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지 않았기에 아름다운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작은 빛>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2월 14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조민재 감독
진행 남다은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남다은 평론가의 말처럼 서울독립영화제를 포함한 여러 영화제를 방문하다 보면 모호하게 끝맺음을 해 여운을 남기거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영화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물론 모호함이 지닌 영화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때로는 관객의 감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빛>은 관객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식 없이 충실하게 전달한다. 장면을 구성하는 이미지 또한 인위성과 최대한 거리를 두며 관객에게 솔직함을 전하려고 한다. 만약 영화를 통해 다른 차원의 감동을 받고 싶다면, 진솔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은 빛>을 추천하고 싶다.
남다은 평론가 (이하 남다은):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남다은 평론가입니다. 우선 감독님 인사 말씀 먼저 듣고 인디토크를 시작하겠습니다.
조민재 감독 (이하 조민재): 안녕하세요. <작은 빛>을 연출한 조민재입니다. 반갑습니다.
남다은: 모두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작년 가을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을 하던 중 이 영화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심신이 지치고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별 기대 없이 영화를 틀었는데 첫 장면부터 그냥 좋은 거예요. 어떤 설정도 없이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했고 <작은 빛>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이 영화는 반드시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하고 개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다른 심사위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갔는데, 감독의 정보가 별로 없기도 했고 이전에 어떤 작품을 연출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감독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반드시 본심에 올리고 싶었고요. 말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이 영화가 작년에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줬던 영화였고 더 많은 분과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뻔한 질문이지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시나리오를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아버지 산소가 제주도에 있어서 8년 동안 가지 않았는데, 성인이 돼서 제주도에 방문했을 때 사촌 형이 아버지 산소라도 보고 가라고 해서 그때 산소를 가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는 그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다은: 이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는데 영화를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 영화가 감독님의 첫 장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그 전에 단편을 찍은 적이 있으셨는지? 아니면 어디서 영화를 배우셨는지? 실례가 안 된다면 그것부터 여쭤보고 싶거든요.
조민재: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뚜렷하게 영화를 만들기보다 UCC 같은 것을 많이 만들었어요. 직장 생활을 했었고 영화 및 영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상을 먼저 하다가 나중에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남다은: 꼭 제도 안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무모한 시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화를 함께 하는 동료가 있었나요?
조민재: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영화 스터디를 했었어요. 거기서 좋은 영화를 봤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과정이었어요. 단편부터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이 시나리오밖에 없었어요.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시놉시스를 다 썼을 때 이걸 단편으로 줄여서 만들려고 했어요. 제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단편에서 시작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가 줄어들지 않았어요. 물론 이 영화가 느린 영화이기도 했지만, 가족을 만나면서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까 줄이는 작업이 어려웠어요.
남다은: 말씀을 소박하게 하시지만, 사실 이런 영화가 나온 게 놀라워요. 심사를 하다 보면 규격화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영화는 처음 볼 때 틀을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감각이 남다른 게 느껴졌어요. 캐스팅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볼 때는,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지만 주연인 곽진무 배우가 혹시 연기와 연출을 모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요. 이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자연스럽게 본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다들 전문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떻게 캐스팅을 하셨는지 궁금하고 리허설을 어떻게 하셨는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민재: 곽진무 배우는 영화 스터디에서 만났어요. 스터디에 사람이 많았는데 한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1995)을 같이 봤어요. 저랑 많이 닮아 있었어요.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대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이었고 제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게 싫었는데 진무 형을 보고 어느 순간부터 제가 만약 작업을 하게 되면 같이 작업하고 싶었어요. 나머지 배우님의 경우, 누나 역을 맡은 배우는 필름메이커스에서 이미지만 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는데, 처음에는 제 메일을 안 받으셨어요. 제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장문의 메일을 다시 보내고 나서 나중에 만났는데 사람이 정말 좋았어요. 그 배우가 제 영화에 아예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역을 맡은 배우도 제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도 형을 연기한 배우는 누나 역을 맡은 배우가 추천해주셨는데, 처음 만남부터 휴대전화만 만지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겉도는 형의 느낌이 있었는데 딱 제 형 같았어요. 오디션을 본 배우는 아역배우였어요. 아역배우를 찾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다들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어요. 근데 누나의 아들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는 저한테 굉장히 편하게 대답했어요. 저 역시 아역배우가 편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배우를 섭외했어요. 나머지 배우님들도 그런 식으로 섭외를 했습니다.
