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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하담을 떠나보내며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재꽃>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2. 27.

하담을 떠나보내며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재꽃>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1일(토) 오후 7 상영 후

참석 박석영 감독 | 배우 장해금, 김태희, 박명훈, 정은경

진행 김민형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영화 <재꽃>은 인물들의 관계가 부각된 작품이다. 우리는 우연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필연적인 관계들 속에서 항상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입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상대방을 고려해 속으로 삼키기도 하면서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관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런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박석영 감독과 직접 인물이 되어 상황에 뛰어든 배우들이 함께한 대화를 소개하려 한다.



김민형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이하 진행): 박석영 감독의 작품은 3부작으로 이어진다. <들꽃>(2014)과 <스틸플라워>(2015) 그리고 <재꽃>인데, 차례로 다 본 분들의 감상과 <재꽃>만 관람한 분들의 감상이 좀 다를 것 같다. 전작들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들꽃>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한 현실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는 인간의 이야기 중심으로 진행되고 <스틸 플라워>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기도 한다. 주인공 하담이 탭댄스를 배우면서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조금씩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재꽃>에서의 하담은 비교적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여전히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개인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재꽃>은 그동안 감독님이 주목해 온 하담의 이야기에서 많이 벗어난 듯 보인다. 하담의 이야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하담을 벗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자한 배경을 묻고 싶다.


박석영 감독(이하 박석영): 전작 <들꽃>은 거리에 있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였고 <스틸 플라워>는 <들꽃>에 나온 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하담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마음이 갔기 때문에 다음 영화에서 단독으로 다뤘다. <스틸 플라워>에서 하담이 밤에 촛불을 바라보는데, <재꽃>은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꽃>에서 ‘하담’과 ‘해별’이 다른 인물로 등장하긴 하나 나는 해별이 하담의 어린 시절이라 생각했다. 물론 반드시 그렇게 볼 이유는 없지만, 자신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힘들었던,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본인을 만난다면 그에게 탭댄스를 가르치거나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싶어 했을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재꽃>을 찍었다. 이 영화에서 하담과 해별은 각자 독립된 인격이라기보다 서로 연결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이 연기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부분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 해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상대 캐릭터를 알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하담의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주변인들로부터 격리된 인물의 기억은 타인이 이해할 수 없으며 단편적이다. 하담은 스스로 과거와 화해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세상과 화해하고 다시 나아가는, 떠나가는 것일 거다.


진행: <재꽃>만 본 관객들은 하담과 해별이 관계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영화가 판타지처럼 진행된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선 파국의 상황을 맞이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박석영: 이 영화는 <들꽃>을 찍으면서부터 생각한 이야기다. 특히 <재꽃>에서 하담이 엄마를 떠올리며 독백하는 장면,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으며 본인은 이제 버려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장면은 정하담 배우에게 <들꽃>의 오디션에서 주었던 대사다. <들꽃>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담이란 캐릭터에는 이미 어떤 사연이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하담의 이야기로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담이라는 캐릭터가 실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와 함께 그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만나게 되기 때문에 3부작을 통해 꾸준히 하담의 이야기를 쫓았던 것 같다. <재꽃> 마지막에 하담과 해별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나.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카메라가 더 이상 그들을 쫓아가지 않는다. 영화에서 만났던 하담이라는 인물을 이제는 영화 안에서 놓아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 인물의 암울한 기억을 쫓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매우 가학적이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진행: <재꽃>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들꽃>에서도 그렇다. 안전한 곳에서 살기위해 돈이 필요한 인물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스틸 플라워>도 마찬가지다. 하담은 탭슈즈를 구입하기 위해 부족한 돈을 놔두고 물건을 그냥 가져가기도 하는데, 이는 곧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재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 ‘철기’와 ‘명호’는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에 얽히고설킨 관계 혹은 돈과 욕망에 대해 고려한 지점이 있는지?


박석영: 원래부터 그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들꽃> 이전에 고려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도중에 그만두고 ‘비행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는 언젠가 금요일 밤의 홍대의 놀이터의 사건이다. 그곳에서 영화 속 하담 또래의 아이가 여기저기 널린 빈병을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취한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다가 점점 환호하기 시작했다. ‘한 병 더, 한 병 더’를 외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시던 맥주병을 줬고 그는 받아 던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날의 정서적 충격으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 타인에 의해 떠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때의 기억 속 그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다. 앞으로도 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을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는 그랬다. 


진행: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개인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는데, 감독님이나 배우님들이 연기에 대해 세운 원칙들이 있을 것 같다. 인물들이 감정을 내보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배우님들 스스로 고려한 부분, 감독님이 디렉팅이 궁금하다.


