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재의 눈을 통해 보면  인디포럼 <재재월드>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10월 25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건욱 감독,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 

진행 백재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장면 하나에 담긴 의도,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여백에서 찾을 수 있는 감독의 힌트,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은 것들. <재재월드>는 기존의 영화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을 벗어난다. 나아가 기존의 영화들이 이야기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건욱 감독(이하 이): 영화를 한동안 안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작업들이 고생처럼 느껴져서요. 좋아하는 걸 하는데 왜 힘이 들까, 왜 노동이라고 느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한테 맞는 작업이 뭘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 내면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을 가서 막연히 무언가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찍었는데, 찍다 보니까 방향성이 생겼고 그렇게 해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백: 이 영화는 2016인디포럼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인디포럼 제작지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이하 박): 인디포럼 제작지원은 서울영상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총액 600만원 규모로 작년에 처음 공모를 했고요, 1차 심사에서 서류 없이 동영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을 하도록 했습니다. 2차 심사의 경우 서류와 예산안을 봤고요. 1차 때 받은 <재재월드> 영상은 10분정도였습니다. 첫인상은 매우 강했습니다. 장편으로 만들어졌을 때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감독님을 인터뷰하면서 이 영화에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장편으로 완성이 돼서 재재라는 세계에 관객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 제작지원 전부터 촬영을 했습니다. 완성된 영화에 대한 그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제작지원을 받은 후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사실 부담 없이 영화를 즐겁게 찍고 있었는데,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마감 날짜 때문에 압박이 조금 있었습니다. 제작지원을 받은 건 기뻤고,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관객: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이 나오는 장면은 카메라를 등진, 혹은 카메라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는데 춤추는 부분은 여성이 카메라로 다가오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었습니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여기서 편집된 몇 쇼트들을 보면 멀어지거나 등진 장면이 더 있습니다. 초반에 그런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부끄러워서 찍은 것도 있고 의도한 것도 있습니다. 



관객: 영화 중에 머리를 묶는 것에 대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머리를 묶는다는 행위 자체는 장면들 사이에서 드러난 우연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명확한 상황이나 특정한 캐릭터라는 틀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게 <재재월드>의 주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한 건 아니었고 특정한 느낌을 주길 원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가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소한 것들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길 원했습니다.



백: 제작지원에 출품한 10분짜리 영상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이 작품은 시나리오 없이 진행했습니다. 연출 없이 우연으로 찍었을 때 더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장소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제작지원 공모를 준비하면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박: 감독님이 서류로 한 장짜리 시나리오를 제출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때 의도가 뭐냐는 식의 공격을 계속 했습니다. 감독님은 주로 자기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국에 있을 때 자신의 영어 이름인 재재, ‘재재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도, 하고자 하는 게 영화에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냐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 영화를 여섯 번 정도 봤는데, 제 경우엔 볼 때마다 새로웠습니다. 볼 때마다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공간에 집중해서 보고, 어떨 때는 인물에 집중해서 보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받아들인 것 그대로 이 영화를 이해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로움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했습니다. 혼자 영화를 찍는 사람의 외로움, 혹은 여행지에서의 외로움이요. 한편으로는 남성의 욕망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관객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대입해 해석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창작자의 자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짜 지구에 있는 것 같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자신이 속한 상황이나 공간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지, 그래서 그런 대사를 쓴 건지 궁금합니다.



이: 어릴 때는 바다와 가까운 시골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제 경우엔 놀러가자는 표현 대신 ‘모험 가자’라는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자연을 만났을 때 더 많은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도시 생활을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관객: 여성 배우들에 대한 클로즈업 장면이 있는데, 배우로 하여금 특정한 감정을 가지도록 디렉팅을 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 마주보고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상황을 설정하진 않았습니다.





백: 외국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사를 할 때 어떻게 요청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 외계 여인으로 나왔던 캐릭터의 경우 네팔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일행이 됐던 사람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중간 중간 뭐를 찍으니까 그분이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분이 제가 하는 작업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인터뷰를 할 건데 아무 얘기나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이탈리아와 독일 이중국적인데 어느 말이 편하냐고 했더니 독일어라고 했습니다. 일행 중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했습니다. 흥미가 생겨서 한국에 오자마자 번역을 가장 먼저 했습니다.



관객: 자연을 찍으려면 화면 비율이 넓은 게 좋을 텐데, 왜 좁게 찍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1:1이나 4:3비율의 작품을 볼 때 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가려는 방향도 넓은 화면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넓은 화면에서는 더 많은 정보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객: 전시회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을 할 때 어떤 느낌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느낌이나 직관으로 작업했을 것 같습니다. 장면을 조금만 바꿔도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질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냥 감에 의존해서 편집할 때도 있었고 원칙을 정해두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장면 지속 시간 같은 경우는 감에 의존했습니다. 영화가 스토리 위주로 성장을 했고 카메라가 어떤 상황이나 메시지를 설명하기 위해 소비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우엔 여럿의 쇼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 흥미를 못 느꼈고 개별 쇼트가 그 자체로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게 힘들었습니다.



박: 그래도 구성은 있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는 영화의 얼개를 갖춰두고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오프닝과 엔딩은 상투적인 구조가 맞습니다. 다만 영화 안에서 쇼트들이 서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꾸준히 가져갈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쇼트들이 시간적으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깨 보고 싶었습니다. 꿈을 예로 들면, 꿈을 꿀 때 보통 그 안에서 논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깨진 유리조각처럼 존재하는 그 꿈을 다시 끼워 맞추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해내려고 하긴 하죠. 영화 역시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박: 여섯 번을 보니까 나름의 해석은 생겼던 것 같습니다. 파편화한 이미지들은 그래서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계절이 주는 이미지는 의도한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크게 보면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구성을 갖춘 부분인데요.



이: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게 겨울이었습니다. 어떤 배우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강렬했을 때를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여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여름을 좋아해서 영화가 여름까지 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박: 사막 같은 풍경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은 어떻게 찍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이: 그 장면은 누군가, 혹은 연출가가 의도해서 찍기보다 우연히 찍게 된 게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 안에 넣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은 제 그림자가 옆에 있던 나무들 같다는 생각에 찍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장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창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 원래 의도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제시되는 이미지들을 보였을 때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에 빗대 해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물고기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낚시를 좋아합니다. 지금도 생선을 즐겨 먹습니다. 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아했고 지금도 찾아보곤 합니다. 환상적인 것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면은 여행 중에 실제로 꾼 꿈입니다. 일어나자마자 메모를 해 뒀습니다.



박: 메모하는 장면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인가요?



이: 영화 자체에 대한 고민을 영화 안에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관객: 인어를 만나서 재재에게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재가 일관된 표정으로 등장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 내 등장인물이 감정을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감정을 책임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절제하고 생략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녹음기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엔딩과 오프닝에서 연결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리모콘 역시 줍고 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실제로 물수제비를 하고 있는데 뭔가를 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녹음기를 줍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면 스토리가 생겨서 힘들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아서 그대로 갔습니다. 영화 안에서 재재가 너무 감정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녹음기를 통해 감정을 조금 넣었습니다.



백: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사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 번 봐 주신 분들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상영 기회는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디포럼에서 상영 기회를 두 번이나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영화를 편집을 하는 중간에도 한국에서 비슷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신비한 모습보다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내 방식대로,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찍으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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