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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주리> : 영화제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by indiespace_은 2015. 4. 22.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주리>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zKbG9O





<주리> : 영화제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주리>의 시작은 영화의 엔딩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토미야마를 안성기가 데리고 나간다. 다음 장면에서 이 둘은 나머지 세 명의 심사위원과 만나서 회의 장소로 이동한다. 이후 영화는 상영관에서 이루어지는 관객과의 대화와, 하나의 작품을 선정하려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교차 편집으로 오고 간다. 물론 영화의 비중이나 무게는 심사위원의 설전에 기울어 있다.

 

같은 작품을 보고도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너무나도 다르다. 특히 영화는 마음이라고 말하는 정감독과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강수연의 대립은 팽팽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지만,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영화제의 상황 안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기에 영화제의 결과는 온전히 그 영화에 대한 평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작품은 비판을 받고, 어떤 작품은 수상의 영광을 안아야 한다. 영화제란 그런 곳이다.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혹자는 영화제가 씨네필과 예술영화를 게토화하면서 영화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하지만 일반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영화제라는 이름이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극장 시스템을 점령한 상황에서 상업영화가 아닌 영화가 소개될 창구는 거의 없다. 영화가 산업의 논리로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대중예술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다양성의 확보이다. 영화제는 이를 위한 축제다. 영화제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까닭은, 그 영화가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 싸웠던 영화인의 노력과 수고에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부산시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했었다. 이를 두고 영화계는 지난해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을 상영한 데 대한 보복 아니냐며 크게 반발했다. 영화에 앞선 다른 판단이 개입된다면 영화제에서 다양성의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판과 논쟁은 영화제의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 적어도 영화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가 영화제를 하는 것 아닌가.

 

<주리>는 1996년부터 2010년까지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동호 감독의 첫 연출작답게 이 모든 것을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영화가 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강수연을 연기하는 강수연의 디테일한 연기도 인상적이고, 불쑥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의 카메오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알고 보면 재미있는 사실. 영화제가 진행되는 상영관은 인디스페이스, 다섯 심사위원이 만나는 곳은 씨네큐브 광화문의 로비이다.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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