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낯섦을 동력으로 여행하는 영화  <국경의 왕>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3월 7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정환 감독배우 김새벽, 조현철

진행 이동진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낯선 공간에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사건들, 흩어지고 만나길 반복하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에 저마다의 깊은 인상이 자리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넘나들며 촬영한 <국경의 왕>은 우연과 낯섦을 동력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여행 같은 영화이다. 임정환 감독은 앞으로도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계속할 것이냐는 관객의 질문에 최대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낯선 공간을 찾으러 다닐 것 같다고 대답했다. 개봉 후 첫 인디토크가 늦은 시간까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함께했다.

 





이동진: 영화 재미있으셨죠?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다들 얼굴이 환하십니다. <라오스>(2014)라는 감독님의 전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이 작품을 너무 보고싶던 차였는데, 기대보다도 훨씬 더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이나 두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서 부지런히 여쭤볼 예정이고요. 감독님의 전작은 정식 개봉하진 않았으니까 감독님 영화인생에서 첫 개봉 행사잖습니까?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임정환: 좋습니다. 너무 좋고, 오늘 자리해주신 이동진 평론가님 덕분에 더 많은 관객분들이 찾아와주신 것 같아서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저는 이렇게 꽉 찬 좌석을 이 자리에서 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감사드리고요, 너무 기쁠 따름입니다.

 

이동진: 조현철 배우, 김새벽 배우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이전에 <초행>(2017)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한번 만났습니다. 그때도 GV가 굉장히 좋았는데 오늘은 아마 더 좋을 것이라고 아까 조현철 배우께서 시작 전에 저한테 말씀하셨거든요. 굉장히 멋진 말씀 준비하시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인사말씀 한 번 해주시죠.

 

조현철: <초행> GV 때 평론가님을 너무 고생하시게 한 것 같아서... 제가 말을 많이 할 수 있을까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진: 앞으로는 눈을 똑바로 보고, 말을 끝까지 하겠다고 영화를 통해서 선언을 하셨으니까요. 김새벽 배우님도 소감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새벽: <국경의 왕>은 제가 진짜 아끼는 영화거든요. GV인데 많은 분들이랑 만날 수 있어서 진짜로 기쁘고요, 반갑습니다.

 




이동진: 먼저 임정환 감독님께 이 영화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전작에 의한 단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가 던져준 말일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정환: <라오스>라는 영화를 하고 나서 조현철 배우랑 같이 다음 작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친한 조현철 배우님과 다시 한 번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친한 배우님과 하는 만큼 공간은 낯설기를 바랐어요. 로케이션이 폴란드, 우크라이나인데 저에게는 여행지로서 익숙한 곳이었고 반면에 함께하시는 배우님들이랑 스태프분들에겐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어서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동진: 김새벽 씨는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신 거죠?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전달받게 되었나요?

 

김새벽: <초행>을 찍을 때 현철 씨가 폴란드에 친구랑 영화를 찍으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폴란드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되게 재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후에 현철 씨가 같이 영화 찍는 친구가 연락을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셨고 그렇게 임정환 감독님을 만났어요. 그때 A4용지 두 장 짜리 이야기를 받았어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이야기를.(웃음)

 

이동진: 두 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김새벽. 그리고 묘지 사진을 받고 작업을 함께 하게 됐어요.

 

이동진: 아까 감독님이 말씀을 해주셨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묘지가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묘지라고 하네요. 그러면 조현철 씨는 심지어 캐스팅까지 관여를 하셨네요. 이미 감독님 스타일도 잘 아시고 영화를 어떻게 찍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떠나셨을 것 같은데요.

 

조현철: 학교 다닐 때 내내 붙어있던 친구라서 어떤 식으로 찍을지도 알고 있었고, 2016년 여름부터 이걸 찍겠다고 하기에 제가 계속 하라고 부추겼어요. 그런데 친밀한 사람들 간의 작업을 넘어서면 좋겠고, <라오스>에 비하면 작업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가 잘 알고 지내지 못했던 사람과도 함께 해보자고 했고요. 아닌가?(웃음)

 

이동진: 작업이 한층 깊고 넓어진 것 같습니다. 너무 좋네요. 한국영화에서 우크라이나가 나온 건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보통 유럽에서 찍는다 하더라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가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잠깐 언급해주셨지만, 이 나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그리고 엔딩크레딧을 보고 많이들 놀라셨을 것 같아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스태프로 일을 했습니다. 세르게이로 나오셨던 박진수 배우는 이 영화의 PD이시고, 이유진 배우 같은 경우에는 이 영화의 스크립터이시고. 이런 식으로 1인 다역으로 참여를 하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굉장히 빡빡하고 제작비 예산도 정해져있을 텐데 현장은 어땠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정환: 사실 멀리 갈 때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안고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부분은 한국에서 찍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김새벽 배우를 제외하곤 친밀한 사람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불안을 덜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영화 안에서는 최대한 낯설어질 수 있게끔,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낯섦을 섞어보면 사건적으로도 의외의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했고요. 촬영을 할 때 불안한 마음도 있었고 즐거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두렵거나 불편한 마음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앞섰던 작업이었습니다. 크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동진: 배우들은 어땠을까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100% 외국에서 찍는 영화잖아요. 어떠셨습니까?

