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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기이한 춤: 기무>: 삶의 시퀀스 그리고 응시

by indiespace_은 2017. 5. 10.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기이한 춤: 기무>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1122






<기이한 춤: 기무> 리뷰: 삶의 시퀀스 그리고 응시

<기이한 춤: 기무>와 <호수길>을 통해 본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기이한 춤: 기무>(이하 <기무>)는 한때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사용했던 건물과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박동현 감독은 기무사 건물의 내·외부를 찬찬히 보여주며 건축학자의 입을 빌려 건물의 보존 가치를 말한다. 또한 건물 일대 한옥마을 골목길을 비추며 시간이 축조한 삶의 공간을 재조명한다.

  



기무사 과거와 현재


기무사 본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종로구 소격동의 이 터는 1864년 종친부, 192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8·15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부터 국군기무사령부(전 국군보안사령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기무사는 국방관련 기밀보안업무를 수행하는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이다. 기무(機務)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을 뜻한다. 기무사가 주로 수행하는 업무는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군사보안지원, 군관련첩보 등 특정범죄 수사 등이다.(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기무사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도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전신인 보안사령부부터 민간인 사찰로 여러 차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기무사 지하실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남산 지하실, 경찰의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 운동권 대학생에 대한 불법 연행과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다.(출처: 윤상호, 손영일, “기무사 대해부”, 동아일보, 2014.6.2.) 


영화는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한 후 빈 곳으로 남아있던 건물 모습을 기록한다. 영화가 촬영된 당시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이 확정되었지만, 기무사 건물의 보존 또는 철거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종친부의 터이자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곳이기에 건물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7월 3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일부로 건물 형태가 보존되었다. 





<기무> 자막, 대한민국 재개발의 역사


영화 전반부는 기무사 건물 내·외부를 고정된 카메라로 천천히 비춘다. 건축학자들의 인터뷰가 중간 중간 덧붙여지는 한편 화면 하단에는 짤막한 자막으로 대한민국 역사 특히 재개발사를 순차적으로 나열한다. “1864년 종친부 확장 이건”, “1910년 한일합방”, “1961년 청계천 복개”(“2003년 청계천 복원”), “1979년 대민간 사찰업무 전두환 명령”(“2009년 기무사 민간사찰 재개 논란”), “2001년 상암동 재개발”(“2009년 상암 뉴타운 건설”), “2006년 은평 뉴타운 건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2009년 용산 재개발” 등. 전후 맥락 없이 무조건적인 철거와 재건축으로 대변, 서술되는 대한민국 역사는 화면 위에 위태롭게 축조되는 <기무>의 자막과 닮아있다. 빠르게 전환되는 자막은 재개발로 인해 무참히 스러져간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의 삶을 은유한다. 2009년 1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숨진 “2009년 용산 재개발” 참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막이 반복 재생하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재개발”이라는 철거의 방식을 대한민국은 현재까지도 명칭만 “뉴타운”으로 바꿔 똑같이 답습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박동현 감독은 서울 도시개발로 사라지는 것들을 안타까워하며 문화 속에서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숭례문이 가장 그랬던 것 같습니다. 총독부 건물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총독부 건물이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그것을 남겨두고 사람들에게 그런 역사 또한 남기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깨끗이 없애는 것이 중요한지”(출처: [인디포럼2010 데일리 9호] 박동현 감독 인터뷰) 박동현 감독이 했던 인터뷰와 <기무>에서 건축학자가 한 말처럼 재개발의 방식은 광범위한 시민적 참여를 통해 보존과 철거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관료화된 권위의 판단으로 파괴적인 재개발과 뉴타운 방식이 반복되어 왔다.  





