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이 작은 평화 <소성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8월 24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배일 감독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소성리>는 투쟁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소성리라는 작은 마을과 그곳에 사는 할머니들의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낮고 느린 삶의 모습에 더욱 집중한다. 우리가 투쟁에 대해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호흡과는 정 반대되는 모습들이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전쟁의 시공간, 역사와 현재였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저 자신 몫의 삶을 굳건히 살아나가는 ‘할매들’이 있었다. 상영 이후 극장을 찾은 관객들과 박배일 감독은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진행은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정지혜 영화평론가(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정지혜입니다. 먼저 <소성리>의 박배일 감독님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박배일 감독(이하 박배일): 안녕하세요, 오늘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연출을 맡은 박배일이라고 합니다.
정지혜: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고, 올해 개봉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투쟁의 현장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긴 제작기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총 3개월 정도의 제작기간이 소요된, 비교적 빠르게 작업된 영화라고 알고 있어요. 감독님은 이 사안을 빨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배일: 작년 6월 말에 첫 촬영에 들어가서 10월 초에 상영이 되었어요. 그 당시에 소성리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더더욱 멀어질 것 같았고, 영화라는 매체로 이야기를 알리는 가장 큰 장은 부산국제영화제라고 생각했어요. 소성리라는 마을, 그리고 소성리에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얼굴, 주름 같은 것들을 지금 관객분들과 나누어야 소성리를 잊는 시간이 조금 더 더뎌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정지혜: <소성리> 이전의 감독님 작품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밀양 송전탑 투쟁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두 편을 제작하신 경험이 있습니다. <밀양전>(2013)과 <밀양 아리랑>(2014)이 본인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기점이었다고, 밀양이 있었기에 <소성리>를 찍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밀양에서의 경험이 이후의 작업들에 어떤 영향들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배일: 밀양에 2012년에 들어가서 2015년까지 머무르며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작업 방식이었어요.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꿈꿔왔던 것이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그분들과 호흡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언론의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언론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찌 보면 영화 자체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인 백과사전처럼 만들게 되었어요. 그 공간에서 꼭 하고 싶었던 건 땅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기 그대로 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거든요. 다행히도 <소성리>를 만들 당시에는 <파란나비효과>(2017)처럼 사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영화도 있었고, 언론 상황도 좋아졌기 때문에 조명하지 않는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비추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정지혜: 영화감독으로서 영화 자체의 만듦새나 완결성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신 것 같고, <소성리>라는 작품은 그 현장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입니다. 마치 환영처럼 표현된 카메라의 움직임도 존재하고, 전쟁에 대한 서사가 소성리의 텅 빈 공간의 위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공동체 안에서 투쟁을 바라보는 미디어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감독으로서 영화적인 서사, 미학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배일: 일단 3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다짐이 미디어 활동가의 정체성 안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언제 나와서 어떤 방식으로 관객분들을 만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미디어 활동가의 고민인 거죠.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데 사람들의 목소리는 우리 안에서 계속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 최소한의 옅음의 정도를 지속시키기 위해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그와 관련해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미디어 활동가의 영역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화로, 영화감독으로 관객분들과 만나고 있는 거잖아요. 작업 속도나 방식, 관객과 만나는 형태는 미디어 활동의 영역에 있지만 결국 영화로서 관객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감독인 제게 늘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있어요. 현장을 어떤 호흡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영화적인 미학이라 할만한 부분들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독립 다큐멘터리를 하는 저의 노동은 그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 화면 전체가 할머니들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배일: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어떤 호흡과 시선으로 만들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이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누구에게 기댈까 생각했을 때 할머니들의 호흡, 할머니들의 약간 낮은 시선 같은 것들에 기대서 영화가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낮은 트라이포트로 낮은 시선을 유지하며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느린 호흡에 맞춰 길게 찍었고,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규칙도 있었어요. 