 

김새벽: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를 일본에서 찍었기 때문에 해외 로케이션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저는 영화를 한 편 찍을 때마다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씩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이 영화에서도 다 경험했어요.

 

조현철: 사실 저한테는 여행이 주 목적이었고 영화는 구실이었어요.(웃음) 정환이도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정환이가 계속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이동진: 일단 기술적으로 영화를 어떻게 찍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영화가 2부 구성으로 되어있어요. ‘국경의 왕이라는 것이 1부에 있었고, 2부는 국경의 왕을 찾아서인데, 하나의 영화로 본다면 1부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모색하는 방법이 2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시나리오를 이런 구성으로 쓰시고 나서 촬영도 순서대로 하셨나요?

 

임정환: 일단은 김새벽 배우님이 말씀해주셨다시피 두 페이지 시놉시스로 시작했는데, 그것과 영화는 아마 내용이 전혀 다를 거예요. 국경의 왕을 찾는 이야기지만, 왕이 아니라 무덤에서 이야기를 마치자, 이 정도의 큰 틀만 가지고 있었고요. 1부에서 어느 정도 장르영화의 느낌이 나게끔 만들고 마무리하자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1부를 촬영하다 보니 이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2부에서 국경의 왕을 찾는 내용을 1부의 형식대로 장르영화의 틀을 가져와 펼쳐내고 싶었는데, 촬영을 하다보니 이야기가 빠져나온 거예요. 장르 속에서 좀 빠져나와서 우리 모두가 뭘 찾고 있는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과 편집은 거의 순서대로입니다.

 

이동진: 그럼 이러한 구성은 현장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만들어진 거죠? 그러면 애초에 김새벽 배우에게 드린 두 장짜리 시놉시스에는 2부가 없었습니까?

 

임정환: 1부도 없었어요.

 

김새벽: 기억도 잘 안나요. 그냥 뭐가 있었는데.

 

이동진: 그럼 뭘 믿고 따라가셨나요?

 

김새벽그냥 현철 씨가 가자고 했고 감독님을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그냥 사람이 좋았어요. 얘기를 하는데 그냥 좋았고, 그냥 좋았어요.

 

조현철: 저도 가기 전에 시놉시스를 받긴 했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고 정환이가 촬영장에서 매일매일 대본을 써서 줬는데 그걸 열심히 했어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거나 캐릭터 분석을 하기보단 쉬고 있다가 촬영 때가 되면 몸에 충분히 익히면서 했습니다.

 

이동진: 제가 김새벽 배우와 GV를 벌써 다섯 번째 하는 것 같아요. 김새벽 배우가 워낙 선구안이 좋으신 건지, 좋은 출연작이 참 많은데요. 이 영화에서 김새벽 배우가 이렇게 코미디를 잘하시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어색하게 하는 장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김새벽 배우의 모습이었거든요. 이 영화 전반부에서의 코미디 연기를 하시면서 어떤 느낌이셨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김새벽: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데, 저는 되게 어색했어요. 그 장면은 다 찍고 나서 감독님께 다시 찍으면 안 되냐고도 얘기했거든요. 감독님이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길래 포기했어요. 다른 분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너무 재밌고 너무 잘하고.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재밌는 사람들인 거예요. 어떨 때는 소외감도 느끼고 어떨 때는 너무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부끄럽지만 운 적도 있어요. '나는 왜 이게 안 되지?' 하면서.

 

이동진: 이 분들은 이전에 호흡을 자주 맞춰왔잖아요.

 

김새벽: . 사실은 그게 부러워서 하고 싶기도 했거든요. 막상 왔는데 나는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하고 속상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우리가 일상에서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예를 들면 직장 상사가 무슨 말할 때 일부러 일에 몰두하느라 못 듣는 척 하는 식의 경험이 있잖아요. 이제 해외 어딜 가도 한국말이 들리는데 그때 반가워서 말 붙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떠나고 싶어서 왔는데 한국사람 또 만나네.' 하는 싫은 감정도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상당히 호감가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극중에서처럼 일본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아이디어에 감독님의 개인 경험이 들어있나요?

