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자, 노래하듯이
<대관람차> 백재호, 이희섭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영화는 묵직하고 폭력적인 서사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와 같은 영화들이 주는 개개의 시사점은 분명하지만, 가끔씩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 개운하다’는 감상을 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기 이틀 전, 서울에는 비가 내렸다. 인터뷰를 위해 역사에 내린 순간 어디선가 실려 온 부드러운 향수 냄새와 여름 비 냄새가 섞여 풍겨왔다. <대관람차>라는 영화에 향기가 있다면 이렇게 보드랍고 선선한 향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동연출을 맡은 백재호, 이희섭 감독을 만났다.
Q: 한일 합작 영화, 음악 영화, 여행 영화, 꿈과 삶에 대한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영화를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요소를 활용하고 있는 영화인데, 이런 다양한 분과를 하나로 묶어 <대관람차>라는 영화를 기획하게 된 비화가 궁금하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 극중에서 대정 역을 맡은 지대한 배우에게 연락이 왔다. 오사카에서 음악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고향 후배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소개를 통해 PD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미 PD님이 갖고 있는 트리트먼트가 있었다. 다소 전형적인 내용의 이야기라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PD님이 일본 오사카에서 촬영을 하는 음악 영화면 되니까 시나리오를 마음껏 써달라고 했다. 이 기회에 음악과 일본을 좋아하는 이희섭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제안했다. 그러고는 우선 둘이서 오사카를 갔다. 2주 정도 답사를 하면서 느낀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새롭게 구상했다.
이희섭 감독(이하 이): PD님이 음악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일생의 꿈이라고 했다. <원스>(2006)나 <비긴 어게인>(2013)같은 느낌을 생각하셨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인 뮤지션의 이야기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 보니 차라리 뮤지션들의 이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Q: 일본, 그 중에서도 오사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쓴 이유는 무엇인가?
백: 일단 PD님의 주문이 오사카였다. 그래서 우선 오사카에 가서 이 곳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뭘까 생각했다. 오사카는 한국에서 가깝기도 하고, 여행 경비가 비교적 싼 편이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조금만 용기를 내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판타지적인 이야기보다는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가 어울릴 것 같았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삶이 바뀔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이: 극에 출연하는 스노우, 구리코, 마미, 빌리 등의 인물들이 실제로 오사카 사람들이다. 우리가 만난 오사카 사람들은 그 캐릭터들처럼 유쾌하고 친밀감 있었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일본인의 전형적인 이미지, 선입견과는 달랐다. 사실 오사카라는 곳이 아주 특별한 도시는 아니다. 풍경도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무국적인 느낌도 나는 도시다. 보다 일본의 느낌이 많이 나는 교토 쪽도 답사를 해봤는데, 그보다는 오사카가 더 끌렸다.
Q: 해외에서 촬영한 독립영화는 흔하지 않은데, 어떻게 결심하고 실행하게 되었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백: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이전에 이희섭 감독과 함께한 <산타바바라>(2013)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게 LA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함께 해외에서 촬영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산타바바라>때 백재호 감독이 프로듀서였다. 그것만 믿고 갔다.(웃음)
백: <대관람차>의 조감독과 조명감독 역시 <산타바바라>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그때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이들이라면 돌발상황이 생겨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인 스태프, 배우와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가 원활하게 완성될 수 있도록 프로덕션부터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이: 문화차이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한국에서는 괜찮지만, 일본에서는 무례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점들을 잘 몰라서 헌팅을 꼼꼼히 많이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서 꼭 표현되어야 할 장소는 사전에 다 정해놓고 딱 정해진 곳에서만 촬영을 했다. 짧은 기간에 해외촬영을 하려면 그게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Q: <대관람차>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영화는 대관람차 안의 우주로 시작해, 대관람차 밖의 우주로 끝난다. ‘대관람차’라는 기구가 삶의 방식에 대한 메타포라면, 그 기구를 대하는 우주의 처음 모습과 끝 모습이 다르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백: 처음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원제는 ‘당신의 우주는 괜찮아요?’였다. 제목 후보 중에 ‘우주’와 ‘대관람차’를 이용한 제목이 많았다. 편집으로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는 영화였다.