이것이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심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지혜: 저도 거기에 조금 덧붙이자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THAAD, 이하 사드)와 관련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오신 분이라면 초반 30분 정도까지는 이 영화가 소성리라는 곳에 살고 있는 여성 농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소성리>는 사드라는 것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도록 그리지 않고, 할머니들이 그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해 사드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데요, 이처럼 공간이 사적인 역사에서 나아가 현재의 의미까지 꿰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박배일: 요즘 매일 밤 온라인으로 관객분들의 반응으로 확인하는데요, 그중 ‘사드 이야기인 줄 모르고 보았는데, 사드 이야기더라’하는 글이 있었어요.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소성리라는 공간이 사드가 배치된 공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영화를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오롯이 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거든요. 할머니들이 늘 외치는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구호가 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그 ‘평화’라는 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상태가 평화롭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지루한 일상에서 지루함이 깨졌을 때인 것 같거든요. 그것이 즐거운 상황이든 즐겁지 않은 상황이든요. 평화롭다는 것은 결국 지루한 일상의 연속인 것인데, 그런 지루한 일상들을 먼저 보여 주고 그것들이 사드가 들어오며 어떻게 깨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할머니들께 할머니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전쟁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전쟁을 경험하셨기 때문에 사드가 들어오는 순간 과거 전쟁의 상황들이, 그 시간들이 다시 소환되는 거죠. 사드라는 것이 단순히 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다시 체험하게 하면서 지금 그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거예요. ‘우리는 죽어도 되지만 너희가 잘 살려면 전쟁이 없어야 한다. 단순히 소성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이런 의미의 확장 속에서 그분들이 사드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거거든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반에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분들의 평화,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관객: 서북청년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지면 매체로 접하는 것과 현장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영화로 대면하는 것은 다른 충격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현장에서 직접 보신 감독님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고요, 현재의 소성리 할머니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박배일: 소성리에 있던 3개월의 시간 중 가장 화나는 순간이었어요. 집회 신고를 하러 갔는데 누군가 먼저 해두었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집회와 행진을 한다는 내용으로요. 그 당사자들이 서북청년단이었어요. 첫날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아주 많이 왔고 그 이후로는 소소하게 일주일 동안 매일 왔습니다. 금연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매번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오니까 어느 날 시내에 나가셨다가 시청 앞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걸 보고는 너무 놀라신 적도 있어요. 이제 시청도 서북청년단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가 보다 걱정하시면서요. 생각해보면 시청은 원래 태극기가 걸려있는 곳이거든요. 할머니들은 경찰이나 군인들보다 서북청년단에 대한 더 큰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분들은 전쟁을 경험한 이후로 죽지 않기 위해서 ‘빨갱이’가 되지 않으려 평생 노력하며 살아오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서북청년단이 와서 대놓고 빨갱이라고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큰 공포와 트라우마가 생긴 거죠. 또 내용뿐만 아니라 형태도 문제가 많았죠. 할머니들 댁에 허락 없이 들어가서 화장실을 쓰기도 하고요. 지금은 사드 배치가 완료되었고 사드를 작동시킬 수 있는 지지대 등을 짓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성리에는 한국군과 미군이 상주하고 있어요. 그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증축하기 위해 트럭 수십 대가 자재를 싣고 가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고, 최근에는 오가는 인부들을 막기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그분들은 여전히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정지혜: 영화 초반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중에 그곳이 사드의 현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단지 편집의 묘라기보다는 흔히 개인의 역사나 과거사로 치환되는 것들을 과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재로 확장해나가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영화의 내용적 측면뿐 아니라 그것을 보여주는 형식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박배일: 소성리와 성주는 누군가가 죽은 공간이고 학살을 당한 공간이에요. 공간이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어떤 역사가 배어있는 공간인 거죠. 특별하게 할머니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다른 시선들도 등장하는데, 그것은 꿈을 이야기하거나 망령을 보는 이야기를 할 때였어요. 그 부분을 일상생활 안의 호흡과 똑같이 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되 그 공간에 머물러있는,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인터뷰를 먼저 배치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어요. 한 번은 전지적 시점으로 소성리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전쟁 당시 비행기를 피해 어떻게 도망 다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비행기의 시선이 등장해요. 그 때 비행기가 향하는 곳은 사드가 배치되어있는 공간이에요. 사드가 내는 음들이 있는데 그 공간과 가까워질수록 그것들을 부각시켜서 영화적 미학으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면 소성리 자체도 감각할 수 있고 소성리 안에 살고 있는 전쟁을 경험한 그들의 불안도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것이 미학적으로 적절한지, 뛰어난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만든 것이죠.
