워있는 문성의 아버지에서 문성의 모습으로 옮겨갈 때, 두번째는 부자가 목포의 높은 어딘가에 가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지막으로 부자가 호텔에 들어갔을 때 방 풍경을 비출 때예요. 카메라의 위치를 어떻게 고민하셨을지 궁금해요. 고정했던 카메라가 움직이는 데는 분명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임태규왜 고정된 카메라로 찍었는지 많이들 물어보세요. 전작은 백 퍼센트 핸드헬드로 찍었잖아요. 움직임이 많은 카메라 워킹을 사용하다가 왜 갑자기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시는데, 그것의 답은 명쾌하게 방금 기자님이 말씀하셨듯이 몇 번의 움직임들을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고정된 카메라를 썼어요. 두 사람의 관계를 가로지르는 듯한 이상한 패닝이죠. 영화에서 잘 쓰지 않는, 카메라가 느껴지는 정도로 굉장히 느린 패닝이잖아요. 특히 목포라는 공간에 대해서 문성과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그 공간에서 마치 시대를 가로지르고 세대가 바뀌는 듯한 패닝을 사용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전략이 있었던 야심한 패닝이었죠.

 

이은선야심찬 세 번의 패닝이었군요. 박정학 배우님은 카메라의 위치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인물이 운전할 때 보조석의 아래에서 위로 인물을 찍거나, 이런 식으로 잘 쓰지 않는 희한한 각도들이 많았잖아요. 그리고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배우들만 계속 움직이게 하는 카메라 작법이 배우에게 자유로움을 주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주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박정학: 두 가지 다 느껴졌어요. 어느 순간에는 카메라가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불편해지기도 했죠. 갑자기 엉덩이만 나오기도 하고특이한 감독을 만났구나 싶었죠. 결과적으로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감독의 의도와 생각이 있었을 테니 현장에서는 최대한 맞춰서 따라가야겠다 싶어서 최선을 다했죠.

 

이은선문성이 군산으로 가서 은혜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를 고발했던 선장의 손녀로 등장하잖아요. 어쩌면 가장 불편한 관계죠. 그 집안 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이 은혜라는 여성의 생활을 돌봐주었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두 집안이죠. 이런 관계들은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임태규: 아버지를 보러가는 서사의 영화로 출발을 했는데, 그 아버지를 만났을 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자신도 숨겨놓았던 상처를 훅 불러오는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인물이 조금 미스터리하고 한 번에 확 캐치가 안 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마 문성은 그 여인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고 보고 싶지도 않았을 테고 배의 이름도 듣기 싫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툭툭 내뱉는 알 수 없는 젊은 여자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그것은 복잡다단하고 한 마디로 형언할 수 없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이은선: 문성의 표정이 별로 변화하지 않잖아요. 또 원래 박정학 배우가 가진 얼굴 자체가 좀 서늘한 느낌이 있다 보니, 무표정으로 있으면 저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더라고요. 이를테면 문성이 극강의 무표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다른 국가폭력의 사례를 들을 때거든요. 군산 내려갈 때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40년 전의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누명을 벗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도 아주 무표정해요. 더 직접적인 장면은 호텔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에 대한 뉴스를 볼 때도 오른쪽 구석에서 굉장히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무미건조한 표정이어야 한다는 합의가 혹시 현장에서 있었나요?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거든요.

 

박정학: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만, 아까 말했듯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는 좀 빠져나와있고 싶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뉴스가 나올 때도 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분들 참 답답하겠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좀 다른 부분일 것 같았어요.

 




이은선그 장면들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 사람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에요. 채널을 돌리거나 볼륨을 줄이거나 텔레비전을 끄는 등의 액션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흥미로웠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임태규: 두 가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첫 번째로 뉴스가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일단 아버지가 임종을 하셨고 아들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런 개인적인 생각을 하며 텔레비전은 아무거나 틀어놓고 딴 생각하는 정도의 순간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과는 또 다르게 그 뉴스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니까 문성도 역시나 보긴 보겠으나,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두지 않았을까 해요. 그 두 가지 생각이 나란히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 정도의 구도와 거리감이 제가 실제로 어떤 사건을 대하는 거리감인 것 같아요. 우리도 분명 애도하고 슬퍼하지만, 늘 그것을 애도하며 살아가진 않잖아요. 딱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사건들을 대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장면에서 뉴스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인다든가 감정을 표현하는 건 딱 그 정도가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이은선: 방금 말했듯, 다른 국가폭력에 대한 문성의 반응은 늘 무언가 하나를 끼고 가는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저는 얼마간 당혹스러웠던 이유가 앞에서는 은유하고 돌려 말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너무 직접적인 것들을 쏟아내요. 자료화면들도 등장하고 더 직접적인 것은 문성의 아버지가 잠든 아들의 침대 옆에 앉아서 너무 억울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봐요. 이건 엄청난 직설화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영화가 앞에서 보여준 톤을 전부 깨버리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과감한 시도이자 한편으로는 위험한 시도죠. 그렇게까지 후반부에 직설화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뭐예요?

