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켠에 고이 자리 잡은 세 편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나다! <메․운․봄>인디토크!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_감독 안재훈 한혜진
일시: 2014년 8월 23일
참석: 안재훈 감독, 박혜진 전 아나운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정희 님의 글입니다 :D
한때 익숙했지만, 점차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 단편 문학이다. 다양한 경로로 접했지만 이제는 찾아보지 않고서는 접하기가 힘들어졌다. 교과서에서조차 점점 사라지는 한국 단편 문학을 되살리고 원작 그대로를 ‘그리며 읽는’ 문학의 재미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국 단편 문학 애니메이션 3편이 8월 21일 개봉했다. 안재훈 감독은 1년에 3편씩 꾸준히 개봉하여 관객들과 만날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에 개봉할 작품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작품을 처음 접한 아이들에게는 신선함을,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보고 공부했던 20대에게는 추억을, 소설로 읽은 40대에게는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 지난 8월 23일 영화 상영 후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인디토크는 안재훈 감독과 함께 <소중한 날의 꿈>의 수민 역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박혜진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박혜진 아나운서(이하 박) : 제목과 상영 순서가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안재훈 감독(이하 안) : 그림을 그릴 땐 메밀꽃, 봄봄, 운수 좋은 날 순으로 그렸다. 메밀꽃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느낌으로, 봄봄은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운수 좋은 날은 많은 여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개봉 시엔 3개를 묶어 하나로 만들어야 해서 따로 제목을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홍보하기엔 그다지 적절한 제목이 아니어서 홍보 마케팅에 도움도 되고 또 많은 분들이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제목을 하기 위해서 작품의 상영 순서와는 다른 부르기 편한 제목으로 바뀌게 되었다.
박 : 이 시기에 특별히 개봉한 이유가 있을까. 한국 문학 작품을 단편으로 만들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
안 : 고리를 엮는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단편 문학을 통해 아이, 어른, 외국인들을 고리로 엮고 싶었다. 지금 한국 문학 단편들은 점점 교과서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말은 점점 문학을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에겐 생소하지 않고 어른에겐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를 시각화하여 그림 맛으로 글맛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박 : 그렇다면 먼저 세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안 : 우리나라에 단편 문학이 꽤 많은데, 지금 먼저 개봉한 작품들이 먼저 선정된 이유는 교과서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작품들을 먼저 선정했다. 먼저 사라진다는 것은 같이 이야기할 거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없어지는 것들을 먼저 하게 되었다.
박 : <운수 좋은 날>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료조사를 철저히 했을 것 같다.
안 : <운수 좋은 날>은 경성시대가 배경이다. 경성시대 자료들이 꽤 많은 편이라 작업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선교사나 일본인들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려나갔지만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든지 특수한 건물들은 거의 다 배제했고 되도록 우리나라 느낌이 들도록 건물들을 그려나갔다. 또 유럽의 화가가 한국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참고하기도 했다.
박 : <메밀꽃 필 무렵>은 2장 분량의 단편이다. 또 시처럼 함축적인데, 많은 여백을 어떻게 풀어내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그 여백을 풀어낼 때 부담이었나 아니면 약간의 짜릿함이나 쾌감이 있었나.
안 : 쾌감이라고 하니 무섭다(웃음). <메밀꽃 필 무렵>은 짧은 내용이지만 표현도 시적이고 애틋하기도 하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이라는 단어에 제일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조합하려 애썼고 그 여백을 잘 표현하려 했다. ‘무섭고 기막힌 밤’이라는 말이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표현이 시적이라 생각할 여지를 많이 두었다.
박 : <메밀꽃 필 무렵>의 장터씬을 보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디테일한 행동이나 제스쳐를 하기도 하던데, 혹시 안재훈 감독도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 있나.
안 : 보통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연필을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니 연필을 이용한 행동을 자주 하는 것 같다. 뭘 치우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고 코도 파고(웃음) 입에다 가져다 댈 때도 있다(웃음)
박 :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아니면 따로 모델이 있는 건가.
