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겪었을 환절기에 대해 <환절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22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동은 감독ㅣ배우 이원근, 지윤호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소연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시기, 환절기를 서로 다르게 보낸 세 사람이 있다. 즐거운 한 때도 잠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 감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 마냥 세 사람은 다른 모습으로 아파한다. 왜 아파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이유를 묻다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들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환절기>가 개봉한 2월 22일, 졸업식이 연상될 만큼 많은 꽃다발과 함께 인디스페이스에서 <환절기>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이동은 감독, ‘용준’역의 이원근 배우 그리고 ‘수현’역의 지윤호 배우가 함께했다.
진명현 대표(이하 진행): 영화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이후에 여러 계절을 거치고 지금, 딱 환절기에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감독님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로 탄생하고 시간이 지나 스크린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동은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기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초의 <환절기>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동은 감독(이하 이동은): 2012년 12월 겨울에 처음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 해 3월 즈음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제목을 지을 시기가 환절기였고 주인공들이 겪는 계절이 환절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고 제 자신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계절에 혼자 외롭다고 느끼면서 썼던 시나리오인데 운 좋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이원근이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영화가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배종옥 배우님의 열연이나 굉장히 도발적인 역할이었던 지윤호 배우의 수현까지, 굉장히 캐스팅을 공들여서 한 것 같은데, 두 배우님은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지윤호 배우(이하 지윤호): 처음에는 제가 수현을 맡는다는 소식을 모른 채 시나리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일단 작품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습니다. 이렇게 참여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아요. 좋다고만 하기엔 영화가 많은 슬픔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함께 했다는 사실은 마냥 좋습니다.(웃음)
진행: 이원근 배우님은 전작들에서 의도 없이 남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이번에는 그걸 다 받아내는 물 같은 역할이었어요. 어땠나요?
이원근 배우(이하 이원근):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용준을 마주했을 때, 그의 먹먹함이 너무 좋았어요. 또 영화에서 세 명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이 너무나 좋아서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는 강력한 마음이 들었어요. 영화가 조금은 무거운 내용이지만 행복하게 찍었습니다. 잊지 못할 현장이 아닐까 싶어요. <환절기>라는 작품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또 큰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 굉장히 훈훈합니다. 곧 봄이 올 것 같네요.(웃음) 감독님도 첫 장편 데뷔작을 함께해 준 두 배우가 각별할 수밖에 없을 텐데 촬영 현장에서나 완성된 작품에서 용준과 수현에게 각각 놀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동은: 이원근 배우는 용준을 정말 많이 이해하고 있었어요. 이원근 배우가 이해하고 있는 용준이라는 캐릭터와 그의 감정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표현만 디렉팅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특별한 디렉팅 없이 이원근 배우가 만들어가는 용준을 보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용준과 수현의 애정신에서 용준이 미세하게 표정을 짓는 장면을 비롯하여 여러 장면에서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용준스러워서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수현 역을 맡은 지윤호 배우는 의식불명의 상태로 누워있어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표현을 하는 연기가 더 쉬울 수 있어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누워있어야 하는 연기라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지윤호 배우가 그 더운 여름에 환자 역할을 군소리 없이 밝게 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힘든 계절을 겪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현은 밝은 역할이어서 묘하게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행: 후반부에 용준과 수현이 만나는 장면은 배우와 관객의 몫으로 준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배우님들이 캐릭터 표현에 있어 적정한 톤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윤호: 말씀하신 부분은 배종옥 선배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이기 때문에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캐릭터와 상황에 맞게 용준을 바라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저한테는 많은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이 더욱더 소중했고 더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웃음)
이동은: 원래는 전체적으로 풀샷이 많고 카메라도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에 콘티에서도 수현의 얼굴을 더 멀리서 잡았거든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수현의 감정이 워낙 중요했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가적으로 클로즈업 장면을 찍었습니다.
이원근: 특히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감정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주변에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아쉬운 부분이나 더 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해가면서 촬영했습니다.
진행: 영화 속 식물들이 인상 깊습니다. 병원신에서 등장하는 수국도 그렇고 마지막에 셋이 누워있는, 꽃이 그려진 장판도 그렇고요. 조심스럽게 개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듯한 영화여서 보면서 광합성을 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식물성이 강하게 만든 이유가 있나요?(웃음)
이동은: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합니다.(웃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초반에 미경으로 시작되다가 차츰 수현, 용준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노톤의 빈 공간에 있는 미경을 보여줬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여전히 힘든 계절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배경에는 꽃과 식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다양한 색깔들이 나오길 원했어요. 색깔이 없는 차가운 블루톤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색깔이 많게 보이게끔 의도를 했습니다.
관객: 영화 속 결말이 열린 결말인데, 처음부터 정하고 쓴 건가요? 결말에 대한 배우님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동은: 결말을 아예 정해놓고 쓴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이 함께 삼각형을 이룬다는 그림은 구상하고 썼고 초고에서도 지금 결말과 똑같습니다. 마침표를 찍는 영화보다는 영화가 끝나도 영화 속의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우리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계절을 보낸 용준과 수현의 진짜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에서 영화가 끝을 맺는 식의 결말이 되었습니다.
이원근: 영화를 본 관객 분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결말을 만들어도 돼요. 저 또한 관객으로 생각해본다면, 차츰차츰 이 둘도 회복을 하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 그 이후에 둘만의 사랑이 또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지윤호: 살아가면서 항상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에 놓인 채 끝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최고의 결말인 것 같습니다. 훗날 여러분들이 인생에 대한 고민하는 시기가 왔을 때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를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 이 작품은 또한 미경과 용준의 우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배종옥 배우님과 이원근 배우님의 호흡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어떻게 호흡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원근: 배종옥 선배님은 훌륭한 배우이자 선생님이니까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설레고 감사했습니다. 촬영을 할 때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선배님께서 처음에 캐릭터를 잡을 때만큼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비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과정이 용준의 캐릭터에 녹아 들어서 더 적합한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지윤호: 평소 연기할 때 빼고는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배종옥 선배님을 만나 뵈니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많은 노력과 상황들을 지나오며 얻은 아우라가 있다는 것을 함께 작업하면서 느꼈어요. 가끔 나태해질 때마다 선배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생각하며 많이 반성하기도 합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에 임하는 자세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동은: 처음에는 말씀대로 매체에서만 보던 배우님이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되었고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실지 떨리기도 했어요.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생각해온 미경에 대한 해석이 선배님과 비슷했고 잘 통했습니다. 긴장되는 분위기에서도 선배님이 분위기 메이커로서 현장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웃음)
관객: 영화가 용준과 수현의 사랑을 굳이 특별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부분을 표현했나요?
이동은: 말씀하신 것처럼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가 포인트였지만 <환절기>는 그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용준과 수현의 연인 관계를 넘어 그 이후에 그들이 각각 처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신 것 같습니다. 둘의 관계를 넘어서 또 다른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배종옥 선배님이 연기한 미경 또한 아픈 아들에 대한 간호가 먼저고 아들의 친구로서 용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이 먼저였습니다. 용준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이유는 이미 그들은 정체성과 관계를 긍정하고 있었고 영화는 그 다음에 일어나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원근: 사실 용준과 수현의 사랑을 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둘은 그저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 관계를 왜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고 연기를 하는 우리는 왜 그들을 특별하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받아들임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윤호: 제가 빨간색을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가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건 틀렸어”가 아닌 “나랑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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