이: 질문에 이미 답이 있다. 대관람차로 시작해 대관람차로 끝나게끔 의도해서 편집을 했다.
Q: 영화에는 우주(space)에 대한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주인공의 이름 '우주', 우주미아, 스페이스 오딧세이, 보이저호 등)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백: 이 부분은 아예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대관람차에 앉아있는 우주의 상상이라고도 생각해봤다. 영화의 초반 대관람차에서 나왔던 음악이 엔딩크레딧에도 나온다. 나의 전작 <그들이 죽었다>(2014)를 보신 분들이나 <대관람차>를 여러 번 보신 분들은 이렇게 해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극중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 우주의 각기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백: 저와 이희섭 감독 둘 다 SF를 좋아한다. 우주라는 곳은 미지의 장소이고, 동경이나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장소이다. 내가 사는 현실보다는 나은 곳,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동경이나 꿈과 같은 의미를 표현하고 싶어서 우주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이: 스페이스(space)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우주를 공간의 의미로 생각했다. 영화에 대관람차에 타고 있는 우주의 모습은 나오지만, 내리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대관람차라는 공간의 의미를 확장시켜 우주라는 이름에 투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 대관람차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간을 강조하는 샷을 많이 찍었다. 앵글도 공간 안의 우주(주인공) 느낌으로 만들었고.
백: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이 우주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았다. 우주 여행에 대한 만화들도 많고, 실제로 우주비행사가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우주 탐사는 다소 먼 이야기이지 않나. 어릴 적 꿈이 우주비행사라고 했으면 허황된 꿈이라고 놀림 받았을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일본은 섬나라니까 어딘가로 올라가고 싶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경도 일본이고 주인공과 그 주변의 것들이 우주와 관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을 찾아 다니는 우주, 후쿠시마에서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하루나. 우주와 하루나는 무언가를 잃었고, 또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두 인물이 과거에 겪은 상실을 특정 재난 사고를 연상시키는 사건들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국적도 성별도 다른 두 인물의 이런 연결점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나?
백: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과 한국이 다른 점이 뭘까?’를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답사를 하면서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었다. 그런 사건들은 나 하나가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을 겪고 나서 두 나라 모두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런 이야기를 음악으로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국적과 성별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다. 구분 없이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했다.
이: 한일 간의 관계보다는 개인과 개인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Q: 인상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우주와 하루나의 주변에 존재하면서 그들을 살펴주는 대정과 스노우라는 두 축이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아주 다르면서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는데,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백: 어떤 방향으로 본다면 스노우는 우주가 상상한 ‘대정의 이상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에서 음악을 하고 살겠다던 대정의 말처럼, 스노우는 대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사람이다. 그래서 두 인물의 설정 자체는 비슷하다. 음악을 하고, 친근하고, 기러기 아빠이고.
이: 우리 둘 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있다. 대정과 스노우는 우주와 하루나의 아버지 같은 인물들이다. 대정이 현실의 아버지라면 스노우는 이상적인 아버지가 아닐까.
