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한줄 관람평
권소연 | 너와 내가 겪었을 환절기에 대해서
오채영 | 급격한 온도의 변화에 어떤 이는 심하게 앓는다
이수연 | 계절이 관계에 텁텁하게 스며드는 방식
박지원 | 서로의 환절기를 묵묵히 바라보며 지켜주며
임종우 |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꿈
김민기 | 부족한 관계들이 삶을 어렵게 할지라도
윤영지 | 몰랐던 얼굴과 계절을 마주할 때
<환절기> 리뷰: 몰랐던 계절과 얼굴을 마주할 때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태생적으로 비윤리적이다.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볼 때, 우리는 모든 사건으로부터 분리된 채 제 3자의 입장이 된다. 영화의 시선은 곧 감독이 선택하고 부여한 시선이다. 관객은 이 시선으로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라는 매체는 이야기와 인물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과 태도가 핵심적일 수밖에 없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 형식에 대한 연출자의 치열한 고민은 그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가치이다. 좋은 영화는 응당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동은 감독의 영화 <환절기>는 사려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환절기>는 한국 영화 속에서 지극히 대상화되고 범주화된 채 그저 ‘엄마’라는 역할로서 등장하고 사라지며 소비되던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엄마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경’이다.
미경은 아들 '수현'과 친아들처럼 보듬었던 수현의 친구 '용준'이 연인 사이였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식물인간 상태의 수현을 돌보며 용준을 외면하는 현재의 미경을 중심으로 사고 이전 세 인물의 관계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은 대게 관객의 흥미나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능을 하지만 <환절기>의 경우 그와 상반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하면 극적으로 작용될 만한 사건과 정보를 인물보다 관객이 먼저 인지하도록 한다. 영화는 오프닝 장면을 통해 미경이 수현과 용준의 관계를 알기 전 관객에게 이미 그들이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관객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동요되지 않고 그 사건에 던져진 인물에게, 오롯이 앓는 주체로서의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환절기>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데에 있어 쉽고 간편한 표현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중태에 빠진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는 곧 죽을 사람처럼 식음을 전폐한다던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지 않는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뒤 머리채를 잡고 육탄전을 벌이지도 않는다.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현실의 미묘한 결들을 영화에 최대한 옮겨 놓기 위해 애쓴다. 자신이 생명력을 부여한 인물이 극적 재미를 위해 예측 불가능하고 자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는 데에 그치거나 스스로를 고통의 세계와 분리하여 자기만족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다만 그들이 처한 문제들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고 숙고해 볼 수 있게 된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도 <환절기>는 여타의 영화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환절기>는 동성애를 소수자의 사랑으로, 특별한 사랑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이는 실제로 동성애를 특이한 사랑, 평범치 않는 이들의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독의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듯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미경이 아들 수현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듯 보일 수도 있으나 핵심은 그녀가 아들의 몰랐던 면모들을 알게 되는 데에 있다. 이는 실제로 영화 속 여러 가지 장면들로 뒷받침된다. 용준은 수현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미경으로 하여금 그녀가 알지 못했던 아들의 수많은 모습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용준은 미경에게 녹음해 두었던 수현의 노래를 들려주고 미경은 ‘아니 이게 우리 아들 목소리야?’하며 놀란다. 또한 용준을 통해 수현이 옷을 입을 때 고수했던 순서가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미경은 다 안다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들 수현의 새로운 얼굴과 목소리를,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용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환절기>는 굳이 칭하자면 퀴어 영화라기보다는 성장 영화에 가깝다. 미경의 성장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실상 <환절기>가 다루는 거의 모든 크고 작은 서사와 장면들은 몰랐던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를 반추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인물들은 각각의 변화와 각각의 성장을 맞이한다. 영화는 미경만큼 용준의 변화에도 주목한다. 단적인 예로 수현의 군 면회를 갔을 때 용준은 그들과 떨어진 자리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며 알게 모르게 겉돈다. 하지만 극의 말미에 다시 세 사람이 모였을 때 용준은 담배를 끊은 상태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미경과 용준은 정말 모자 사이 같아 보인다. 용준은 수현의 부재를 겪는 동안 미경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더불어 미경은 용준을 통해 수현을 이해한다. 이렇듯 환절기 속의 인물 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를 반추시키는 식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수현이 잠들어 있던 오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수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듯이 수현은 잠든 미경과 용준의 사이에 누워 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야기를 맺는 방식이 불친절하고 다소 뜬금없게 보여질 수도 있으나 이 결말은 수현의 성장을 의미한다. 서로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것. 감독은 이것이 곧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결말은, 영화를 끝내며 인물들의 미래를 판단하고 매듭짓는 것은 어쩌면 감독의 영역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객 각자에게, 혹은 영화 속에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 믿는 인물들에게 직접 그들의 삶을 이어 나가도록 한다.
앞서 연출자의 윤리에 대해 언급했다. <환절기>는 이렇듯 모든 인물에게 애정을 쏟으며 우리가 응당 어떠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이미지를 고심하고 스스로 반문하며 현실의 미묘한 결을 살리려 애쓴다. 선택한 소재를 영화 속에 차용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과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감독의 평소 고민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담긴 듯 보인다. 예술을 신격화하고 신성시 여기며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저지르고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위무하는 척 또 다른 상처와 폭력을 교묘히 생산해 내는 작품과 작가들의 틈바구니에서 <환절기>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영화 이상의 무엇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비윤리적이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시선은 윤리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영화 내내 드러나는 그 예쁜 마음들에, 그리고 어디선가 계속 살아가고 있을 세 인물에게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Review] <바나나쏭의 기적>: 남은 날들을 바꾸는 순간의 경험에 대하여 (0) | 2018.03.18 |
---|---|
[인디즈] 선택의 순간 '인디포럼 월례비행' <빨간 벽돌> 대담 기록 (0) | 2018.03.12 |
[인디즈] 너와 내가 겪었을 환절기에 대해 <환절기> 인디토크 기록 (0) | 2018.03.07 |
[인디즈] 선형의 시간에서 벗어나 영화적 감각으로 짜여진 세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꿈의 제인> 인디토크 (0) | 2018.03.06 |
[인디즈] 감각과 직관의 시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 인디토크 기록 (0) | 2018.03.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