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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s페이스] 우리들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만찬> 인디토크

by 도란도란도란 2014. 2. 7.


 인디's 페이스 (Indie's Face) 


상영 후 감독 배우들과 함께하는 인디토크와 인터뷰, 상영작 리뷰 등 인디스페이스의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  기록 자원활동가 입니다. 극장 안 이야기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의 얼굴, <인디's 페이스>와 더욱 알찬 소식 만나세요 :D



영화: 만찬_김동현

상영일시: 2014년 1월 26일

참석: 김동현 감독, 배우 정의갑 박세진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2013년, 한국 독립영화 최초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만찬>이 지난 23일 개봉했다. <만찬>은 ‘인사 없이 사라진 행복과 노크 없이 찾아온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잔잔하고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26일에 진행된 인디토크에는 김동현 감독과 극 중 장남부부로 등장하는 배우 정의갑과 박세진이 참석했다.

 

진행 : <만찬>이란 작품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어요.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은 바 있고, 소설 <오발탄>에 비유되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영화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감독님께 우선 <만찬>을 만들어낸 계기와 제목에 담겨진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감독 : 대한민국에서 감독으로 살기 이전에 한 중년 남자로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청년실업, 명예퇴직, 노후문제 같은 것들이 자고 일어나면 뉴스에 나오니까 언제 한번 모아서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됐고,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엄마의 햄버거>였어요. 원래는 자식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엄마의 생일날 아버지가 엄마를 위해서 햄버거를 사오는 장면이 모티브였습니다. 편집이 끝나고 보니까 햄버거를 사오는 장면보다 영화 전체를 포함하는 내용이 만찬 장면에 담겨 있어서 제목을 <만찬>으로 고쳤습니다.

 

진행 : 어떻게 보면 편집과정에서 뒤늦게 영화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경우인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명예퇴직이나 이혼 같은 것을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듣고 있어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IMF 이후에 이런 현상들은 우리의 일상에 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얘기되던 것들이잖아요. 이런 부분들을 가장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이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인철이었을 것 같고, 인철의 아내 혜정이라는 역할은 굉장히 외유내강형,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물인 것 같아요. 배우 두 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느끼셨고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의갑 : 처음에 감독님께 연락을 받고, 오디션을 보고 나서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그때 알았는데요. 오디션 비화를 얘기해 드리자면, 처음 오디션 봤을 때 떨어져서 며칠 있다가 다시 봤다가 또 떨어졌다가 마지막에 됐어요. 어쨌든 한참 후에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드라마 대본도 많이 봤고 연극도 오래 해서 작품에 대한 저만의 생각들이 있는데 이렇게 멋진 시나리오는 요즘 보기 드문 것 같아요. 다른 스펙타클하고 큰 사건보다 사회 전반을 휘두르는 힘 자체가 굉장히 묵직했고요. 더군다나 인철이 맡고 있는 가장이란 역할이 현실에서 정의갑으로서 맡고 있는 가장과 굉장히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 동화되지 않았나싶어요. 저 또한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고, 동생들을 건사해야만 했었고, 어깨에 보이지 않는 장남으로서의 무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작품과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세진 : 저도 오디션을 봤고요. 감독님과 미팅을 할 때는 사실 혜정이라는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상태였어요. 물론 다른 배우들도 그랬겠지만 모든 출연진이 꾸려진 후에 전체대본을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시>라는 작품과 소재나 다뤄진 내용들이 다소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캐릭터가 달랐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선택을 하게 됐어요. 혜정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보면 스쳐지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격 같지만 옆에서 편하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도 아우를 수 있는 자기만의 정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역할을 많이 맡아보지 못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 두 분의 연기에 대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두 분 뿐만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동생 모두 그 역할에 동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 제가 인철에게 요구한 건 톤 다운과 절제였는데 나흘째나 닷새째에 목욕탕에서 울다가 양치하는 장면을 찍고 나오면서 스태프들한테 박수를 받았어요. 인철이 그때 감을 잡지 않았나 싶고 그때부터 그런 톤으로 계속 밀고 나가더라고요. 혜정은 촬영을 계속 하다가 “왜 저한테는 디렉팅을 안 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혜정에게는 따로 디렉팅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사실 세진 씨는 기본기가 탄탄해서 시나리오에 나오는 캐릭터, 요구하는 인물을 스스로 잘 하고 있었어요. 감독 눈에 벗어나지 않는 거죠. 그런데 세진 씨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섭섭했나 봐요. 디렉팅한 횟수를 보면 인철보다는 혜정이 더 연기를 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웃음)

 