 

임정환: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들이 말씀해주신 대로 제가 염두에 두고 관찰해왔던 장면들일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거나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영화를 만드는 것을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공간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재밌는 순간 혹은 신기한 순간이 있다면 이게 어떤 이야기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계속 하게 되고요. 사실 제가 영화에 나온 것보다 더 작은 상황을 제시를 해드렸는데, 정혁기 씨를 비롯한 배우분들이 더 걷잡을 수 없는 일로 만들어놓으시는 경우가 있었어요. 너무하다 싶은 정도가 아니면 받아들이고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이동진: 정혁기 배우가 영화 속에서 너무 웃기잖아요. 어떻게 저런 대사를 할까 싶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장면들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에 배우의 마음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어떤 장면이 특히 그랬냐면, 셋이 고스돕을 치다가 왜 안약을 넣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약을 넣어보다가 실명까지 가는 장면이 롱테이크로 나오잖아요. 감독님도 직접 출연하신 그 장면이 엄청 깁니다. 세 사람이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대사를 던지고 있는데, 사전에 합의된 동선이라든가 이야기의 틀이 있었을 테죠. 그런 장면을 찍을 때 어느 정도의 즉흥성이 들어갔는지, 상대가 생각지도 않았던 대사를 하게 되면 극중에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리허설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실제로 저희 엄마가 백내장 수술 받으셨거든요. 저희는 학교 다니면서 내내 정환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와서 당황스럽진 않았고요. 되게 편한 상황에서 연기를 했어요.

 

이동진: 그 연기를 보면 세 분이 즐거워하는 게 보이거든요. 웃어서 NG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조현철: 웃어서 NG가 나기 보다는 정혁기가 너무 멀리 가버려서(웃음) 그 부분을 쓸 수가 없어지는 경우는 있었죠.

 

임정환: 저희끼리 들으면 별로 웃기지가 않아가지고요. 그냥 왜 저러나 싶고.(웃음)

 




이동진: 1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논리를 끌어와서 만든 이야기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대사들이 오가요. 장르영화의 어법을 가지고 일부러 코믹하게 만들어 나간 게 1부인데, 1부를 호흡이 긴 롱테이크로 찍으셨어요. 일반적으로 롱테이크로 찍게 되면 사실감이 강화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오랜 시간을 계속 연기를 하게 되면서 그 자체의 우스꽝스러움이 더 극대화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임정환: 길게 찍었어도 편집을 할 때 나눌 수도 있었겠죠. 먼저 좀 설명을 드리자면 2부에서 이 이야기가 결국 이야기적 상상이었다는 설명으로 이어지다보니 이게 어쩌면 실제로 이야기를 쓰는 일, 영화에 대해 상상하는 일, 그 작업과 닿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흩뿌려놓은 이야기들인데, 계획적으로 커트를 하지 않고 때로는 불필요한 말들이 들어가고 때로는 말들이 섞이는, 정리되지 않는 작업의 속성을 반영하게 되었어요.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냥 펼쳐보는, 조금 오그라드는 말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국경을 무너트리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이런 어법을 가진 한국영화들이 드물지만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새벽 배우가 나왔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그랬는데요, 그 영화는 말하자면 논픽션이 먼저 있고, 그들이 만든 영화처럼 보이는 것이 뒷부분에 있죠. 이러면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영화를 찍게 됐는지 앞부분에서 설명이 되기 때문에 뒷부분이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는데요, <국경의 왕>의 경우에는 순서가 반대로 되어있습니다. 픽션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 영화가 보여주는 요소를 통해 상상한 것과 달리 황당한 장르영화로 비춰지게 되면서 관객은 당황할 수도 있고 신선할 수도 있겠죠. 그러다 어느 정도 감을 잡고 2부로 넘어가면서 ', 이게 이 사람들이 상상했던 영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게 영화를 수용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큰 차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왜 정보를 사전에 주지 않고 픽션이 먼저 나오고 뒤에 논픽션이 붙는 구성으로 생각하셨습니까?