박석영: 솔직히 연기 디렉팅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배우의 표현을 존중하는 편이기도 하고. 배우가 감독만큼이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 디렉팅을 하지 않았다. 배우의 표현에 대해 디렉팅을 하는 순간부터 배우와 감독은 어쩌면 서로의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가장 어린 배우부터 연륜이 많은 배우까지 나로서는 전혀 고민이 없었다. 있다면 단지 컷 안의 위치 설정 같은 부분이었다. 실제로 철기 역의 김태희 배우나 명호 역의 박명훈 배우는 주류 상사에 가서 실제로 일을 했다. 영화에 나오는 집은 우리가 직접 폐가를 고쳐서 만든 것이다. 한 달 동안 같이 그곳에서 지냈다. 이런 작업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배우들을 만난 것은 나의 복이 아닐까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배우들 각자가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진행: 해별 역을 맡은 해금 배우는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장해금 배우(이하 장해금): 감정연기 할 때 감정이 잘 안 잡혀서, 쓸데없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콩이 생각이 나서 어려웠다. 그래도 잘 마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하담 언니와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언니가 맨발로 나에게 탭슈즈를 신겨주려고 할 때 나는 그 영화 속에서 걱정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언니가 걱정되어서 내 신발을 건넨 건데, 감독님이 칭찬해 주셔서 좋았다.


박석영: 그 장면은 내가 디렉팅 한 게 아니다. 해금 배우가 스스로 느낀 대로 한 것이다. 정적인 연출이 많아서 모두 짜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한데,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 많다. 잠자리를 가지고 노는 장면도 그렇다.


진행: 김태희 배우에게 질문하겠다. 철기는 진경과 명호 사이에서 낀 역할이다. 그 관계 안에서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감정이입에 있어서 특별히 고려한 지점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태희 배우(이하 김태희): 철기는 되게 애매모호한 성격이다. 속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할 말이 없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다. 본인이 말을 내뱉음으로써 주변이 받을 영향을 고민하는 것이다. 말을 삼킨다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을 연기할 때 특히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최대한 현명하기 위해서 말을 아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고 죽여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연기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진행: 박명훈 배우에게 질문하겠다. 영화에서 명호는 꽃밭을 언급하는 해별의 독백을 몰래 지켜보고는 ‘꽃밭은 무슨...’이라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바로 꽃밭을 만들기 위해 취한 채로 잡초 밭에 뛰어든다. 매우 모순적인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별의 등장이 다소 당황스럽고 불편하지만 내심 자기의 딸이길 바라기도 하는 그런 마음이 표현하기에 복잡했을 것 같다.


박명훈 배우(이하 박명훈):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항상 여러 가지 마음이 들지 않나. 특히 몰랐던 자신의 딸을 만났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본인이 상상하지도 못한 운명이 다가온 것이기 때문에 ‘꽃밭은 무슨...’이라고 말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받아들여 연기했다.


진행: 정은경 배우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드리려 한다. 영화에서 아들 철기와 말을 아끼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지만 후반부 파국의 상황에서 중재자 혹은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정은경 배우(이하 정은경): 연기하기 전에는 고민을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시작 전에는 고민을 감독님과 상의하긴 한다. 사실 나는 영화를 많이 안 해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감독님도 확실히 자기의 것을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뭘 해도 감독님이 틀렸다 하지는 않겠구나 생각을 했다.(웃음)


진행: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모든 인물들이 모여서 파국의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 장면을 구상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박석영: 인간으로서 정하담 배우를 믿는다. 3년이나 함께 작품을 해왔으니까. 마무리 대사는 하담 배우에게 구상한 것을 말해주면서 ‘장면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하담은 여기에서 모두를 맞닥뜨려야 한다. 하담이 한 마디를 남기고 갔으면 한다.’라고 전달했을 때 하담 배우가 직접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충분했다. 내가 만든 장면이 아니다. 그런 배우와 작업할 수 있는 감독이라 기쁘고 하담 배우에게 고맙다.



관객: 질문을 두 가지 드리겠다. 감독님의 전작을 모두 봤는데 <들꽃>과 <스틸 플라워>는 거칠고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듯한 인상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재꽃>은 전작들과 정반대인 듯하다. 정적이고 인물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다르게 연출을 한 배경이 궁금하다. 그리고 장해금 배우로부터 연기에서 어려웠던 점을 더 듣고 싶다.