진행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이 굉장히 강해서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죠. 음악과 함께 눈 내리는 날의 풍경이 굉장히 뇌리에 박힙니다. 엔딩 장면을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와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감독 : 눈 내리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고요. 모든 촬영이 끝나고 보름 후인 2012년 12월 5일에 촬영을 했는데, 그날 눈이 온다고 해서 배우들을 아침 8시까지 불렀어요. 그런데 12시까지 눈이 안 와서 산 밑으로 점심 먹으러 갔다가 다시 올라오니 1시간 만에 그렇게 쌓여있어 2시간 반 동안 촬영을 마쳤습니다. 눈 내리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해주고자 하얀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좀 더 확장을 해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곤경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해당되지 않는 가족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가족들에 대한 전체적인 위로이기도 하죠.

 




진행 : 두 배우 분들께서는 12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지 궁금해요.

 

정의갑 : 125분 다 좋아합니다. 단 한 장면도 좋아하지 않는 장면이 없어요. 많은 분들이 엔딩이나 만찬 장면을 좋아하시는데, 저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인호가 사고를 치고 주차장에서 저와 만나는 장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인호가 사고치고 시체를 유기한 후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가 나온 뒤 제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인호는 여자 친구를 보내고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이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처음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가슴에 남는 장면이고요.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박세진 : 저도 만찬 장면이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는 일상적인 장면인데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일상을 떠올리게 해서 뭉클하고요. 촬영 마지막 날이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눈 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여러 장면 중에서 혜정이 집에 처음 들어가 바깥풍경을 딱 볼 때, 관객들도 함께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정말 좋았고요. 또 눈 온다고 좋아하면서 밖에 나가서 썰매타고 놀 때 부부가 크게 함박웃음을 짓는 그 장면이 굉장히 밝게 나와요. 앞에 있던 어두운 면을 한 순간 상쇄시키는 것 같아 좋았어요.

 

진행 : 만찬 장면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과 감독님께서 전하고자 했던 감정이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판타지로 느껴도 좋고 과거회상으로 느껴도 좋다고 하셨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설명 부탁드려요.

 

감독 : 저는 가족들이 만찬,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을 회상으로 찍었어요. 마지막에 인철은 취업을 하고, 인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진은 시집갈 것이라는 대사가 나와요. 사람들이 그장면을 판타지로 보는 게 신기해서 ‘앞이 얼마나 어두웠으면 그렇게 느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는 보는 사람들 각자의 해석이니까 판타지로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저는 분명히 과거회상으로 찍었습니다.

 

관객 : 저도 회상 씬으로써 만찬 장면을 봤는데요. 영화 전체에서 희망이 담긴 메시지는 만찬 장면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과거회상이잖아요. 그럼 희망이란 건 한국사회에서 과거형이 됐다는 걸 말씀하시려 했던 건지 궁금합니다.

 

감독 : 매체에서 현실이 너무 암울하니까 ‘희망이 있던 과거’ 그렇게 규정을 짓던데 그 말 자체는 틀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으면 감독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타인에 의해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는 희망이다’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건 영화 발표 후 듣게 된 것이지만 그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닙니다. 영화는 각자의 해석이니까요.


 



관객 : 영화 정말 잘 봤고요. 감독님이 음악을 직접 선곡하신 것 같은데 클래식 음악을 영상과 함께 보니까 음악으로 어떤 느낌을 얘기하시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클래식 음악을 선곡하게 된 의도가 있나요?

 

감독 : 이번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단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가 떠올랐고 마지막 장면에 쇼팽 녹턴이 떠올랐어요. 음악에 돈을 따로 투자할 여유도 없어서 클래식 음악을 썼는데 하나 덧붙이자면 마리아 칼라스의 곡을 저는 10분의 1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영국 EMI에 편지와 영상을 보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아마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서 더 기뻤습니다.

 

진행 : <만찬>이라는 영화가 계속해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관객 분들께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려요.

 

정의갑 : 추운 겨울날 저희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작은 영화지만 따뜻한 영화고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볼 수 있도록 좋은 얘기도 많이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세진 : 소소하고 일상적인 만큼 저희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영상으로 만들고 이야기로 만나니까 새롭게 생각할 수 있더라고요. 각박한 사회에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드는 영화, 이번 기회에 좋은 분들과 도란도란 영화보시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독 : 저도 날씨가 추워지니까 집에서 나오기가 싫던데(웃음) 여기까지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가히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감사하고요. 소문 많이 내주세요.

 

영화 <만찬>은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가정이라면 극 중 상황과 100% 일치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저녁식사, ‘만찬’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정리/최이슬 자원활동가(iamyise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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