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와 그레인으로 빚은 마취적 환상곡 마음이 모인 <고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1월 10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곡 감독, 장리우 배우
진행 맹수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시나리오와 제작방식의 유사성 때문이라도 <고갈>이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은 필립 그랑드리외의 표현주의 영화 <음지>(1998)이다. 영화를 둘러싼 감상과 행간 또한 작품의 컨텍스트를 도덕적으로 승인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매혹적인 영화의 언어를 창안했다는 입장 사이를 진동한 바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상관관계가 있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음지>가 공개되었을 당시 심사위원들은 영화에 대한 입장차로 인해 극단적인 분열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고갈>이라는 작품을 대면한 우리도 수수께끼같은 곤경에 처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실험적인 형식과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정작 <고갈>이라는 작품이 이 논란의 중심에서 아무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고갈>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토크의 모더레이터는 물론, 제작에 참여한 본인들 스스로조차 구체적인 진술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공백과 감각덩어리를 대면한 당혹스러움, 그것을 무릅쓰고도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말을 꺼내놓았던 순간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맹수진(이하 맹) : 사실 10주년 기념으로 이 영화를 상영한다고 들었을 때,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작품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이기도 해서죠. 다시 봐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김곡(이하 김) : 우선 10주년 기념으로 영화를 상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고갈>이 자리에 적당한 작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초대를 받았을 때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고백을 하자면 저도 이 영화를 처음 스크리닝때만 기술책임자로서 감상을 한 이후로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상영관 밖까지 비명소리가 들려오길래 도망갔습니다. 고갈은 보다보면 작품의 내용보다 “이걸 만든 놈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하게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 별로 한 게 없고, 배우와 카메라, 그리고 군산 갯벌의 삼중주라고 해야 맞겠죠. 그리고 저도 사실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보신 관객들중에 영화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은 관객분들은 저에게 좀 알려주십쇼.(웃음) 몇몇 평론가분들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도 저는 그냥 사양할래요. 이야기가 별로 지식화되거나 상징화되는 부분이 없거든요.
맹 :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다른 분들도 영화를 분명하게 맥락화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의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 초과하는 부분이 있었을거라 생각하구요. 오히려 해석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보니 영화를 더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김 : 말씀해주셨듯이 말이 잘 안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우리가 맞은 다음에 고통을 말로 하지는 않잖아요? 고통을 언어로 환원하여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맞았으니까 나를 때린 놈을 다시 때리는거죠. 관객 분들이 못 견디는 엑소더스 포인트가 있는데, 아름이가 접신을 하는 부분에서 많이들 나가시더라구요. 관객분들이 영화관에 입장하려고 줄 서는건 보셨어도 나가는데 줄 서는건 못 보셨죠? 그 아름이가 접신하는 장면에서 관객분들이 탈출의 명분을 찾았다는듯이 줄을 서서 나가시더라구요.(웃음)
맹 : 영화에서 가장 힘든 역할이셨던 장리우 배우도 이 자리에 와계십니다. 제가 10년전에 영화 끝나고 리우씨를 봤을 때 안아주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어요. 당시에 촬영을 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를 찍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장리우(이하 장) :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상황들 자체에 반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 써져있는 활자를 영상으로 옮기는데 충실하려 했습니다. 첫 촬영을 끝내고 함께 출연하는 박지환 배우랑 감독님이랑 새벽에 나와 담배를 피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냐?”라고 말했던 기억도 나요.
김 : 첨언하자면, 제가 이 영화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분명한 테마는 있죠. 그런데, 그게 빈틈으로 가득한거고, 그 빈틈이 어쩌면 테마일수도 있는 거죠.
관객: 촬영장소가 너무 좋았는데 원래 알고계시던 장소였는지, 아니면 발견을 한 장소인지 궁금합니다. 또 장소를 정하고 나서 시나리오가 변경된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 : 원래 시나리오는 스무 장짜리 메모의 형태였습니다. 마치 시처럼요. 촬영감독에게 보여주니 몇 군데를 알려주더라구요. 그 중 하나가 군산이었어요. 공단이 지어지기 직전의 허허벌판을 사전조사하기위해 방문했는데 인상이 엄청나더라구요. 그래서 “아, 서둘러야겠다.”고 하고 바삐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공간적 상황 때문에 즉흥적으로 행동이 변경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는 “여자가 넘어진다, 남자가 따라온다, 서로 때린다.” 이런 식으로 행간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그 여백을 현장 속에서 아둥바둥하는 행위들로 채워나가야 했죠.
