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죄의 무거움, 인디돌잔치 <가시꽃> 인디토크
영화: <가시꽃> _감독 이돈구
일시: 2014년 8월 19일
참석: 이돈구 감독, 배우 남연우 양조아
진행: 박현지 인디스페이스 홍보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신효진 님의 글입니다 :D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잔인해진 한 남자의 <가시꽃> 같은 사랑이 돌아왔다. 2013년 개봉 이후 [인디돌잔치]로 1년 만에 스크린으로 만나게 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폭력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가운데 <가시꽃>은 우리에게 죄의 ‘무거움’에 방점을 찍어주었다.
진행: 처음에 어떻게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구상하게 되셨는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감독: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뉴스에 나온 너무 끔찍한 성폭행 사건을 보고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면서 출발했습니다. 그 때부터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제가 여자들 사이에서 자라 굉장히 여성 우월주의적인 사람인데, (웃음) 그래서 그 사건을 보고 분노를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진행: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좀 거부감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감정 기복이 너무 크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 일수도 있는데, 배우 분들은 어떻게 출연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남연우 배우(이하 남):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품이 없을 때라, 15년 째 알고 지내온 이돈구 감독에게서 같이 작업하자는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망설이지 않았어요. 시나리오에 있어서도 성폭행은 그 무엇으로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양조아 배우(이하 양): 저도 어쩌다 보니 성폭행 피해자 역할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여자로서 성폭행 이슈를 다룬다는 게 뜻 깊었어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성폭행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 가슴 깊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영화와 이렇게 뵈었을 때, 남연우 배우님은 정말 다른 사람 같아요. 그만큼 영화 속에서 ‘성공’이라는 캐릭터가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요. 연기에 어떤 마음과 감정으로 참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 저와 비슷한 성격이었다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성공’이라는 인물이 저와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더 쉬웠어요. 관찰을 통해서 성공이의 성격과 행동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진행: 양조아 배우님도 성폭행 사건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마치 방언이 터진 것처럼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는데요. 놀라웠어요.
양: 제가 성폭행 피해자 역할을 위해서 조사를 했어요. 그 인물이 느꼈을 법한 분노나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증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그게 연기에 반영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이 제가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웃음)
감독: 그 장면을 거의 한 두 번 만에 찍었어요. 그 때 제가 카메라를 잡고 있었는데, 순간 집중력이 정말 엄청났어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진행: 영화를 보다보면 ‘성공은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한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꼭 그런 설정을 하셨어야 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감독: 그런 인물이 이중적인 성향을 갖게 되면 굉장히 폭발적으로 포악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성공이의 성격을 그렇게 설정 했어요. 그렇게 포악함을 숨기고 있는 친구들이 간혹 있거든요. 성공이도 그런 특이한 면이 있는데요. 보통 남자라면 교회에서 장미를 본 이후에 도망을 갔을 거예요, 그런데 성공은 장미를 집까지 뒤쫓아 가죠. 이렇게 좀 특이한 인물로 설정하고 싶었어요.
진행: 만약에 성공의 친구들이 장미에게 ‘미안하다’고 사죄를 했다면 성공은 그들을 단죄하는 걸 멈췄을까요?
감독: 어떤 선택을 했어도 죽었을 거예요. 살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 속에서 대답을 달리 했다고 ‘성공이가 그들을 살려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촬영을 하던 당시에 저도 단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남연우 배우에게 계속 이야기했어요.
남: 네, 저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진행: 성공이 솔직하게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털어놓았다면, 장미는 성공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양: 저는 절대 용서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여쭤본 적이 있어요. 이게 모두에게 해당하는 대답은 아니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 그 피해자는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성공이가 장미에게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면 장미는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진행: 이미 익히 알려졌듯이, 300만원의 예산과 총 10회 촬영으로 영화를 만드셨는데, 이런 상황이 정말 쉽지 않잖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감독: 촬영은 8월에 한번 찍고, 9월에 5회, 12월에 4회 이렇게 10번을 찍었는데, 촬영이 없는 기간 동안 배우들이 참 열정적으로 기다려준 것이 정말 고마웠어요. 에피소드라면 바닷가에서 촬영 할 때, 봉고차 바퀴가 모래에 빠져서 빠져 나오느라 4시간을 허비하고 촬영 스케줄이 다 엉켰던 적이 있어요. 결국 잘 시간도 없이 서울과 을왕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촬영을 했어야 했죠.