안 : 행동하는 부분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모델이다. 자주 외출을 안 해서 가끔 외출하면 전철이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주말에 종종 황학동 풍물시장에 가곤 하는데 그곳에서도 많이 관찰하곤 한다. 몇몇 캐릭터의 얼굴은 확실히 모델이 있다. <소중한 날의 꿈>을 할 때 초상화를 수없이 그려봤는데, 실제로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박 : 텍스트로 표현하지 못한 점을 애니메이션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안 : <운수 좋은 날>을 예로 들고 싶다. 자동차나 사물을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좀 더 입체감을 살리고 시간도 단축할 요량으로 3D를 넣었는데 완본을 보고서 우리 스탭들이랑 ‘역시 사람 손이 더 낫구나.’하고 생각했다. 또 <메밀꽃 필 무렵>에서 물의 흐름에 대한 모습도 잘 표현된 것 같다.
박 : <봄봄>은 해학적인 느낌이다. 점순이의 물동이 장면은 의도한 건가.
안 : 해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판소리를 넣었고 좀 더 재미있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처음부터 미리 판소리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특히 그 장면은 원래는 강아지가 없었는데,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원화 단계에 넣었다.
박 : <봄봄>에서 판소리를 하는 부분을 계속 듣다 보니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가 떠오르더라. 혹 다음 작품에서도 해설이 필요하다면 장기하 특유의 음색을 살리는건 어떨지.
안 : 깊이 있게 고민해보겠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한 작품 정도는 어울리는 작품이 있지 않겠나(웃음).
박 : <운수 좋은 날>의 잿빛 하늘이 참 기억에 남는다. 하늘의 색을 보면서 애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김첨지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 같았는데, 하늘의 색감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안 : 배경을 담당한 스탭에게 자세히 물어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김첨지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메밀꽃 필 무렵>, <봄봄>의 색감 선정 후 <운수 좋은 날>의 색감을 정했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조금 어두운 편이라 조금 더 신경을 썼다. 김첨지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색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박 :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보니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작업했다고 들었다.
안 : 맞다. 처음 소설을 읽고 나서 원고지에 필사했다. 대사도 바꾸지 않으려 애썼다. 원래 대사를 고치기가 제일 쉬운데 고치지 않고 다른 듯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씩씩하고 다양하고 새롭게 표현하고 싶다.
박 : 다음 작품들도 꾸준히 할 생각인가.
안 : 우리나라 단편이 굉장히 많다. 내 바람은 대한민국에 애니메이션을 하는 감독들이 단편 작업을 많이 하는 것이다. 본인만의 스타일로 한국 단편 문학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싶다. 일단 내가 먼저 10편 정도 하고 그 이후에 다른 감독에게 넘겨주려 한다. 우리 문학이 사라지지 않도록 문학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우선 유명한 것들은 내가 먼저 하겠지만(웃음).
관객 : <메밀꽃 필 무렵>, <봄봄>의 캐릭터는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근데 <운수 좋은 날>은 캐릭터가 아예 다른 느낌이 드는데, 따로 맡긴 것인지 궁금하다.
안 : 우리는 따로 분담하거나 세분화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작화팀이라 부르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스케치를 했다. <메밀꽃 필 무렵>, <봄봄>은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고 <운수 좋은 날>은 사실 같은 스탭이 그렸는데 일부러 다른 그림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첨지는 실제 모델이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프로듀서다(웃음). 그림은 그리다 보면 계속 비슷해진다. 그래서 얇은 주름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관객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음영이 최소화되어있는 느낌이 든다. 톤이 일정한 것 같기도 하고. 배경은 사실적인데 인물은 표면적이다.
안 : 그림자는 조명이 있는 상태에서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다 보니 직접 그려야 한다. 형태에 따라 넣으니 다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 비슷해지더라. 그래서 그림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조금 최소화되기도 했다. 보통 목 밑에 많이 치중하는 편이다.
관객 : 인물마다 피부톤이 다양하다. 따로 구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안 : 배경이 정해지면 그곳에 맞춰서 색을 넣었다. 배경과 어울리는 느낌으로 가려고 애썼다. 앞의 두 작품은 한복을 입다 보니 톤을 조금 다양하게 넣었고 <운수 좋은 날>은 오히려 단조롭게 했다.
관객 : 대사를 그대로 복원한 탓인지 간혹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
안 : 처음 대사를 그대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어른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사를 그대로 썼는데 실제로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대사를 놓치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하다. 더 연구해서 어색하지 않게끔 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다음 작품 <소나기>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어서 보기가 편할 거다(웃음).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잊혀졌던 한국 단편 문학들이 다시금 빛을 발하길 바란다. 세 작가가 표현했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인디스페이스와 인디플러스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내년 개봉작은 <소나기>, <무녀도>, <벙어리 삼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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