 

임태규: 그건 아마 뉴스 장면을 찍으면서 바뀐 것 같아요.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고민을 엄청 많이 해서 찍은 장면이기도 하고. 간단히 말씀드리면 은유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 영화가 톤이 바뀌면서 자료화면을 보여드리고, 스토리를 지금까지 따라오신 관객이라면 직접적인 화면을 보셨을 때 느끼는 어떤 영화적인 감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마지막 장면을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내잖아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방식이죠. 그 다음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레이어가 은근히 복잡해요. 아이가 하필이면 배를 만들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 그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라는 복잡한 레이어로 마지막 장면이 구성되어 있어요. 아까 박정학 배우님이 말씀하신 걸 들으면 그날그날 현장에서 뭔가가 반영되고 수정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엔딩은 처음부터 지정된 엔딩인가요?

 

임태규엔딩을 완전히 정하진 못했어요. 이 영화를 열어두고 찍은 이유도 엔딩을 확실히 정하지 못해서이기도 해요. 그런데 아이와 배가 나오는 건 확실히 제 머릿속에 있었고, 그 아이가 도진과 문성 사이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갈지, 거기서 뭘 할지에 대한 디테일은 정하지 않았고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촬영 이틀 전에 디테일을 정했죠. 아이가 병원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아이가 만약 없었다면 그렇게 길게 찍을 수 없는 장면이에요. 아이가 없었다면 어른들이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대화를 나누거나 화를 내거나 어떤 액션과 리액션이 오고 갔을 텐데 아이가 있기 때문에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아이가 존재함으로써 그 상황이 바뀌고 아이가 상황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존재만으로 그냥 희망적인 것이 있다고 할까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이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받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 쪽으로 카메라가 다가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문성의 얼굴로 끝나는 결말을 기획 단계부터 생각한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질문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한 가지는 이 영화가 어부 간첩조작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잖아요. 어떻게 이 사건에 주목해서 영화를 찍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두 번째로는 저도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 깊었는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참 복잡하면서도 미묘해서 배우 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임태규: 2017년에 <폭력의 씨앗> 편집할 때쯤에 한겨레에서 이 사건에 대해 특집 기사로 다뤘었어요. 50년만의 재심에서 간첩 누명을 벗고 무죄 판결을 받으신 분들에 대해 많은 분량의 좋은 기사가 났어요. 납북어부 간첩조작이라는 사건이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디테일하게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주간지 표지에 나온 그 분의 얼굴이 참 와닿았어요. 법원 앞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직후에 변호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울먹울먹하시며 기쁜 듯 슬픈 듯한 오묘한 표정과 주름. 그 얼굴이 제게 어떤 감정으로 남았어요. 그래서 찾아보다가 또 다른 피해자 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게 됐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억울하게 사셨는데 이젠 뭘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그 분이 한참 고민하시다가 아들이 보고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 이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죠.

 

이은선: 박정학 배우님은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감정으로 연기하셨나요?

 