 

임정환: 그 부분이 제가 생각하는 영화와 여행의 공통된 부분인 것 같은데요, 영화관에도 우리가 시놉시스를 보고 들어올 수도 있고 예고편을 보고 들어올 수도 있는데 사실 거의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잖아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가면 비로소 영화에 영향 받은 이후의 하루가 펼쳐지겠죠.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을 했고, 저희가 여행이면서 영화 같은, 영화이면서 여행 같은 것들을 하다보니까 여행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계획을 할 수는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숙소도 예약할 수는 있지만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누굴 만나고 어떤 행위를 했다고 정리를 할 수 있는 건 다녀오고 나서야 가능해진다고 생각을 해요. 1부에서 어찌 보면 당하는 건데요. 죄송합니다, 보신 분들께 당한다는 표현을 쓰게 되네요. 속수무책으로 이 영화가 던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뒤의 사유들도 연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동진: 이 영화가 저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훨씬 구성적으로 복잡합니다. 먼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겪는 영화 속 현실이 있습니다. 이 현실이 단순히 상상 전 영화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다녀온 여행에 대한 플래시백이 1부에는 없지만 2부에선 있어요.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두 사람이 나누면서 나는 이런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도 이런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하면서 이야기한단 말이죠. 그때의 플래시백은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회상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실제 현실이 있고 현실에 대한 회상이라는 또 다른 사실의 존재형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픽션의 형태, 다시 말해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의 결과물이 1부였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1부가 아니라 영화의 뒷부분에 붙어있는 사실상 꿈처럼 보이는 장면인데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집들이를 하는 장면입니다. 앞뒤로 김새벽 배우가 잠드는 장면이 있으니 그 장면은 꿈처럼 보이거든요.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영화 속에서 현실이 기억으로도 남고 영화로도 변주되고 꿈으로도 표현이 되는 건데, 우리는 이미 그녀가 만들 영화가 실제로 완성이 됐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픽션의 형태로 1부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꿈으로써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지에 대해 굉장히 큰 궁금증이 있어요.

 

임정환관객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실제로 영화 작업의 구성하고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계획을 가지고 촬영했는데,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전혀 의외의 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오케이컷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버려지니까요. 또 다른 상상들이 있고 또 다른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버려야 할 때가 있어요. 더 확장해보자면 그런 것들이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의 선택들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 방향을 선택하면 영원히 가볼 수 없는 길도 생기잖아요? 다른 길을 현실적으로, 또는 영화에서, 꿈에서 한 번씩 다 재생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은경 대사와 모두 연결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다음에 다시 만나면...” 더 이상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영화는 끝난 것이죠. 그 다음엔 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테고, 그런 것들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인상적인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질문을 너무 독점했네요. 지금부터 객석에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께서 무슨 질문을 하든지 다 대답을 잘해주셔서 감독님이 지금 들라고 그러면 보험도 들 것 같아요.(웃음)

 




관객: 대체적으로 소리가 명확하게 안 들리는 부분이 많은데 꽃 상점 앞에서 유진과 조선 남자가 얘기를 할 때는 소리가 굉장히 명확하게 들려서 혹시 후시녹음하신건가 싶었거든요. 그 부분만 후시녹음 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구요. 그리고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쓰였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대사 대신 음악이 잘 들리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일단 말씀해주신 장면은 후시녹음이 맞습니다. 무서운 장면인데요.(웃음) 사운드 오류가 있어서 같이 고생해서 김새벽 배우님이랑 임철 배우랑 녹음을 다시 했는데 저는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주입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웃음) 보이지 않는 것과의 대화, 유령과의 대화라고 생각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사실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1,2부 각각의 마지막에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데 확실히 분위기를 도와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대사가 없이 길게 전개되는 장면이다 보니까 음악으로 대신 전달됐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번외로 드는 걱정도 있어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촬영했는데 독일어 가곡이 나오니까, 실제로 해당 국가의 분들이 볼 기회가 있을지는 몰라도, 마치 한국 로케이션 영화를 보는데 일본 노래만 나오는 느낌일까봐 두려움은 여전히 있습니다.(웃음) 일단은 제가 느끼기에 괜찮아서 그렇게 됐습니다.

 

 

관객: 촬영 방법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 기존 영화에서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각각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한 명씩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없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더 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앞서 얘기하신 비용상의 문제 때문인지 궁금하고요. 간단한 질문 하나 더 하자면 혹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2012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공동개최해서 선택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일단 두 번째 질문이 저한테 더 쉬워서 먼저 대답 드리자면, 우크라이나에 공직자 친구가 있습니다. 진짜 대사관 직원이고요. 그 친구의 역할을 영화에서 제가 한 겁니다. 당연히 약을 취급하진 않고(웃음) 그건 사실이 전혀 아닙니다. 영화에 나오는 좋은 집이 그 친구 집이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를 가게 된 것 같아요. 폴란드는 앞서 말씀드렸던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묘지의 영향이 있었고 마침 붙어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어, 제 개인적 생각으론 배우분들께선 아마 롱테이크가 더 어려우실 것 같거든요. 촬영시간은 짧을 수 있어도 대본이 타이트하게 짜여있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부담이 있다보니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전체적으로 완성된 영화의 느낌이 아니라 영화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기차에서 귓속말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실제 대사가 무엇인지실제 촬영장에서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정해진 것은 없었어요. 그 장면에서 NG가 몇번 났는데제가 계속 사랑한다고 해서...(웃음) 그래서 오케이가 뒤늦게 났는데 마침 열차가 멈추는 타이밍이랑 맞아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나왔습니다.