<기무>와 <호수길>의 골목길 풍경과 삶의 시퀀스


기무사 건물을 관조하던 카메라는 영화 중반부부터 건물 일대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로 이동한다. 카메라는 어느 골목길 풍경 하나를 7분여 동안 긴 침묵으로 응시한다. 동네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어떤 아주머니는 대화를 나누다가 수레에 물건을 싣고 온 행상에게서 그날 저녁 찬거리를 산다. 옆집 할아버지는 세탁소에서 찾은 양복을 옷걸이에 고이 들고 온다. 앞집, 옆집 사람들이 잠깐 멈춰 서서 거리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과 안부 인사를 나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조금 의식하다가도 다시 본인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감독이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이 장면을 나는 삶의 시퀀스가 담긴 장면이라 말하고 싶다. 거기에는 물리적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그곳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서와 의미가 있다. 감독은 긴 응시를 통해서 관객 스스로가 그 장면, 삶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각하게 유도한다. 


이 장면은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2009)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서울시 은평구 응암2동의 골목길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아무런 내레이션 없이 담담하게 골목길 사람들의 풍경을 오래도록 기록한다. <기무>, <호수길> 두 영화의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머문다. 골목길 프레임 밖으로 한 사람이 사라지면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뛰어노는 아이에서부터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보를 하는 노인,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까지. 두 영화의 골목길 풍경, 삶의 시퀀스를 구성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배역들이다. 또한 두 영화의 카메라 모두 대상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골목길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렴풋이 들리지만 무슨 대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가청권 안이지만 자세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너무 멀지도(무관심하지도) 너무 가깝지도(침해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카메라는 담담히 그들의 삶을 기록할 뿐이다. 누군가는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힐끗 보고 지나쳤을 풍경들이 두 감독이 응시하는 동안 삶의 시퀀스로 온전해진다. 응시를 한다는 것은 상대(대상)를 지그시 바라봄을 의미한다. 관객은 그 응시를 통해 공간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 공간은 경제적 가치로 값이 매겨진 ‘부지’가 아닌, 다양한 배역들의 일상과 만남이 부대끼는 삶의 무대이다. 두 감독은 그 장면을 오래도록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기억 속에 잔상을 남겨 그 풍경을 보존하려 하는 듯하다. 카메라가 촬영을 멈춰도 그곳에는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관객들의 뇌리에 잔상처럼 남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객은 이 골목길 풍경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그곳에 있어야 할 삶의 풍경이 사라지면 우리는 분명 아쉬워하게 될 것이란 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기무> 후반부에는 수직으로 급격하게 치솟은 고층의 건물을 원경에서 보여준다. 영화 처음과 중간에서 카메라가 골목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풍경을 가까이 바라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은 이제 골목길에 나와 앉아있지 않고 건물 안에 ‘들어있다’. 화면에서 경제업무 지구의 높은 건물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학교 하나가 멀리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크게 들려준다. 카메라와 학교 운동장 사이의 시각적 거리감과 사운드가 불일치한다. 가청권 밖인, 그 거리감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 역시 <호수길>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바로 철거로 비어버린 동네 풍경 위로 클로즈업된 아이들의 얼굴이 디졸브 되는 장면이다. 정재훈의 영화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담아냈다면 <기무>는 사운드로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려는 듯하다. 





보존되어야 할 역사와 삶의 풍경


<기무> 마지막 장면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며 남기는 잔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잔상을 담는 방식은 흔히 사진에서 시간성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장노출 기법과 유사하다. 영화에서도 느린 잔영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간과 장소에 새겨진 시간성을 상징한다. 동시에 장소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요구와 역사적 맥락에 의해 기무사 건축물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현재 미술관의 일부로 보존된 기무사 건물처럼 삶의 역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퇴적된다. 단지 경제적 가치만을 따져 무조건 부수고 밀어버리는 재개발, 이 주기적인 파괴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공간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맞게 보존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과 골목길에는 역사와 함께 그곳에 새겨진 미시적인 개인들의 삶이 존재한다. 이것을 응시하려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회피(철거)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 또한 잃게 될 것이 아닌가. 역사와 그 장소에 새겨진 개인들의 삶, 이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삶의 풍경을 이제는 응시하고 보존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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