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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하반기 독립영화 캐릭터 열전, 독립영화 인사이드 아웃

by indiespace_은 2015. 12. 25.
 하반기 독립영화 캐릭터 열전, 독립영화 인사이드 아웃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올 하반기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스크린에 피고 졌다. 절망 속에서 고투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 현실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애의 달고 쓴 맛을 생생히 보여준 <오늘영화>의 교환과 하나, 서로 기댄 채 추운 겨울을 살아내던 <들꽃>의 세 소녀 수향, 하담, 은수 등. 관객 저마다의 마음속에 남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숱한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 몇 가지 뚜렷한 성격으로 기억될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역시나 올해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캐릭터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올 하반기 독립영화의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를 소개한다.



1. 감히 ‘춘블리’라 불러드리고 싶다. 기쁨이 | <춘희막이>의 춘희할머니



한 집안의 본처와 후처로 만나 35년의 세월을 가족으로 살아온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춘희막이>. 모녀 같고 친구 같은 두 할머니의 케미가 빛나는 작품이다. 풍성한 머리숱과 유쾌한 웃음소리를 자랑하는 춘희 할머니는 과연 올 하반기 독립영화 최고의 ‘기쁨이’다. ‘주 차 삘라’, ‘대가리 쳐 박아라’ 등 막이 할머니의 다소 거친 (동시에 애정담긴) 구박을 받으면서도 춘희할머니는 막이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거둘 줄 모른다. 굽은 자세로 콩콩 뛰며 장난기어린 모습으로 화면에 처음 등장한 춘희 할머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긍정에너지를 발산한다. 하지만 막이 할머니가 집을 비운 날 밤, 전에 없던 서글픈 눈물을 보인다. 그 좋아하던 식사도 마다하며 막이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춘희 할머니. 영화 내내 미소를 짓고 계시던 할머니이기에 그 모습이 더 뭉클하다.

- 바로 그 장면! 

남의 밭에서 몰래 고추와 밤을 줍던 장면.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춘희할머니. 밭 귀퉁이에서 열심히 고추를 캐고 밤을 줍는다. 된장에 찍어먹을 계획을 밝히며 잔뜩 들뜬 모습이다. 한참 후에 덧붙이길, “좀 있으면 밭주인 올 텐데.” 일종의 ‘서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양파망 가득 고추와 밤을 채워 돌아가는데 길 저편에서 밭주인이 다가온다. 춘희 할머니는 뒷짐을 고쳐 지으며 잔뜩 긴장한 뒤태를 보여준다. 밭주인 아저씨가 점점 다가오자 할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 대뜸 고추를 내보이며 말한다. “밤 주워 먹을라는데 밤이 없다. 이건 고추! 고추 새파란 거 베어놨데. 주워간다. 좀 주워서 먹을게요.” 정작 밭주인은 별 개의치도 않는 얼굴이다. 사랑스러운 ‘기쁨이’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장면.



2. 종말을 기다리는 자. 슬픔이 | <그들이 죽었다>의 이화



영화를 꿈꾸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하던 젊은 영화학도들이 힘을 모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그들이 죽었다>. 연출진들이 곧 영화의 주조연이기에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만큼 제작진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와 닿는다. 주인공들이 만드는 영화의 여주인공 이화(이화 분)는 화사하고 밝은 얼굴로 첫 등장한다. 주인공 상석은 그 모습에 반한다. 그러나 직업의 굴레를 벗고 일상에서 마주한 그녀는 무척 침체된 얼굴이다. 그런 모습을 낯설어 하는 상석을 향해 이화는 차갑게 말한다. 이전에 본 모습은 가면을 쓴 모습이라고. 알고 보니 그녀는 인류 멸망, 세계 종말의 날만 꼽고 있는 여자다. 상석을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며 새 희망을 품을 만도 하지만 그녀의 가라앉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담담히 지구 멸망을 기다리던 ‘이화’라는 여자는 올 하반기 스크린에서 만난 가장 슬픈 얼굴 중 하나였다.

- 바로 그 장면!

다가오는 종말의 빛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던 장면. 바다로 함께 여행을 떠난 이화와 상석. 둘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음악, 술,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예외 없이 끝은 다가온다. 이화와 상석이 바다로 나가자 머지않아 저 멀리서 지구 종말의 빛이 밝아온다. 태양빛에 반사돼 환히 빛나는 그녀의 얼굴에선 이전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초연함으로 가득 찬 ‘슬픔이’의 얼굴, 아름답지만 슬픈 한 컷.