백: 대정은 우주가 직접적으로 동경하는 선배이고 이상향이기도 하다. 우주에게 대정은 응원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실종되었다. 아마도 우주는 대정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의 꿈과 이상이 어딘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계속 대정을 찾아 다니고 스노우 같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Q: 일본 배경에 일본어 연기로 이루어진 영화라 그런지 <대관람차>에서는 일본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관람차>의 따뜻한 분위기, 동화적인 캐릭터, 편안한 내러티브를 형성하기 위해 연출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백: “일본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고, 루시드폴의 음악을 쓸 수 있다.” 이게 우리 영화의 무기였다. 전작들과는 다르게 만들어 볼 수 있는 영화라서 흥미를 느꼈다. 영화라는 판타지 안에서, 이런 따뜻함과 이런 좋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듣고 싶은 말’, ‘듣고 싶은 위로’를 중점에 두었다. 내가 정말 듣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백재호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 작업이 끝나고서야 말했다. 백 감독의 전작과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주길래 처음에는 어떻게 찍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오사카에서 백 감독이 혼자 앵글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 저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우주가 눈으로 담는 풍경을 또 다른 우주가 담는다는 느낌.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풍경 인서트는 모두 우주의 시선으로 본 풍경이다. 초반에 인서트로 나오는 곳들은 이후에 극중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로 등장한다. 우주라는 인물은 내가 보는 백재호 감독, 백재호 감독이 보는 나, 나아가 서로가 보는 서로가 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따뜻한 시선으로 찍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백재호 감독님은 배우 출신, 이희섭 감독님은 촬영감독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두 분이 함께 공동연출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또 연출 외의 스태프으로 영화 창작에 참여를 해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 함께 연출을 하면서 겪은 장점이나 특이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백재호 감독은 프로듀서 출신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는 촬영감독 일을 쭉 해왔는데, 촬영감독으로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원래 하고 싶었던 내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없었다. 주변에서도 ‘너는 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왜 안 하냐’는 말을 해왔다. 그 중에서 직접적으로 연출을 해보라고 이야기를 한 사람은 백재호 감독이었다. 계속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백 감독이 함께 연출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인생의 새로운 계절로 생각하고 이번 연출에 참여했다.
백: 프로듀서 일을 할 때 이희섭 감독을 알게 되었다. 이 감독은 촬영자로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계속 해보려는 사람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면서 이 감독님이 연출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촬영감독의 경력만으로는 연출로 데뷔하기가 어렵다. 그런 때에 나에게 영화 제안이 왔고 PD님에게 이 감독님과 함께 연출해보고 싶다고 건의했다. 이전에도 계속 해왔던 저예산영화를 똑같이 반복해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공동연출로서 답사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생각한 것들을 같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공동연출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거다. 어떤 선택을 할 때도 한 번 더 물어보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장점이 많다. 편집할 때도 감독 둘에 편집기사님까지 머리가 셋이니까 놓치고 지나가는 걸 누군가는 발견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또 촬영자로서 편집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보통은 촬영자가 편집을 같이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촬영하면서 발견한 것들을 편집기사님께 바로 말씀드릴 수 있었고 촬영감독만 아는 컷의 리듬을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Q: 강두 배우의 첫 일본어 연기, 하루나 배우의 첫 기타연주, 스노우 배우의 첫 연기라고 들었다. 기준을 두고 배우를 구한 것 같지는 않은데 <대관람차> 배우들의 캐스팅 비화가 궁금하다.
백: 사실 처음에는 강두 씨가 가수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대한 배우가 다른 현장에서 만났다며 강두 배우를 추천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TV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 강두 씨가 나왔던 모습을 떠올려보았는데, 괜찮겠다 싶어 한번 만나보았다. 이희섭 감독과 셋이 만나 이야기하면서 강두라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이 사람만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표현할 수 있는 우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이: 처음 만난 날 강두 배우가 이전에 밴드를 했고 베이스를 치다가 데뷔 전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두 배우라면 우주를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백: 강두 배우를 만나고 나서 현재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강두 배우에게 맞춰서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었다. 호리 하루나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뉴커런츠 섹션에 상영된 일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국제경쟁섹션이라 외국인이 많은데 일본팀이나 우리팀이나 영어를 잘 못해서 구석에 있다가 친해졌다. 언제 한번 영화 같이 하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대관람차>를 위해 오사카에 갔을 때 하루나 배우가 나오는 CF를 보고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쓰는데, 하루나 캐릭터도 하루나 배우의 이미지를 보고 썼다. 강두, 하루나 모두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해 단기간에 많은 것을 이뤄냈다. 강두 배우는 한 달 만에 일본어를 이만큼 배웠다. 시나리오가 촬영 전까지 계속 수정되어서 일본어 대사도 그때마다 바뀌었다. 엄청 헷갈렸을 텐데 강두 배우는 바뀐 대사도 전부 잘 외워왔다.
