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와 슬기>  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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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희와 슬기>  리뷰: 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때 삶이 더욱 생생해진다면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십대 여성들이 처한 각자의 현실에 주목하고 그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의 연이은 등장은 그간 여성 서사에 갈증을 느끼던 관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그중 <선희와 슬기>는 인물을 극단적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아닌 학교 친구들의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하나의 내적 동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제목만 들으면 선희와 슬기,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들린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선희와 슬기>는 자신의 거짓말로 의도치 않게 친구가 자살을 하게 되고, 그 죄책감에 도망쳐온 곳에서 슬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선희의 이야기다.





선희는 부유한 가정에서 살고 있지만, 부모는 선희에게 무관심하고 학교에서마저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같은 반 정미의 무리에 속하고 싶은 선희는 아이돌 기획사에서 일하는 사촌오빠로부터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며 돈을 주고 산 콘서트 티켓을 정미와 친구에게 준다. 첫번째 거짓말을 시작으로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정미의 무리에 속하게 된 선희의 들뜬 얼굴은 거듭된 거짓말로 친구들로부터 의심을 받으며 점차 어두워진다. 정미와 친구들이 선희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은 이러한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장면은 선희의 뒷얘기를 잠자코 듣고있는 정미의 복잡한 표정과 매점에서 돌아와 우연히 자신의 얘기를 엿듣게 되는 선희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선희가 느끼는 관계의 균열을 오롯이 전달받도록 한다.





이후 불안함과 당혹감에 벌인 선희의 자작극에 또 다른 사건이 더해져 정미가 자살을 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정미를 자살로 몰아갔다는 죄책감을 느낀 선희는 낯선 곳으로 떠나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슬기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거짓말로 쌓아놓은 슬기의 세계에서 나름의 노력을 다해 보육원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새로운 고등학교에서 새 친구도 사귄다. 그러나 그마저도 선희를 알아본 친구로 인해 보육원 선생님에게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이 들통 나게 된다. 슬기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돼 자신이 알던 착한 슬기가 도무지 누군지 모르겠는 보육원 선생님은 사실대로 말할 것을 추궁하고자 선희를 부를 때 “저기야” 하고 부르고, “난 네가 안쓰러워” 라고 말한다.





박영주 감독은 학창시절 ‘곧 학교를 그만둘 거고, 서울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같은 뻔한 거짓말을 하던 친구를 보면서 <선희와 슬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금방 들통 날 뻔한 거짓말을 하지만,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때보다 거짓말을 하며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에 더욱 생생해지는 선희의 얼굴은 미워하기보단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영화의 엔딩은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선희의 모습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선희는 앞으로 몇 번의 거짓말을 더 하고 몇 번의 도망을 쳐야 선희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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