관객: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특정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낸 것인지, 자연스럽게 촬영을 이어나가고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배일: 밀양 영화들 같은 경우 인터뷰를 딱 한 번 했어요. 인터뷰를 한 시기가 제가 밀양에 들어간 이후 1년 반 정도 지난 뒤였어요. 그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다 아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은 거죠. 그분들도 ‘영화감독 박배일’에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 그냥 ‘배일이’에게 이야기한 거고요. 많은 시간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이었다면, <소성리> 때에는 노하우가 쌓여서 가자마자 바로 인터뷰를 했어요. 하지만 소성리에 들어가기 전에 이분들의 삶에 대한 사전조사는 모두 마친 상태였어요. 특정 이야기들을 반드시 영화를 위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터뷰를 부탁드렸고, 무례할 수도 있지만 첫 촬영부터 인터뷰였어요. 그러니까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전에 기획은 완성되어 있었던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3개월 안에 완성이 가능했고 그건 밀양에서의 3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지혜: 운동의 공동체 안에 깊숙이 들어가서 작업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현장과 개인이 관계 맺는 방식'과 '현장과 감독이 관계 맺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지향점과 지금 감독님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어떨까요?
박배일: 제 방식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밀양의 경우에는 제가 이 공동체에 스며든 정도에 비해서 카메라가 많이 떨어져 있어요. 영화적 시선이나 카메라의 거리 같은 것이요. 그런 의미에서 <소성리>는 제가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영화가 나왔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같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만 제가 카메라를 들면 늘 소성리의 거리가 나와요. 도시인이 도시 속에서 살아가며 누군가와 관계 맺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렇지만 영화가 늘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서는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없게 만드니까 언젠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제가 서있는 현장에 오롯이 와있는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말 같지도 않고 불가능할 것 같은 말을 굳이 지금 이야기해서 언젠가 꼭 가능케 해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웃음)
관객: 영화의 이미지나 소리가 참 좋았어요. 할머니들의 모습도 너무 좋았고요. 너무 잘 봤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면 오직 할머니들을 조명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분명히 3개월 동안 인상 깊었던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있으셨을 것 같아서요.
박배일: 제가 최근에 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저는 인터뷰의 역할이 그 순간에 다시 가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남성의 언어는 대체로 그 상황에 도달하기 이전에 판단을 해서 그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로 설명해요. 주장을 하는 느낌이죠. 할머니들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순간순간의 상황들을 묘사하시거든요. 사실 <소성리>에서 남성도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이장님을 인터뷰했던 적도 있어요. 이장님이 할머니와 연대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너무 열심히 해주셔서 꼭 넣고 싶었는데, 영화의 톤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톤을 맞추기 위해서는 편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남성이 어떤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 기득권을 누려 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균형이 맞지 않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사람들이 평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여성, 장애인, 노동자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늘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 그들이기도 해요.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힘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힘을 여러분들께 전하기 위해 항상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감독님께서 워낙 활발하게 작업을 해오고 계시는데요, 다음 작업들도 벌써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성리>도 계속 봐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박배일: SNS 등에 <소성리>를 본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제가 오늘 밤 살펴볼 수 있고요, 할머니들도 보시거든요. 제 다음 영화도 곧 공개될 텐데, 지금 여러분이 앉아계신 이 공간, 인디스페이스도 담겨있는 영화입니다. 올 초에 폐관한 부산의 국도예술관이 문을 닫는 과정을 그리면서 영화관과 영화, 그리고 저라는 사람과 관객의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 각자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었어요. 굉장히 소중한 공간이죠. 영화관은 직접적인 제 이익과 결합되어 있는 공간인데, 어찌 보면 저의 현장을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결국에는 관객의 역할까지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영화니까 공개되면 꼭 이 자리에서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외로운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때로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 되물어 본다. 이 작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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