남다은: 방금 너무 힘이 들어가는 연기는 이 영화에 잘 맞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촬영 전에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어요. 촬영 4개월 전부터 긴 시간을 들여 만났고, 주로 밥을 먹거나 치킨을 먹었어요. 제가 그런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집에서 젓가락질 등 행동을 분석해서 시나리오에 담았어요. 행동들이 반복적으로 쌓이다보니 현장에서는 굉장히 편했어요. 인물들이 이미 다 채색된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하든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그대로 그분들이 저를 이해하고 있고, 저도 그분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방목하듯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했어요. 모든 중심이 배우들에게 맞춰지도록 노력했어요. 움직임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 앵글을 잡았어요. 감정의 호흡이 끊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다은: 이 영화는 특별한 설정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긴 하지만, 유일하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감독님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 영화 안에서 곽진무 배우가 들고 있는 카메라인데요. 사실 이런 설정이 새로운 것은 아니죠. 영화 속의 영화, 카메라 속의 카메라로 많이 표현되는데, 자칫하면 상투적이고 기술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설정이죠. 근데 이 영화에서 두 카메라의 호흡이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와 카메라가 담아내는 표정이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생각하셨나요?
조민재: 캠코더가 들어온 것은, 자전적인 영화를 찍으면서 자전적인 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했었어요. 저는 제 이야기를 단순히 나열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느끼지 못한 일상적인 순간들이 있거든요. 가족을 만나러 다니면서 체득하지 못한 일상의 순간이 이미지로 멈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과정이 영화 안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캠코더를 활용했고요. 진무 형의 감정과 제 감정이 공간을 나눈다고 생각을 갖고 기틀을 잡았어요.
남다은: 찍은 화면들을 편집할 때 갈등이나 어려움이 없었나요? 혹은 원칙 같은 게 있으셨나요?
조민재: 막상 편집할 때 되니까 모든 걸 빼버리고 싶었어요. 편집하면서 제 모습과 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게 어려웠어요. 첫 번째 버전에서는 거의 많은 장면을 들어냈었죠. 그렇게 2년이 지났어요. 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편집하는 일 자체가 고민이었어요. 영화 이외 제가 존재하고 충돌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2년이 걸렸어요.
남다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장면은 정도라는 인물이 갑자기 화면 안에서 춤을 출 때였거든요. 정말 울컥했어요. 너무 깜짝 놀랐고 그 순간을 영화를 다 보고나서 잊을 수 없었어요. 이런 장면을 어떻게 찍으셨는지 궁금했어요. 우연히 리허설을 하다가 찍기로 결심한 것인지,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내용이었는지, 아니면 감독님의 형님이 이전에 그러신 적이 있어서 포함하신 건지 궁금해요. 춤을 추는 순간 표정과 움직임이 화질이 좋지 않은 캠코더 화면에 담길 때 이것보다 진무와 형의 관계를 잘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민재: 실제로 제 형이 춤을 췄어요. 제주도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꽤 잘 췄어요. 지인 권유로 춤추는 장면을 집어넣었어요. 형이 나이를 먹으면서 요즘 너무 힘이 없어요. 그래서 응원한다는 느낌으로 그 장면을 찍어주고 싶었어요. 멋있는 형이 나이를 먹으면서 힘이 없어지는 인상을 지워주고 싶었어요.
남다은: 배우 분은 어색해 하지 않으셨나요?
조민재: 엄청 어색해 했죠. 처음에는 춤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배우님을 믿고 현장에서 그 장면을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을 했었죠. 저 혼자서 배우님이 올드한 춤을 추실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되게 세련된 춤을 보여주셔서 놀랐어요.
남다은: 한 테이크만으로 촬영을 하신 건가요?
조민재: 한 테이크 혹은 두 테이크 내로 찍었어요.
관객: 마지막 버스 장면에서 어머니와 헤어질 때 어머니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카메라가 아들을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간 이유가 궁금해요.
조민재: 지금 보는 엔딩은 나중에 사용된 엔딩이었고, 원래는 아들의 서사에서 어머니의 서사로 넘어가는 엔딩을 찍고 싶었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좇아가는 서사는 지극히 남성적인 서사거든요. 그런 서사를 역전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서사로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일이 생기거나 아플 때 저희 어머니가 저를 온전히 붙들고 사실 것 같아요. 지금은 혼자 살고, 혼자 버텨내는 것도 힘들지만 아들이 지금 아프니까 본인이 더 힘내서 보듬어야겠다는 느낌으로 어머니 서사로 옮기고 싶어서 카메라 시선을 바꿨습니다.
