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는 땅> 한줄 관람평
최승현 | 폭력에 의해 으스러진 시대를 담담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다
승문보 |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현대인의 핑퐁 게임
송은지 | 파도의 변주를 응시하는 시선이 있어 희망적이다
성혜미 | 반복의 역사, 끊어지는 메시지
김윤정 | 거울로 보는 폭력의 잔상
오윤주 | 국가로부터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
<파도치는 땅> 리뷰: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현대인의 핑퐁 게임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된 임태규 감독의 <파도치는 땅>은 삼대의 갈등을 통해 역사의 상흔,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현대인의 핑퐁 게임을 그려낸다.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대립의 산물 중 하나인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과 국가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인 세월호 참사는 직간접적으로 주인공 문성(박정학),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도진(맹세창)을 에워싸며 삼대의 관계를 흔들어 놓는다. 간첩 조작 사건 혐의에 연루된 문성의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고, 이로 인한 국가 보상금으로 상당한 유산을 남긴다. 문성은 역사의 상흔에 더는 시달리기 싫어 고향을 떠나 상경했지만, 아버지 관련 문제 때문에 30여 년 만에 군산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영화는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현대인의 핑퐁 게임을 본격적으로 그려낸다.
우선, 영화는 잊고 지냈던 상처가 다시 떠오르면서 괴로워하는 개인, 특히 문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익스트림 롱 숏을 통해 인물의 표정을 공간의 여백에 파묻히게 만들거나 인물을 스크린의 중앙에 배치하는 대신 극단적으로 양옆에 배치함으로써 구도로 그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신 표현한다. 혹은 건물 내부 구조나 사물을 이용해 비좁은 이차적인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 프레임에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문성의 답답한 내면을 나타낸다. 게다가 상대방과의 대화 장면에서도 숏과 리버스 숏의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헤드룸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 채 두 인물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숏을 활용함으로써 국가를 향한 분노와 개인적인 분노를 동시에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상태는 가족 관계마저도 서먹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흔들어 놓는다. 아버지를 따라 아들 도진 또한 군산으로 내려간다. 같이 다니면서 멀어진 관계를 아주 미세하게 좁히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두 번의 아주 느린 패닝 숏은 두 사람의 핑퐁 게임이 끝나기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첫 번째 느린 패닝 숏은 문성이 예전에 살았던 마을을 아들과 오랜만에 방문할 때 등장한다. 첫 번째 패닝 숏은 문성에서 시작해 도진의 모습으로 끝난다.
두 번째 느린 패닝 숏은 밤이 늦어 두 사람이 군산에 있는 어느 한 호텔에 같이 묵는 모습을 보여줄 때 등장한다. 앞선 패닝 숏과 달리 베란다에 서 있는 도진의 모습에서 시작해 침대에 누워있는 문성의 모습으로 끝난다. 패닝 숏을 사용함으로써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 않지만, 심리적 거리가 굉장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리고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바꿈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전이하려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는 아들의 갈등을 일종의 핑퐁 게임으로 그려낸다.
이와 같은 핑퐁 게임은 곧이어 미시적인 측면에서 거시적인 측면으로 확장된다. 영화 후반부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을 시작으로 간첩 사건과 과거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서트 숏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 역순으로 군산의 모습을 보여준 과거를 보여주는 인서트 숏과 현재를 담아내는 숏을 빠른 교차 편집을 통해 고의로 충돌시킨다. 이는 역사의 상흔과 이를 덮고 새롭게 단장하려는 오늘날의 거시적인 핑퐁 게임처럼 보인다.
영화는 새해를 맞이했음에도 아직도 표정이 굳은 아버지 문성과 아이를 바라보며 웃는 아들 도진의 모습을 담은 숏을 끝까지 충돌시키며 마무리한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핑퐁 게임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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