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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여전히 ‘당신은 이 안에 있어요’ <어머니>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5. 9. 8.

여전히 ‘당신은 이 안에 있어요’

이소선 어머니 4주기 추모상영회<어머니>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5년 9월 3일(목) 오후 8시

참석: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진행: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태준식 감독의 영화 <어머니> 속 ‘어머니’는 조금 특별하다. 그녀는 평화시장 앞 청계천 다리에서 분신 항거한 故 전태일의 어머니인 동시에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다. 故 이소선 여사의 4주기를 맞이하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추모 상영회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했다.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이하 주):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주현숙입니다. 오늘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바쁘셨죠, 이사장님?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하 이): 네. 오늘이 이소선 어머님 4주기여서 묘지에 가서 추모 행사도 하고 여러 가지로 좀 바쁘게 지냈습니다.


주: 누군가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좋은 이야기도 하고, 뒷담화도 하고. (웃음) 제가 어느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이소선 어머님을 친어머니처럼 모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일화가 있으시면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대체로 아는 분들은 압니다만, 제가 전태일과 같은 나이에요. 지금 전태일이 얼마쯤 늙었을까 하면 잘 감이 안 잡히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분은 이십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주: 이사장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알고 있는데. (웃음)


이: 지금 벌써 68세가 됐죠. 저의 경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더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전태일을 마음속에 담고 살았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소선 어머니가 정말 친어머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 더 자주 찾아 봬야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체 무심한 경상도 사람이라서 살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죠. 오늘 영화를 또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새록새록 많이 드네요. 


주: 저도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어요. 이소선 어머니하면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어머니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져요. 제목이 <어머니>인데 저는 처음에 보고 ‘할머니이신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웃음) 친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 같달까. 아마 여기 오신 분들 중에도 예전에 이소선 어머니를 뵀던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영화가 85년도에 있었던 구로 동맹 파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때 당시에도 이소선 어머니가 다녀가시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선배님, (객석을 가리키며) 옛날 일 기억나시는 거 없으세요? 


관객: 저는 구로 동맹 파업 관련해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쫓겨나고 갈 곳이 없어서 옮겨 다니던 중에 어머니께서 굉장히 푸근하게 품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살아 계셨을 때 찾아뵙지 못했던 게 가슴이 깊게 후회로 남네요.


주: 아까 밖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오늘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온 학생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고개 숙이고 있는 저 분들일 것 같은데, (웃음) 대표로 한 분이 영화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전태일 평전, 전태일 관련 영화, 또 『태일이』라는 다섯 권짜리 만화책으로 전태일 열사를 접한 바 있습니다. 또 이소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도 읽어봤는데요. 이렇게 영화로 어머니를 뵙게 되니까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그저 전태일 열사 사진 안고 계시는 사진 외에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이렇게 소탈한 모습을 뵙게 되니까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주: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전태일 열사가 가졌던 정신에 대해서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이소선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정신 역시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요. 어떠신가요? 그리고 더불어 올해로 어머니 4주기, 그리고 전태일 열사 45주기를 맞이해서 다양한 추모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오늘 영화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면서 이소선 어머니께  아주 큰 소리로 본인의 말을 다시 반복하게 하셨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께 뒷일을 부탁하는 거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와 한 약속 때문에, 정말 돌아가실 때까지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매 시기에 따른 어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면, 인간인 동시에 한 자식의 어머니이면서 또 노동자들을 위한 삶을 사는 한 시대의 운동가의 모습 등 정말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올해가 전태일 45주기에요. 그래서 저희 전태일재단에서는 45주기 행사를 크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재단이 직접 무언가를 제작하는 비중은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다른 단체에서 이미 전태일이나 어머니, 그리고 그 분들의 삶을 기리는 작품들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연극, 뮤지컬, 합창 그리고 심지어 판소리까지요. 전태일 열사께서 돌아가신 11월 13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이런 행사들을 모아 시연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 하신 전태일 다리에서 행사가 시작됩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행사들이 쭉 이어질 예정이고요. 더불어 어머니에 대해서는 내년 5주기에 맞춰서 평전을 작가님께 부탁드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로서 이소선도 있지만, 한 여성 노동운동가 그리고 시대를 살아간 여인으로서 이소선 여사의 독특한 모습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것을 찾아보려 합니다. 전태일 어머니로서의 이소선 뿐만 아니라, 전태일 열사와도 대등한 관계로서의 이소선 어머님의 사상과 삶을 찾고 이를 함께 기념하며 삶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려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주: 오늘 영화 보면서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는데요, 영화에서 쌍용 자동차 해고자 분들이 하늘색 티셔츠 입고 어머니를 운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최근에 그곳 지부장님이 단식 들어가셨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세상 되게 안 변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45주년이라는 숫자 때문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한 번 전태일 정신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태일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이: 전태일 열사 돌아가실 때, 사실은 근로 기준법 항거식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로 기준법이라는 법이 노동자를 위해서 있는데 아무 쓰임이 없는 거예요. 당시 노동자들은 읽지 못할 정도로 한자투성이고. 이런 근로 기준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항거 였죠. 근데 최근에 우리 노동자들이 고공농성도 시작하고 처절하게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생기는 것들을 보면 아직도 근로 기준법에 대해 그 때와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특히 노동자의 삶이 그렇습니다.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노동의 가치나 조건들이 얼마나 낮게 대우받고 있습니까. 오늘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어머니는 항상 시대에 맞게 싸워오신 분입니다. 연세가 드시는 동안에도 쭉 상황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싸워오신 거죠.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이미 상당히 연세가 드셨을 때이지만, 또 그 연세에 맞는 마음가짐으로 투쟁해오셨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당신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찾아가진 못하셨지만, 늘 걱정을 하셨죠. 그렇게 시기에 따르며 적절한 삶을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때에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때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으며 그것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시대에서 전태일 정신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를 제시하기 위해 재단에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옛날에는 없었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안고 있지요. 흔히 이주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그 분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에서 가장 열악한 상태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 이주 노동자 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함께 하려는 노력 역시 시대에 따른 전태일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 자신이 힘들어 봐야 다른 사람이 힘든 것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재단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 겪으셨던 자식을 잃은 아픔이란 참 그 어떤 아픔보다 큰 것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아픔을 승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세월호 집회 행진에 다녀왔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다들 멈추더라고요. 그 위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이 올라가 계셔서 서로 인사도 하고요. 그 때 제가 아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세월호 유가족 분이 저희 아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이렇게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 때 느꼈어요.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의 정신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사장님은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보셨죠. 어머니는 계속 현장에 나가셨잖아요. 저는 그게 참 놀랍더라고요.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아프신 곳도 많아 실제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 참 많으셨어요. 그럼에도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우선 뛰어가고 보는 분이셨습니다. 아픔을 함께하는 분이셨다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한 어머니의 모습이고 전태일 열사가 보여줬던 행동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어머니께서 대단하신 것은 그런 노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셨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편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끝까지 가난하게 사셨어요. 더 좋은 집으로 모신다거나, 편하게 해드리겠다는 것도 거부하시고 우리 노동자들과 똑같은 삶을 스스로 택하시고 끝까지 연대하셨다는 것이 참 위대한 겁니다. 지금 전태일재단이 건물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다 이소선 여사께서 힘써주신 덕분입니다. 전태일재단은 그렇게 생긴 거예요. 재단에는 재산이 없는데 어머니께서 본인 재산을 재단 재산으로 마련해주고 가신 거예요. 저희가 이런 운동들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죠. 이소선 어머니는 너무나도 지혜로우시고 꼿꼿하신, 그리고 용기가 있으셨던 분입니다. 