진행: 그럼 배우 분들께서 힘들었던 적은 없으신가요?
남: 저는 정말 좋았어요.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엠티를 가는 느낌이었어요. 밤샘 작업을 할 때도 누구하나 불평불만하지 않고 파이팅 넘치게 찍었던 것 같아요.
진행: 그럼 혹시 지금 다시 300만원의 예산으로 영화를 찍어보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감독: 저는 안 찍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정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배우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 촬영을 하면서 길거리에 나란히 앉아 한솥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배우들에게 정말 죄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관객: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감독: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보시는 분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장면인데요. 성공이가 친구들의 죄를 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그 장면을 찍을 때 가장 희열을 느낀 것 같아요.
양: 저는 성공이와 장미가 카페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찍으면서도 가장 재미있었고 호흡도 잘 맞아서 좋았어요.
남: 제게 가장 소중한 장면은 마지막에 장미가 TV를 보는 시퀀스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를 울컥하게 만든 장면이었거든요.
진행: 대부분의 영화들은 사고가 나고 ‘이 사고가 왜 났을까’ 시간을 역으로 돌리는 스토리가 많은데, <가시꽃>은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색달랐던 것 같아요. 편집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감독: 제가 1년 반 동안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콘티를 완벽하게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콘티에 정확히 맞추어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편집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웃음)
남: 제가 감독님을 가장 신뢰했던 부분입니다. 그림을 정말 잘 못 그리시는데...(웃음) 4B 연필로 손이 까매질 정도로 그려진 그 콘티를 보면서 감독님의 머릿속에 장면이 다 들어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행: 아, 남연우 배우님이 얼마 전에 감독으로 데뷔를 하신 것 같던데요. 어떻게 감독으로 데뷔를 하시게 되었나요?
남: 6년 전쯤 이돈구 감독과 배우 준비를 하다가 영화를 직접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번갈앙가며 영화를 몇 편 찍었던 적이 있어요. 그 때 이돈구 감독은 감독의 자질을 느껴 계속 연출을 하고 있고, 저는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가 호흡할 수 있는 배우들과 연기를 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단 생각에 제가 직접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 모두 참여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가 운 좋게 ‘미장센 영화제’에 상영되어 큰 영광이었죠.
진행: 감독님과 배우 분들께 <가시꽃>이라는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감독: <가시꽃>은 저의 장남 같은 작품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촬영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고 좋았습니다. <가시꽃>은 지금 이야기를 해도 좋은 기운을 불러일으켜요. 촬영을 하면서 즐거웠던 추억들이 많았고, 그래서 항상 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양: <가시꽃>은 제게 제대로 된 첫 영화였어요. 그 전에는 학교 수업 과제로 출연을 많이 했었는데, 처음으로 찍어본 장편 영화였고, 그래서 영화라는 장르에 처음으로 호기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좋은 이야기와 좋은 목적으로 만든 영화에 제가 출연을 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자부심이 있고. 배우로서의 제 방향성을 정해준 작품이에요.
남: 배우로서 <가시꽃>을 찍기 전과 후로 나누어질 정도로 <가시꽃>은 제게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이 영화로 베를린도 가고 운 좋게 수상도 했죠. 이 작품은 제가 배우로서 도전을 멈추지 않도록 해준 영화에요. 그래서 이 영화를 끝까지 잘 이끌어준 감독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진행: 마지막으로, 지금 어떤 작업들을 하고 계신지, 향후 행보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감독: 저는 <가시꽃>이 끝나고 작년에 영화를 한 편 더 찍었습니다. 제목은 <현기증>이고요.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꼭 봐주십시오. (웃음)
양: 저는 ‘양송 프로젝트’라는 극단에 소속되어있는데요. 이번에 두산아트센터에서 [죽음과 소녀]라는 연극을 하게 되었어요. 보러 와주세요.(웃음) 작품 정말 괜찮습니다.
남: 저는 배우로서 상업영화 단역으로 출발하고 있고요. 독립영화 또한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좀 더 예산이 큰 작품으로 감독님과 다시 좋은 작품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행: 네, 이렇게 오늘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300만원, 적은 예산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배우와 감독 모두가 서로 이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벌해야 한다는 제작진들의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작품을 넘어 인디토크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제작진과 관객 모두 가슴 깊이 좋은 작품으로 남을 영화, <가시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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