장 : 모든 행동들이 즉흥도 아니고, 그렇다고 짠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공간에 가다보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위가 나오게 되더라구요. 촬영 전 석 달 동안은 연습실을 빌려서 리허설을 하기도 했는데, “ 이건 연습을 해서 될 영화가 아닌 것 같다.” 해서 연습을 때려치우고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되돌아보면 신기한 지점이 많은데,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관객 :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하셨는데, 화면이 확실히 파랗더라구요. 이 부분에 대한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 8mm 필름이구요, 크기도 작은데다가 현상을 해주는 곳도 없으니 직접 열악하게 작업을 해야 했어요. 어쩌면 저 8mm로 찍기 위해 <고갈>을 찍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레인 없는 이 영화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저 지글지글한 그레인이 떠오릅니다. 감히 샘 페킨파의 슬로우모션에 비교하고 싶은데…아 농담인데 안 웃으시네요.(웃음)
맹 : 실제라기보다는 탈색되고 유령적인 이미지들이야말로 감독님께서 당시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풍경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장 : 저 8mm 필름에 배우들도 많이 지배를 받았던 것 같아요. 롤 하나에 몇 분밖에 안 담기기도 하고 촬영에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고요.
김 : 필름이 확실히 중압감을 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장리우 배우님이 이야기해주셔서 떠올렸는데, 8mm는 필름 중에서도 좀 작으니까 되게 촬영을 하면서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단순한 영화 필름도 아니고 비디오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배우들한테 “너희들 마음대로 해봐라”라고 명령하는 듯한, 중압감이 좀 생겨난 것 같아요.
장 : 마치 종군기자가 전쟁을 찍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이야기기는 한데, 이 영화를 예전에 봤을때는 모성애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보니 멜로처럼 보이더라구요? 저 지지리 지독한 남녀가 서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렇게 부대끼는구나, 하면서. 마지막에도 뭔가 슬펐던 것 같아요.
맹 : 저도 예전에 볼 때보다 훨씬 강렬했던 것 같아요. 혹시 관객분들중에 영화를 두 번이상 보신 분 계시나요?
관객: 저는 10년전에 감독님이 gv하실때 보고 지금 다시 보는데요, 그 때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환경의 변화를 은유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보니 젠더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젠더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관객: 영화의 표현이 굉장히 격한데 혹시 참고자료로 삼은 작품이 있으신가요?
김 : 이런 건 좀 부끄러운데, 영화를 보면 생각나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기는 하죠. 그런데 그런 것이 또 큰 의미가 있는가 싶어요. 그때 떠오른 영화가 꼭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하기도 어렵고… 저만 부끄럽나요. 굳이 말하자면 카사베츠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장 : 저는 개인적으로 찍으면서 존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음지>가 떠올랐어요.
맹 : 영화에서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대해서 말해주실 부분이 있을까요?
김 : 8mm같은 강력한 이미지들은 마치 우리의 망막을 채널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뇌를 뒤에서 효자손으로 긁는 느낌이랄까요. 또 사운드와 그레인은 사실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운드는 마치 들리는 그레인같기도 해요. 둘이 사실 크게 다른 것 같지가 않아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보는 영화로 만들지 않았아요. 영화가 꿈속에서 나타나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나는 보여지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굿과 같은 퍼포먼스를 볼 때 우리는 단순히 그걸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도 개입을 하게 되죠. 그게 불모의 선언이든 파괴이든 소멸이든, 그 모든 걸 퍼포먼스의 단위로 환원하는, 그런 걸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보는 분들에 따라 많은 감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10년 전의 은하해방전선을 떠올리며, '마음이 모인' <은하해방전선> 인디토크 기록 (0) | 2017.11.27 |
---|---|
[인디즈] 겨울날의 재회에 관한 기록 '마음이 모인' <혜화,동> 인디토크 기록 (0) | 2017.11.26 |
[인디즈] 재재의 눈을 통해 보면 '인디포럼' <재재월드> 대담 기록 (0) | 2017.11.23 |
[인디즈] 마주본 두 개의 거울에서 자라난 파국 <폭력의 씨앗> 인디토크 기록 (0) | 2017.11.21 |
[인디즈 Review] <폭력의 씨앗>: 폭력의 굴레에 갇혀버린 군상들 (0) | 2017.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