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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점과 점을 잇다 <설행_눈길을 걷다>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3. 16.

점과 점을 잇다  <설행_눈길을 걷다>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3월 13일(일) 오후 3 상영 후

참석: 김희정 감독

진행: 부지영 감독 (<카트>, <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화이트데이를 앞 둔 일요일, 수많은 영화관 중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양한 영화 중 <설행_눈길을 걷다>를 선택해 ‘점’과 ‘점’으로 연결된 관객, 감독이 있는 인디토크 현장을 다녀왔다. 영화를 통해 접점을 만들고, 생각을 공유하며, 눈길을 함께 걷는 그 현장을 지금 만나보자.



부지영 감독(이하 부): 저는 <설행_눈길을 걷다>를 두 번 봤는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의 예전 전작들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이번 영화는 작심하고 만든 영화 같아요. 그래서 왜 영화를 이렇게 만드셨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김희정 감독(이하 김): 어렵게 만들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소재에 따라 그런 것 같아요. 다루는 대상 자체가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의식, 그러니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태에 집중하다 보니까 추상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부: 맞아요. 사실 그 부분이 이 영화의 차별성인 것 같아요. 주인공의 환각인지 내면인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따라 가다 보니 내러티브가 잘 잡히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인거죠. 그리고 영화에서 김태훈 배우가 가장 눈에 띄어요. 김태훈 배우의 작품들을 오랜 시간 봐왔지만 <설행_눈길을 걷다>와 같이 그 배우를 위한 영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은 감독님도 동의하실 것 같아요.

김: 제가 직접적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그렇게 되길 바랐어요. 김태훈 배우가 굉장히 성실한 배우고, 남성적인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김태훈 배우의 얼굴 자체를 좋아하고 독립영화들에 출연했을 때 더욱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설행_눈길을 걷다>를 보고 김태훈이란 배우를 재평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기분이 굉장히 좋죠.

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요. 이번 영화로 확실히 재평가됐다는 것에 제 오른손을 걸겠습니다.(웃음)

관객: 지금까지 <설행_눈길을 걷다>를 총 6번 봤는데 정우가 차에 타면서 약을 먹는 장면이 이해되지 않아요. 그 장면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넣으신 건지 궁금해요.

김: 6번 보셨는데 진짜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그건 만든 사람이 잘못한 것 같아요. 그 장면은 정우가 보건소에 다녀 온 이후의 장면이에요. 다친 손 때문에 보건소에서 소염진통제 같은 걸 받고 차 안에 넣었겠죠. 시나리오엔 정우가 약봉지를 차 안에 넣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다른 장면들까지 모아서 보여드려야 하다 보니 그 부분을 뺐어요. 다른 곳에서도 “그 약이 뭔가요?”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날이 정우가 술을 마시지 않은지 셋째 혹은 넷째 날이 되던 때에요. 술을 마실 수 없기에 극한으로 힘들었던 정우가 뭐라도 섭취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 약을 먹는 장면을 넣었어요.

부: 극장에서 계속 틀어주면 10번, 20번도 보실 분이 계실 것 같아요. 스테디셀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영화인데 우리나라 배급 상황이 참 아쉽네요.

관객: 마리아가 총에 맞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아버지가 환영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러면 마리아는 환영을 실제로 본 것인가요? 그리고 마리아가 진짜로 그 총에 맞은 건지 아니면 정우의 상상인건지 궁금합니다.

김: 체코의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데 사고가 있었어요. DCP에 문제가 생긴거죠. 하필이면 움막 장면이 끝나고 삽으로 눈을 파는 장면에서 끊어졌어요. 그 장면 이후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데 관객 분들도 답답해 하셨죠. 일단 영화를 다시 업로드 하는 와중에 GV를 진행했어요. 밤 10시였는데 영화제 측은 “DCP 문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관객 분들은 GV때 엔딩에 대해 물어봤고요. 그 중에 설치 조각을 하시는 한 아티스트 관객 분은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에 엔딩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나가겠다”고 하시며 나가기도 했어요. 그 때 엔딩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생각해봤어요. 정우가 눈보라를 맞으며 길을 걷는 장면을 빼고 나오는 모든 눈은 판타지예요. 모두 정우의 머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 인거죠. 그래서 눈길 위의 마리아도 정우의 생각이고 모두 정우의 머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관객: 정우의 어린 시절이 나오고 아버지의 이야기로 이어지잖아요. 그리곤 그 뒤에 현재의 정우가 나와서 눈길을 걸어가는데 그러면 그 눈길과 어린아이가 걸어가던 길이 같은 길인지 궁금합니다.