주: 저는 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어요. 남성분들이 어머니를 호명하는 모습이 뭐랄까,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요. 차라리 딸이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머니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 역시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머니가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살짝 힌트를 얻었는데요. <어머니>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시간을 내서 오시는 분이 관객 분들 중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열 번 이상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 분이 이 영화가 주는 위안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위안을 받으시기에 이렇게 매번 <어머니>를 관람하시나요? 궁금합니다. 


관객: 시간이 참 많이 지났는데 <어머니> 쇼케이스를 할 때 처음 보게 되었어요. 예전부터 ‘어머니’라는 제목이 참 와 닿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지만, 결국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어머니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어떤 염원을 실현하신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게 살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영화를 통해 위안을 받고 싶어서 DVD도 구입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어머니는 힘들게 사셨지만 그 과정을 유쾌하게 풀었다는 점 때문이에요.  


이: 어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셨을 만한 이야기네요.


주: 저는 사실 제작에 들어가지 않은 촬영본도 자주 접했어요. 보니까 어머니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시더라고요. 잘 삐지시고. (웃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면 하나만 이야기해주세요. 


이: 어머니는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십니다. 명석한 분이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까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고스톱 치는 데에 있어서는 이소선 어머니를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돈을 끌어 모으는 탁월한 실력가이셨습니다. (웃음)


주: 타짜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머님에 관한 예전 이야기들을 죽 읽어봤어요. 어머니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역시 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모르는 거다, 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국면마다 정확한 판단을 하시고 어떨 때는 앞서나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씀은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규명하려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함께 가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 그것이야말로 어머님의 일관된 메시지죠. 그리고 그 뒤에 덧붙이면 ‘하나가 되면 다 이루어진다’가 되는 거고, 앞에 덧붙이면 ‘노동자가 하나가 되라’가 됩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노동자인데, 노동자들은 왜 그렇게 억압을 받을까요. 그건 단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원칙적인 이야기이지만 절실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최근 분열 사태가 참 많이 발생합니다. 크게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갈라져 있죠. 내부적으로 다른 점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어머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부분은, 서로 잘났다고 싸우지 말고 뭉쳐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언제나 그런 당부를 하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고 가셨죠. 단순해보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지표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신 것 같습니다. 


주: 벌써 4주기를 맞았지만, 그냥 친한 할머니 한 분 뵈러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메시지가 와 닿습니다. 혼자 있으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몇 명만 모여도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잖아요. 어머니를 보면서 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45주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그런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네요. 내년에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일부터 죽 행사가 진행되더라고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행사 일정이 올라와 있죠?


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청계천 평화시장 전태일 다리 위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고 뜻 깊은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이들 오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젊은 분들도 이 자리를 찾아주시고, 상당히 무거울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사실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노동 운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태일 열사의 전체 노동자 생활은 5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정신이 가능했던 것은 ‘젊음’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년 전태일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정신을 확인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 저 역시 오늘 왜 ‘청년 전태일인가’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전태일 정신에는 전태일도 있지만 청년도 있다는 사실. 최근에 제가 했던 인터뷰 중에서 ‘역사의 주인공이 누굴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분께서 ‘아이들’이라고 답하시더라고요. 그 때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었는데, 오늘 이사장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잊지 않고 함께 해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전태일다리에서 뵙겠습니다. 





‘이소(小)선’. 태어났을 당시 워낙에 작은 몸집 때문에 붙여졌다는 어머니의 이름 세 글자. 하지만 그녀가 생에서 보여주었던 투쟁에 대한 열정과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품었던 그 사랑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일 것이다. 격동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혜안을 가졌던 어머니의 푸근한 미소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영화 <어머니>를 올해에도 만날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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