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4월, 돌아온 그들의 이야기 인디돌잔치 <셔틀콕> 인디토크
일시: 2015년 4월 21일
참석: 이유빈 감독
진행: 김도란 인디스페이스 홍보팀
작년 4월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셔틀콕>이 인디돌찬지 영화로 선택되어 1년 만에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1년이 흐른 2015년, <셔틀콕>을 제작한 이유빈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행: 매월 관객 분들 투표를 통해서 개봉 일주년 된 작품을 함께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자리인데, 이번에 셔틀콕이 선정되어 상영하게 되었어요. 감독님 소개와 소감에 대해 간단하게 들어볼게요.
감독 이유빈(이하 감독) :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이 방금보신 <셔틀콕>을 연출한 이유빈이라고 합니다. 사실 <한공주>라는 경쟁작이 있어 별로 기대를 안했어요. 제 생각엔 이주승 군의 팬클럽 ‘승승장구’에서 많이 도와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드려요. 오늘 주승 씨는 굉장히 오고싶어 했지만, 촬영이 있어 참석은 못했는데요. 인사를 대신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행 :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투표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셔틀콕>이 처음 개봉했을 때도 ‘새로운 배우의 발견’이라 하여 배우로써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캐스팅에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감독 : 사실 (이)주승 씨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었는데, 알려질 기회가 적었던 것 같아요. 주승 씨는 스치는 이미지나 포스터, 예고편의 일부로 기억하고 있다가 캐스팅을 하게 됐어요. 그 나이 또래의 좀 신선하면서도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를 찾았는데, 주승씨를 발견하게 된거죠.
(공)예지씨는 제가 우연찮은 기회에 예지 씨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됐어요. 그 때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서 수소문했죠. 때마침 영상원 연극과의 친한 동기를 통해 예지 씨가 출연한 단편을 보게 됐고, 그렇게 알음알음 캐스팅하게 됐어요.
아역의 태용이는 쌍둥이였어요. 쌍둥이 중에 동생이었는데, 사실 오디션에서 둘 다 연기를 봤어요. 쌍둥이 형은 잘 앉아있지도 않고 장난만 치는 완전 남자아이였는데, 형이 나가고 태용이가 들어오는 순간, 문 여는 몸짓부터 다르더라고요. 형한테 조금 주눅이 든 모습에 흥미가 생겨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죠. 형이 훨씬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다면서 연기에 있어서도 경쟁심이 있는데, 아홉 살 아이의 삶이 늘 형이라는 존재에 눌려 있다는 것이 연기에 몰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진행 : 아역 배우와 이주승 배우의 호흡에 도움이 되었던 거죠?
감독 : 네, 그렇죠. 태용이가 주승 씨를 많이 따르던 것도 있었고요. 3주동안 짐을 싸서 여행하듯 촬영을 했는데, 태용이같은 경우 연기경험은 많이 없었지만,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력이 밑받침 됐었죠. 그 와중에 둘의 관계가 점점 편해지면서 그 가운데 애증이 생겨서 싸우고,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또 태용이는 만날 서울에만 있다가 남해 바닷가에 오니 논밭의 강아지처럼 신나 하더라고요.(웃음) 서울의 모습은 잊고 역할에 푹 빠져서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마지막에 우는 연기같은 경우엔 아마 주승 씨를 생각하면서 영화도 끝나가는 상황에 보다 몰입도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관객 : 은주는 민재를 진짜 좋아했었나요?
감독 : 어떨까요. 좋아한다는 뉘앙스는 흘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쪽에서 덥석 무니까 발뺌을 하는 거죠. 은주는 자신이 민재한테 실질적으로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근데 민재는 순진하게 덥석 물었죠. 입 밖으로 말을 꺼내버렸고요. 좀 당한 거죠, 순진하게.
관객 : 영화 굉장히 잘 봤고요. 민재가 빨간 락카로 골목에 빨간 줄을 긋잖아요. 근데 그 시점이 은호의 얼굴에 낙서한 아이를 찾는 시기이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작은 낙서지만 그게 어린아이한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얼굴은 씻으면 되고 옷도 빨면 다 없어지지만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민재가 그 골목에 선을 그음으로써 일종의 복수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그 장면을 찍으셨는지 궁금해요.
감독 : 사실 해석해 주신 생각을 저는 전혀 하질 않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해서 틀린 답은 절대 아니거든요. 개인적으론 훨씬 더 깊이 있는 해석 같아요.
락카는 어떻게 보면 포괄적인 건데요. 용기를 내어 찾아왔는데, 그 낯선 장소가 너무 나한테 해준 게 없잖아요. 그렇게 좌절된 민재가 할 수 있는 테러는 입 밖으로 꺼내는 거친 말과 그런 행동들인 기껏 그 정도 수준인거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게 저는 열일곱, 열여섯 소년들이라고 생각해요. 민재가 할 수 있는 게 그 수준 밖에 안 되는 점이 좀 더 처연해 보이진 않을까 생각했고요.