김: 장소적으로 같은 길이 아니지만 의미적으론 같아요. 마리아가 “너무 추운데 아이는 하나도 춥지 않아요. 왜냐하면 엄마 손을 잡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된 정우는 그 길을 혼자 걸어가야 하고 손을 잡아줄 엄마가 없어요. 아무도 정우의 손을 잡아줄 수가 없죠. 그래서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을 정우가 걷는 겁니다.

부: 그래서 눈보라가 내리는 장면을 찍으신 건가요?

김: 그 장면은 실제 눈보라가 내리는 곳에서 촬영했어요. 1년 전에 나주엔 눈이 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주 덕유산에 있는 리조트로 가서 4시간 안에 찍었어요. 곤돌라 운행이 오후 4시에 끝나서 그 시간을 맞추느라 촉박하게 촬영했었죠. 일주일을 할애해 찍어도 모자랄 수 있는 장면을 4시간 안에 찍은 거였죠. 그리고 엔딩에서 정우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장면이 제일 중요한데 눈이 내리지 않아서 매일 매일 걱정했어요. 마침 나주 성당 촬영장에 놀러왔던 어머니랑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이 내리는 것을 전화로 알려주셔서 부리나케 김태훈 배우를 불러서 찍었어요. 사실 김태훈 배우는 그 날 촬영 일정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어요. 배우가 이미 그 배역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기에 바로 나와서 옷만 갈아입고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겐 가장 감사한 장면입니다.

부: 마지막 장면에서 김태훈 배우의 표정이 정말 좋았어요.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엄마 없이 험한 길을 혼자 헤쳐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들어난 것 같아요.

김: 그런 오묘한 느낌을 바랐어요.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닌 또 걸어가야 할 길을 깨달은 사람인거죠.

관객: 정우가 꿈을 꾸는데 처음에는 마리아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깨잖아요. 두 번째는 자신이 붕 뜨는데 발버둥을 쳐요. 발버둥 치는 장면에서 정우가 자신의 처지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꿈에 발버둥 치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고요. 두 번째는 정우의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김: 첫 번째 질문은 요즘 들어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초반에는 관객들이 그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내용을 파악하시느라 그랬나 봐요. 

부: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최소 3번 이상 <설행_눈길을 걷다>를 관람하신 것 같아요.

김: 그건 정우가 성당에 대해 느끼는 ‘어떤 것’인 것 같아요. 십자로 누워 공중에 뜰 것 같은 느낌을 성당과 수녀님을 통해 받았겠죠. 그리고 꿈인지 판타지인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마리아가 공중에 뜬 것을 보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걸 보며 정우가 ‘내 몸도 뜰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정우의 상태와 관련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정우로부터 나온 것이에요. 알코올 중독에 대해 취재해보면 사실 알코올 중독은 가족병이라고 말 할 정도로 가족들의 치료가 절실해요. 왜냐하면 주변을 파괴하는 병이거든요.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사랑해도 어쩔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부산에 GV를 갔다가 거기서 재밌는 질문을 받았어요. 마리아가 엄마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정우가 술병을 훔쳐서 나오다가 술병이 깨지잖아요. 그 장면에서 한 남자관객분이 엄청 울었대요. ‘얼마나 중독이 심하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리아의 엄마가 죽은 집에 가서 까지도 술병을 훔칠 수밖에 없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하셨어요. 그건 진짜 중독자나 중독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알코올 중독자가 그런 상황에서도 술을 찾는 것은 의지와 상관이 없어요. 알코올 중독 지침서에 “네가 날 사랑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니?”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나와요. 그 말은 중독자에겐 논리적으로 말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은 내적인 병을 많이 앓아요. 그런 맥락에서 정우의 엄마는 자신의 남편도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아들까지 그러니 속병이 얼마나 심했겠어요. 이런 이유로 아마 정우의 엄마는 내적인 병으로 죽었겠죠.


