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연대에 관한 이야기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여름밤>, <천막>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1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여름밤> 이지원 감독, <천막> 이란희 감독
진행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피해 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청년세대. 그 치열한 경쟁사회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고3 수험생 ‘민정’과 민정의 과외 선생님이자 취업준비생인 ‘소영’. 어느 날 민정은 소영에게 과외 시간을 바꿔달라고 부탁하고 그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소영은 그걸로 인해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는 상황을 겪게 된다. 자신의 선택과 그로 인한 변화를 감수하면서도 인간다운 관계를 선택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여름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3,169일째 날의 천막 농성장. 직장을 잃고 가장의 역할까지 잃은 세 명의 노동자에게 어느 날 터무니없는 소송비용 청구서까지 배달된다. D-1가 아닌 D+1, D+2, D+3….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이 되어버린 투쟁에서 노래하고 연대하고 오직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며 천막을 지키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천막>.
서로 다른 듯 같은 상황, 같은 처지에 놓인 두 영화의 인물들을 통해 관객은 현대사회에서 너무 낯설고 어색해진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너무 거대하고 어려워 보였던 연대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가장 구체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 <여름밤> 이지원 감독과 <천막> 이란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이하 진행): 작년 한 해 여러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화제작으로 거론되고 또 상도 많이 받은 작품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두 영화가 다른 모양새지만, 이렇게 같이 놓고 상영하니 닿아있는 지점도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두 영화가 시간과 연대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또 그 속에서 좋은 어른으로 산다는 게 뭘까, 괜찮은 사람으로 산다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던져주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시나리오를 구성하게 되었는지,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지원 감독(이하 이지원): 이 영화로 작은 연대를 통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어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요즘 사회적으로 작은 손해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야기 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런 지점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이란희 감독(이하 이란희):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2013년에 콜트콜텍 밴드 분들이 공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콜트콜텍 투쟁 이야기를 장편 시나리오로 작업했는데 잘 안 풀렸어요. 시나리오를 쓰려고 자주 천막에 가서 인터뷰를 했죠. 그런데 아저씨들이 인터뷰할 때 말이 되게 짧으세요. 받아 적을 만한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아저씨들과 더 오래 만나려면 뭔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천막> 전에 단편영화 3편을 더 찍었어요. 그렇게 영화를 같이 찍다 보니까 아저씨들과 영화제 같은 데에서 상영할만한 단편영화를 찍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장편 시나리오가 잘 안 써졌고요. 그래서 <천막>을 단편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아저씨들이 겪은 이야기들로 만들었고, 그래서 자극적인 사건들은 피해갔어요. 그러다 보니 일상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 것 같아요.
진행: 내가 나를 연기한다는 게 어떤 연기보다 힘든 것 같아요. 세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합이 잘 맞았어요. 작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천막>으로 세 분이 연기상도 받으셨잖아요. 그때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그때의 수상 소식과 수상 소감이 되게 감동적이었거든요.
이란희: 대구단편영화제는 연기상, 촬영상, 작품상 등을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끼리 모여서 반장 투표하듯이 뽑아요. 그때 제가 투표하는 자리에서 다른 감독님들한테 연기상에 <천막> 투표 좀 해달라고 사정했어요.(웃음) 많은 감독님들이 이 세 분이 처한 현실과 연기하는 모습에서 감동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서 표를 준 것 같아요. 수상 소식을 콜트콜텍 아저씨들께 전하니 매우 기막혀하면서 영화제에서 어떻게 자기들한테 연기상을 주냐고 했어요.(웃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으신 적이 있어요.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를 만든 노동에 대한 감사 형태로 공로상 비슷하게 받은 거예요.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이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좀 부끄럽고 프로 배우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나 봐요.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으로 열심히 살라는 격려와 지지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그때 객석에 앉아 있다가 좀 울컥했어요. 무뚝뚝한 분들인데 불쑥불쑥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걸 보게 돼요.
진행: 오늘 저도 영화 보면서 또 울컥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오고 가는 영화인 것 같아요. <여름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묻고 싶어요.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필모그래피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또 대사가 많지 않고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공기가 큰 영화여서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디렉팅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지원: 소영(한우연 분), 민정(정다은 분) 둘 다 연기경험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에요. 한우연 배우는 연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정다은 배우는 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그 전에 영화를 한 편 정도 찍은 상황이었고요. 다은 배우는 그 전에 제가 봤던 영화에서 인상적이어서 캐스팅했고요, 소영 역할은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민정 역 캐스팅이 먼저 되었고 거기 맞춰서 소영 역을 뽑았어요. 두 인물이 알게 모르게 외적인 생김새가 닮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합을 잘 찾기 위해 오디션을 꽤 많이 봤어요. 가장 먼저 한우연 배우 오디션을 봤어요. 처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인상에 남았죠. 그 후에 열 명이 넘는 배우들을 만나보았는데, 이 둘의 느낌이 비슷해서 최종적으로 둘을 조합했어요. 연기 디렉팅은 현장에서 하기보다 사전에 많이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셋이 같이 만나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어떤지,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부분 합의를 보고 들어갔기 때문에 배우들이 알아서 잘 해줬어요.
진행: <여름밤> 속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둘이 나란히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 등 두 배우의 투샷이 나올 때마다 찡했어요. 음악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음악감독님이 이 영화를 위해 음악을 따로 만들었나요?
이지원: 학교 후배에요. 원래 음악 전공은 아닌데, 영화를 하면서 음악도 같이 하는 친구예요. 확실히 영화를 하는 친구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적 감성을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강점이 있어서 제가 부탁했고 잘 만들어 줬어요.
