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약자를 편드는 순간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람이 산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2일(일)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송윤혁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제 16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송윤혁 감독의 <사람이 산다>는 용산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쪽방과 거리를 오가며 생존을 이어가거나 에너지 빈곤층으로서 더위와 추위를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온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지닌 국가도 이들을 쉽게 도와주지 않는다.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 현장에서 이들을 도운 체험을 바탕으로 활동가의 시선을 통해 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람이 산다> 상영을 준비하면서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이 영화를 보고 감정이 너무 복받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민망해서 서둘러 극장을 나선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저에게 준 것은 삶의 무게감과 단순히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나로 소급되는 어떤 것이에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존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제 첫 질문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습니까?’라는 당연한 질문이에요. 타이틀이 뜨기 전에 서울역 앞 큰 건물이 나오고 카메라가 골목길로 우리를 인도해요.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보지 않는 쪽방촌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될 4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그 쪽방촌이 곧 철거될 위기라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숏을 닫아요. 영화는 이 시퀀스로부터 시작을 하는데요, 이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서사가 감독님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감독님은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첫 만남은 무엇이었는지 먼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일단 쪽방에 사는 홈리스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홈리스라고 하면 보통 거리에 사는 노숙인 분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는 홈리스 분들은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저는 홈리스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 단체를 통해서 쪽방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 이 쪽방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거리 노숙인 분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무언가 삶을 새롭게 시작할만한 공간을 찾고 싶다. 그곳이 바로 저기다.’라고 쪽방촌을 알려줬어요. 보증금 없이 월세 15-25만 원인데, 요즘에는 25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서울 시내에서 보증금 없이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죠. 모금을 해서 25만 원이 모였어요. 아저씨 한 분을 모시고 쪽방촌을 처음으로 들어가 본 것이 벌써 10년 전 일인데,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들이 정리되는 과정 속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안: 인물들을 어떻게 만나서 영화가 만들어졌나요?
송: 가장 먼저 만난 분은 ‘남선’ 아저씨에요. 거리에 계신 분들을 돕는 활동을 할 때 종각역에서 처음 만났어요. 2004년과 2005년 사이 겨울 즈음이었는데, 남선 아저씨는 쪽방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분이었어요. 서울 시내에는 동자동 같은 큰 쪽방촌이 5군데 정도 있어요. 그 중 동자동 쪽방촌을 주된 배경공간으로 설정하게 되면서 그 곳에서 처음 만난 분이 ‘창현’ 아저씨에요. 그리고 창현 아저씨를 통해서 ‘일수’-‘승희’ 부부를 만났습니다.
안: 감독님이 인물들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은 영화에서 카메라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잠시 미뤄두고 제목에 대한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이 영화는 4명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진 문제점, 그것이 주는 병폐들을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영화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복지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인해 일어나는 자존의 문제, 인물이 가진 삶의 태도와의 충돌이 영화에서 보입니다. 특히 부양의무제와 장애인등급제의 문제점, 그리고 이 쪽방촌이라는 공간이 죽음과 굉장히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사람이 산다’라는 제목은 상당히 큰 울림을 주는 제목인데, 이 제목을 사용한 이유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송: 이 영화의 최종 수정본이 나오는 순간까지도 제목은 ‘쪽방’이었습니다. 엔딩타이틀도 ‘사람이 산다’가 아니라 ‘쪽방’으로 들어가 있을 거예요. 이 영화는 쪽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게 그냥 신기했던 거죠. 쪽방촌의 화장실을 갔는데, 물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 위에 공동세탁장이 있어요. 화장실과 연결이 돼서 빨래를 하면 그 물이 화장실에 있는 잔여물을 쓸어버리는 시스템이에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가끔 섬유유연제 향이 나기도해요. 그래서 상당히 쾌적하다고 느끼기도 했어요.(웃음)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점점 산처럼 쌓여요. 물로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화장실이 정말 급할 땐 공원 화장실까지 가야해요. 이건 단편적인 일례고 주거공간으로서의 적절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빨래를 방 안에 널어야 하고, 밥도 방 안에서 만들어 먹고. 그래서 빨래에 김치 냄새와 된장 냄새가 항상 배어있어요. 최소한의 주거조건이 갖춰진 곳이 아니에요. 평균의 삶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달라서 신기함으로 처음 쪽방을 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 제작을 위해 그곳에서 살다보니 쪽방의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굉장히 열약하기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적인 공간이기도 했어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가는 공간이니까요. 단순히 공간을 나타내기 보다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어떤 억압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지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공간을 드러내고자 했으면 동정과 시혜의 시선을 벗어버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쪽방에 대한 공간적 정보가 너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공간적인 부분을 덜어내려 했고 그 작업을 수행하면서 제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적으로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다소 거칠지만 ‘사람이 산다’라는 제목이 나왔습니다.