관객: 정우는 자기로 인해서 엄마가 죽었다는 죄의식을 느끼고 수녀님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나요?”라고 묻잖아요.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건지 궁금해요. 그리고 감독님은 마지막에 나오는 정우의 오묘한 표정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감독님은 정우란 인물이 구원 받길 원하셨는지 아니면 정말로 구원 받은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김: 처음에 우리 프로듀서가 시나리오를 읽고 “정우는 죽여야 된다. 그래야 임팩트가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에게 “정우를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이 영화를 왜 만들겠니?”라며 화를 냈어요. 무슨 말이냐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죠. 사실 중독에는 희망이 없어요. 그렇지만 희망이 없다고 인간이 기도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되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기원하는 것을 뜻해요. 알코올 중독은 낫는 병이 아니라 ‘멈춘다’고 표현하는 병이에요. 그래서 회복이 되진 않지만 도망은 다닐 수 있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힘을 얻어서 도망 다닐 몸을 만들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야하고 살도록 염원해야 하는 것이죠. 정우가 절망적으로 죽을 것인지 죽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저는 정말 염원을 담아서 만들었거든요.

부: 그렇다면 정우는 결국 구원을 받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겠네요?
 
김: 그렇죠. 그것은 ‘스텝 바이 스텝’이니까. 하루하루 잘 살아야 돼요. 하지만 하루하루 잘 살아가기가 정말 힘들죠. 

부: 알코올 중독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인 것 같아요. 한 순간에 구원이 이뤄질 순 없고 매일매일 기원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분에서요.

관객: 술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어떤 것에 중독돼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알코올을 통해 위안이나 쾌락을 얻듯이 각자가 추구하는 그런 중독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집착이 생기고요. 감독님 말씀처럼 도망 다닐 힘이라도 얻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죠. 사실 처음엔 정우에게 기다릴 수 있는 힘조차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후반에 적어도 도망이라도 치거나 ‘이건 아니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것까지를 보여주셨는데 이 부분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 많은 리뷰 중 가장 와 닿았던 리뷰가 하나 있어요. “이 영화는 정우에게 출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방구석의 어둠 속에 혼자 있어봤던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란 리뷰였죠. 정말 고마웠어요. 그런 식으로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관객: 대부분의 남자 감독님들은 비관적인 결말을 통해 치열하게 보여주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살아온 경험들을 되돌아 봤을 때는 ‘<설행_눈길을 걷다>처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면 초반에는 ‘소설로 밀도 있게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중반부에 가면 ‘이걸 왜 영화로 찍었는지 알겠다’란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지만 초반에 밀도 있게 들어가지 않아서 ‘이 영화를 내가 좋아하게 될까? 빠져들게 될까?’라고 망설이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김: 의도는 없어요. 저는 문학도 좋지만 미술을 정말 좋아해요. 제 세편의 영화에 그림이 중요한 모티프로 나와요. 사실 몰랐는데 인터뷰 도중에 기자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저는 영화를 분석하는 사람도 아니고 제 기억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영화로 만들기 때문에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감각적으로 영화를 접근하려 해요. 따라서 <설행_눈길을 걷다>도 제가 감각적으로 접근한 영화이죠. 당연히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대할 때는 영화적으로 접근해요. 그런데 혹자들은 제 영화에 ‘문학적’이란 표현을 많이 쓰곤 해요.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영화 소재, 장르들과는 변별점이 있기 때문에 주로 이런 영화들에 ‘문학적’이란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서 “이걸 왜 문학적으로 느껴요?”라고 질문하면 대답을 못한단 말이죠. 대부분 주입된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스스로 질문 해봐야죠.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당연히 저는 영화적으로 접근하고요. 제 영화를 몇 번씩 보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회를 거듭해 볼 때 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을 텐데 저는 그걸 염두하고 모두 심어놓거든요. 저는 영화는 소리와 그림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 소리와 그림을 공들여 짰어요. 이 영화를 볼 때 한 중년의 관객분이 “오랜만에 귀가 편한 영화였어요”란 말씀을 하실 때 기분이 좋았어요. 결국 영화는 사운드와 이미지에요. 저는 철저히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영화 세편을 만들었어요.