이: 하루나도 2-3주만에 기타를 다 뗐다. 이전까지는 기타를 만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백: 스노우는 원래는 배우가 아니라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PD님이 초대한 공연장에서 스노우의 공연을 보고 ‘이 사람이다’ 싶었다. 무대에선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데, 쑥스러워 하며 귀엽게 내려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이렇게까지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 해주실 줄 몰랐다. 스노우라는 캐릭터를 정말 잘 살려주셨다.
백: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인데, 그 역할을 잘 해줬다.
이: 세 명의 천재와 함께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Q. 극중 우주의 자작곡으로 나오는 곡은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 자체가 우주와 하루나라는 인물, 또 영화 속에서 꿈꾸며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바치는 곡 같았다.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이 곡을 테마로 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인지 궁금하다.
백: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물이 되는 꿈’을 생각하고 썼다. 처음 연출을 제안 받았을 때 신뢰를 가지게 된 건 루시드폴의 음악을 써도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럼 그 노래를 쓸 수 있단 말야?’라는 생각에 연출에 매력을 느꼈다. 음악 영화는 음악이 좋아야 한다. 루시드폴의 음악이 잘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나간 영화다.
이: 일본에서 ‘물이 되는 꿈’이 수록된 앨범을 들으며 걸었는데, 오사카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악들이었다. 루시드폴이 아니었다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크게 영감을 주었던 음악이다.
Q. 영화에서는 가수 루시드폴의 음악과 더불어 스노우 배우의 곡이 주요 음악으로 등장한다. 이 음악들을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백: 실제로 스노우의 노래가 매우 좋았다. 우주는 루시드폴의 노래로, 등장하는 일본 친구들은 스노우 노래로 표현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스노우의 공연을 보았다. 그러면서 스노우의 노래 역시 이야기에 많이 반영이 되었다. 사용된 메인곡들은 가사를 먼저 해석해서 받아본 뒤 선택한 곡들이다. 스노우 배우가 알맞은 노래를 골라주기도 했다. 음악감독 역할도 함께 한 것이다.
Q. 영화가 마무리 되면서 모든 주요인물들이 오사카를 떠나게 된다. 그러한 ‘떠남’의 행위는 오사카에서 노력과 화합으로 용기를 얻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처럼 표현되고 있는 듯 했다. 영화에서의 떠남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백: 사실 우주는 마지막에 오사카를 떠나지 않았다. 엔딩 후로 한국을 갔을 수도 있고, 안 갔을 수도 있다. 우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응원하듯이 ‘그래도 이 친구가 처음보다는 더 괜찮아졌구나’하는 시선으로 봐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하루나는 떠났고 스노우는 떠날 것이지만 우주는 사실 영화의 시작점에서부터 이미 떠나 온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우주는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대관람차는 다시 돌아오는 기구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제 우주에게는 떠난 이들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떠난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백: 스노우도 하루나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떠나기 전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겠지만.
이: ‘떠남’이 상실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 한국에서도 분명히 누군가는 우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대관람차>를 관람할 관객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 편안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내가 20대 때 찍은 단편들을 보면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풀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영화란 어려운 얘기를 쉽게 푸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보고, 생각날 때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정보 없이 한 번 보신 뒤 자기만의 정보를 갖고 또 보신다면 더 새롭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백: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라는 건 보는 관객이 완성하는 것이지 않나. 우리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걸 보는 것은 관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직접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 느낌이 진짜일 것이라 생각한다. 대관람차라는 놀이기구 자체가 그렇다. 타는 사람 모두가 각각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는 기구이다. 어떤 사람은 타면서 편안할 수도, 또 어떤 사람은 무서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대관람차처럼 이 영화 역시 보이는 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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