안: 감독님이 이 영화를 어떤 자세로 찍었는지 알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그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인물들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처음에는 쪽방이라는 공간이 워낙 좁으니까 화각이 대단히 좁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쪽방 밖에서도 인물들과 상당히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감독님이 인물들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한 것인지 궁금했어요. 또 카메라가 가진 태도에서 감동했던 부분은 남선 아저씨가 부양의무제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갔을 때 카메라가 집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거절 의사를 듣고 난 뒤 남선 아저씨는 길에 누워있고 어머니로 추측되는 분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상황에서 카메라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감독님이 이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특별히 생각한 어떠한 태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서 의외로 음악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점이 대단히 놀랍습니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가 음악대신 날것의 소리가 들려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존중의 태도인 듯 처음부터 음악이 잔잔하게 흐릅니다. 그 음악들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송: 음악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편집 시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 장편을 만들다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지점이 있었어요. 제 친구가 영화를 보고 ‘너무 좋은데, 왜 음악이 하나도 없느냐’하면서 영화에 사용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주었어요. 영화음악은 몇 가지 테마로 적절히 삽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팅을 해서 타임라인에 음악을 얹으면 딱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줬어요.(웃음) 그래도 너무 고마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빼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워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넣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작가의 관점, 미학 등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공부가 부족해서 카메라의 거리나 시선 같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이 영화가 어떤 시선인지 딱 알더라고요. 정확히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활동가의 시선이에요.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런 시선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안: 이 영화에서 거리감이 주는 느낌 자체가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인물들과 감독이 가진 거리감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영화가 주는 울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관객: 작품 잘 봤습니다. 마지막에 부부 인터뷰 하는 장면이 굉장히 찡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상당히 해야 했을 것 같아요. 프로그래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촬영자가 제 3자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밀접한 사람처럼 보여요. 쪽방이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지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쪽방을 허물었잖아요. 지금은 그 곳에 뭐가 들어섰는지 궁금합니다.
송: 일단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면, 그 쪽방이 철거된 자리는 다시 쪽방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되는 식의 개발이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동자동처럼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올 수 없거나 자투리땅인 경우 굉장히 모호해요. 거기가 서울역 근처라 외국인 관광객이 엄청 많아서 쪽방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들기도 해요. 더 큰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리모델링 형태로 재개발이 되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공간들이 없어지고 있는 거죠. 쪽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당해요. 보증금 없이 월 25만원으로 살 수 있고 서울에서 ‘노가다’를 하거나 인력시장으로 들어가기 가장 용이한 지역이 아직까지도 역사 근처거든요. 그러다보니 역에서 멀어지면 살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닥치게 돼요. 역 근처에 이러한 공간이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딱히 기획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쪽방에 계신 분들을 자주 만나기 위해 쪽방촌으로 들어가 노숙인 분들과 쪽방촌 분들을 계속 만났어요. 영화를 위해 촬영을 시작한 것이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1일까지 살면서 촬영을 했어요. 처음 6개월 동안은 거의 촬영을 못했고 이후 6개월 동안 집중해서 촬영했어요. 서로 너무 가까이 지내다보면 좋지 않은 점도 보이더라고요. 다독이면서 나아가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기도 했어요. 이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때는 ‘아저씨’라고 부르던 분들을 ‘형’이라고 부르게 되는 경험이, 영화를 차치해도 굉장히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안: 마지막 질문을 하고 이 자리를 정리하려고 해요. 감독님은 왜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나요?
송: 말이 많은 시대인 것 같아요. 매체가 다양해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어요. 역설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한 분들은 SNS 같은 것들을 사용하기 쉽지 않고,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시간을 가지고 진중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 특히 저는 홈리스 분들에게 관심이 있고 계속해서 그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노숙인 분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합니다. 옹호라는 개념이 모호해 보이지만, 명확한 개념이기도 해요. 옳고 그름을 살짝 떠나 편을 드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사실관계를 따지는 게 아닌 거죠. 편들어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편을 드는 일을 하고 그것을 영상에 담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활동에서 선배들이나 동료들을 통해 배운 게, 아무도 편들지 않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라는 점이에요. 차별과 배제 속에 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소통하는 단추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이 되고 싶습니다.
카메라는 스스로 켜질 수 없고 스스로 꺼질 수도 없다. 이러한 카메라의 독특한 기능은 카메라로 하여금 능동적인 위치를 점할 수 없게 하였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카메라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영화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카메라’와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물리적인 조건이 존재한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사람이 카메라 뒤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영화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결정의 순간에 카메라 뒤의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이 산다>는 이 질문을 두고 약자의 편을 들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과연 그 자체로 옳은 결정을 함의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산다>에는 카메라 뒤에서 그 고민을 했던 이의 모습이 재인되어 있는 순간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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