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연극은 어떻게 영화가 되었는가, <씨, 베토벤> 인디토크
일시: 2015년 3월 24일
참석: 박진순, 민복기 감독
진행: 김도란 인디스페이스 홍보팀
독립영화의 개봉 1주년을 축하하는 [인디돌잔치] 3월의 작품으로 선정된 <씨, 베토벤>의 인디토크가 지난 24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있었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각색의 과정과 영화의 연출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진행 : 말을 치고 끊으며 들어가는 대사나 다양한 행동들이 실제처럼 자연스러웠는데 모두 대본 안에 포함된 내용인가?
민복기 감독(이하 민) : 본래 대본에서 연극하면서 조금 더 늘어났던 말들이 있었다. 한 테이크를 10분씩 가기로 결정을 했다. ‘여기서 틀리더라도 10분을 무조건 가자.’ 그렇게 우리가 약속을 했다. 그 사이에 대사를 약간 까먹는다든지 말이 잘못 나온다든지 아니면 의외의 사건이 있다든지 그런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배우들의 기지로 해결했다. 그러면서 말이 대본보다 조금씩 더 생긴 것도 있다.
박진순 감독(이하 박) : 일단 처음 촬영을 시작하고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할 때부터 배우들의 앙상블이 굉장히 좋았다. 이것을 영화적으로 자꾸 컷을 나누고 호흡을 끊게 되면 원래 만들려고 하는 목적 자체가 틀려질 것 같았다. 이들이 연기하는 동안 10분이라는 시간은 카메라가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90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었다면 한 번도 안 끊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촬영 때 앙상블 자체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며 진행했다.
진행 : 여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속 깊은 대사가 나오는데 그런 내용들을 어떻게 캐치했는가?
민 : 예를 들어 대본이 30페이지정도 된다면 20페이지 정도의 작품을 써놓고, 연습하면서 여자 배우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 혹은 누군가 경험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추가하면서 30페이지 정도의 대본이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자기 이야기나 주변이야기, 여자들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 더 수렴하면서 완성된 작품이다.
관객 : 연극으로 다시 한 번 올릴 생각은 없는가?
민 : 계획은 있다. 배우들의 컨디션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 오유진 배우가 출산한지 얼마 안 됐다. 한 돌 지났으니까 조금 더 지나면 팀이 모여서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등장했던 박해준 배우가 너무 떠버려서 과연 참여 해줄지 모르겠다.(웃음) 팀이 다시 모여서 할 계획은 가지고 있고, 배우들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
진행 : 연극 무대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생각이 들 만큼 영화적으로 각색이 덜 됐다고 느꼈는데 그렇게 한 의도가 있는가?
박 : 처음에 연극을 보고 영화로 만들겠다고 한 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연극을 볼 때 세 친구의 연기적 앙상블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그 때 든 생각이 ‘아, 이들만 찍어도 좀 괜찮은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였고, 이 생각으로 영화 제의를 한 것이다. 이것을 영화로 찍기 위해서 처음에는 각색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여느 영화와 다를 게 없었다. 이 영화만의 특색이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영화 속에 나오는 세 친구의 연기만 제대로 보이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해서 그대로 진행했다.
민 : 감독에 의해서 예를 들면 컷에 ‘오버랩’ 된다든지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된다든지 하는 것이 감독에 의한 편집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감정 선을 조절하게 되는 것인데, 이 영화는 철저히 배우들에 의해서 모든 감정 선이 조절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오히려 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배우들의 감정 선을 그냥 따라가는 대로 놔둔 것이다. 그게 새로운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 : 영화를 하루 만에 찍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신기했다. 솔직히 1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영화에 있어서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스토리가 물 흐르듯흘러나와 지루함이 없이 몰입이 잘 되었는데, 혹시 감독 입장에서 배우들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거나 특별한 조언을 해 준 것이 있는가?
박 : 촬영 시작할 때 중기 배우가 “박 감독 어떻게 할까?”라고 했다. 이미 연극에서 워낙 다져놓은 실력이 있었고, 이들끼리는 서로 틀려도 뭔가 맞출 수 있다는 믿음들이 컸다. 여기에서 내가 중기 배우에게 다른 연기를 요구하면 이들이 여태껏 맞춰왔던 것들을 훼손시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하던 대로 하라, 알아서 찍겠다고 했다. 카메라는 처음에 신경 쓰이겠지만 나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민 : 촬영 일주일 전에 배우들이 모여서 나에게 좀 오라는 전화가 왔다. 심각한 이야기를 예상하며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우들이 ‘영화화 되면 연극과 달리 프린트가 되어 영원히 기록될 수모가 될 수도 있는데, 생각해보니 쉬운 게 아니다. 혹은 진짜 이 영화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잘못 나오게 되면 배우로써도 힘들어 질 수 있다. 못 하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 하더라. 그 때 연습을 하며 만들었던 앙상블과 그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그것만 가지고 해보자. 설득해서 나오게 된 작품이다.
