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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 ‘효’의 초상

by indiespace_은 2015. 12. 24.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줄 관람평

차아름 |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아들,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어머니

김수빈 | ‘효’의 초상

심지원 | 세상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

추병진 | 전통, 효, 생명.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기록

김가영 | 오늘날 생각해보는 자식됨, 부모됨의 의미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리뷰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 '효'의 초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효도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이다. ‘섬긴다’는 것은 ‘행위’보다는 일종의 ‘태도’다. 기간을 정해두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성심성의껏 돌보더라도 그게 지속되지 않고 이벤트처럼 드문드문 행해진다면 그건 진정한 섬김이 아니다. 오히려 섬김의 대상에게 길들임 후에 오는 공허, 그 쓸쓸한 감정을 알려주는 일이다. 효도도 마찬가지다. 행위보다는 태도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효도’에 불필요한 무게를 덧붙여 인식한다.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될 때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며 효도를 미뤄두기 일쑤다. 이 영화는 효도가 삶의 태도이자 방식이었던 한 노인과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던 어머니의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노인이 공유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게 다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영화는 마치 아름다운 농촌의 모습이 담긴 풍경화같다.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노인만이 그림 속을 거닌다. 어머니와 아들은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아들의 얼굴엔 늘상 설렘이 묻어난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그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 아들은 어머니를 이끌거나 본인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오로지 어머니를 뒤에서, 옆에서 보조하고 따르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모자의 일상은 느리게 흐른다. 옆 동네 이웃을 만나러 가고, 보를 맞춰 걸으며 운동을 하고, 시장구경을 가고, 우물에 고인 물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모자가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시간은 아들이 농사를 지을 때다. 하지만 아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서도 분명히 어머니를 생각했을 거다. 좋은 결실을 이뤄 맛있는 밥을 지어드릴 생각을 했을 거다. 아들의 시간에 어머니가 부재한 순간은 없는 것이다. 설레는 표정을 드러내는 아들과 달리 어머니의 표정은 무던하다. 어머니의 눈은 세월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열여덟에 종갓집에 시집 와 일찍 남편을 잃고 녹록치 않은 평생을 살아온 당신. ‘지긋지긋하다’는 말과 함께 아흔의 노인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당신에게 세월의 무게들이 묵직하게 쌓여간다. 과거의 추억만큼은 꼭 보듬고 있던 당신이지만 그 기억들도 쇠하는 기력과 함께 옅어진다. 큰 병을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아들의 선한 얼굴에도 짙은 두려움과 걱정이 쌓여간다.



영화 내내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며 모자의 고즈넉한 일상을 더듬는다. 처음에는 은은한 가야금 소리뿐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해금, 피아노 같은 악기들이 더해진다. 기력을 잃어가는 모습과 함께 음악의 소리도 더 크고 구슬퍼진다. 후반부에 이르면 사람의 목소리도 음악에 얹힌다. ‘세월은 너무도 허망해. 세월은 꺼지는 한숨과 같네. 흐른 세월은 돌이키지 못해. 아무리 불러도 모른채 하네.’ 어찌할 수 없는 세월 앞에 애통한 노래 가사만이 공간을 맴돈다. 아들은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떠나간 어머니의 자리를 더듬는다. 그 모습에서 지워지지 않는 효의 초상을 본다. 끊김이 없는 섬김의 태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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