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으로 연애하는 우리들 <미스터 쿠퍼>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7월 1일(금)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오정미 감독 | 배우 이유영, 장원형, 민복기
진행: 이숙경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님의 글입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단독 개봉한 단편영화 <미스터 쿠퍼> 개봉 후 첫 인디토크가 있었다.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출연진 모두가 참석하여 무대인사를 가졌다. 이후엔 오정미 감독의 선생님이기도 한 이숙경 감독의 진행으로 영화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숙경 감독(이하 진행):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들어볼까요?
오정미 감독(이하 오): 이런 저런 시나리오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에 쿠퍼액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모르는 친구들이 없었고 이에 대해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위키피디아에 쿠퍼액 사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살펴봤더니 그 사진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과학적이면서도 위생적인 느낌의 사진이지만, 정작 결정적인 사실은 얘기해주지 않고 있었죠. 그래서 이걸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는 영화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어요. 그러다 시나리오 만드는 과정에서 지인 중 몇 명이 저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가령 3년 사귄 남자친구가 어머니와 식사하자고 해서 갔더니 어머니께서 헤어지라고 말씀하시고 옆에서 남자친구는 파스타만 처먹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었죠.(웃음) 쿠퍼액과 함께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배우들은 시나리오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이유영 배우(이하 이): 처음에 장편인줄알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더라고요. 결말이 아직 안 난 것 같아서 시나리오가 덜 온줄 알았어요.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감독님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가 감독님의 경험담이라고 확신을 했던 것 같아요.(웃음)
장원형 배우(이하 장): 시나리오의 ‘민구’가 저의 평소 모습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정말 편하게 읽었고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오: 캐스팅 비화를 잠깐 언급해야할 것 같아요. 배우들을 굉장히 오래 찾았어요. 웬만큼 얼굴이 알려진 배우 분들은 섭외가 힘들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여성의 사진을 봤는데,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정말 비슷했고 그게 바로 이유영 배우였어요. 그런데 이미 신인상도 받았고 상업영화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섭외가 힘들 것이라 판단해 비슷한 다른 배우를 찾고 있었죠.다음날 한 PD님께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캐스팅 진행과정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아직 완료가 되지 않았다니까 “이유영 배우는 어떠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만났는데, 마인드가 괜찮은 배우 같다며 자기가 한 번 시나리오를 보내보겠다고 하셨는데, 사실 보내놓고선 기대도 안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시나리오 잘 봤다고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인연이라 생각했죠.(웃음) 그리고 제가 어느 날 저녁에 밥을 먹고 학교 벤치에 앉아있었다가 한 남자를 보게 되었어요. 그 남자분이 제가 봤던 어느 단편영화에 나온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난생 처음으로 헌팅해서 연락처를 물어봤는데, 그 분이 장원형 배우였어요.(웃음) 그런데 그 뒤로 한 번도 만나진 않았어요. <미스터 쿠퍼>를 제작할 때 장원형 배우가 프로필을 보내왔는데, 마침 그 시기에 이유영 배우를 만났죠. 혹시 상대역으로 적당한, 생각나는 배우가 있냐고 물어보니 장원형 배우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장원형 배우는 “이 남자는 이 여자를 정말 사랑한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일반적인 분들과는 정말 다른 관점에서 대답을 하셨어요. 심지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위키피디아 앱을 보여주시더라고요.(웃음) 인연인 것 같다는 생각에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민복기 배우는 영화에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싫은 느낌을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민복기 배우(이하 민): 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감독님께서 다 지시하신 부분이에요.(웃음)
관객: 극중 ‘인애’가 소통에 약간 서툰 면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보였어요. 시나리오 쓰실 때 어떤 설정을 염두에 두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오: 사실 과묵한 캐릭터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사는 모습을 담고자 했어요. 이유영 배우가 고되게 연기를 했죠. 거기다 계속 화내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아서 그 부분을 더 걱정했습니다.
