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와 위로,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영화 <야간비행> 인디토크
영화: <야간비행>_감독 이송희일
일시: 2014년 9월 4일
참석: 이송희일 감독, 배우 곽시양 이재준 김창환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윤상 님의 글입니다 :D
<야간비행>이 지난 8월 28일 개봉했다. 이송희일 감독은 많은 작품들에서 동성애를 이성애와 별 다르지 않은 보편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진솔하게 보여주며 관객들의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야간비행> 역시 제 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송희일 감독은 “우정을 허용치 않는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들의 사랑도 여의치 않다. <야간비행>은 정글같이 성적 경쟁만 요구하는 학교 사회에서 어떻게 우정이 부서지고 서로를 배신하고 소수자들이 배척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 말했다.
9월 4일 늦은 저녁, 많은 관객들이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보기만 해도 훈훈한 네 남자가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진행: 늦은 시간임에도 감독님과 배우 분들이 관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셔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관객 분들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 휴일도 아닌데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야간비행>에서 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이송희일입니다. (웃음)
곽시양: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야간비행>에서 용주 역을 맡은 곽시양입니다.
이재준: 저는 한국 독립영화를 여기 ‘인디스페이스’에서 처음 봤었는데, 이 자리에 서게 되서 정말 영광이고요. ‘씨발 외로워’한 기웅 역을 맡은 이재준 이라고 합니다.
김창환: 네, 안녕하세요. 비열한 반장 성진 역에 김창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진행: 감독님이 이 <야간비행>이라는 시나리오 초기구상을 오랫동안 간직해왔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제목에 담긴 의미를 관객 분들께 말씀 부탁드릴게요.
감독: 우선 이 영화는 오래전에 써두었던 8부작 드라마의 시나리오로 그때는 용주와 기웅이만 등장하는 학창시절의 로맨스였어요. 여러 번 말씀 드렸다시피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CCTV’를 본 뒤 마음이 많이 아파 고민하다가, 지난 교육감 선거 때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 문용린 교육감이 당선되던 날 새벽에 학생들이 고사리 손을 호호 불며 만들었던 ‘학생 인권 조례’라는 것이 있어요. “머리 좀 길게 해 달라”처럼 아주 단순한 것들이었는데, 그 교육감이 당선되고 바로 ‘학생 인권 조례’부터 손보겠다는 모습을 보니 ‘한국사회 아직 멀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원래 8부작 드라마 제목이 <야간비행>이었어요. 생텍쥐베리 <야간비행>의 첫 시작하는 부분에서 안데스산맥으로 야간 비행을 하기 전 불타오르는 저녁노을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많아요. 영화 <야간비행>에서도 노을이 많이 등장하죠. 그런 정서들을 십분 활용하자는 생각으로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영화를 끌고 가는 두 주인공 용주와 기웅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특히나 두 분 모두 첫 주연작 이잖아요. 이 연기를 함으로써 남다른 감정을 가졌을 것 같은데, 특히 게이라는 설정이나 고립된 학생들의 현실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어땠는지 말씀해주세요.
곽시양: 전체적으로 힘들었던 건 ‘내가 이성애자인데, 동성애자 역할을 맡아 주연으로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고 시나리오 리딩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방법이 다 똑같다’는 것으로 많은 고민들이 풀렸어요. 촬영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힘들었던 건 날씨가 너무 추웠던 점이에요. 많은 분들이 똑같은 얘기를 몇 번씩 듣고 계신 것 같은데요.(웃음)
이재준: 저도 이 얘길 몇 번하긴 했는데, 한 번 더 하겠습니다.(웃음) 저는 일단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외로움을 몰랐었어요. 촬영을 하는 동안 기웅이로 살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외로움을 알게 됐고 이제는 그 외로움이 더 많아지고 있었는데요. 요즘 관객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 외로움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진행: 창환씨는 독립영화에서 익히 알려진 배우인데, 이런 악역은 색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성진이라는 역할도 제대로 소통하는 친구 없이 마지막까지 몸부림치고 발악하는 모습이 보여서 굉장히 외로운 친구가 아니었나 싶어요.
김창환: 네, 일단 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 쉴 수 있는 층이 없어서 외로웠고요(웃음). 성진이라는 친구도 외롭고 진정한 친구가 없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면 굉장히 나빠요. 하지만 알고 보면 성진이도 불쌍하고 사연이 있는 친구죠.