박정학: 문성이라는 인물은 경직된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태 닫혀 있던 문이 그 아이를 통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라고 할까요. 닫혀 있고 경직되어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열리는 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둘은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서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갈등이 있는데, 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경직된 그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관객: 저는 질문보다는 제 감상을 좀 나누고 싶은데요. 뉴스에서는 사건들을 다룰 때 돈(배상금)에 대한 것들만 부각되지만 사실 그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들의 어떠한 관계가 깨졌는지, 그리고 그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잠식시킬 만큼 얼마나 지배적인 영향을 가지는지에 대해, 그런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면을 영화가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비극적으로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힘들어서 멀어졌다가, 그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그 관계를 다시 가지지만 시간의 공백이 너무 커서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이 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아들과도 관계를 제대로 맺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아들이 자신의 애인의 자식을 돌보는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그 아이와 소통을 하기보다는 애써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치도 보이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 아들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어요. 또다시 나도 아버지처럼 아들과 좁힐 수 없는 그 거리를 가지게 되었구나.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곁에서 자꾸 멀어져서 애인과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모습이 비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이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국가가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임태규말씀해주시는 것이, 혹시 감독님 아니신가요.(웃음) 전격 희망으로 끝나는 영화는 아니에요. 그런 영화를 제가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러나 일말의 희망은 있죠. 장소를 헌팅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문이었어요. 문 바로 앞에 문성이 서 있고, 문 바로 밖에 아이와 아들이 있는 구도가 중요했어요. 그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 전격 희망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그 문지방 바깥에 머문다면 그 정도의 거리감이 계속 유지되는 관계일 것이고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정도 거리감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화해할 뻔 하다 멍게 먹으면서 다시 틀어지잖아요. 순간 화해할 수는 있지만 다시 그 정도의 거리감은 항상 가지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비극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왔다갔다하며 사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은선생각해보니 주인공이 그 장면으로 뛰어들어서 같이 넉살을 발휘하지는 않네요. 그 문이라는 장치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던 장면이군요. 해석이 멋졌습니다. 다른 분 질문 받겠습니다.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주인공 문성과 문성의 아버지, 그리고 문성의 아들이라는 삼대의 세대차이나 부자간 갈등을 많이 느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떤 모습에 중점을 두고 연출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초반에 박은혜라는 역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흐지부지 됐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혹시 시나리오에 있었는데 표현이 잘 안 된 장면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임태규: 단순히 말씀드리면 주인공과 아버지, 주인공과 아들의 관계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을 디테일하게 보여드리진 않지만 그것이 유추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국가폭력이 반복되면서 비슷한 시스템으로 피해자를 양산하듯이 부자 관계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은혜 같은 경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고민을 많이 했던 캐릭터예요. 이를테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혜가 군산에 내려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만약 여러분들께서 상처가 아예 없으시거나 행복하게만 살아왔다면 이 영화에 이입하지 못했겠지만, 우리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어떻게든 영화와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하나로 규정되면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관객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며 무언가 떠오르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지만, 각자 가지고 있던 상처를 한 번씩 끄집어내서 보는 계기를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은혜가 하나로 규정되며 끝나지 않은 이유겠죠.

 

이은선: 그러면 은혜라는 캐릭터를 구상한 것에서 빠진 내용은 없나요?

 

임태규: 저 혼자 구상한 전사는 있지만 여기서 발언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은선: 제가 질문 하나 더 드려도 될까요? 전작인 <폭력의 씨앗>은 군대폭력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해자가 아니었던 사람이 어떻게 군대폭력 안에서 가해자가 되는가를 쫓아가는 영화였거든요. 그건 좀 더 미시적인 종류의 폭력이죠. 그 사람이 그 폭력의 씨앗을 가지고 사회로 나와 어떻게 발화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감독님께서 폭력이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기에는 피로감이 있는 소재일 수도 있는데 왜 자꾸 구조적 폭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나요?

 

임태규: 그러게요. 연출하고 시나리오 쓰는 사람은 촉을 세우면서 살 수밖에 없잖아요. 24시간 뭐 하나 재밌는 게 없을까 생각하며 살죠. 저의 촉수가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어떤 사회 현상을 볼 때인 것 같아요. 그게 우연히도 폭력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고. 저는 폭력적이지도 않고, 폭력을 좋아하지도 않지만요. 저에게 그냥 그런 것들이 끌리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어쩌면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것들을 계속 말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황정은 소설가의 단편집 아무도 아닌이 생각나네요. 인물들이 슬프고 폭력적인 상황에 계속 노출되는 이야기들이 묶여 있거든요. 왜 이렇게 폭력적인 이야기만 하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가 요 몇 년 사이 꾸준히 이 세계가 폭력적이었다고 말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분명 젊은 작가들이 이런 현상들을 계속해서 영화로, 이야기로 풀어내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태규: <파도치는 땅>은 가족 영화라고 생각해요.(웃음)

 

이은선 : 아름다운 가족 영화입니다. 그럼 여기서 마무리할까요? 저녁 시간에 영화를 보고 토크까지 듣는다는 게 얼마나 애정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 내셔서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박정학 배우님부터 오늘 와주신 관객 여러분께 끝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박정학: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거운 영화 무겁게 잘 마무리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태규: 원래 저는 완벽주의자라서 시나리오도 촬영도 완벽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제 성격과는 조금 다르게 찍었어요. 이렇게 찍고 나니까 좀 재미있는 건, 완성을 극장에서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들에게 각기 다른 영화로 각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영화를 극장에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하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은선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연기로 연출로 계속해서 작품들을 선보이실 테니까 두 분께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