관객 : 촬영하신 장소가 굉장히 광범위한데요. 촬영하면서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감 :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라면 처음 자동차 정비소와 관련된 게 있어요. 첫 촬영을 시작하면서 중고로 산 120만원짜리 차를 계속 끌고 다녔어요. 서울에서 산 국내지도를 들고 일단 출발을 했죠. 전주를 들렸다가 이동하는 중에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니 고속도로만 달리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산길 같은 데를 막 갔어요. 가다보니 어떤 동네가 딱 나타났는데, 허풍이 아니라 시나리오에 있는 마을과 딱 비슷한 동네인거에요. 그래서 바로 카센터를 찾아봤는데, 맞은편에 파출소도 있고 농협도 있어서 딱 동선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그 장소에서 촬영을 했어요. 그렇게 촬영 장소를 다니면서 찍은 것 중에 가장 큰 수확이라면 마지막에 불나는 장면이었어요. 홈마트에서 촬영을 하다 철수를 하려는데 어디서 불길이 막 치솟고 있더라고요. 급하게 차를 돌려서 촬영을 하게 됐는데, 좋은 장면이 나왔어요.
관객 : 우연히 찍게 되셨다던 불나는 장면을 보면 하얀 하늘을 검은 연기가 뒤덮잖아요. 저는 그게 하얀 하늘이 은호처럼 보였고 검은 연기가 괴롭힌 아이들처럼 보여서 미리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 장면을 우연히 보시고 ‘아, 이 장면을 어디에 써야겠다.’ 이런 생각을 바로 하신건지, 그리고 나중에 편집하실 때 어떤 의미를 안고 그 위치에 넣으신건지 궁금해요.
감독 : 원래는 은주에게 제대로 까이고 엉망인 상태로 가는 길에 길고양이 같은 것을 치는 거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인형이 나뒹굴더라. 하지만 그 순간 덜컹하는 마음을 좀 표현하고 싶었어요. 근데 불나는 걸 보는 순간 괴롭힌 것보다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민재의 마음, ‘마음속에서 열불이 난다’ 이런 것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번 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 때문이었어요. 그 장면이 지나가 버리면 다시 만들 수 없는 것 때문에 어느 순간에든 카메라를 드는 훈련이 좀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 장면은 시나리오의 어느 부분에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관객 : 영화가 사실은 심각한 얘기인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민재라는 인물의 감정이 거의 전부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 10년 뒤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재회할 것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그렇게 민재든 은호든 은주든 앞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감독님은 세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하고요. 또 십년 후 세 사람의 어떤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감독 : 은주를 다시 만나면 어떨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분들은 영화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냐고 하시더라고요. 질문하신 것처럼 민재는 내일 아니면 당장 오늘 밤부터 걱정이겠죠. 내일이 오늘보다 더 괴로울 수도 있고요. 그런데 5년이나 6년이 지났을 때, 이 영화의 여정을 겪은 민재는 그것을 겪지 않았을 민재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기간이 하루나 이틀은 아니겠지만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 여행이 민재에게 주는 영향이 참 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쯤에는 동생 은호 역시 감싸 안을 수 있는 건강한 어른으로 민재가 자라지 않을까, 물론 그 때쯤이면 은주의 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관객 : 민재가 은호를 버리고 다시 데리러 가는 행동이 반복되잖아요. 그러한 장면들을 넣은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은호가 은주를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느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은 맥락으로 ‘아, 저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은호라는 존재가 민재에게는 짐과 같은 존재인거죠. 자기와 피한방울 안 섞였고 버리려고 하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그런 혹 같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기대고 싶을 때는 기대고 아닐 때는 아니고요. 민재에게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본인은 긍정하지 않겠지만 내면에서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진행 :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근황에 대해 말씀 부탁드릴게요.
감독 : 사실 <셔틀콕>이 상영된다고 한 이후에 며칠 동안 생각이 많았어요. 공교롭게도 제가 지금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작년 4월에 <셔틀콕>이 개봉을 하고 2달 정도 상영을 마친 이후부터 10개월 가까이 오랜 시간동안 새 시나리오의 새 이름들과 부대끼면서 새로운 세계에 푹 빠져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민재, 은주, 은호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굉장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이제는 정말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5천명이 안 되는 분들이 <셔틀콕>을 관람하셨을 거예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쳐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몇 백만 명이 보는 영화일 때 그 영화를 보신 분은 몇 백만 명 중에 한 분이잖아요. 근데 여러분은 제게 오천 명 중에 한명이거든요. 그래서 천배로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찾아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다음 작품으로 멀지 않은 시점에 좋은 만남이 있길 바라요. 지금 이 순간을 잊기 어려울 것 같네요. 감사드립니다.
이제 <셔틀콕>과 진짜 이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유빈 감독의 말을 통해 감독이 <셔틀콕>에 굉장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유빈 감독은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영화가 매번 새롭게 읽히는 것이 즐겁다며 이번 인디돌잔치가 보다 의미 있는 만남으로 남았다는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덧 새로운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는 이유빈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고요함 속의 행복한 반짝임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인디토크(GV) (0) | 2015.05.06 |
---|---|
[인디즈_기획] 대상이 아닌 주체로, 장애인들의 영화 세상 (0) | 2015.04.29 |
[인디즈_Choice] <주리> : 영화제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0) | 2015.04.22 |
[인디즈] 진지함과 찌질함 사이의 진솔함 <힘내세요, 병헌씨> 인디토크(GV) (0) | 2015.04.16 |
[인디즈_Review] <후쿠시마의 미래> : 체르노빌의 낯설지 않은 오늘과 후쿠시마의 석연찮은 미래 (0) | 2015.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