관객: 저는 정우라는 캐릭터는 이해가 되는데 마리아 캐릭터는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마리아가 무당의 딸이고 신병을 앓는다는 설정이 정우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원장수녀님은 마리아가 성스러운 아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마리아가 초반엔 정우에게 “속세는 어때요?”라고 물으면서 속세에 관심을 갖는데 결국엔 봉쇄 수도원으로 가버리잖아요. 마리아란 캐릭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풀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캐릭터에 있어서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마리아는 성스럽고 깨끗한 수녀인데 소녀에서 숙녀로 넘어가는 과정이기에 궁금한 것이 엄청 많죠. 그래서 정우에게 “서울에도 눈이 진짜 많이 와요?”와 같은 호기심어린 질문을 하는 디테일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리아의 손에 자세히 보시면 사인펜 자국이 계속 있거든요. 항상 점을 찍으며 그림을 그리는 마리아이기에 그런 자국이 있던 거예요. 이와 같은 캐릭터의 복잡성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렇게 보여 지길 바라요. 사실 학생들이랑 이야기할 때 저는 “대학생이 캐릭터는 아냐.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50명이 다 달라. 그런데 왜 대학생이면 대학생, 의사면 의사, 간호사면 간호사.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스테레오 타입화 시켜?”라고 말해요. 사람들은 다 개개인이고 성격이 다르잖아요. 그것처럼 마리아가 복합성을 가진 캐릭터이길 바랐어요. 그리고 마리아가 봉쇄 수도원으로 간 것은 마리아가 “이 아저씨를 구원해주시면 저는 말씀을 전해 듣는 그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 정우에게 수녀님이 “마리아는 봉쇄 수도원으로 떠났습니다. 하느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라고 말하잖아요. 바로 그 응답에 마리아가 반응했겠죠. 저는 모든 캐릭터가 여러 가지 얼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2시간 안에 캐릭터를 복잡한 얼굴로 만드는 작업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데 그것을 잘 다져놔야 배우들이 연기하기에도 훨씬 좋아요. 그 캐릭터가 일관성이 없는 걸로 느껴지시고 “그럼 그 인물의 목표는 뭔가요?”라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저는 하나의 인물을 이런 식으로 구현하고, 마리아는 정우에게 희생을 했다고 생각해요.

부: 박소담 배우는 ‘마리아’란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요?

김: 워낙에 박소담 배우는 똘똘한 친구에요. 그런 친구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죠. 저는 박소담 배우와 같이 수녀님을 만나서 수녀님의 생활, 옷을 입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그리고 무당에 관한 다큐멘터리 DVD를 그 친구에게 빌려줬어요. 접신하는 연기를 할 때 할머니 소리나 아기 소리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빠지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죠. 촬영 당일에 박소담 배우가 준비한 연기의 방향이 적절한지 이야기를 나누고 목소리 변화 없이 사투리만 쓰는 걸로 촬영을 했어요. 접신 장면에선 마리아의 입 꼬리가 싹 올라가는데 모든 스텝들이 “여태까지 봐오던 마리아는 어디 있느냐”며 연기에 놀랐었죠.

부: 저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로 확 빨려 들어갔어요.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고 ‘이거 뭐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상업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 장면이 영화의 20씬 정도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아마 40씬 정도에 나왔던 것 같아요. 이 연기를 박소담 배우가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을 찍기 전에 했었죠?

김: 그렇죠. 저희 촬영할 때 <검은 사제들>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저는 ‘수녀 역할인데 악령이 쓰인 역할을 한다고?’란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제 입장에서는 반대로 생각했죠. 완전히 반대인 역할이기에 걱정했었는데 그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설행_눈길을 걷다>를 더 알게 된 것은 장점으로 생각해요.

부: 사실 <검은 사제들>을 보고 이 영화나 연극 <렛미인>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서 아쉬웠어요. 사실 이 영화가 경력으로 치자면 먼저이니까요.

김: 이 영화가 작은 영화고 개봉한지 2주차에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먼 곳에서 작은 극장을 찾아와 영화를 보시는 분이 하루에 약 이백 명씩 계시다는 점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만남도 다 인연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이 그때만을 위해서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후일의 만남을 도모하기 위해 지금 이런 만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영화를 통해서 위로를 받으시거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래도 좀 살만하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좋겠지만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고요. ‘한 번쯤 볼만한 영화가 나왔다’와 같이 다양성 측면에서 홍보 좀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구원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고’, ‘받을 수는 있는 것인지’ 어느 것도 알 수가 없다. 사실 그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혹자의 길엔 꽃잎이 떨어진다면 또 다른 누군가의 길엔 눈보라가 몰아친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설행_눈길을 걷다>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에겐 점으로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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