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그들의 살아있는 삶
- <노라노>,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우리들>, <목욕>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굳이 ‘벡델 테스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영화가 남성 중심의 서사에 치우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동적 위치의 여성 인물들이 전개에 장애물이 되거나 희생자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독립 영화를 접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들이 정형화되지 않은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위치와 연령에 있는 삶들을 담은 영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때문에 다른 매체가 쉽게 줄 수 없는 즐거움과 생각의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이번 기획을 통해 여성들의 삶, 혹은 그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1. 여성 인물이 내러티브의 중심이 된다.
2. 등장하는 여성의 삶을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위의 두 기준에 따라 <노라노>,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우리들>, <목욕>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선정하였다.
*벡델 테스트
1) 이름 있는 여성 캐릭터가 2명 이상 등장하는가
2) 두 여성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3) 대화의 내용이 남성과 관련이 없는가
위의 세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화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전개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지표로 자주 사용된다.
1. <노라노 Nora Noh> 김성희, 2013
한국 최초의 의상 디자이너 ‘노라노’가 자신의 패션사를 돌아보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이다. 입센 헨릭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집을 뛰쳐나오는 주인공 ‘노라’의 이름을 스스로 붙인 그녀는 50년대 여성에게 허락되어 있던 현모양처로의 삶을 박차고 나와 한국 최초 디자이너의 삶을 살게 된다. 맨몸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한국에 돌아와 편견에 맞서는 일은 쉽지 않았겠지만, 노라 노는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하고, 기성복의 유행을 주도하고,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 1층에 전면 전시를 하는 등의 업적을 이룬다.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라는 그녀의 말처럼 노라 노는 성공한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당시의 여성들에게 자존감을 주었던 디자이너다. 그녀의 업적이 만들어낸 영광은 어쩌면 개인의 것이 아닌 그녀의 옷을 입고 움직임을 바꿀 수 있었던 여성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영화 <노라노>에서는 디자이너 노라 노의 삶을 재조명할 뿐 아니라 의생활을 바탕으로 한 과거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2.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Myselves : The Actress No Makeup Project> 부지영,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 2011
영화 산업은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가고 있고 그 와중에 어쩌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존재가 ‘여배우’일 것이다. 여성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적인 것인 것도 물론이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여배우라는 말에는 많은 선입견이 따라붙는다. 여성 배우들에 대한 조롱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촬영장의 꽃’ 등으로 불리며 부정당하고, 성적 대상으로 서게 되는 모습 또한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여배우들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남아있길 요구 당한다.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는 배우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이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감독이 되어 그들의 1년간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배우가 아닌 개인의 삶을 주로 보여주고 후반부에는 배우로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정해진 각본이 없고 즉흥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여배우라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 그들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솔직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3. <우리들 THE WORLD OF US> 윤가은, 2016
청소년이라는 존재는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기존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이기를 요구 당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종종 감정이나 생각이 없는 존재로 남을 때 칭찬을 받으며 혹여 그들이 고민하고 행동하면 ‘사춘기’라는 말로 그것들이 지닌 가치를 외면한다. 그들의 삶은 어른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영화에서도 선입견을 바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의 주인공은 열한 살 청소년들이다. ‘선’과 ‘지아’의 세계 역시 어른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의 부족한 집안 환경이나 지아 부모님의 이혼 등은 그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데 한몫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모습으로 남지 않는다. 영화는 선과 지아, 그리고 그 친구들이 마주한 세계에서 그들이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주어진 세계에 솔직히 반응한다.
4. <목욕 The Bath> 이미랑, 2007
<목욕>은 트렌스젠더 여성과 그녀의 언니가 목욕탕에 가게 되는 일을 담은 단편영화다. 영화는 대사가 적고 사건이 단편적이며 생략된 정보도 많다. 마치 영화를 보는 동안 언니와 동생, 그리고 엄마가 겪고 있는 어색함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만 같다. 짧은 영화지만, 그들이 맞는 하루가 어쩐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서툴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가는 과정을 희망적으로 담은 영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성소수자라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이상으로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보았다. 위의 네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연령과 지위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분명히 더 많을 것이다. 영화는 삶을 다루는 예술이기 때문에 한 쪽 성에 치우친 영화가 더 많이, 반복적으로 생산 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는 삶이 아닌 ‘어떤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영화라는 예술이 가치 있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면,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기억되는 일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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