진행: 마지막 학교 장면에서 폭발적인 것들이 드러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어른들의 역할과 아이들의 역할은 별개로 떨어져있어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요. 선생님들이 맞는 장면들은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감독: 전날부터 학교에서 합을 맞춰보고 현장에서도 몇 시간씩 연습했어요. 그런데 막상 선생을 때리는 장면에서 무술팀을 비롯한 스탭들이 저항을 했어요. ‘어떻게 감히 선생을 때릴 수 있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데, 사실 학창시절이 힘들거나 선생들이 꼴 보기 싫었던 분들은 통쾌 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답을 주려고 영화를 만든 적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두 장면, 학교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두 친구 뒷모습에서 질문들을 받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저 아이들이 왜 저럴까?’, ‘왜 학교에서 울부짖을까?’ 하는 고민들을 함께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했었어요. GV나 시사회를 몇 번씩이나 했지만, 그렇게 얼어붙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선생님 본인들도 갑갑하고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철학자 중에 ‘발터 벤야민’이라고 폭력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철학자가 있는데, 폭력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고 혹시 내가 사적인 복수심에 이러는 건 아닌지, 폭력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점검을 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걱정이 많았어요. 아쉬운 건 하루정도 더 찍었으면 하는 점이에요. 성진이나 기택이의 표정들을 더 담아내고 싶었어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정글 같은 학교에서 왜 학생들이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도록 그런 모습들을 찍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 다 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관객: 사실 질문은 아니고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동성애자 인권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우주라고 하고요. 월요일에 이 영화를 알게 되서 월, 화, 목 세 번째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용주라는 주인공이 부모님 한 분과 살고 있고, 학교에서 따돌림 피해학생과 친하게 지내고, 같은 반 아이를 좋아하고, 아웃팅을 당하고, 친했던 피해학생이 가해학생들 무리에 들어가게 된 것과, 자퇴를 하게 되고 좋아했던 친구가 제게 떠나지 말라고 했던 것까지 똑같아서요.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는데 4년 만에 생각이 났어요. 물론 안 좋았던 기억이 많지만 그만큼 좋았던 기억도 많이 떠올랐어요. 저한테 떠나지 말라고 해줬던 친구와 저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셨던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어제는 선생님 수업시간에 한 교실을 빌려 성 소수자 특강을 진행 했어요. 이 영화로 인해 이전의 저라면 하지 못했을 일 들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감독님과 배우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독: 영화 봐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이렇게 용기내어 말씀 들려주셔서 그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관객: 저는 오늘 영화를 처음 보았는데, 영화를 계속 보다보니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기택이가 담배를 안 피우다가 용주의 비밀을 털어놓고 나서 피우잖아요. 그런걸 보면서 혹시 담배 피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감독: 처음 영화 편집 본은 세 시간이 넘었어요. 기택이가 담배 셔틀을 하는 장면도 삭제되었죠. 담배가 여러 기능을 해요. 처음엔 담배 셔틀을 하다가 나중에 거기에 들어가서 담배를 건내는 장면으로 권력관계를 드러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성진 역을 맡았던 김창환 배우에게 미안한 점이, 전에 찍었던 <백야>라는 영화에서는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던 이이경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담배를 가르쳤어요. 그 친구는 촬영이 끝나고 골초가 되어버렸고, 이번에는 두 명이나 골초를 만들었어요. 원래 창환 배우가 담배를 안 피웠었는데 영화가 끝난 뒤 엄청난 골초가 돼버렸고, 원래 성진 역에 먼저 캐스팅이 됐다가 스케줄상 빠지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리딩 때 처음 담배를 몇 번 피워봤다가, 영화 개봉 후 만나보니 엄청난 골초가 되어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김창환: 그렇게 힘든 군대에서도 안 피워봤는데, 담배의 참맛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웃음)
관객: 영화 잘 봤고요. 중간에 궁금한 장면이 있었어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난간에 서서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자살을 하지 않고 내려오는데,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살을 하지 않고 내려오게 한 의도가 혹시 있으셨는지?
감독: CCTV 장면 때문에 영화를 찍었는데, 또 한 번 영화에서 폭력을 저지르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 입장에서 속죄를 하고 고민을 같이 해보자’라는 뜻도 있었지만 학생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정말 힘들어도 끝까지 친구의 손을 놓지 않는 게, 어쨌든 버텨나가는 게 연대의 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죽일 순 없잖아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 끌고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행: 네 분 마지막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창환: 저희도 짧게 뵙는 게 아쉽습니다. 한번 보면 조금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두 번째 봤을 때부터 이해가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절대 영업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희는 두 번이상의 관람을 권장합니다.(웃음) 오늘 돌아가시고 나서 아쉬우시면 좋은 시간대에 다시 한 번 저희와 만나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이재준: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곽시양: 제가 지금 굉장히 먹먹해요. 처음에 용기 내어 말씀 해 주셨던 분,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하네요. 제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해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영화 속 용주와 비슷하게 살아오셨다니 ‘얼마나 힘드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먹먹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입소문이 많이 필요해요. 입소문 많이 내주시고요. 다음번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 길게 더 얘기 나누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는 친구 끌어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모두가 다단계회원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어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를 전한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진 곽시양 배우를 보니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담고 완성되었는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짧은 시간동안 진행됐지만 진심을 담아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관객들 덕분에 모두가 더 진한 감동과 여운을 가지고 영화를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여러 번의 인디토크 일정이 남아있어 모두가 웃으며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만남으로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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