3. 소심함을 무릅쓴 남자의 사랑. 소심이 | <오늘영화> ‘백역사’의 남주인공



영화와 연애를 발랄하게, 날카롭게, 생생하게 그려낸 <오늘영화>는 하반기 독립영화 중 몇 안 되는 밝은 분위기의 영화다. <백역사>는 봄날의 훈풍처럼 부드럽게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촌스러운 꽃남방을 입고 열정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남자(박종환 분)를 기억하는가. 그는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데이트를 청하려 그녀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가는 중이다. ‘소심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저돌적인 모습. 그러나 좋아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우물쭈물 거리고 여자의 말에 쩔쩔매는 모습에서 그가 본래는 꽤나 소심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데이트에 대한 의지 혹은 그녀에 대한 진심이 모자란 말주변과 소심한 성격을 메워주는 것 같달까. 하반기 스크린에서 만난 ‘소심이’들 중 진정으로 가장 용감한 ‘소심이’였다.

- 바로 그 장면!

여자에게 데이트를 청하는 장면. 멋진 가죽옷을 빼입고 오로지 데이트에 대한 일념 하나로 여자가 있는 중국집으로 내달린 남자. 일하는 여자를 지켜만 보다가 그녀가 그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자 조심스레 다가가 말한다. “우리 영화 보기로 했는데…”. 그래도 여자가 듣지 못하자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소심하지만 진지한 고백. 여자와 남자의 백역사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



4. 살아남기 위해 돋아난 가시. 까칠이 | <들꽃>의 은수



거칠고 메마른 현실이란 들판, 그 위에서 들꽃처럼 질기게 살아가는 가출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들꽃>. 거리에서 모진 계절을 버터야 하는 영화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까칠이’들이다. 하지만 동질감에선지 처음 본 하담을 살갑게 대하는 수향과 그런 수향에게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푸는 하담과 달리 은수(권은수 분)만큼은 극 내내 경계를 거둘 줄을 모른다. 추측해보자면 은수의 지난 세월이 유달리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소녀들이 이룬 유사가족 관계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그 여린 세계에서 ‘가장’이 되어 집을 구하고 양식을 마련한다. 자신과 곁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가시를 두른 ‘까칠이’가 되었던 것 아닐까.

- 바로 그 장면!

맥주병을 깨트리며 울부짖는 장면. 은수는 바울이 가진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조금씩 현실에 정착할 준비를 한다. 수향에게 건넬 선물을 고르는 은수의 얼굴을 보면 전에 없던 생기가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 수향이 태성을 살리기 위해 피 같은 돈을 써버린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쳐버린 소녀들. 아직 어린 은수는 이전의 삶이 두려웠나 보다. 옥상에서 병을 깨트리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어떤 감정을 마구 내뱉는다. 감독은 우연히 홍대에서 은수 또래의 여자가 병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고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느꼈을 강렬한 인상이 재연된 장면.



5. 언제나 위태로운 남자. 버럭이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형석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여자의 현실 분투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만화적인 캐릭터와 설정들로 가득한 영화답게 이 영화엔 순도 99%의 ‘버럭이’가 등장한다. 분노 조절장애를 앓는 형석(이준혁 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하루 세 번 약을 복용하면서 차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내며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재개발 추진 위원회의 행동대장에 가까운 청년 대표직을 맡게 된다. 위원장 경숙은 그에게 사주를 내린다. 재개발 반대 서명운동을 받으러 다니는 수남을 막으라는 것이다. 형석에게 약을 처방하던 경숙은 그가 하루에 먹는 약을 1/3으로 줄이며 겨우 억눌러져있는 그의 분노 스위치를 느슨하게 한다. 형석은 그 길로 무서운 기세로 수남을 쫓는다. 결국 그녀가 탄 오토바이를 전복시키며 납치에 성공해 이후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수남을 고문하기 시작한다. 분노를 장애처럼 앓는 형석이기에 그가 행하는 악은 더 날 것의 느낌이 난다. 버럭을 넘어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갖춘 형석은 하반기의 잊을 수 없는 ‘버럭이’다.

- 바로 그 장면!

세탁기 고문 장면. 형석은 그녀더러 재개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수남은 병원에 있는 남편을 봐줄 사람이 없다며 형석에게 보내줄 것을 빈다. 수남의 말은 곧 형석의 분노를 자극한다. 그는 살기어린 표정과 함께 어둠 속으로 그녀를 끌고 간다. 이윽고 세탁기에 들어앉아있는 수남의 모습이 나온 뒤 가장 끔찍한 고문이 이어진다. 경악스러운 한 컷.



영화의 어떤 캐릭터가 한 가지 성격만을 대변할리는 만무하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소심해하고 경계하고 화내는 성격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위의 다섯 캐릭터들도 하나의 성격으로 일반화하기엔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고백하건대 이 캐릭터들의 매력이 배가된 순간은 일관된 얼굴을 지우고 다른 모습을 보일 때이기도 했다. 슬픈 기쁨이, 소심한 버럭이, 까칠한 기쁨이의 모습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꼈달까. 때로는 선명하고 때로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하반기의 캐릭터들. 새해엔 어떤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수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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