진행: 중요한 부분이 여자가 처해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드러나는 부분이었어요. 굉장히 현실적인 연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부각되어있고 일종의 계층 문제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의 엔딩이 인상 깊으면서도 많은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산부인과 장면을 핸드 헬드로 촬영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오: 어떤 방법으로 인애를 쫓아가면서 ‘미스터 쿠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콘티 작업 때부터 여러 방면에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촬영감독님께서 인애의 숨결을 담아내고 싶어 하셨어요. 때문에 좀 더 다가가고 싶어서 기본적으로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았고 저는 크게 관여하진 않았습니다.
관객: 예고편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오게 되었어요. 실망한 부분 전혀 없이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가장 친한 친구한테 하는 비밀적인 이야기를 공개된 곳에서 한 느낌이라 여자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미 결혼을 했지만, 결혼한 상태에서도 불안한 마음은 늘 있거든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고 그 마음이 진짜인 것 같아서 재밌게 봤습니다.
민: 영화가 정말 평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그 안에서 감독님이 정말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오늘 영화를 처음 봐서 질문이 생겼는데, 편의점에서 인애가 유리창에 물을 뿌리고 닦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유리창에 물을 뿌렸는데 정작 손잡이인 봉만 닦더라고요.(웃음) 이게 엄청난 메타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행동은 감독님의 의도인건지 배우의 생각인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이: 기술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에요. 카메라에 얼굴이 보여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봉을 닦아서 나온 장면인 것 같네요.(웃음)
관객: 이유영 배우는 함축적이고 요약된 감정선을 다 표현했어야 했는데,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이: 제가 지난 일을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에요.(웃음) 찍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당시에 제가 힘들다고 계속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정말 부드러우신데, 약간 변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집요하세요. 평소 제 모습을 많이 담고 싶어 하셔서 제 이야기를 들으려고 연애사 등을 집요하게 많이 물어보셨어요. 그러다보니 저 역시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깊게 빠져들었고 힘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오: 이유영 배우가 불평은 안하고 굵고 짧게 “힘들다”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원래 말을 놀라울 정도로 심플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에요. 배우님들이 옆에서 많은 힘이 되어주었어요.
장: 배우가 감독에게 질문을 하게 되면 보통 감독이 어느 정도의 선을 그어주시는데, 그런 것 없이 정말 깊숙이 들어가게 만들어주시더라고요.
진행: 다들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민: 저는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이: 마지막 장면이랑 민구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의 베드신이요. 영화에서 가장 달달해 보였던 장면이거든요.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긴 한데, 포근함을 쉽사리 뿌리치질 못하는 마음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면이 관객 분들이 고민해보는 지점이 되길 바랐었어요.
오: 저도 엔딩이 기억에 남는데, 촬영 당시 디렉팅을 안하겠다, 무모하게 도전했어요. 테이크를 여러 번 가니깐 다들 힘들어했는데, 엔딩 장면을 끝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리고 이유영 배우는 본인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절대 아는 척 하지 않아요.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바뀐 부분이 2곳 있었어요. 하나는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우는 장면인데, 원래 울지 않는 설정이었어요. 또 하나는 집 화장실에서 생리 여부를 확인하고 안도하며 웃는 장면인데, 또 원래는 웃지 않는 설정이었거든요. 이유영 배우가 본인이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히 표현해주었고 그에 맞춰 수정했는데, 나중에 편집하면서 보니 이유영 배우의 선택이 옳았고 참 고마웠어요.
장: 저도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장면 찍을 때 다른 테이크에서는 이유영 배우가 물건을 던졌어요. 그런데 영화에는 물건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제가 겁을 먹어 움츠렸던 장면이 들어갔더라고요.
다른 단편들에 비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나간 <미스터 쿠퍼>. 확실치 않은 무언가를 의심하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시선을 담아내었다. 그래서 이후에 인애와 민구는 행복했을까? 가끔 그들의 이후를 상상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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