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한줄 관람평
김정은 | 할머니의 호흡과 언어로 담아낸 소성리의 일상과 풍경, 그리고 역사
주창민 | 카메라는 끝내 망령이 되어 다시 이념 갈등에 놓여 버린 할머니들 주변을 맴돈다
승문보 | 삶과 시간에 묻어나는 역사의 상흔
박마리솔 |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연대
도상희 | "사람이 여기 있다"
권정민 |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윤영지 | 지켜야 할 이 작은 평화
<소성리> 리뷰 :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경북 성주시 초전면 소성리. 2017년 4월, 국방부는 이곳에 있던 골프장을 국유지와 교환한 후 주한미군 사드 기지로 제공했다. 같은 해 9월 7일 사드4기의 배치가 완료되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작은 하천이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구성리, 상소리, 소야리 등을 병합하면서 소야와 구성의 이름을 따 소성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출처 두산백과) 영화의 제목은 ‘소성리’이다. 이 담백한 제목이 가진 의미는 뭘까. 영화는 소성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마을에 사는 주민들, 그 중에서도 도금연, 임순분, 김의선 세 할머니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별한 절경이나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농민들의 마을에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함께하고 있다. 6.25때 잔인한 학살에 휘말렸던 경험과 무릎이 아파 날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화면 위에 섞여 들려온다. 처음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 남편과의 사별, 어려서 죽은 아들의 꿈 속 모습, 전쟁 때 처음 본 ‘빨갱이’들이 "진짜 빨간 사람은 아니고 우리랑 똑같은 색깔이더라"는 사실, 그리고 마을 여성들의 자주적 삶을 위해 결성했다는 팔부녀회 이야기까지. 소성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역사가 있다. 학살과 이념대립, 농사와 가족의 대소사가 소성리의 정적인 풍경을 담은 긴 인서트컷들 위에 조용히 이어진다. 그래서, 이 많은 이야기들이 사드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사드는 할머니들의 역사 안으로 불현듯 침입한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의 말대로 “젊은 시절 한국 전쟁을 겪었던 그들에게 사드는 과거의 재현이다.”. 작중에서 도금연 할머니는 사드가 들어오고 나서 ‘옛날처럼’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마을이 시끄러워져 분위기도 변했다고 말한다. 사드 전후의 소성리는 미군과 경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서북청년단, 사드 반대 시위대로 대립과 투쟁의 장이 되었다. 영화는 그들의 가만한 역사에, 삶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는 모습을 끈질기게 좇는다. 앞서 보여준 긴 평화 위에 덧입혀지는 폭력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 하다. 그때 카메라가 가장 적극적으로 담는 것은 도금연 할머니의 얼굴이다. 논밭 옆에 앉아 웃으며 중참을 권하던 할머니는 이제 시위대 옆에 함께 서서 경찰들을 바라본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성리의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임순분 할머니가 어느 날 팔부녀회를 결성해 마을 여성들의 자주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역사는 조금씩 변한다. 변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변해간다. 팔부녀회에 동참해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듯, 그들은 경찰과 군인과 이념이 대립하는 투쟁의 장으로 나온다. 이것은 특별하고 근엄한 정치적 결심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소사의 일부분이며 소성리라는 작은 역사를, 삶을 되찾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의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
87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소성리의 할머니들을 한 명 한 명씩 만나 대면하게 된다. 영화가 만들어진 때와 현재의 시국은 변했다. 사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국민들의 대다수는 성주의 문제에 대해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러나 소성리 할머니들의 삶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사드배치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추론이나 열정적인 항변을 유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 안으로 조용히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마침내 이해하게 만든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평범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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