진행 : 영화에서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러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 중에서 어떤 게 진짜인지도 모르며 심지어 베토벤에게 정말로 그런 상처가 있는 지도 모르는데, 왜 <씨, 베토벤>이라는 제목이 되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민 : 제목을 어떻게 할까, 영화화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씨, 베토벤>이라는 것이 ‘See 베토벤’, ‘베토벤을 본다’는 뜻이 있다. 처음 드라마를 생각할 때 베토벤 때문에 시작했기 때문에 베토벤이라는 것을 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드라마 안에 나오듯이 베토벤의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생산된다. 그러면서 ‘See’라는 것이 베토벤을 봤다는 의미도 있지만, 같은 발음으로 영어의 이니셜 ‘C’에서 Copying 베토벤이라는 뜻도 있다. 계속해서 카핑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진행 :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서로가 궁금한 이야기는 쉽게 꺼내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쾌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우울하게 끝이 난다. 그런 대화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가?
민 : 굳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많은 이야기 중에 관객들이 나의 이야기로 가져갈 것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 때 자기를 좋아했던 어떤 여자 친구가 사랑을 잊지 못해 진짜 남자로 변해 나타났더니 그래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는 하진의 사랑 이야기, 매번 두세 명씩 만나 사랑을 계속 갈아치웠지만 무언가 허전함 속에 있는 성은이라는 여자, 옛날부터 사귀어 온 남자와 오랫동안 사귀다보니 진짜 사랑인지 가짜 사랑인지 헷갈린 상황에 다른 뜨거운 사랑이 시작되고 그것이 불륜이 되어 버리는 영이라는 친구, 또 어떤 여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느껴 돈을 빌려줬더니 들고 도망쳐 곤란한 상황에 처해 버린 카페 주인. 그런 여러 가지 지금의 사랑 이야기들을 마치 <씨, 베토벤>의 이야기처럼 담고 싶었다.
진행 : 작품 쓸 때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을 붙여갔다고 했는데, 뚜렷한 캐릭터 속에 배우들의 실제 성격이 담겨지기도 했는가?
민 : 공상아 배우가 이 역할을 굉장히 싫어했다. 왜냐하면 자기와 성격도 너무 다르고 좋지 않게 비춰질까 하는 기우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끌어가며 밸런스를 맞추는 미드필더의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영화화된 다음에는 그래도 잘 받아들인 것 같다.
관객 : 연극으로 할 때는 공상아, 오유진, 김소진, 김중기, 박해준 다섯 배우만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배우가 늘었다. 영화로 옮겨오면서 추가된 것인가?
민 : 원래 있던 부분인데 영화에서 한 사람만 계속 등장하면 너무 연극적이기 때문에 미리 부탁을 했다. 스님역할을 해준 이상우 배우는 카메라 울렁증에도 불구하고 참여해줬고, 오용 배우는 현장에 딸 둘을 데리고 와서 찍다가 가고, 강신일 배우는 하루 종일 더운 날씨에 바바리를 입고 땡볕에 서 있었다. 얼마나 우스웠겠는가.(웃음) 사실 이중욱 배우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역할로 키스신과 함께 등장했는데, 안타깝게 편집이 됐다. 여러 배우들이 들어와서 살을 붙여준 것 같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행 : 혹시 다른 영화화 하고픈 연극은 또 없는가?
박 : 복기 선배 작품들 중에 영화화 하고 싶은 연극은 많다. 그런데 <씨 베토벤>의 방식처럼은 이제 못할 것 같다. 영화화 하게 된다면 또 다른 형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 <씨, 베토벤>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디 영화들이 발붙일 땅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 뿐 아니라 인디스페이스와 같은 공간이라든지 인디 영화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행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박 : <씨, 베토벤>을 오랜만에 봤다. 1년 동안 극 중 수빈처럼 나도 카페를 하고 있었다. 1년 만에 카페를 운영하다 다시 보니까 수빈 역할에 굉장히 감정 이입이 되어 왜 저런 행동을 했고 왜 나중에 돈을 받지 않으려 했는지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웃음) 새로운 작품들을 열심히 써서 만들도록 하겠다.
민 : 뮤지컬 <달빛 요정과 소녀>라는 작품을 5월에 다시 기획하고 있다. 특히 올해가 ‘극단 차이무’ 20주년이라 하반기에 차이무 작품들을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많은 관심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영화와 연극은 다르다. 고로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연극 같은 영화도 다르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무엇을 염두하고 연출했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디돌잔치는 매월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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