장해금: 어려웠던 건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밤샘촬영 시 기다릴 때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질 때가 어려웠던 것 같다. (관객 웃음)


박석영: 나름 촬영환경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으나 아역배우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잘 버텨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세 영화는 본질적으로 같은 씨앗을 가진 영화이고 그 속엔 각기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 것이다. <들꽃>은 전쟁터와 같은 현실에 던져진 인물들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마치 내가 전쟁기록자가 된 듯한 마음으로 찍었다. <스틸 플라워>의 경우는 우리는 저 인물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따라갈 뿐이라는 생각, 혹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찍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윤리적인 고민이 있었던 작품이다. 이번 영화가 정적으로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더 가혹한 작품일 수도 있다.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나는 훨씬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세 작품들이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붙어 난 꽃들이라 생각한다. 


관객: 세 작품들 중 <재꽃>만 봤다. 이전의 영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만큼 한 작품 안에 완전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하다.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서로가 얽히며 싸우는데,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궁금하다. 


진행: 덧붙이자면 그 장면이 참 멋있게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극처럼 연출됐는데, 구도나 구성을 짜기 위해 고려한 것이 있는지?


박석영: 자리를 잡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일일이 그 순간을 지시하기는 상당히 까다롭고 또 지치는 일이지 않나.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설정을 했으나 워낙 배우들이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몇 번 해보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다. 대부분 배우들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임기응변도 많았고. 영화는 협업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담아내는 것. 다들 나보다 훌륭하고 낫다. 


김태희: 지금까지도 내가 제대로 철기라는 캐릭터를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장에서 그 장면을 촬영할 때도 ‘제가 한번 해볼게요’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장면의 상황이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냥 해볼 수밖에 없었다. 동선을 철저히 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버둥 쳐야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정은경: 맞다. 미리 연습하고 설정하기보다 각자 몰입한 감정에 따라 움직인 것이었다. 사실 그날 엄청 추워서 빨리 찍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웃음)


관객: <들꽃>은 못 봤고 <스틸 플라워>만 봤다. <재꽃>과 <스틸 플라워>는 모두 오프닝 장면이 캐리어를 끄는 여성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한 것인지 궁금하다.


박석영: <스틸 플라워>에서는 하담이 가출했기 때문이었고 <재꽃>의 해별은 과거에 가출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하담의 어린 시절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설정한 장면이다. (해금 배우에게)어땠나?


장해금: 음,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버려졌으니까 캐리어에 짐을 싸 아빠를 찾으러 가는 아이의 이야기인가보다 생각했다. (관객 웃음)


박석영: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관객: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달리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별은 처음에 달리는 것을 싫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담과 함께 달리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마지막엔 여전히 달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박석영: <재꽃>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달리는 장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해별이 운동장에서 혼자 달리는 것이다. (해금 배우에게)어땠나?


장해금: 영화 속 해별은 하담 언니랑 자주 뛴다. 특히 감독님이 말한 그 장면에선 운동장에 하얀 원이 있었다. 원은 끝나는 지점이 없다. 그래서 하담 언니를 계속 생각하면서 끝없이 달렸던 것 같다. 옆에, 뒤에, 앞에 언니가 있는 것처럼, 밖으로 나가는 선 없이.


박석영: 디렉팅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는지 몰랐다. 훌륭한 배우다. 하담 배우가 간절히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어린 날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하담이 해별을 잃어버린 후 그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영화인 듯하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토록 뛰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그런 장면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 마주하면서 더 나아지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배우들이 달리는 장면을 찍느라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명훈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웃음) 후반부에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사나운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어떻게 연기한 건지 궁금하다.


박명훈: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꽃밭을 망가뜨리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신신당부를 하셨다. 다시 꽃밭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한 번에 가야 한다며 함께 손을 잡고 기도도 했다. 기적처럼 성공했다. 그런 기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다.


진행: 마지막으로 계획과 소감을 묻겠다.


박석영: <재꽃>은 5월이나 6월 즈음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잘 준비해서 다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이번 영화가 마음으로 다 마무리 되지 않아서 차기작은 좀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장해금: 추운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영화관에서 또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진행: 늦은 밤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시작 전에 나눠드린 이 장난감은 영화에서 하담과 해별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 신호를 곱씹어보면 어떨까 한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란다.



하담을 생각하며 끝이 없는 원을 달리고 또 달렸다는 정해금 배우의 발언이 인상 깊다. 앞서 말한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계에서 어떤 이상(理想)을 설정한다. 하지만 그런 완전한 종착점은 마치 원을 달리는 것처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밖으로 벗어날 수 없듯 우리는 관계의 바깥에 설 수 없다. <재꽃>에서 하담이 세상 혹은 자신과 화해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라고 되묻는 박석영 감독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세상과 주변 혹은 자기 자신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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