진행: 두 감독님 전작을 비롯해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평소에도 계속 그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내는지, 그래서 시나리오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되는 건지 궁금해요.
이지원: <여름밤> 전에 찍은 두 단편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전부터 20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많이 생각하면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20대를 보냈고, 그런 불안감을 가졌기 때문에 관심이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행: 예전에 본 이지원 감독님의 <푸른 사막>(2011)도 오래 인상에 남았어요. 대사도 많지 않고 등장인물도 거의 없는 15분 남짓의 짧은 단편영화인데, 일자리를 구하는 여성의 한나절을 다뤘어요. 나중에 관객 분들도 기회 되면 꼭 한번 보면 좋겠어요.
이란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작가들은 저 등장인물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신기함과 궁금증이 있어요. 예를 들면 대기업 간부, 상무, 전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까? 한 번이라도 만나봤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어쩌다가 국회토론회 같은 데 가면 옆방에 국회의원들이 잠깐 들락거리는 걸 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그런 경험은 거의 없어요. 제가 노는 물 자체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보고 듣고 사는 게 저랑 비슷한 분들, 소위 사회적 소수자라 일컬어지는 분들을 자주 봐요. 또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이 관찰에 의존하는 방식이어서 상상 혹은 전혀 모르는 세계, 예를 들면 조선 시대 보물섬이나 해적선 같은 걸 조사해서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관찰한 것을 중심으로 쓰다 보니까 저랑 비슷하게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외국인이든 오랫동안 천막에서 농성하는 분들이든 제가 그분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저와 뭔가 비슷한 점을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해요.
진행: 이란희 감독님의 <파마>(2009), <결혼전야>(2014)도 인상 깊게 봤어요. 이주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마>와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유쾌한 지점을 잡아낸 <결혼전야>도 관객 분들이 나중에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어떤 것들을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이지원: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방식의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상업영화 시나리오는 처음이라 배우면서 쓰고 있어요. 지금까지 관심 있었던 주제, 제 강점들을 잘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란희: 콜트콜텍 장편을 쓰려고 하다가 지금 단편을 찍은 상황이에요. 사실은 <천막>이 1박 2일 짧은 이야기여서 담고 싶은 걸 많이 못 담았어요. 아저씨들도 영화 <카트>(부지영, 2014)처럼 카트 쫙 밀고 들어가는 그런 장면 없냐, 용역들이 와서 막 싸우고 문자로 해고당하는 장면 넣어야 관객들이 좀 알지 않겠냐 하면서 굉장히 원하셔요.(웃음) 콜트콜텍에 대해 조사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단편으로 마치기가 아까워요. 그동안 한 10개 정도 버전으로 써봤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10년 동안의 투쟁을 몰아넣은 다큐멘터리 같아서 주저돼요. 어떻게 하면 상영시간 100분 남짓을 투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인물과 같은 문제를 겪는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까, 어떤 이야기가 그릇이 되면 그게 가능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꼭 장편이 아니더라도 단편이든 중편이든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다면 영화 길이와 상관없이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에게 제작비를 준다는 사람이 없어서 꼭 써야 한다는 부담은 없어요.(웃음)
진행: <천막>을 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만들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죠?
이란희: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 인성으로는 다큐멘터리를 도저히 만들 수 없겠더라고요. 친한 친구 세 명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중에 ‘너는 왜 알코올 중독이면서 마누라를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는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질문을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콜트콜텍을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아저씨들에게 별별 이야기를 다 물어봐야 했겠죠. 투쟁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다른 매체를 통해 알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래서 가정사는 어떻게 됐지?’,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지?’ 이런 것들일 텐데, 아저씨들한테 그런 답변을 속 시원하게 받기도 쉽지 않지만, 제가 담이 크지 않아서 그런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기는 힘들 것 같았어요. 이미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관련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나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제가 인성에도 맞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할 필요가 없고, 또 잘 만들 거란 보장도 없지요. 극영화라는 형식이 사람 대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인 것 같아서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행: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지원: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이란희 감독님과는 작년에 영화제에서 꽤 많이 뵈었어요. 대구단편영화제 연기상에 주저 없이 투표했을 정도로(웃음) <천막>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감독님 전작들도 재밌게 봤는데, 이렇게 같이 상영을 하게 되어서 기분 좋아요. 추운데 조심히 돌아가세요.
이란희: <여름밤>을 네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느껴요. 사실 연대라는 말이 갖는 무게가 엄청나게 크잖아요. 조금 불편해지거나 본인의 몫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선택하는 순간들이 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는 주인공에 대해서, 저랑 나이 차는 20년 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굉장히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영화는 엄청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음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막>에는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윤리적 선택과 관련한 고민 같은 게 빠졌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 영화에 대해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고 느껴요. 영화제들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여름밤>, <천막> 두 영화를 함께 틀 기회를 갖게 되어 기분이 좋았어요. 오늘 바깥에 집회도 있는데, 보러 와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드려요.
추운 겨울, 영화가 상영 중인 극장 밖 멀지 않은 곳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연대가 한창이다. <여름밤> 가방 양 끈을 가슴 쪽으로 가깝게 끌어당기고 나란히 걷는 두 주인공과 장기전이 되어버린 투쟁현장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해 나가는 <천막>의 세 노동자의 모습이 닮았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지금, 여기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두 영화의 인물들은 같은 시간, 같은 처지로 우리 앞에 마주 서 있는 것이다. 두 영화의 인물들과 극장 밖 시민들이 든 촛불이 뿜는 그 연대라는 따뜻한 온기가 극장 안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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