조민재 어머니: (객석에서) 영화를 찍기 전에 저한테 와서 본인이 병원에 다녀왔는데 머리에 종양이 생겼다고 말했었어요. 그때 너무 막막했어요. 제가 고민을 하다가 아들한테 전화해서 한 군데 말고 여러 군데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어요. 4일 정도 지나 다시 저를 찾아왔는데, 사실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진실을 듣고 싶었다고 말해줬어요.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저희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려웠어요. 배우를 못 구했을 때 내가 출연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아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가족이 다치는 걸 허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조민재 감독이 저한테는 아들이지만 매우 존경스러운 사람이이에요. 감사합니다.
관객: 제가 정확하게 못 봐서 헷갈릴 수 있는데 어머니와 진무가 카메라로 서로 찍어주는 장면에서 어머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캠코더 시점인데, 진무를 보여주는 장면은 감독님 카메라 시점으로 파악을 했거든요. 그런 다음 진무가 양복을 입고 나왔을 때 다시 바뀌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맞는지 궁금하고요. 또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진무가 사진을 몇 장 보여주고 아버지 묫자리를 옮기는 장면으로 전환되잖아요. 그렇게 편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민재: 둘 다 캠코더 영상인데, 질감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두 사람을 찍어줄 때 환경에 차이를 주고 싶어서 진무를 카메라로 담을 때 빛 노출을 떨어뜨리고 고의적으로 노이즈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진무와 아버지를 뒤섞을 수 있는 질감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캠코더 안에 공간을 나누려고 했어요. 다른 카메라를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그러지는 않았어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마지막 장면은 현실은 아니고 꿈속의 공간이에요. 환영 비슷한 것인데, 캠코더로 촬영한 공간과 제 카메라로 촬영한 공간이 따로 있잖아요. 정신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사실 영화는 정신적인 무언가를 시각화하는 매체이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캠코더의 공간과 제가 들고 있는 카메라의 공간 사이에 있는 무의식 공간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마지막 장면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어요. 가족이 너무 평범하게 모이고, 그리고 그게 바로 깨지고. 굉장히 영화 같은 장면이죠. 현실의 빛이 꿈속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물론 치유로 이어질지 모르지만요. 영화를 찍으면서 제 스스로가 마주한 실제 삶이 있거든요. 영화를 찍음으로써 강압적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마주치는 순간 현실의 빛이 안으로 들어오고, 이것이 또 새어나오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제 고민이나 궁금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감독님 말씀을 듣다가 생각났는데 원래 여성적 서사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가 엔딩은 결국 아버지의 시체를 담아서 내려가는 남성적인 서사로 마무리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민재: 작법으로 여성 중심 서사로 넘어가는 게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보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스스로 해소되지 않은 장면이 몇 개 있었어요. 캠코더 안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제가 갖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잘 안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게 계속 뒤로 미뤄진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늦어져서 어머니의 서사로 완전히 넘어가지 못했어요. 아버지의 것을 너무 오랫동안 유보하다 보니까 뒷부분에 아버지 서사로 진행했어요.
남다은: 사실 엔딩을 처음에 찍지 않고 2년 후에 찍으셨죠?
조민재: 네.
남다은: 엔딩이 있고 없는 게 큰 차이를 만들죠. 이 영화는 물론 엔딩이 없어도 좋은 영화이지만, 엔딩 덕분에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에 어머니의 서사로 영화를 마무리했다면 그 역시 의미는 있었겠지만 본인에게 솔직하지 않은 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본인과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고, 끝까지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사실 요즘 독립영화가 잘 보여주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거든요. 많은 독립영화가 모호하고 열린 결말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척을 하지만 비겁할 때가 많아 보여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영화는 정말 강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미라 장면을 찍으실 때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영화가 전반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고, 감독님 본인이 보기에도 괴로운 면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을 말씀해주시고, 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엔딩을 다시 찍은 이유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민재: 미라 장면은 진짜 못 찍을 줄 알았어요. 그때는 제 철학이 확립되지 않았어요. 말씀해주셨다시피 이 영화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 엔딩을 만들고 싶었는데, 제 스스로 정의된 게 없다보니 다른 것들을 만들어냈어요. 근데 계속 정리할수록 미라 장면이 알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갖고 이 장면을 찍은 것 같아요. 미라 몸통이나 관을 제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하여튼 이 장면을 찍기 위한 과정이 이상한데, 제 생각을 이 장면으로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관한 외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도 그 장면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영화의 대부분 서사는 고여진 시간이었는데, 아버지 산소를 직접 보는 순간 고여진 기억들끼리 충돌이 있었어요. 진무가 아버지 산소를 봤을 때 아무것도 없는 흙덩이를 보고 제가 왜 이렇게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는지 궁금해졌어요. 근데 이걸 찍고 나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원래 사진들도 필름이 몇 년 지나면 현상이 안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버지 카메라를 발견하고 그것이 온전히 날아가는 것처럼 연출했어요. 지금은 물론 그것을 날리기 싫어서 아버지 현상 자체를, 그것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 말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남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해주셨어요. 아, 결말을 찍는데 2년이 걸린 이유를 말씀 안 해주셨어요.