 

임정환: 그냥 아무 말이나 하라고 했는데 자꾸 웃어서 뭐라고 하는 거냐고 구박을 좀 했거든요근데 그렇게 해주신 덕분에 기차가 멈출 때에 맞아서 좋더라고요

 

 



관객: 앞으로도 외국에서 촬영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해외가 아니라 부산이어도 되고 제주도여도 됩니다. 최대한 저한테 낯선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똑같은 해외라고 해도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찍는 것과 폴란드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촬영을 하는 것은 낯섦의 정도가 많이 다른 것 같거든요. 최대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낯선 공간을 찾으러 다닐 것 같습니다.

 

이동진: 조현철 배우는 세 번째 영화 어디서 찍고 싶으신가요?

 

조현철: 자연이나 공룡 화석 같은 것 볼 수 있는 데로요.

 

이동진: 장소마다 촬영 협조 부분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임정환: 대부분의 장소들은 아주 형식적인 협조만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식당이나 카페 장면들이 제법 되는데, 저희가 멤버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누가 봐도 영화 찍으러 온 사람 같진 않기 때문에, 유튜브 브이로그 찍는 것처럼도 보이고 상당히 프리해보이니까 딱히 제지를 안 하셨어요. 그냥 들어갈 때 음식을 많이 시키고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찍고 가겠다고 세르게이가 협조를 구해줘서 촬영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공항에서는 하라는 대로 말 잘 듣고. 그렇게 진행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관객: 거의 영화 끝나갈 쯤에 유진이 나와서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이후 식탁을 비추는 장면으로 전환이 되는데, 그 이후로는 현철이 없어요. 컵 개수를 세어봤는데 현철을 위한 컵도 없는 것 같고 마치 처음부터 현철이 없었다는 듯이 대화가 진행돼서 저는 조금 섬뜩했거든요. 그 장면에 담은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이 영화에서 계획적으로 찍은 몇 안 되는 장면인데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컵도 부러 치우고 찍은 장면이고요. 영화의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다 보니까 말씀하신 대로 현철, 즉 기존의 것들을 지우고 유진이 내려놓은 채로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꿈에서 그런 것 있잖아요. 계속 등장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라져있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 담배 피우고 돌아올 때에는 전혀 다른 모임의 대화인 것처럼 바꿔 보고 싶었습니다.

 




이동진감사합니다. 장시간 동안 너무 좋은 분위기였고, 세 분 유쾌하고도 깊게 잘 말씀해주셔서 좋은 자리였습니다. 인사 말씀 듣고 마치겠습니다.


임정환: 늦게까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한 분 한 분이 소중한데요,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같이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인디스페이스의 좋은 한국 독립영화들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현철: 늦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작업은 구실이었다고 얘기하긴 했는데 가서 정말 열심히 찍었고요. 누가 돈을 준 것도 아니고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닌데 정환이가 혼자 돈을 벌어서 이렇게 지인들끼리 영화를 찍고 여러분한테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히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계속 갈 수 있게 정환이가 계속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고(웃음) 여러분들도 관심 있게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새벽: 사실 제가 영화와 연기에 대한 마음이 왔다갔다 할 때가 조금 있는 편인데, 그 때 현철 씨가 그런 마음까지 알고 애기를 해준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고맙고 이 영화를 찍은 걸 생각하면 진짜 힘이 나거든요.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작품이고, 지금까지 연기를 조금 더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영화에서 받았던 힘 덕분인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내가 이 작품 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매일 영화 찍고 먹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하고 걱정 없이 영화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고마운 작품입니다. 그런 귀한 영환데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고요. 인디스페이스에서 벚꽃이 질 때까지 영화가 상영된다고 하거든요. 영화를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얘기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동진: 오늘 함께해주신 감독님과 두 배우 뿐만 아니라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들어주신 스태프분들께 한 명의 관객의 입장에서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모든 영화가 똑같은 조건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진 않아요. <국경의 왕>은 보시는 것처럼 굉장히 멋진 영화입니다. 아마 관객들의 힘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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