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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더 플랜>: 합리적 의심과 투표 이전의 개표

by indiespace_은 2017. 4. 28.


 <더 플랜한줄 관람평

송희원 | 합리적 의심으로 선거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이현재 | 음모론이든 증명이든 일단 썰이 재미있다. 그래서 듣고 싶어진다.

이지윤 | 플랜의 존재, 그 이전에 보장 받아야 할 우리의 개표권

최지원 | 흥미로운 동시에 서늘한

김은정 | 1:1.5 황금비율



 <더 플랜> 리뷰: 합리적 의심과 투표 이전의 개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약 3,000만 명의 투표지를 담은 13,500여 개 투표소의 투표함들은 251개의 개표소로 이동된다. 이동된 투표함은 개표소에서 개봉된 후 1,300여대의 전자 개표기에 의해 분류된다. 오후 9시 4분, 기호 1번이었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된다.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제치고 박근혜 후보는 한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리고 약 4년이 흐른 2017년 4월, <더 플랜>은 다시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 12월로 시간을 되감는다.



18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과정을 둘러싼 의혹은 적지 않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졌으며 대선 이후엔 무효표 분류와 연관된 부정선거 의심 정황을 주장하는 글과 사진이 온라인을 떠돌기 시작했다.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서 여러 차례 눈에 띄기도 했다. 이러한 18대 대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 사이에서 <더 플랜>은 전자 개표기가 토해낸 3.6%라는 높은 비율의 미분류표에 주목한다. 그리고 전자 개표기가 분류한 미분류표 중 박근혜 후보가 얼마나 더 많은 표를 가져갔는지를 설명하는 K값 1.5와 그것이 전국 251개의 모든 개표소에서 같은 패턴을 가지고 등장했음을 증명하며 새로운 의심을 탄생시킨다.


미스터리 추적 형식을 띤 다큐멘터리 <더 플랜>은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팩트 체크에 포커스를 둔다. 증명이 어려운 누군가의 기억이나 의견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서와 통계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의심에 대한 합리성을 갖춰나간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와 국내외 컴퓨터 전문가, 통계학 전문가, 해커의 말들이다. 그들의 말은 사견이 아닌 사실과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말하는 인물들을 다각도에서 담아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말하는 인물들이 마치 한 공간에서 반박하고 동의하고 말에 말을 덧붙이는 듯한 연출을 취한다.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그래픽은 어렵게 느껴지는 전문가의 말을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더 플랜>은 18대 대선의 무효와 법적 수사를 촉구하기보다는 다가올 ‘앞으로’를 이야기한다. 전자 개표기가 해킹과 개표 조작 프로그램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드러내며 새로운 개표 방안 모색을 주장하고 개표 시스템에 있어 필요한 것이 철통보안이 아닌 투명성임을 강조한다. 국민이 지닌 투표권에는 개표권 또한 당연히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작품이 개봉되기 하루 전인 19일,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선관위는 19대 대선이 종료된 이후 <더 플랜> 제작팀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 3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에 응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이 요구한 개표의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에 선관위는 ‘어떤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기를 기대함’이라는 협박의 어조를 드러내기도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어째서 문제시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플랜>이 그저 불온하고 과장된 음모론을 그려내고 있다는 의견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 의심의 중요성을 말한다. 믿기 힘든 수많은 사건들이 사회를 흔들었고 그런 배경에서 터져 나오는 의심들은 과장이라 치부될 수 없다. 의심이 필요한 시대에서의 의심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히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설사 그것이 터무니없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유세로 길거리가 떠들썩하고 투표에 대한 대화가 오간다. 곧 투표 독려 캠페인과 영상이 주변을 가득 채울 것이다. 쏟아질 ‘투표하세요’라는 외침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더 플랜>이 드러내는 개표의 투명성 보장과 그것을 가능케 할 합리적 의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플랜의 유무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개표를 약속받아야 한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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