조민재: 2년이 걸린 이유는 사실 제가 엔딩을 못 찍었어요. 병원 장면을 마지막 회차에서 찍었는데 그때 돈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영화에 대한 반응도 안 좋았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희 어머니가 우연히 배급사 ‘시네마달’에서 제작한 영화에 출연하신 적이 있으세요. 저희 어머니가 ‘내 아들이 영화를 찍었는데 봐달라’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다른 감독님을 통해 제 영화를 보내드렸더니 시네마달로부터 제 영화가 재미있는데 엔딩을 못 찍은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김일권 대표님의 지적이 정확했어요. 대표님께서 제가 엔딩만 찍어오면 배급해주신다고 하셔서 거침없이 찍었어요. 그래서 지금 보신 엔딩을 2년 만에 찍었어요.
관객: 영화가 자연스러워서 좋았는데, 진무가 아픈 캐릭터라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캐릭터를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아, 맞아요.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이상한 말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 대한 테마를 구상했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저는 기억, 환영 혹은 시간에 대한 철학을 하고 싶었어요. 기억이 지워진다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근데 기억이 지워진다는 설정 자체가 말씀해주신 것처럼 되게 상투적이에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자아성찰도 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설정이 들어가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게 두려워서 캐릭터가 아무런 설정을 갖지 않게 되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사실 제 친구들은 제 영화를 보면 대부분 재미없다고 말해요. 그래서 아무런 설정 없이 가장 어려운 서사로 영화를 찍기보다 다른 사람이 가장 힘들이지 않고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물론 덕분에 저는 가벼운 서사 안에 제가 하고 싶은 시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었어요.
남다은: 이 영화의 편집 지점 중에 아름다운 지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입원하기 전 장면에 있어요. 진무 어머니 집의 형광등이 망가져서 진무가 새로 끼워주고 딸깍했더니 누나와 형 집으로 풍경을 옮기는데, 굉장히 평화롭잖아요? 그들이 한 공간 안에서 같이 있는 장면은 없지만, 그런 편집으로 그 이상의 느낌을 안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저렇게 튼튼하게 잘 살아있기만 하면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걸 염두하고 편집하신 건가요?
조민재: 원래는 사람이 없는 공간만 있는 장면이었어요. 빈 공간으로만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시나리오대로 찍었어요. 그런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없는 공간을 버리고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공간으로 바꿨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단단해졌어요. 이런 일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들 이어져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가족을 자주 만나러 다니지 않지만, 이렇게 가족 간의 단단한 느낌을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 형광등 이미지를 몽타주로 만든 이유는 정선에 가서 로케이션을 돌다가 밤에 혼자 돌아다녔는데, 집들마다 켜져 있는 형광 빛을 본적이 있어요. 그 풍경을 보면서 집들마다 작은 빛을 갖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부터 빛에 대한 이미지와 몽타주를 짜기 시작했어요.
남다은: 만약 기존에 구상하신대로 장면을 찍어 편집했다면 지금 같은 느낌은 덜 했을 것 같아요. 혹은 멋을 부리는 느낌이 났을 수도 생각해요. 중요한 질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면 엄마 집, 누나 집 그리고 형 집은 공들여서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이 있는데, 진무 집만 잘 안 보여주더라고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조민재: 영화에 나오는 공간들이 다 저희 가족의 공간들이에요. 근데 제 집만 제 공간이 아니었어요. 실은 애정이 가지 않았어요. 당시에 제가 한창 크로마키를 공부하고 있어서 집 내부를 촬영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 형 그리고 누나 집에 방문했을 때는 가구 하나 배치만으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습관을 미묘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근데 제 집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남다은: 이 영화가 올해 개봉할 예정이죠?
조민재: 어,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다은: 마지막 질문으로 아직 이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지만,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계시는지, 혹은 어떤 장르를 준비하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어요.
조민재: 열심히 글을 쓰고 있고요. 이번 년도에 제작 투자를 받아 제작하고 싶은데, 사계절을 담아내는 영화를 생각하고 있어서 촬영 기간이 2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영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거의 다 썼고요. 최대한 노력해서 이번 년도에 투자를 받아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남다은: 개인적으로 감독님을 뵙고 싶었어요. 제가 이 영화에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이 굉장히 좋습니다.
조민재: 발렌타인데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콜릿을 사와서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돌릴까 고민했는데 인디스페이스에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다고 해서 안 했어요.(관객 웃음) 오늘 자리에 끝까지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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